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D YOU #07 ------------------------------------------
"아으 배불러."
빈 식혜병을 옆에 내려놓고 짜장라면 그릇도 깨끗하게 비워냈다. 역시 찜질방에서 먹는 짜장라면이 최고로 맛있어. 배를 통통 두드렸다. 사람이 고민이 많을 땐 먹어야 돼. 엄마가 그러셨어. 힘들 때 일수록 끼니 거르면 안된다고. 아. 지금은 새벽이지만. 야식도 엄연한 한 끼니지. 암튼 배를 가득 채우고 한숨자고 일어나서 다시 생각해보자. 매점을 나섰다. 이미 불이 꺼진 홀 안에 하나 둘 자는 사람들이 보였다. 뭔가 공간이 애매해서 나는 일단 땀을 실컷 뺄 요량으로 한증막으로 들어섰다.
"누나?"
거적데기를 덮어쓰고 그 안으로 들어서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네가 여기 왜 있냐? 너 공부 안하니?"
"어우 누나, 나 여지껏 공부하다가 지금 숨쉬러 나온거야, 숨쉬러."
"뭔 숨을 한증막에서 쉬냐. 가서 공부 안하니?"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거적데기를 꼭 쥐고 맥반석을 쳐다보는데 뒤에서 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 야 누나도 오기로 한 거야?"
뒤를 돌아보니 태평양이 양머리를 하고 서 있었다.
"나는 톡 안했는데. 아, 꾹이한테는...."
"야!!!!!!"
나는 휴대폰을 드는 맥반석에게 달려들었다.
"꾹이한테 연락하지마!!!!!!"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숨기고 몸을 돌리며 맥반석이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둘이 싸웠어?"
"누나ㅡ 우리 닭발도 한 접시 먹자! 여기 닭발 겁나 맛있어"
"................"
신난 얼굴을 한 태평양 옆에 쌓여있는 빈그릇들이 보였다. 내가 말없이 노려보자 태평양이 곧바로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가만있자... 꾹이 번호가...."
한숨을 폭 쉬었다. 새벽이라 조용한 식당에 두 녀석의 신난 목소리만 울렸다. 꾸벅꾸벅 조는 매점아줌마가 보였다. 내가 터덜터덜 그 앞으로 걸어가자 아줌마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또 시키게? 말을 안해도 보이는 질문에 나는 민망하고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닭발을 주문하고 돌아와서 털썩 주저앉으니 녀석들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말했다.
"잘먹을께 누나"
"어유 이게 웬 횡재야"
"그래 다 먹어라 . 다 퍼먹고 살 푹푹쪄라 이 *%&ㄸ^쑈ㅑㄲ 들아"
바보같이, 왜 하필 우리동네에 있는 찜질방에 온거지. ㅠㅠ 머리 속으로 지갑 속 남은 돈을 계산하다 나는 울상을 지었다. 계산할 필요도 없네. 다 털려버렸으니.
"누나 나는 제티먹고 싶어. 나 제티 하나만 사주면 안돼?"
맥반석이 맥반석 계란을 까먹으며 내게 물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방금 시킨 닭발이 마지막이거든? 나 이제 빈털터리됐거든? "
눈앞에서 둘한테 지갑을 탈탈 털어보이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 어디가? "
"닥쳐"
"누나, 둘이 좀 종종 싸워줘. 너무 좋다. 으하하하하"
매점을 나서는데, 아랫층 탈의실 쪽 계단에서 홀 안으로 들어오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재빨리 매점 안으로 다시 들어서서 문 옆으로 몸을 붙였다. 혹시나하고 다시 밖으로 고개를 빼끔 내밀고 보니, 이리저리 누워있는 사람들을 두리번 거린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 대로 벽에 붙어 매점 안의 두 녀석을 노려보았다. 내 시선을 느낀 둘이 서로 눈을 맞추더니 갑자기 허겁지겁 닭발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야 빨리 먹어! 빨리!"
"아이씨 재는 왜 저렇게 빨리 왔대"
"습- 하아 매워, 아씨 매워"
"야 매울새가 어딨어 빨리 먹어!!!"
이 새퀴들이.... 화가 나서 그 앞으로 가서 닭발 접시로 저 녀석들 면상을 쳐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태평양이 내 뒤를 쳐다보는 시늉을 했다.
"어? 꾹아 빨리왔네?"
허억. 나는 그대로 다시 벽으로 붙었다. 눈을 굴리며 다시 태평양이 닭발에 집중했다. 저 녀석들을 그냥.... 그대로 몸을 벽에 붙이고 화장실 쪽으로 슬금슬금 이동했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화장실 쪽으로 오는게 보여서 그들 일행인 척 뒤에 붙었다가 기둥쪽으로 다시 몸을 숨겼다. 이게 뭔 팔자에 없는 첩보전이니.
꾹이가 이쪽을 보는 것 같아서 재빨리 거적데기를 들고 바로 옆 한증막으로 다시 들어섰다. 저 녀석 분명 여기 방 하나하나 다 들어와 볼게 뻔한데 어쩌지. 수건을 머리 위에 뒤집어 쓰고 거적데기도 두르고 나서 한껏 웅크렸다. 아이고 덥고 숨차고 답답하고. 내 옆에 두어명이 그런 나를 의심쩍게 쳐다보는데 한증막 문이 열리고 찬바람이 살짝 불어왔다. 거적데기를 머리끝까지 올려 쓰고 구석에 붙었다.
"앗뜨뜨뜨드..."
뜨거운 벽에 너무 붙었나.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지금 아픈게 문제니. 스믈스믈 어깨에서 흘러내려가는 거적데기를 다시 부여잡았다. 그렇게 터져나오는 비명을 숨기고 다시 꾸물꾸물 옆으로 이동했다. 아는 척을 안하는 거 보니 다행히 못알아보는 거 같다. 꾸물꾸물 계속 옆으로 움직인 끝에 한증막 입구까지 온 나는 거적데기를 쓴 채로 밖으로 나왔다. 우아 살겠다하고 한숨 돌리려는데 다시 내 뒤로 한증막 문이 열리는게 보였다. 뭐야, 들킨거야? 안도의 한숨을 쉴 새도 없이 다시 옆의 소금방으로 들어섰다. 따라오지 마, 따라오지 말라고 이 녀석아.
소금방에 들어서서 바로 문을 닫고 문고리를 잡았다. 덜그럭, 문고리 잡고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동아리방에서 문짝을 뜯고 들어서던 꾹이가 생각났다. 여기...여기 문까지 뜯는 건 아니겠지; 문에 조그맣게 나 있는 유리창으로 밖을 슬쩍 봤다.
"허억"
작은 유리창 밖에, 꾹이의 까만 눈동자가 보였다. 꾹이의 시선이 문고리 쪽으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문 열어.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싫어. 꾹이가 눈썹을 치켜뜨고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다시 말한다. 문 열라고. 고개를 살짝 떨구고 시선을 피하며 다시 대답했다. 싫어. 덜그럭 덜그럭. 문고리를 흔들며 꾹이가 다시 자신을 쳐다보길 종용한다. 나를 봐. 봐야 이야기를 하지. 그대로 시선만 살짝 들어서 꾹이를 보았다. 언젠가, 꾹이의 눈 안에 우주가 들어있는 것 같다고 상상했었는데. 꼭 지금처럼. 꾹이의 우주 속 조용히 물결치는 은하가 천천히 나선형으로 돌아가며 말한다. 문을 열어줘야 내가 들어가지. 나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싫어. 너는 끝났잖아. 내가 시작하기도 전에. 비겁하게. 치사하게. 문고리를 잡고 그대로 문앞에 주저 않았다. 시야에서 사라져도, 이렇게 계속 나를 아프게 하는 네가 너무 밉다. 문 틈사이로 꾹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 열어줘. 열어줄 때까지 나 계속 여기 있는다."
있으라지. 죽어도 안열어줄거다.
"누나 나 몰라? 내가 지금 문 못열어서 이러고 있는거 같아?"
알지, 근육덩어리 전정국.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 포기 안한다. 열어줄 때까지 여기서 기다린다."
그렇게 포기 못하는 녀석이 어떻게 나는 그렇게 쉽게 포기했대. 입술이 다시 삐죽였다.
"윤가진 너는, 아직도 그렇게 나를 모르냐."
응. 나는 이제 진짜로, 너를 하나도 모르겠어.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하나도 모르겠어.
"사람이, 무덤 속에 들어갈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고."
문쪽으로 기대앉는 꾹이가 느껴진다.
"내가 어떻게 너를 포기하냐."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이 풀렸다.
" 해도해도 맘대로 안되는게 사람 마음이더라."
나는 그대로 쪼그리고 앉아서 두 무릎위로 팔을 둘렀다.
"내가 왜 카메라 배우는데. 너 찍을라고. 네 옆에서 평생 있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
통장을 내밀며 속모르고 쫑알대던 나를 향해, 꾹이가 지어주던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도 된다. 그냥 평생 누나가 해라.
"김피디형이, 나 영상 편집하는 것도 도와주고 많이 가르쳐줬거든. 현장도 많이 데리고 가주고. 이쪽 일은 빨리 시작하는 게 좋다고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진짜로, 진지하게 한번 해 보자고. 그래서 너무 좋았어. "
오래 전 떠나간 엄마의 향이 날아갈까봐, 꾹이가 쟁여두던 섬유유연제의 냄새도 떠올랐다.
"난 너 계속 찍을거야. 그러니까 넌 그냥 계속 그렇게 있으면 돼. 내 옆에서. "
누나 나는, 여기서 계속 누나랑 살거야. 나는 계속 누나 옆에 있을께.
"너 하고 싶은거 다 해. 내가 옆에서 뭐든 도와줄테니까."
나는 계속 누나 옆에 있을께.
"그러니까, 문열어 줘."
사람 뼈 때리는게 특기인 녀석이, 사람 심장 때리는 것도 수준급이네.
"빨리 안 열면, 나 간다. 진짜루."
눈물이 톡, 발끝으로 떨어진다. 재빨리 눈물을 닦아 내는데 또 떨어진다. 아씨. 창피하게. 한참을 쿨쩍 거렸는데, 밖에서 더이상 꾹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문을 살짝 밀었다. 천천히 열리는 문 틈새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익숙한 어깨 모양과, 동그랗고 검은 뒤통수와, 양쪽 귀 끝에서 달랑거리는 귀걸이. 꾹이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정말로 가버렸는줄 알았잖아!"
천천히 차오르는 애굣살때문에 점점 작아지는 꾹이의 검은 눈동자를 보았다. 꾹이의 검은 우주 안에, 내가 한 가득 담겨 있었다.
"야, 너..."
내가 입을 떼자마자, 아니 떼기도 전에 꾹이가 내 팔을 휙 잡아 끌었다.
"야 ..."
정신을 차리기도전에 이미 나는 녀석의 품 속에 있었다. 얼마나 꽉 끌어 안는지 숨이 콱 막혔다.
"야, 숨막혀... 나..."
내가 계속 말을 하려고 하는데, 내 머리 위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저 깊은 속에서부터, 아주아주 옛날부터 묵혀왔을 녀석의 오랜 숨이 느껴져서- 나는 그만 또 다시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젠 숨쉬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때리네, 이 녀석이.
익숙한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어슴프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런 날이 있다. 한겨울, 아주 한겨울인데 햇살은 한여름보다도 따듯한 날. 오늘 아침이 딱 그렇다. 아침 햇살이 길게 우리 둘의 그림자를 골목길로 늘어뜨려주었다. 익숙한 골목길에, 늘 옆에 있던 꾹이와 걸어가는데 새삼 설레는 게 신기했다. 옆에서 발걸음을 맞추는 꾹이를 올려다보았다. 아침 햇살이 꾹이의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비춰주면서 테두리를 뽀얗게 만들었다. 교회에서 보던 예수님 그림의 후광처럼, 꾹이가 그렇게 햇살을 머금고 웃었다.
"왜, 잘생긴 얼굴 처음보냐?"
"그래 처음본다."
"그럼 실컷 보든가-"
꾹이가 장난스런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나도 지지않고 두 손으로 꾹이의 얼굴을 잡아 짜부를 만들었다.
"아이고 시상에 내 새끼~"
"어우 진짜..."
꾹이가 내 손길을 피해 집 쪽으로 몸을 돌렸다. 햇살을 따라 길게 늘어지는 꾹이의 그림자를 밟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꾹이가 몇걸음 못참고 뒤를 돌아 본다. 긴 앞머리가 살랑이며 커다란 눈을 찌르는게 보였다. 며칠 전부터 자르라고 말해준 다는게 자꾸 까먹고 있었네. 자꾸만 눈을 찌르는 앞머리를, 고개를 털어 옆으로 넘기면서 꾹이가 내 옆으로 다시 돌아왔다. 반경 1미터로 익숙한 향기를 품고. 꾹이 주변의 공기가 스륵 내게 물결치듯 와 닿았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심장이 더 크게 두근거렸다.
"잡아, 넘어지지말고."
내 옆으로 다가와 한쪽 팔을 내미는 꾹이를 보았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까먹지 않고 늘 고대로 해주는 이쁜 녀석.
"왜?"
"좋아서."
꾹이가 눈을 접히며 다시 웃었다. 그러더니 팔짱을 끼는 내 손등 위로 반대편 손을 올리며 힘주어 잡았다. 커다랗고 따뜻한 손길에 다시 한번 마음이 두근거린다. 꾹이가 팔장을 낀 내 손을 잡아 꼭 쥐더니 깍지를 꼈다. 그리고는 자기 외투 주머니에 그대로 집어넣었다. 이제는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깨우치는 네게, 나는 아직도 가르쳐 줄게 너무 많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너인데, 나에게 다시 새롭게 보여줄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아빠 다음주에 온다고 했잖아요"
"일이 일찍끝났지. 집에 별일 없었지?"
"네"
할머니가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식탁위에 올려놓으면서 익숙한 잔소리가 시작됐다.
"가진이 너는 뭐하느라 밖에서 밤새고. 애들 밥은 제대로 챙기니?"
"그럼요, 제가 찌개도 아침에 끓여주고..."
옆에서 맥반석이 깐죽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그럼요, 우리 맛있게 먹으라고 찌개에다 후르츠칵테일도 넣고....흑!"
식탁 밑으로 꾹이가 맥반석 정강이를 차는게 보였다.
"쯔쯔... 하여간 가진이 너는, 냉장고는 또 저게 뭐니. "
"아 할머니 잘 하고 있다고요. 그치 꾹아?"
"응."
"우와 진수성찬이네. 역시 할머니가 오시면 식탁이 달라져요"
쓰읍. 내가 눈을 부릅뜨자 태평양이 바로 밥그릇으로 시선을 떨궜다.
"아니, 난 뭐 밥하고 고추장만 있어도 좋아. 아유 아주 좋아"
"야 우리집 자율급식이거든? 끼니 때 못내려오면 알아서 차려먹기. 알아몰라"
"이눔지지배!"
"아우 할머니..."
"어디 사람을 먹는 걸로 타박해! 그러면 벌받아!"
"우씨...."
머리를 쥐어박는 할머니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자, 꾹이가 내 맞은 자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다 어수선한 식탁을 향해 입을 뗐다.
"저기...."
"아, 아저씨 그거 뭐에요?"
"아, 이거 홍삼인데, 너 시험공부하느라 힘들지? 너 생각나서 얻어왔다. 거래처에서 주길래"
"우와 아저씨 감사합니다"
"어 아저씨, 저도요! 저도요"
"그래 둘이 나눠먹어라. "
"아씨 왜 그래 내껀데"
"야 좋은 건 나눠야지"
"위에 좀 갖다놨으니까 다들 나눠 먹어. 어머니도 따로 챙겨놨으니까 이따 가져가세요."
꾹이가 다시 한번 말할 기회를 찾아 큼큼 헛기침을 했다.
"저기..."
싸부님이 홍삼상자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맥반석과 태평양을 툭툭 치며 웃었다. 할머니가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쳐다보자 꾹이는 머뭇하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내가 말해? 내가 눈을 맞추자 꾹이가 큰 결심을 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식탁으로 돌린다.
"그래 꾹아, 무슨일인데?"
"아, 그, 그게 그러니까요...."
아빠가 다정하게 웃으며 묻자, 꾹이는 말을 버벅거렸다. 당황하면 나오는 사투리억양이 말끝에 뭍었다.
"제가...."
막상 시선이 몰리자, 꾹이는 쑥쓰러운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왜그래, 뭔일 있니?"
할머니가 다정스레 반찬그릇을 앞으로 밀어주자 꾹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뭔일인데?"
"그러니까... 저... 저랑 가진 누나랑...."
맥반석이 찌개를 한술 뜨며 물었다
"사귄다고?"
"응? 으응.."
"근데?"
"응?"
"뭐래, 새삼스레. "
태평양도 밥을 크게 한술 떠서 오물오물거리며 말했다.
"그새 또 화해한 거야? 하여간..."
"아유- 아저씨 말도 마요. 저 둘이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는데..."
"맞아요, 둘이서 사랑싸움을 한다고 우리가 새우젓이 돼가지고 등살이 매일매일 터져요"
아빠가 웃으며 꾹이에게 말했다.
"우리 꾹이가 가진이 돌보느라 고생이 많네"
"아빠! 돌봐도 내가 꾹이를 돌보지!"
할머니가 내게 눈을 흘겼다.
"퍽이나 챙기겠다. 가진이 너는 꾹이 아니면 시집갈 데도 없는 줄이나 알아. 꾹아, 많이 먹어라. 어여 먹어."
"네."
넌 또 왜 거기서 다소곳하게 네-하는건데? 고개를 홱 돌리자 꾹이가 미안한 듯 웃어보였다. 밥먹자, 밥. 꾹이가 내 밥그릇에 반찬을 하나 집어서 올려주었다. 그런 우리를 보며 싸부가 물었다.
"그래서, 둘이 이제 진지하게 사귀는거야?"
"아냐 형, 저 둘이 예~전부터 사귀고 있었다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모르는 줄 아나 봐. 다 아는구만"
"저 봐라, 또 밥상머리에서 애정행각 하는 거. 하루 이틀 봤어야지."
"애인 없는 사람 서러워서 어디 살 것나"
연애라는 것인 줄도 모르고 시작했다가, 그것이 연애라는 것을 나중에 알 때가 있다. 나와 꾹이도 그런 거였을까. 밥그릇 위에 놓인 반찬을 보았다. 나는 익숙해서 모르고 있었는데.
"얼른 먹고 알바가야지. 내가 바래다 줄께."
.....................진짜로 우리 둘만 모르고 모두가 알고 있었던 연애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