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뉴스에나 나올 법한 일들, 예를 들면 하늘에서 돈다발이 떨어진다거나 도시 한복판에 코끼리가 출몰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그렇다. 그래도 자신에게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런 일들은 그저 하나의 이슈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오~ 이거 유튜버들이 쓸 법한 소잰데?'라며 잠시 감탄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어느날 갑자기 잘생긴 남자가 내 눈 앞에 떨어졌다. 정확히는 떨어진 건 아니고 나타난 거지만. 그날은 남친한테 차여서 울고 불고 하는 절친 진아를 달래주고 오는 길이었다. 집 앞에 낯선 뭉치가 보였다. 정확히는 움직이는 생명체. 동물이라기엔 많이 큰, 그러니까 사람이었다. 그것도 다 큰 성인 남자. 계속 웅크리고 있어 검은 머리통만 보였지만 곧 인기척을 느꼈는지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와- 본능대로라면 소리를 질러야 하는 게 맞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눈을 수차례 비볐다. 물론 그건 일차적으로는 그 남자가 괴한 같은 이상한 사람은 아닐 것 같다는 직감때문이었고 좀 더 직관적으로는 그 남자가 매우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범죄에 외모가 어딨냐며 누군가는 외모지상주의라고 꾸짖을지 모르지만 자고로 저런 얼굴은 얼굴만으로도 만병치유가 가능한 얼굴이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상황에 닥친 이상 일단 저 남자를 어떤 쪽으로든 처리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살짝 취기가 돌긴 해도 제법 멀쩡한 정신 상태였단 거다. 아니 잘생겼든 어쨋든 모르는 남자를 초면에 집으로 들일까를 고민했으니 조금은 취했을지도. "저기요." "......" 말에 반응은 하는 것 같은데 대답은 없다. 그저 날 쳐다볼 뿐이다. 와 나 미치겠네. 하나 있는 웬수 같은 오빠가 저랬으면 바로 쏘아붙였을 텐데, 저 얼굴 앞에선 인내력이 생겼다. "여기는 저희 집 앞인데..." "...아." "혹시 집을 잘못 찾아오신 거면, 제가..." "집... 몰라요." "네?"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냥 오다보니까 여기였는데.." "......"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어쩌다보니..." 아... 아까 남자가 했던 반응을 이젠 내가 똑같이 하고 있다. 갑자기 어떤 남자가 집 앞에 나타났는데요. 아무것도 모르겠고 기억도 없는데 그냥 우리 집 앞에 왔대요. 이게 무슨 말이지? 이건 무슨 상황이야? 머릿속이 엉켜서 순간 상황정리가 안 된 여주가 벙찐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어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하지? "..잘은 모르겠지만 시간도 늦었고, 일단 들어오세요. 내일 자세한 건 다시 얘기해봐요." 진아가 보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 남자를 집으로 들였다. 다행히 원룸은 아니고 여분의 방이 있어서ㅡ전에 친오빠가 지내던 공간이다ㅡ일단은 그리로 안내했다. 남자는 본인 스스로도 혼란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별다른 부정 없이 따라 들어왔다.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면 돼요. 화장실은 저쪽에- 칫솔은 새거 꺼내드릴게요. 옷은 저희 오빠 옷밖에 없긴 한데... 일단 그거 가져다 드릴게요. 얼추 맞으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예의는 배어 있는지 감사인사를 건넨 남자는 조심스럽게 오빠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낯선 공간에 어색한 분위기까지 감돌아서인지 남자는 주위만 멍하니 둘러봤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옷이나 갖다주자. 말은 별로 없었지만 남자는 기본적으로 가정교육부터 철저히 잘 배운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남의 집이라지만 새로 꺼내준 칫솔과 오빠 옷 등을 다루는 걸 보면 느껴졌다. 하다못해 사용한 수건도 깔끔하게 다 쓴 수건통에 넣어두더라. 우리 오빠만 봐도 던져대서 정말 저게 쓰레기인지 수건인지 구분이 안 갔는데 이 남자는 그조차도 깔끔함의 끝이었다. 옷 입은 태 역시 뭔가 깔끔했다. 우리집 누구랑 참 다르게. 그렇게 그날 밤 다소 즉흥적으로 모르는 남자를 끌어들인 여주는 몰랐다. 이 남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거라는 걸. * * * 좀 짧죠? 여주가 즉흥적으로 석진이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온 것처럼 저도 즉흥적으로 짤 하나 보고 번뜩 쓴 글이에요. 그래서 더 미흡한 점이 많지만, 석진이 같은 크고(?) 매력적인 훈남 키우는 건 어떨까 하는 마음에 쓰게 됐어요. 하하 근데 정작 석진이는 이름조차 안 나왔네요;;; 첫 화가 여주의 회상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조금은 불친절한 부분이 많아 덧붙여보자면요. 이때 여주는 통성명도 안하고 정말 얼떨결에 그냥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된 거라고 가정하고 썼어요. 물론 현대 사회에서 잘생겼다고 해도 초면인 남자를 여자 혼자 있는 집에 들이는 건 위험한 행동이지만, 여주도 나름대로 그럴 배경이 있긴 있어요. 이후의 이야기들을 보시면 조금은 이해가 가실 수도 있을 거예요...아마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