방백
지코 X 태일
"헤어지자."
오늘도 네 앞에선 하지 못할 말을 되뇌었다. 눈을 감고 네가 이 말을 듣고 지을 표정을 상상했다. 똑같을까, 평소와 같이. 내가 무슨 말을 하던 신경쓰지 않고 네 할 말을 하고 그냥 나를 스쳐지나갈까, 아니면 놀란 표정을 지을까, 후련한 표정을 지을까. 마지막 생각을 하자 괜스레 슬퍼져 눈시울이 시큰했다. 다른 사람들은 손사래 치며 "걔가 그럴 리가 없어." 라고 말 하지만 너를 오래 본 나는 네가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슬퍼졌다. 나 혼자만 좋아하는 것 같아. 연애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 생각이 안 든 적이 없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매일 만나던 스타벅스, 오후 6시에 보자. 우지호. ]
언제나 용건만 간단히 전하는 네 문자는 연애 초기와 똑같았다. 아니, 연애 초기에는 어느 정도 애정이라도 담겨 있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용건만 간단히 전했다. 억울하다. 그래서 답장도 안 해 놓고 지금 와 혼자 후회하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했다. 네 문자 하나에 설레어 뭐 입지, 하며 고민하고, 머리는 괜찮은가, 향수라도 뿌려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내가 굉장히 처연하게 느껴져 괜스레 코 끝을 쓰윽 문질렀다. 오늘은 꼭 말해야지, 말해야지 하면서 집을 나섰다.
옷을 잘 입던 너 덕에 나도 꽤나 패션 고자에서 탈출하고 꾸미는 것에 맛을 들렸다. 음악을 좋아하는 너 덕에 나도 모르던 능력을 알았고, 그 덕에 취미가 직업으로 변하게 되었다. 좋아하던 음식도, 영화 장르도 네 덕에 다 바뀐 것 같았다. 너는 4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나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6시가 조금 안 되어 스타벅스에 도착하니 너는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문에 기대어 핸드폰을 하고 있는 네 모습에 설레었다. 내가 네 옆으로 가자 너는 내 어깨에 팔을 올리고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언제부턴가 나는 너를 따라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셨고, 너는 익숙하게 카페에 가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켰다. 너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싶어 마시기 시작했던 아메리카노이고, 이렇게 하나 씩 너를 따라하다 보면 나도 언젠가 너랑 닮아가지 않을까, 그러면 나도 상처를 덜 받지 않을까 싶어 마시기 시작했던 커피이다. 그런데 닮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너의 취향이 내게 물들어버렸다. 너는 언제부터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자리에 앉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니 너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평소에는 신나서 얘기했을 터인데, 말 하지 않으니 의아했던 모양이다. 나를 빤히 바라보며 내뱉는 말에 또 혼자 설레는 자신을 자책했다.
"왜, 무슨 일 있어?"
무심한 말투로 내뱉는 말에 고개를 들고 너를 바라보았다. 말 할까, 하지 말까.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수 십 번 고민했다. 여기서 헤어지자고 말 할까, 그러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속으로 혼자 결정하고 웃으며 너를 바라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오랜만이네."
오늘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얘기를 하면서 너는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는 듯 했고, 나 또한 그에 신나 최근의 동향을 다 말한 것 같았다. 내 자신이 초라하다. 불쌍하다. 속으로 몇 번이고 연습했는데, 헤어지자고, 그만 만나자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 연습했는데 정작 만나면 아무런 말도 못 한다. 네 눈빛이, 네 표정이 나를 옭아매고, 네 목소리가 나의 입을 막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났다. 억울하다. 차라리 대놓고 못 해주면 내가 싫어할 수라도 있을 터인데 그러지도 못 한다. 너는 계속 나를 옭아맸다.
헤어지자, 오늘도 나는 네 앞에서 절대 하지 못 할 말을 수 십 번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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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엉 분량이 많이 짧아요...ㅜㅜ
갑자기 쓰고 싶어서 쓴 글이라 퀄이 낮지만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