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
w.1억
우리는 한참을 조용히 퍼즐만 맞췄다. 계속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겠다던 우도환도 집중을 하느라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효주는 여전히 떨고 있다.
나는 힐끔 우도환을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로.. 심심해서, 퍼즐 맞출 사람이 필요해서 우리를 부른 걸까. 아니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
"…우와.. 며칠만에 보는 완성작이야 이게! 고생했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무슨 짓?"
"…여기에 데려 온 이유가 궁금해서."
효주는 내 손을 덥썩 잡았고, 나는 효주를 한 번 보고선 우도환을 보았다. 효주는 날 말리는 것 같았다.
그치만 난 우도환의 생각이 궁금할 뿐이었다. 어차피 죽었다 깨어난 거 또 죽어도 상관이 없었다.
"너네한테 무슨 짓을 해야 되는 거야, 내가?"
"…어?"
"난 정말로 너네랑 놀고싶어서 부른 건데. 말 서운하게 한다."
"……."
"이제 가봐도 돼. 아, 너. 얘네 좀 데려주고 와."
루마니아인은 곧 대답을 하고선 나와 효주를 끌고 방 밖으로 나온다. 성에서 나왔을까, 그제서야 허리 숙이고선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루마니아인에 효주는 급히 내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한다.
"…우도환한테 잡혔었다고..? 근데 너네가 이렇게 멀쩡해?"
"……."
"뭐 들리는 소문대로이긴 한데.. 신기하네. 정말로 소문대로일 줄은 몰랐어. 라스트한테 잡혀서 살아남을 수가 있구나."
"그래.. 소문처럼 정말로 우리를 해칠 생각도 없어 보였고.. 그냥 단순히 자기랑 놀아줄 것들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어. 그래서.. 그래서..!"
"……."
"그래서 더 섬뜩했어. 그 자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래도 난 우도환 좋던데. 잘생겼잖아."
"넌 어째 나이를 계속 먹으면 먹을 수록 생각하는 게 바보같냐.."
"엥! 내가 어째서!? 김정현 너는 진짜 말을 너무 함부로 막 해! 상대방 생각도 안 하고!"
"너는 함부로 막 해도 정신을 못 차리잖냐."
"그러니까 정신도 못 차리는데! 왜 자꾸! 함부로 막해!! 그냥 날 놔줘!"
"놔줘같은 소리하네."
"진짜 너무한다, 너."
강이는 김정현과 투닥거렸고, 효주는 여전히 떨고있다. 그런 효주를 신경 써주는 건 유아인이었다. 괜찮아? 하고 물으면, 효주는 고갤 끄덕일 뿐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우선은.. 가서 잠 좀 자둬. 내일부터 당장 라스트랑 대결이니까.. 이런 걸로 힘 뺄 시간도 없다, 우린.."
내일 당장 대결이라는 게 너무 부담스럽고, 믿기지가 않았다.아직도 나는 라스트에 대해서 잘 아는 게 없는데. 너무 서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라스트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날 위협하듯이 몰아세우던 이재욱.. 나를 때리려고 하던 한소희, 그를 말리던 이재욱.
그리고.. 심심하다는 이유로 우릴 데리고 간 우도환.. 왜 이들이 악을 품고 있는 걸까. 같은 뱀파이어인데 왜?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보았다.
낮에는 그래도 돌아다니는 자들이 많았는데. 밤이 되니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러다 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과, 스으으- 하는 소리에 놀라 뒤를 보았을까.
검은연기 사이로 유태오가 나타났다. 내 목을 잡고서 힘을 준 유태오는 곧 힘껏 나를 뒤로 밀었고, 거짓말처럼 내 몸은 허공에 떠서 빠른 속도로 벽에 부딪혔다.
등이 아프고, 목이 아팠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로 신음을 흘리며 고갤 들면, 유태오가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는 아파하는 내 모습을 따라한다.
"…아, 아.. 아파?"
"……."
"널 찾아가려고 했는데. 내가 바빠서 못 왔어. 내가 보고싶었지?"
"…무슨 소리야?"
"보고싶었다고 해. 다른 애들은 다 너를 봤다고 하던데. 나만 널 못 봤잖아. 그래서 화가 났어."
"……."
"왜 나만 너를 못 보고 있어야 되나 싶더라."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인간의 피가 섞였으니까."
"…뭐?"
"…난 인간이 싫어. 근데 하필이면 인간의 피가 섞인 녀석이 김태평이랑 같은 팀인데다가, 유혹이야."
"……."
"근데? 이년이.. 겁 먹지도 않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네?"
"…난 억울하게 너네랑 같은 뱀파이어가 됐고,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내가 원하지도 않는 일이야. 그래서 난 너네가 나한테 뭔 짓을 해도 절대 무섭지 않아, 미안한데."
겨우 일어나 유태오를 내려다보았을까, 유태오는 내 모습을 보고선 놀란 듯 한참 보다가도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웃기는 년이구나, 너."
"……."
"이럼 어떨까? 정말로 내가 널 죽여버린다면."
"……."
"그땐 나를 무서워하려나?"
유태오가 내게 다가와 손목을 잡았고, 곧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리고 유태오의 눈은 점점 까맣게 변했고, 나는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곧 누군가 내 눈을 가렸다가 뗀다.
"……!"
"대결을 앞두고 갑자기 팀원중에 하나가 죽어버린다면, 페레스가 화내지 않을까.. 싶은데."
"유아인..? 김태평 따까리인 줄만 알았는데.. 자기팀 위해서 영웅처럼 등장까지 해주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네? 인간을 사랑하게 되기라도 한 건가?"
"네가 이렇게 반칙 하는 건, 내가 참을 수가 없어서."
"참을 수가 없어?"
곧 유태오가 유아인의 어깨를 밀치면 유아인이 저 끝 벽으로 날라갔다. 힘 없이 벽에 박고선 바닥으로 떨어진 유아인은 신음을 흘리며 유태오를 올려다보았다.
"네가 참을 수 없으면 어쩔 건데? 어?!"
"뭐.. 어쩔 건 아니지만.. 네가 이렇게 우리한테 못된 짓을 한다고 해서 네 스트레스가 풀리나. 난 네가 부럽기도 했는데.. 약한 우리 데리고 이러는 거 보니까. 오히려 실망스러운데."
"뭐?"
"한심해."
유태오는 곧 유아인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고선 또 저 멀리 던져버렸고, 책상 위에 있던 것들이 모두 바닥에 떨어지며 꺠지는 소리를 낸다.
누구라도 불러야겠단 생각에 문 쪽으로 향하면, 유태오가 목을 조르기 시작했고, 유아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왜 유독 우리만 보면 못 괴롭혀서 안달일까.. 생각을 해봤는데.. 뭐 우리팀한테 켕기는 게 있나."
"……."
"김태평한테 뭐 죽빵이라도 맞으셨나..? 김태평이랑 팀이기 전에는 거들떠도 안 봤잖아? 근데 김태평이랑 같은 팀이 되고 나서는 우리를 죽일듯이 쫓아 다녔어. 난 무슨 라스트 너네가 우리 짝사랑이라도 하는 줄 알았네."
유태오가 나를 놓아주었고, 유태오는 유아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유아인은 겁도 없이 유태오를 한참 바라보았고.. 곧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가 뒤 돌아 문쪽을 보았다.
"…뭐하는 거야."
"타이밍이 좋게 등장해주셨군. 걱정이 되나봐?"
"…내일 당장 대결인데. 우리 팀은 건들지 마."
"그래. 네가 건들지 말라면, 말아야지."
유태오는 고갤 끄덕이며 웃다가 곧 유아인의 멱살을 잡고선 또 저 멀리 던져버렸고,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진다.
아픈지 신음을 흘리며 인상을 쓰고 있는 유아인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물으면, 유아인은 내 손을 뿌리치고선 방에서 나갔고, 김태평이 내게 말한다.
"쟤네 이길 생각 하지 마. 빨리 죽고 싶은 걸로 밖에 안 보이네, 난.."
"……."
"귀찮게 하지 마. 남 신경쓰고 싶지도 않고, 그럴 시간도 아까우니까. 다시 라스트가 나타나면 그땐."
"……."
"그냥 복종해. 싹싹 빌란 말이야."
그 말을 하고선 그냥 나가버리는 김태평이 미웠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해서 저들에게 빌어야 된단 말이야?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유도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왜.
다음 날, 우리는 모두 한 곳에 모였다. 한국인이 아닌 뱀파이어는 우리를 보고선 반갑게 맞이 해주었다. 송강과 제일 친한지 둘은 영어로 대화를 한참을 나누었다.
다른 나라에서 대결을 한다고 했는데.. 다른 나라엔 언제 가는 걸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모두 표정이 좋지 않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곧 뱀파이어가 우리의 앞에 서서 모여 서있는 우리의 바깥으로 바닥에 인간의 피로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선 두손을 모아 이상한 손모양을 하고선 눈을 감은 채로 주문을 외우는 듯 조용히 목소리를 낸다.
그 동시에 우리의 주위론 빨간 연기가 감쌌고, 연기가 사라졌을까.. 우리는 익숙한 집 안에 도착해 있었다. 이 곳은...
"……!"
"어... 여기 한국인가봐. 한국인 것 같은데...?"
분명히.. 예전에 내가 살던 집이 분명했다. 놀란 듯 창밖을 보고, 집을 누비고 다니면.. 김정현이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왜 저래 쟤는 또. 관심 필요하냐?"
"…여기."
"……."
"여기..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이야."
"…뭐? 정말..?"
난 고갤 끄덕였다. 중학생 때까지 살던 곳이 맞았다. 2층 집이었고, 벽에는 동생이 낙서를 한 것들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대결이란 것을 다른 나라에서 한다고는 들었지만 ,그곳이 한국인 줄도.. 내가 살던 집이었을 줄도.. 전혀 몰랐다. 너무...
"그럴 수가 있나.. 그렇담 너무 잔인한데."
잔인했다. 눈물이 먼저 나왔다. 여태동안 꾹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정말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페레스라는 신은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걸까.
너무 분했고, 속상했다.
"우선 어떻게 해서 피를 모을 건지 계획을 세워보자."
"……."
"울지 마."
"……."
"네 눈물 따위 이 대결에 도움 되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
나도 안다. 이들이 얼마나 간절한지. 그리고 얼마나 화나는지.. 그치만 나도, 나도 이기적이고 싶지가 않지만 참으려고 해도 나오는 눈물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계획은 짰지만, 다들 자신이 없는 듯 했다. 사람을 죽이려면 들키지를 말아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 말이다.
방법은 그래도 있긴 있었다. 모두가 밖에 나가든, 집에서 있든 사람의 피를 모으고, 김태평이 CCTV관리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자신에게 복종할 수 있게 만들고, CCTV 목록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짧은 기간 동안 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더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복종 시킬 수도, 기억을 지울 수도 없으니 말이다.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라스트들에게는 이 대결이 정말로 쉬운 일임이 분명했다.
"…우선.. 오늘은.. 재하가 집에서 쉬었음 좋겠어.. 아무래도 예전에 살았던 집에서 지내야 하니까.. 내가 재하라면 정신 못 차릴 것 같아.. 쉬게.. 해주자."
"이미 죽은 마당에 뭐가 속상해서 슬퍼하는지 난 이해가 안 가는데. 안 그래도 시간도 없어 죽겠는데.. 왜 저러는 거야."
"그래. 오늘 까지만이야. 그 다음부터는 우리 팀에 피해가는 짓은 안 했음 좋겠어."
"……."
"울고싶으면 방에 들어가서 울어. 네가 운다고 해서 같이 슬퍼해줄 녀석들도 없으니까."
강이와, 효주를 제외하고 모두가 밖으로 나갔을까.. 효주는 내 등을 토닥여주었고, 강이는 괜히 나가지도 않고 어색하게 서서 내게 말한다.
"…어허.. 야아! 재하! 괜찮아아~ 얘네가 지금! 예민해서 그래! 예민해서!! 저 나쁜시끼들."
"그래.. 지금 많이 예민해서 그런 거야.. 상대가 라스트니까.. 그래서 더..."
모두가 나가고, 혼자 집에 남게 됐다. 솔직하게 난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이대로 그냥 집으로 가버릴까.
그치만.. 현실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으니까. 모두가 피해를 보고, 걱정을 할테니까 말이다.
집에 혼자서 있다 보니, 이 집에서 있었던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죽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집 옆에 있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섰다. 저들에게 잔인하게 죽을 바엔 그냥 스스로 죽는 게 나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난간에 올라서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떨어지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십분을 넘게 한참 뛰어내리지도 못한 채 망설이고만 있었을까.. 내 옆에 검은 연기가 보였고, 난 웃음이 나왔다. 또 나타났구나.
"한참이 지났는데도 뛰어내리지 않는 걸 보니,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듯 하네."
"…응."
"그럴 거면 왜 여기 서있는 거지?"
"…내 의지로 죽기는 힘드네."
"……."
"너는 쉴 새 없이, 사람 죽여봤지?"
"……."
"그럼 나도 죽여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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핳 오늘도 짧져,,, 다음엔 길게 올게여 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