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아]
[나 집에 못 들어가고 있어]
[왜]
[무슨 일 있어?]
[...]
[벌레]
[저번보다 훨씬 더 큰 것 같아]
자취 3개월 차, 벌써 두 번째 벌레와 만남이다.
부모님의 걱정과 만류를 뒤로하고 호기롭게 독립을 선언했던 내가, 내 몸집의 몇 배는 작을 불청객 하나 때문에 자취를 후회할 줄이야.
자취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마주했던 벌레는 전화기 넘어 울먹이는 나의 목소리에 놀라 달려온 지민의 도움으로 해결했었다.
그 후 다시는 벌레를 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빼곡히 배치해둔 해충 약 덕에 한동안 안 보이는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두 달 만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여주야 근데 어떡하지]
[나 지금 부산이다]
"...망했다."
지민이의 답장이 보이자마자 한숨을 뱉었다,
믿고 부를 사람이라곤 지민이 하나밖에 없는데, 하필이면 동네에 없다.
벌써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라 부산에서 오는 교통편도 없을 테고,
지민이 내일 KTX 첫차를 타고 동네에 도착한다 해도 나는 그때까지 밖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급하게 도망쳐 나오느라 가지고 있는 거라곤 곧 방전될 핸드폰 딱 하나뿐이었다.
머리 위에선 주황색 센서등이 내가 움직일 때마다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이 상태로 버틸 수 있을까.
임시방편으로 주변에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찾아보려 핸드폰을 켰지만,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 잔량에 또다시 좌절해야 했다.
시간이 갈수록 엉덩이는 시려오고 바깥의 빗줄기는 거세졌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힘없이 머리를 벽에 기대고 멍하니 계단의 개수를 샜다.
*
몇시간 쯤 지났을까, 공동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인지 마음이 불안해졌다.
제발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았으면, 민망하게 인사할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젖은 발소리와 함께 밑에서부터 하나씩 센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자, 알 수 없는 불안함에 곧 방전될 핸드폰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애꿎은 카톡 창을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했고, 메모장에는 헛소리들을 나열했다.
발소리는 점점 가깝게 들려왔고, 센서등은 벌써 내 바로 밑층 까지 켜졌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앉아있는 층에 센서등이 켜졌을 때, 타이밍 좋게 내 핸드폰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꺼졌다.
민망한 얼굴로 슬쩍 앞을 바라보자 놀란 듯 멈칫하는 남자가 보인다.
"아 깜짝이야..."
남자가 중얼거렸다.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방전된 핸드폰을 들고 있는 내가 남자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말하지 않아도 그의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남자는 떨떠름한 얼굴로 나에게 가볍게 묵례하고, 내가 앉아 있는 쪽으로 들고 있던 젖은 우산을 반대 손으로 바꿔 든 뒤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벽에 찰싹 달라붙은 내 모습이 이렇게 초라할 수 있다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두 눈을 질끔 감았다.
남자는 곧이어 내가 사는 집 바로 앞 호수의 도어락을 눌렀다.
'앞집 사는 사람이구나...'
3개월 만에 처음 본 이웃을 이렇게 만나다니.
강렬한 첫인사였다.
어쨌거나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는 남자를 보고 있자니, 집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절실해지기 시작했다.
'비 오는데 창문은 닫고 나왔나?'
'그냥 눈 딱 한 번 감고 들어가 볼까.'
어느 순간 커지는 걱정과 이상한 용기가 생겨 도어락을 누르다가도,
'벌레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떡하지.'
끔찍한 생각에 계단에 다시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
벌써 몇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이제는 엉덩이가 아파 도저히 앉아있을 수 없었고, 상황은 아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그저 미친 사람처럼 문에 머리를 콩콩 박고 있는 것이 다였다.
끼익-
그렇게 바보처럼 머리를 박고 있는 와중에, 등 뒤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그대로 뒤를 돌아 확인하자 몇 시간 전 들어갔던 앞집 남자가 보인다.
남자는 방금 말린 듯 보송한 머리를 손으로 대충 빗어대더니, 도어스토퍼를 내려 열려있는 현관문을 고정했다.
"혹시"
"무슨 문제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