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망토의 이름
The name of the Red hood
ZICO X TAEIL
W. BOMBAY
─ 너 내 이름이 뭔지는 알아?
─ 알고 싶지도, 알려고 한 적도 없어.
─ 그래, 그러면 됐어.
── 너의 기억 속에서 나는 언제나 빨간 망토로 남아있을테니까.
나는 너의 이름을 모른다. 그냥 모든 사람들이 너를 '빨간 망토'라고 불렀기에, 나 또한 너를 그렇게 불렀을 뿐이다. 네가 너의 이름을 아냐고 물어왔을 때, 오히려 당황했다. 너에게 다른 이름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 적도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 당시의 나는 알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알지 않았다. 아니, 알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지금 들으면 이상한 소리지만, 그 당시에는 모두가 그랬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공공의 이익은 뒤로 미루던, 그 때는 모두가 그랬다. 모두가 그러했기에 아무도 그런 사회 현상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가끔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그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되었다. 그 시절의 고3은, 모두가 그러했다.
이제와서 너의 이름을 궁금해 하는 것은 늦은 것일까. 졸업 앨범을 뒤져 너를 찾으려 해도 아는 것이 없어 너를 찾을 수 없었다. 아는 것이라곤 네 별명이 빨간망토였다는 것 뿐. 그 외에 아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어 너를 찾을 수 조차 없었다.
그 때 네가 이름을 아냐고 물어봤을 때, 내가 이름을 물어봤다면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금 그의 사진을 볼 수 있을까. 졸업앨범을 한 장씩 넘기며 기억 저 너머 아련히 남아있는 네 얼굴을 기억하려 애썼다. 유난히 하얗던 피부, 그리고 동그란 안경.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색이던 너이기에 너의 존재가 잊혀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점점 잊혀져가는데 너 혼자만 내 기억 속에 선명한 붉은 색으로 남아있었다. 그 잔상이 뚜렷이 남아 너를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었다. 좋은 기억은 아닌데, 좋은 기억일 리가 없는데 너의 잔상은 내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졸업앨범의 마지막 장에서 너를 찾았다. 겨울에 학교에서 단체로 놀러간 놀이공원, 그 곳에서 너는 빨간 담요를 두르고 있었다. 이미 지나온 반 별 페이지로 돌아가 네 사진을 찾았다. 이태일, 네 이름을 머금어보고, 또 네 별명을 머금었다. 그 중 어느 것도 익숙하게 발음되지 않았다. 어색했다. 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네 이름을 안 상태에서 네 별명을 말한다는 것이.
"이태일."
그리움이 피어났다. 무엇에 대한 그리움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너에 대한 그리움인지, 아니면 그 시절에 대한 것인지.
그저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하기에는 너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컸다. 그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네가 차지하는 비중이 이렇게 많았던가, 생각해보면 다른 이들에 비해 너의 비중은 높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 때의 친구들에 대한 기억보다 이름도 모르는 -이제야 이름을 알게 된- 너가 이렇게 그리울까.
붉은 색만 보면 네가 생각이 났다. 새빨간 담요를 두르고 혼자 복도를 누비던 너. 껴안았을 때 은은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던 네가 그리웠다. 그 시절의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생각하기엔 그 때 있었던 재밌는 일들보다 너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졌다. 이제 너는 붉은 담요를 꺼내 두르고 다닐까, 아니면 이제 사회 생활을 할 테니 일 할 때 무릎에 덮고 있거나 어깨에 두르고 있을까. 계속 너에 대해 생각을 하다보니 너가 보고싶어졌다. 언젠가는 너를 볼 수 있을까. 네 담요 색과 비슷한 빨간 모자를 쓰고 거리로 나갔다. 혹시나 너를 마주치지 않을까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