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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기타 방탄소년단 정해인 더보이즈 변우석
전체글ll조회 427l
FIND YOU #04 ------------------------------------------

분명 심장이 저릿저릿해서 숨도 제대로 못 쉴 것 같이 괴로운 느낌이었는데-  그 느낌이 너무 행복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밤을 새워버렸다.   초저녁에 일찍 잠들어서 그런걸까.   밤새도록 뒤척이며 잠을 못 이뤄도 폭신한 구름 속에서 뒹굴던 것처럼  눈을 번쩍 뜨여져서 시계를 보니 아직 아침 7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뭐야, 오늘은 아침 반찬이 왜이렇게 많아?"

"새벽에 할머니 다녀가셨어 누나?"

"아... 할머니 오늘 새벽기도 나가시는 날인가?"

"아니, 그냥 내가 아침에 일찍 깨서... 쫌 만들어봤어."





눈이 휘둥그래진 태평양과 맥반석이 계속 말을 걸어왔지만, 내 시선은 하품을 하며 삐친 뒷머리를 해가지고 반쯤 퉁퉁부은 얼굴을 하고 나오는 꾹이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꾹이는 평소 터프하게 세수를 하는 편이어서 아침 식사 할 때면 늘 앞머리가 다 젖어있곤했다.  왜 세수만하면 앞머리가 젖는지 모르겠다고 쫑알거리길래 앞머리 젖지 말라고 헤어밴드를 욕실에 사다 걸어두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애기같은 얼굴로 상남자병에 걸린건지. 저리 사투리를 안고치는 것도 그렇고, 가만보면 꾹이도 진짜 한 고집하는 캐릭터다.  오늘도 앞머리를 적신 채 멍한 얼굴로 잠에 취해 주방으로 나오는 꾹이를 보면서 아침을 차리다가 그만 실수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냄비를 맨 손으로 살짝 건드렸다.





"앗뜨-"





퉁퉁 부은 꾹이의 눈이 내 목소리에 반짝 뜨이는게 보였다.  냄비가 꽤 뜨거울 텐데 희한하게도 손끝에 통증이 하나도 안느껴진다. 신기하네.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꾹 참느라 힘들었다.





"조심 좀 해라-  누나는 하여간 눈을 못 떼겠다."





슥- 한쪽 손으로 나를 제 등 뒤로 밀어내고는 행주를 접어 냄비를 잡아드는 꾹이의 행동은 언제나 보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커다랗게 내 앞을 가로막는 건 익숙한 일이다. 주방 천장에 낮게 달린 등을 따라 그림자가 지는 등짝을 보는 일도  늘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지금은 모든게 두근거리고 웃음부터 나버린다. 나는 두 손으로 뺨을 가리고 괜히 몸을 뒤틀었다.  왜 이렇게 몸이 배배 꼬이는 걸까. 꼭 여섯살 짜리 애기가 되어버린 기분이야.  식탁에 냄비를 내려놓으면서 꾹이는 그런 나를 쳐다보았다.





"왜?"

"응? 뭐가?"

"오늘 뭔가 이상하다 누나?"

"내가 뭘..."





뭔가 있는데... 중얼거리면서 의심스런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꾹이가 한쪽 손으로 얼굴에 난 솜털을 뜯었다. 또또 저 습관 나온다.





"그거 하지마. 자꾸... 나중에 흉지면 어쩌려고."





나는 얼굴에 닿아있는 꾹이의 손을 떼서 내려주었다.  꾹이의 눈동자가 당황하며 진자의 추처럼 좌우로 움직였다. 그러더니 이내 동그랗게 커졌다. 허업.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놀란 시늉을 하며.





"......너....진짜 우리 누나 아니지? "





그러더니 다시 내 앞으로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냐 너는."





이 쉑......  나는 순간 욱할뻔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니지, 아니지. 어휴, 몽글몽글했던 강릉 초당 순두부같던 마음이 순식간에 취두부처럼 변할 뻔했네. 다시 맘을 가다듬고... 





"앉아있어 애들아, 밥 퍼줄께~"





상냥하게 말을 건네는데 식탁 앞에 앉아 있던 애들이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누...누나 진짜 왜그래 무섭게"

"우리 뭐 잘못했어?"

"야 너 어제 뭔 짓했어."

"아무짓도 안했어!"

"혹시 집세 밀렸어?"

"아니, 나는 안밀렸어, 형은?"

"..........아, 내가 아직 안낸거 같다. 헉 나 때문인가?!"



"다들 밥 안먹고 왜 서있어?"





망개떡 싸부가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2층에서 내려왔다.





"와, 오늘은 아침부터 진수성찬이네. "

"제가 만들었어요. 어서 드세요"

"그래, 고맙다. 선배는 어제 연장근무하고 반차냈대. 늦잠잔다고 아침 안먹는다는데?"

"알겠어요~  싸부 앉으세요 밥 퍼드릴께요"





휙- 몸을 돌리는데 눈 앞에 또 커다란 그늘이 졌다.





"누나 오늘 좀 이상하다 진짜. 어디 아픈가?"





꾹이가 심각한 얼굴로 상체를 숙이면서 한 손으론 내 이마를 짚고 다른 손으로는 자기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는데...."





까만 눈동자.  그 속에 우주를 품은 것 처럼 반짝거리는 꾹이의 까만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사랑스럽게 깜빡이는 커다란 쌍거풀과, 어제부터 자꾸 눈에 들어오는 반듯한 콧대. 토끼처럼 귀여운 앞니를 숨기고 있는 빨간 입술과 그 아래 작은 점 하나. 작은 얼굴 안에 이렇게 커다란 이목구비가 조목조목 들어가 있는 게 신기하다.  동그란 두 뺨 옆으로 어쩜 귓볼까지 이렇게 귀여울까. 귀 끝에서 달랑이는 귀걸이가 새삼 반짝이며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의 종소리처럼.  이렇게 누군가를 정면으로 눈 안 가득히 담고 마주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야.  왜 그동안 너를 이렇게 보지 못했던 걸까. 바보같이.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 여지껏.





"누나 앉아있어. 내가 밥 풀께."

"아냐 내가 퍼줄..."

"앉아있어."





꾹이는 두 손으로 내 어깨를 눌러앉히고는 주걱을 들고 보온밥솥의 뚜껑을 열었다.  한그릇 한그릇 뽀얀 밥을 퍼 담아 식탁으로 다가올 때마다, 꾹이가 품고 있는 주변의 공기가 저 혼자만 다른 온도로 내 등 뒤로 와 닿았다.  꾹이가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넣는 섬유유연제의 냄새처럼. 마치 교회에서 보는 모든 예수님 그림이 그 주변으로 동그랗게 후광을 넣어 그리듯이. 그렇게 꾹이의 주변 1미터 내외로 다른 공기의 테두리가 스륵스륵 내  등뒤로 밀물처럼 와 닿았다.





"자 밥먹자."





살풋 웃으며 밥을 한 술 뜨는데, 다들 찌개로 떨군 시선을 들지 않는다.





"왜? 맛없어보여?"

"누나 솔직히 말해줘. 우리가 뭘 잘못한거야 ㅜㅠ"

"아 다들 자꾸 왜그래~ 내가 그동안 그렇게 소홀했나 반성하게 된다 진짜..."

"아니 그게 아니라...."





꾹이가 머뭇거리다가 찌개를 한숟가락 떠서 눈앞에 보여주었다.





"누나 찌개에 왜  딸기를 넣었어? ...딸기 찌개야?"

"어? 그게 왜 거기들어갔지? 샐러드만들면서 실수로 들어갔나봐, 그거 빼고 먹어."

"...."





꾹이는 침을 꼴깍 삼켰다. 딸기를 밥그릇 한구석에 슥 내려놓고 다시 찌개를 한숟갈 푸는게 보였다.





"왜 맛없어보여?"

"...아니 맛.. 맛있을 거 같아...."

"그럼 어서 먹어^^*"





기대에 찬 내 눈빛을 보고 꾹이는 큰 결심을 한 표정을 지었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크게 한숨을 쉬고는 밥그릇을 내려다보는 폼이 제법 비장했다.  그리고는 바로 밥을 한술 크게 뜨고 입에 넣더니 순간 미묘한 얼굴을 한다.  진짜 맛이 없나? 할머니가 담아주신 된장에, 미리 손질해서 한번 끓일 양 만큼 묶어 얼려 보관하던 야채를 넣고 한거라 할머니 손맛이랑 똑같을 텐데.  평소랑 다름없는 맛일텐데. 보통 때는 잘만 먹더니.  아, 미원 한 꼬집 넣는 걸 까먹었나? 아니 넣은 것 같은데;  꾹이가 밥을 씹는 속도가 빨라졌다.  꿀꺽.  나는 꾹이가 첫술을 삼키키가 무섭게 물었다.





"맛있어?"

"....응."

"아 다행이다. 얼른 먹어~"





나는 신나서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밥먹는 꾹이를 쳐다보았다.  나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밥을 먹는 꾹이를 보며 맥반석과 태평양이 바로 수저를 들었다. 망개떡 싸부도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컥"

"어우 이거 뭐야."

"누나 이거... 이거 감자 아닌데?"

"응?"

"뭐야 이거..."





퉷. 맥반석이 수저 위로 씹던 걸 뱉어냈다. 





"이거 파인애플아니야?"

"어우, 이건 뭐지 묵도 아니고..."

"아니 누나, 왜 된장찌개에 후르츠칵테일 통조림을 퍼부은거야"

 



묵묵히 밥을 퍼먹던 꾹이 두사람을 째릿 노려보자 둘은 목소리 톤을 낮추었다.





"아... 누나가 아침에 힘들게 우리를 위해 요리를 하느라 힘들었구나. 이런 실수도하고."

"그렇지 사람이 실수 할 수도 있지 뭐."





이럴수가. 나는 당황해서 샐러드접시를 쳐다보았다. 녹아서 물이 생기기 시작한 채소들이 딸기와 어우러져 소스가 범벅이 된 채 놓여져 있었다.  바보같이. 뭔 정신이었길래 둘을 바꿔서 요리한거냐. 





"어머 미안해- 어떻게 하지, 다시 끓일까? 일단 이거 빼고...."





당황해서 냄비를 치우려는데 꾹이가 바로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됐어. 신경써서 만들어줬는데. 그냥 먹지 뭐. 먹을만 하네."





맥반석과 태평양, 조용하던 망개떡 싸부까지 동시에 고개를 돌려 꾹이를 쳐다보았다.





'야 미쳤어?'

'너 또 장염걸려 임마'

'됐어. 그냥 먹어, 오늘 누나 좀 이상한거 같은데 일단 먹고 나중에 이야기하자. 형.'

'야 후르츠칵테일된장찌개를 어떻게 먹어!'

'왜 못먹어 과일치킨도 맛있다고 먹는 인간이 형 아니야?'

'임마 그건 튀긴거잖아. 튀긴 건 신발도 맛있다고 했어.'

'난 못먹어, 난 그 과일치킨도 못먹었따고!!!'

'..........그래서 형들 안먹을꺼야?'

'......왜... 왜 갑자기 인상을 써 임마 ;;'

'....아니 뭐 안먹겠따는건 아니라..'

'.......네가 아무리 나를 밟아도 난 못먹어! 못먹어!'

'나...나두!!'

'시끄러워! 누나 들어'





셋이서 수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들린다. 다 들린다 이자식들아.  망개떡 싸부가 그런 세 명과 나를 번갈아 보며 웃었다.   하아... 사람이 살던대로 살아야하는 건데.  이게 뭐람.

































"뭔데"

"뭐가?"

"누나 진짜 무슨 일있는 거 아냐?"

"아냐 무슨 일은..."





무슨 일은 너에게 있겠지.  나는 다시 배싯 웃음이 났다.





"이봐. 이상해. 갑자기 실실거리고."

"그러게. 이상하네."





그러게. 이상하네 진짜. 





"이따 알바끝나고 병원... 아 오늘 일요일이구나. 내일 병원 함 가볼래?"

"이게 진짜!"





익숙하게 내 어설픈 주먹을 피하는 꾹이를 보면서도 평소처럼 얄밉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로 가볍게 상체를 틀어 내 주먹을 피하는 민첩한 모습이 새삼 감탄스러울 뿐.





"하여간 몸은 빨라요."

"내가 괜히 울 하숙집 황금막내겠어? 못하는게 있어야지."





그렇지. 황금손. 황금막내. 어려서부터 운동을 해서 그런가. 태몽도 황금이었다고 하더니. 꾹이는 몸으로 하는 건 뭐든 잘하는 편이었다. 운동때문에 생긴 건지는 몰라도 승부욕과 집착도 장난아니어서 한번 관심가지고 해봐야겠다 덤비면 뭐든 꽤 해내는 편이었고.  그래서 중학생이 되자마자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 두게 되었을 때도 걱정은 했지만 어느 정도의 믿음은 있었다.  뭘하든 중간 이상은 가겠지.  뭐든 잘하는 애니까. 다친 녀석의 수술을 앞두고 토닥거리며 위로를 해주는데 엉뚱하게도  '나 운동 못하게 되면 누나네 학교로 전학가도 되나?'하고 묻던 천진난만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건 그래."





하지만 예상과 꾹이는 조금 달랐다.  학교를 바꾸고 취미도 바꾸며 이것저것 해보는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오래 가진 않았으니까. 공부는 취미가 아니라며 이것저것 도전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그러려니했는데. 연극 동아리에 들기도 하고 악기를 배워보기도 하고 요리를 해보기도 하고 그림도 그려보고.  못하는 건 아닌데 왜 그렇게 끈기가 없나 궁금할 즈음 겨우 녀석이 제대로 정착하기 시작한게 지금 다니는 대학교 영상학과에서 카메라 만지는 일이었다.





"뭐야. 이럴 때 쯤이면 최영장군님 말씀이 좌우명이다- 그래야 정상인데."

"됐어-"

"되긴 뭐가 돼. 진짜 어디 아픈거아냐? 누나 이래서 크리스마스 때 알바 대타 뛸수 있겠어?"

"아 맞다."





크리스마스.  나는 꾹이를 올려다 보았다.





"내가 누나 이럴 줄 미리 알았나보다. 그날까지 안좋으면 그냥 쉬어. 나 혼자 할께."

"어떻게 너 혼자하냐?!"





같이 해야지.  크리스마스인데.





"....이봐 또 이상하게 히죽거리고."

"됐어. 나간다. 이따 늦지 않게 나와."

"알았어."





꾹이는 계속 의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바보. 이럴 땐 정류장까지 데려다 줘야지.   한숨을 쉬는 나를 보며 꾹이가 성큼 다가왔다.





"또 이상하네. 안되겠다. 오늘 내가 대타뛸테니까 쉴래? 주임님한테 내가 말할께."

"됐어~. "

"진짜 괜찮아?"

"몰라~ 가다가 얼음빙판에 넘어지든지 말든지. 신경쓰지마셔."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데. 하아... 저 나어린 녀석을 하나하나 가르칠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 걱정되게. 버스타는데 까지 바래다 줄까?"

"뭐... 그러든가."





나는 그제야 점점 튀어나오려는 입술을 집어넣었다.  대문앞에서 내 옆으로 터벅터벅 걸어나온 꾹이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한쪽 팔을 들어보였다. 





"뭐해. 또 넘어질라."





나는 웃으며 팔짱을 꼈다.  뭐 어때. 대신 하나 가르쳐주면 칼같이 고대로 해주는데.  밝아지는 내 표정을 보며 꾹이가 다시 한쪽 뺨의 솜털을 뜯었다.  그러더니 배싯 나를 따라 웃었다.





"바래다달라고 말을 하지 뭘 그렇게 빙 돌려 말하냐?"

"꼭 말해야 아니?"

"응. 난 말해야 알아."

"자랑이다~"





골목 모퉁이에 싸부의 케이크 카게가 보였다. 모서리에 위치한 삼각형 모양의 작은 가게. 바랜 풀색과 노랑색으로 단장한 원목의 작은 가게 앞엔 테라스도 조그맣게 나있었다. 늘 요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던 묭묭이가 오늘은 안보이네.





"가게 오픈하면 되게 이쁘겠다. 여기 봄되면 골목에 봄꽃나무들 쫘악 피는데. 그때 여기서 커피 마셔도 좋겠다, 그치? 싸부가 만든 케이크 엄청 맛있더라."





응, 이라고 말해.  나중에 여기와서 데이트하자고 말해.





"자꾸 단거 먹으면 살찐다. 연극하려는 사람이 몸무게 관리도 안하나"





이 쉑.....





"단 건 네가 더 좋아하잖아"





너랑 같이 먹고 싶은건데.  싸부가 저번에 카라멜케이크 만들어줬는데 겁나 맛있어서 먹자마자 네 생각났다고.





"쨔잔, 이거  저번에 싸부가 선물로 준건데, 여왕카드래. 이쁘지? 내 부적하려고."





내가 너 생각하면서 뽑은 거다. 근데 여왕카드래. 뭔가 운명의 데스티니 같지 않니?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봐도 모르겠어서 그냥 내 의미대로 해석하기로 했지.





"그 싸부형 사기꾼아니야? 케이크 만든다면서 그런 이상한 점카드나 가지고 있고. 가게이름은 저게 뭐야. 딱 사이비네."





바보야. 내가 너의 여왕이라고.  다시 입술이 삐뚤빼뚤 튀어나오려고한다. 너 나 좋아하는 거 맞니? 





"췟이다."





삐뚜름한 내 입술모양을 보며 꾹이가 내 표정을 따라했다.  이게 진짜.  눈을 부릅뜨자 이번엔 옆모습으로 다시 내 표정을 따라하는 게 보인다. 씩 웃으며 내 표정을 따라하는 꾹이를 보며 한숨이 나왔다.   너랑 무슨 로맨틱한 연애를 꿈꾸겠니, 내가...  조폭물이나 엽기호러코믹물을 찍겠지.





"버스 온다."





휴대폰에 이어폰을 꽂고, 버스로 올라섰다.  살짝 삐진 마음으로 시선을 안주고 뒤통수만 보여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정류장쪽으로 몸을 틀었다.  꾹이가 계속 그 자리에 서서 버스 안을 쳐다보다가, 내가 뒤돌아 서자 바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뭐라뭐라 말을 하는데 이미 휴대폰에서 음악이 나오기 시작해서 꾹이가 뭐라하는 지 잘 안들렸다.  띠링. 버스가 출발하자 마자 톡이 울렸다.





-누나 바쁘면 톡해. 일찍가서 도와줄께. 화이팅하시오~





아아 또다시 입꼬리가 올라서는 것을 멈추 수가 없다. 언젠가 꾹이가 과제라면서 보고 있던 어려운 제목의 영화가 떠올랐다.  무슨 뜻인가 보려고 영화 제목을 검색했는데, 영화는 몰라도 그 영화 속 대사는 너무 유명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하죠? 저는 사랑에 빠졌어요. 너무 아파요.

걱정하지마, 내게 치료약이 있으니까.

하지만 낫고 싶지 않은걸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괜찮니? 혼자서 힘들지 않아?"

"괜찮아요 주임님"

"그러게 왜 애를 삐치게 만들어서 그만두게 하니?"

"아우 진짜 주임님... 그런거 아니에요..."

"사람 구하고 있으니까 좀만 기다려."





띠링.





-바빠?





짜식아, 이제 출근한지 한시간 됐거든?





-아직. 괜찮아.

-안바쁜가 봐. 칼답하는거 보니. 진짜 안도와줘도 돼?

-도와주면 좋고.

-기다려. 빨래 다 하고 나가서 도와줄께.

-옹옹





"연애하는 것도 좋은데, 일에 집중하자? 자꾸 그러면 일할 떄 폰 회수한다?"

"넵. 알겠쓥니다~"

"목소린 왜 또 그래. 현 반토막 씹어먹었니?"

"아닙니당"

"크리스마스때 사람 더 필요할까? 그때 둘이서만 해도 되겠어? 사람구해도 일을 가르쳐야 할텐데"

"둘이서 해도 돼요!"





둘이서 하는게 더 좋아요! 뒷말을 꼭 삼키고 나는 도끼눈을 한 주임님의 눈을 피해 빙그르 몸을 돌렸다.  두 손에 휴대폰을 꼭 쥐고. 나는 다시한 번 입꼬리를 올렸다. 아침에 버스정류장에서 환하게 웃으며 꾹이가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버스타고 오는 내내 들었던 노래가 저절로 입가의 웃음을 따라 흘러나왔다.  그동안의 크리스마스들이 그렇게 흘러갔던 건 저주가 아니라 행운이었나 봐. 내 생에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만들어주기 위해, 그렇게 우리의 크리스마스를 위해 양보해주고 있었나 봐.





















"오늘 할머니 와서 주무시니까 저녁은 걱정 안해도 되겠다."

"그러게. 우리 그럼 저녁먹고 들어갈까?"

"애들 삐지면 어떻게 하고."

"뭐, 삐지라고 하든가."

"아 맞다 싸부님은 이틀 집 비운다고 했는데. 챙겨줄 사람 적으니까 괜찮을라나."

"왜? 아침에도 아무말 없더니"

"급한일 생겼다고. 부산 내려갔다 온다고 톡 하던데. 아 맞다 싸부도 고향이 부산이래. 너 알았어?"

"내가 어떻게 알아"

"근데 어떻게 싸부는 그렇게 사투리를 하나도 안쓰지?"





꾹이가 인상을 확 썼다.





"그게 뭐. 왜, 사투리 안쓰는게 좋냐?"





귀여운 녀석.





"왜 웃어"

"질투하니?"

"질투는 무슨..."

"질투하는구나?"

"아니거든? 내가 뭐하러 질투를 해."





투덜대며 앞으로 성큼 걸어나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동그란 뒷모습은 어디가고 저렇게 길죽하게 컸을까.  쪼르륵 달려가 한쪽 팔에 매달렸다. 익숙한 듯이 한팔을 내어주면서 계속 앞만 보고 걷고 있는 꾹이가 새삼 커보였다. 동그랗고 통통하던 뺨이 사라지고, 저렇게 각진 턱이 자리 잡은 건 언제부터였을까. 두꺼워진 목과 튀어나온 목젖도 새삼 신기하다. 작고 귀여웠던 소년이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되어있었을까.





"꾹아."

"아 왜-"

"아 왜에"





삐진 말투를 따라하며 매달리자 나를 내려다 보는 녀석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눈밑에 애교살이 차오르는 게 봐도봐도 신기하다. 웃음이 번지면서 스르륵 눈두덩이 쪽으로 밀려 사라지는 쌍거풀도. 눈가에 살짝 접히는 세겹의 주름도.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인데 새삼스레 다가와서 하나하나 눈안에 새겨넣게 만들었다. 귀여운 우리 꾹이. 잘생긴 우리 꾹이. 멋있는 우리 꾹이. 하루종일 네 얼굴만 보고 있어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꾹아, 우리 밥먹고 놀다 들어가자. 알바비도 받았겠다. 학교 앞에 새로 생긴 오락실 있던데 거기 가볼래? 거기 코인노래방도 생기고 뭐 많더라."

"누나 첫 알바비잖아. 아저씨랑 할머니 뭐 샀어? 뭐더라 빨간내복인가 그런거 산다고 하지 않았나?"

"아 맞다. 그럼 그것도 사러가자."

"알바비 타자마자 다 쓰겠구만"

"그러게."

"나도 보태줄께 같이 사자 그럼."

"그래! 나야 좋지 뭐"





선물을 사기 위해 대형마트에 둘러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돈 아낄겸 떡볶이로 야식도 먹고,  소화시킬 겸  오락실에서 실컷 놀고 나니 이미 자정에 다다른 시간이 되어있었다. 





"매운것도 못먹으면서 왜 그렇게 엽떡먹겠다고 난리야? 내가 다먹었네"

"너 먹으라고 시킨건데 뭐. 난 배 안고파"

"그래도."

"아.... 매운거 먹어서 그런가, 나 속이 좀 쓰리다. "

"잠깐만..."





꾹이가 사방을 두리번 거리다 바로 까페를 찾아냈다.





"저기 가자. 누나 좋아하는 바닐라라떼 하나 먹으면 좀 나을래나"

"그래!"





방학이 시작된 후여서인가. 대학가인데도 자정에 다다르자 조금씩 한산해졌다. 한손에는 바닐라라떼 컵을 들고 다른 한손은 꾹이의 팔짱을 낀 채로, 그렇게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서 하나둘씩 불빛이 꺼져가는 대학가 골목의 간판들에 시선을 자꾸 주었다.





"어? 꾹아?"





그렇게 한참을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꾹이와 놀고 있었는데 한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와 아는 척을 했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들이다.





"너 오늘 알바한다고 못온다더니-"

"아, 아니 알바 끝나고 밥먹고 들어가려고..."

"잘됐네. 가자 우리 2차가는 중인데"

"아, 안돼 나 지금..."





꾹이가 곤란한 표정으로 한쪽팔에 매달린 나를 내려다 보았고 그제야 내가 그들 눈에 띄인것같았다. 나는 어색하게 팔짱을 풀었다. 





"누나, 우리 동기들."

"아...."

"뭐야 여자친구야?"

"이자식, 그래서 우리 종강파티에도 안오고..."

"아니야, 우리 하숙집 누나야.."

"아?!"





그제야 그 익숙한 얼굴들이 기억났다. 꾹이 따라 집에 오곤 했던 학교친구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 하세요"





어색하게 인사하는 꾹이의 친구들을 따라 고개를 숙이다보니 하나하나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액면가가 다양하네. 동기들이 아니라 선후배들인가? 제법 나이들어 보이는 사람도 보였고 아기처럼 뽀얀 얼굴을 한 여자아이도 있었다. 재 혹시 그애 아닌가, 꾹이랑 썸탄다던? 뭐. 어리네. 귀엽고. 흥흥. 나는 뾰족해지려는 맘을 다잡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나이차이들이 꽤 나네. 다들 호기심에 가득차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익숙하다. 이런 시선들. 우리 꾹이가 매력이 있긴하지. 꾹이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은 많아도 친해지는 사람이 많이 없다는 건 나도 잘 알지. 그리고 내가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것도. 그래서 다들 지금 이렇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요새는 왜 안놀러와요?"

"꾹이가 하숙집이라 눈치보인다고 오지말라고 하더라구요"

"에이. 괜찮아, 와도 돼요"

"어, 정말요?"

"응 우리 꾹이 친구들인데..."

"야 꾹아, 혹시 누님이...."

"아, 시끄러-"





꾹이가 유독 신난 녀석 하나를 끌고 골목 저쪽으로 가서 깔고 앉았다.





"아 맞다, 꾹이- 학교 카메라 빌린다고 하지 않았어? "

"그래, 그거 지금 줘. 너 가지고 있지 않아?"

"맞다. 조교님이 나한테 맡겼어."





친구 중 한명이 옆으로 메고 있던 커다란 카메라가방을 벗었다. 나는 신기해서 손을 뻗었다.





"우와, 이게 꾹이가 쓰는 카메라에요?"

"네 엄청 비싸요. 조심해요"

"와 신기하네... 열어봐도 돼요?"

"네. 아 거기 꾹이가 찍은 거 많아요... 과제로 찍었던 것도 있고..."

"어 진짜요? 이 안에 다 있어요?"

"다는 아닌데... 아직 편집 못한것도 많다고 지우지 말라고 해서... 그래도 꽤 있어요. 사진도 있고. 이 카메라 우리조에서만 써서... "

"그럼 하나 장만하지 짜식..."

"안그래도 카메라 산다고 돈 모으고 있던데요. 이것보다 더 비싼거도 있긴한데. 일단 이거부터 장만하자고..."





아하... 돈이 필요하단게 이거 였구나. 나는 꾹이의 친구가 건내주는 카메라가방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꾹아~ 나 이거 봐도 돼?"

"안돼!!!!!!"





꾹이가 멱살을 잡고 있던 친구를 휙 집어던지고 다시 이쪽으로 튀어왔다. 깔려있던 친구가 종잇장처럼 휘리릭 날라가는게 보였다. 무서운 자식.





"어우, 힘은 겁나 쎄서. 무거운 카메라 들고 다니기에 아주 딱이야 딱. 일등 카감감이야."





친구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비싼 카메라라더니 겁나 무겁네. 





"이리 내 놔!!!"

"아 왜...."

"내놓으라고"

"아 왜, 좀 보여줘..."





나는 카메라가방을 뒤로 숨겼다. 너무 무거워서 기우뚱,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비싼거라고 했는데.  나는 떨어뜨릴까봐 겁이 나서 제대로 몸을 틀지도 못하고 내 앞으로 성큼 다가서는 꾹이를 피하지도 못했다.  꾹이가 한 손으로 내 손에 들려있던 가방을 낚아챘다.





"누나가 보면 알아?! 이거 켜는 방법도 모르면서."





이 자식이 서운하게.... 카메라를 뺏어들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꾹이를 노려보는데, 아까 골목 저쪽으로 날라갔던 친구 녀석이 어느샌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누님, 카메라 보시는 법을 모르시면 제가 작동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on/off 버튼을 찾으시구요..."





우뚝. 가던 걸음을 멈추고 꾹이가 뒤돌아 섰다. 내 옆에서 간신배같은 표정으로 속삭이던 녀석이 흡, 하고 멈칫했다.  꾹이 도끼눈을 하고 다가오자 간신배 녀석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저 카메라가 좀 영상이 무거워요. 일반 컴퓨터로는 편집이 불가능합니다. 학교 컴퓨터로 해야해서 아마 일주일뒤에 조교님 학교 오실 때까지는 카메라 영상은 그대로 일 거에요."





무슨 첩보영화 주인공이 커다란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것처럼, 나는 왠지 모르게 긴박한 그 말투에 저절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우리 둘을 보며 꾹이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뒷걸음 치는 간신배의 말도 점점 빨라졌다.





"누님, 누님!!! 그래도 모르시면 일단 카메라 기종을 인터넷으로 검색하신담에 작동법을 찾아보시면.... 으아아아악"





녀석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골목에 울려퍼졌다.  쯔쯔쯔.... 친구들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카메라가 뭐라고. 내가 보면 뭐 큰일나나.











































"영상 편집용 컴퓨터.... 뭐지, 그냥 게임 컴푸터랑 비슷한 가격인데. 왜 학교에만 있다는거야. 특별한 컴퓨턴가."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네. 조립으로 사면 싸다는 건가? 내가 뭐 컴퓨터를 알아야지.  사줬는데 쓸수 없는거면 무용지물이잖아. 저렇게 애지중지 하는거면 하나 사주고 싶은데.  나는 서랍을 열어 그 속의 통장을 보았다. 내 돈으로 사주고 싶지만. 오늘 쓴 돈만해도 이미 알바비 절반 이상이 날라가버렸는데.  돈버는 건 어렵다더니. 쓰는 건 너무 쉽네.  나는 한숨을 폭 쉬었다. 서점 광고 영상을 찍던 꾹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누나 이렇게 서봐. 응, 거기. 오오... 이 카메라 진짜 이쁘게 잘 찍힌다.





씩 웃으며 카메라로 이것 저것 찍던 모습. 





-여기 촛점을 이렇게 빼 봐.  응, 잘하네. 그리고 여기를 이렇게...

-우와. 이거 이렇게 하는거였구나.





그 모습을 보고 흐믓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것저것 가르쳐주던 그 옆의 피디님도 떠올랐다. 카메라를 들고 신나하던 꾹이가 맘에 들었는지 아직도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는 눈치였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카메라에 집중하다가, 시선을 들어 내 눈을 맞추며 씩 웃어주던 꾹이의 진지한 얼굴.  그 때 나는, 어린시절 서리 맞은 화단의 꽃들을 쳐다보던 꾹이를 떠올렸다.  그렇게 신나서 집중하는 모습은 진짜 오랜만에 보았다. 



괜찮아. 꾹이가 나보고 관리하라고 했어.  나는 이번엔 카메라를 검색했다.  다시 한 번 한참을 인터넷을 뒤져봐도 뭐 알 수가 있어야지.  진짜 1도 모르겠다.  아까 꾹이 카메라 가방에 뭐라고 써있었더라. 아 몰라몰라. 나는 쥐가 나는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쥐고 노트북을 덮었다.  꾹이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하나도 모르겠네.  크리스마스 전에는  주고 싶은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면 딱인데. 그런데 사도 꾹이만 주면 다른 하룩생들이 섭섭해하는 건 아닐까 몰라.  나는 노트북 옆에 놓여있는 종이컵에 시선이 갔다. 아까아까 집에 들어올 때 부터 아직까지, 바닐라라떼가 아직도 그 바닥에 조금 남아있었다.  아, 맛있긴 한데 너무 달고 느끼해서 한 잔 다 마시기는 역시 힘들어. 쇼트컵으로 살 걸 괜히 욕심 부렸나봐. 하고 중얼거리다 번뜩 든 생각.  나는 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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