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people you know, Selena Gomez)
여주는 웃음이 많은 애였다. 적어도 태형이 아는 사실은 그랬다. 웃음이 많고 웃을 때 드러나는 보조개가 예뻤던 여주는 일주일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태형을 두고 떠났다. 떠나기 직전 남긴 편지를 태형은 –단 한 줄밖에 쓰여 있지 않은 문장이었지만- 밤새도록 읽고 또 읽었다.
하도 울어 눈이 밤탱이가 될 때까지 흐느꼈다. 여주를 생각한다. 고로 눈물이 흐른다. 좆같은 인과관계에 매일을 허우적거리며 살았다.
“야,”
“............”
“김태형.”
김여주가 자나깨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는 건 대충 알고 있었다. 다만 저를 바라볼 적엔 늘 웃고 있어서. 학생들이 수시로 뱉는 ‘아, 배고프다.’처럼 태형은 별 의미 둘 필요는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무관심했던 걸지도 모른다.
‘친구가 부르잖아, 태형아.’
여주가 떠나고 3일 후부터 알 수 없는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나를 왜. 나를 왜 찾지 않았어 태형아. 네 이름을 내가 얼마나 불렀는데. 환청의 목소리는 여주였고, 환각의 대상 역시 여주였다. 여주는 잊을 만하면 태형의 곁에 나타나 모습을 비췄고, 너만은 날 절대 잊으면 안 된다는 듯이, 끊임없이 태형을 괴롭혀댔다.
‘태형아.’
“응.”
‘친구가 부른다니까.’
“너 누구랑 대화해.”
“............”
“이 새끼 진짜 돌았나... 존나 미친 사람처럼 굴지 말고 옷이나 갈아입어. 체육 곧 시작하니까.”
“........ 응.”
여주야,
‘나 잠깐 집에 다녀올게. 나 신경 쓰지 말고 축구 열심히 하고 있어.’
가지마.
‘이미 죽어서 죽으러 갈 수도 없어. 넌 네 삶 살아야지, 태형아. 정신 차리고, 얼른 옷 갈아입어. 애들이 너 두고 다 가겠다.’
환청. 다른 말로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태형에게 말을 걸어오던 여주는 이틀 정도 죽일 듯이 태형을 원망하다 3일째 되던 날, 태형을 끌어안고 말했다. 미안해. 내가 죽은 건 약한 내 탓이야. 태형이 잘못 하나 없어. 네 탓해서 미안해. 닿은 손길에선 한기 밖에 느껴지는 건 없었지만. 여주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태형은 얼추 알 것 같았다.
‘금방 갔다 올게.’
네가 아무 잘못이 없대도, 난 널 끝까지 원망할 것 같아.
*
여주가 죽은 다음날, 학교가 떠들썩했다.
김여주가 죽었다고? 걔가 왜? 구라 아니고? 진짜 자살한 거야? 모두가 여주의 죽음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갑작스런 친구의 사망 소식에 꽤나 충격을 받은 몇몇 학생들은 의자에 주저앉아 현실을 부정하는 듯했다. 타 반 학생들은 일부로 복도를 지나가며 비어 있는 여주의 책상을 훑었다.
“태형이 잠깐 선생님 좀 볼까.”
태형은 자신의 자리에 굳건히 앉아 있다 들리는 담임 목소리에 초점 없는 두 눈을 뜨고서 고개를 돌렸다. “..... 선생님이랑 얘기 좀 하자.” 태형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꾸만 들려오는 여주의 자살 소식이 거북했던 참이었다.
“여주 그렇게 된 거 태형이 너 때문 아닌 거 선생님은 다 알아.”
그쪽이 뭘 아는데요.
“그래도 여주를 위해서라도 기운 내서...”
“...............”
“마저 남은 학창 시절 이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고작 하루 지났다. 아니 하루도 채 돼지 않았다. 여주가 죽은 시각에서 14시간 지나 있는 상태였다. 죽은 애는 이미 죽었으니까,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존나 식상한 얘기. 부모님에게도 듣고, 친구들에게도 듣고. 이젠 담임한테까지 듣는다. 뭔 놈의 시발 사람들이 잊을 생각도 없는 애를 잊으라고 지랄인지.
“담주부터 상담 치료 시작할 거야.”
“............”
“자살한 학생과 평소 친분이 있던 애들이라면,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무조건 받아야 해. 태형이 너도 예외는 없고.”
“안 받겠다면요.”
“말했잖니. 자기 의지와 상관 없는 문제라고.”
기분이 개같음을 넘어 개 시발 좆같았다.
*
“야,”
“.........”
“너 귀신 본다며.”
상담실 안 공기가 서늘했다. 원 테이블을 두고 둘러 앉은 태형과 지민, 정국. 가위로 도형을 오리고 있는 태형을 지민이 불렀다.
“지금도 여주 보이냐.”
“보이겠냐. 말이 되는 소릴 해, 병신아.”
“김태형은 진짜 보일 걸.”
“.............”
“..........”
“김여주 보이냐고 태형아.”
태형은 마저 가위질을 마치지 못했다.
“보이면 시발 니가 뭐하게.”
안 그래도 여주가 보인 뒤로 학교 생활이 점점 엉망이 돼 가는 중이었다. 귀신을 본다는 소문이 자꾸만 돌고, 기다렸다는 듯 그 점을 파고드는 지민 때문에 요 며칠 태형은 피가 급속도로 식었다 끓었다 하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 아무것도 모른다는 무해한 얼굴을 한 지민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태형의 신경을 박박 긁었다.
참다 못한 태형은 오늘에서야 터진 것이다.
“말해 봐. 보이면 네가 뭐하게. 뭐하게 시발아.”
“그냥 물어본 거야 ㅋㅋ”
입가를 가린 채로 웃던 지민이 별안간 턱을 괴고 말했다.
“근데 너무 발끈하는 거 아니냐? 누가 보면 내가 김여주 죽인 줄 알겠네.”
“야,”
“같이 안 다녔을 뿐이지. 니만큼이나 나도 김여주랑 친했어. 어쩌면 니보다 내가 더 친했을 수도 있고.”
태형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참아내고 있었다. 저 새끼를 진짜 죽여 말아. 두 개의 자아가 제 머릿속에서 한창 싸우고 있을 때, 정적 속에서 정국이 입을 열었다.
“김태형.”
“........”
“너 여주가 왜 죽은 줄 알아?”
“죽었다는 얘기 좀 그만하라고.”
“여주 자살 안 했어.”
태형의 눈매가 사납게 변했다.
“뭔 개소리야.”
여주가 죽기 전 제게 썼던 유서까지 갖고 있는 마당에 여주가 자살한 게 아니라고? 뭣도 아닌 개소리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하나 싶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따라 울리는 정국의 목소리가 태형의 귓가에 고스란히 박혔다.
“여주 자살로 죽은 게 아니라고.”
듣기 싫었다.
“궁금하면 여주한테 직접 물어봐.”
자살로 죽은 게 아니면 뭔데.
“넌 여주 볼 수 있다며.”
머리가 띵했고 속이 울렁거렸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여주의 세상엔 나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사실을 깨달으니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왜 지금 나와? 상담 벌써 끝났어?’
웃음이 많던 여주는 생각보다 잘 웃지 않은 애였고, 내게 모든 걸 알려줄 것만 같이 굴던 얼굴은 사실은 갖가지 비밀을 숨기려 지었던 가식적인 얼굴이었다.
알게 되니 눈물이 흘렀다.
‘왜 울어 태형아... 무슨 일 있었어? 응? 정국이랑 지민이가 막 괴롭혔어? 내가 혼내줄까?’
태형은 묻고 싶었다.
‘나 요새 물건 떨어뜨리기 연습하고 있는데. 잘돼나 확인할 겸 지민이 물건 좀 떨어뜨리고 올까? 아님 정국이 복도 걸어갈 때 다리 걸어서 넘어지게 할까? 잘될지는 모르겠는데 태형이가 원하면 일단 도전은 해 볼게.’
내게 단 한 번이라도, 진심이었던 적은 있었어?
*
‘뭐야. 왜 축구 안 하고 거기 앉아 있어?’
“..........”
‘내 말 씹는 거야?’
“.............”
‘김태형.’
“................”
‘.... 나 안 보이는 거 아니지.’
표정히 급격히 어두워진 여주가 태형의 눈앞에 손을 흔들었다.
‘나 진짜 안 보여 태형아...?’
제 시야를 어지럽히는 여주의 손가락을 못 본 척 운동장에 시선을 뒀다. 말수가 반으로 줄어든 여주는 태형이 앉은 모래 바닥 위에 따라 털썩 앉았다. 느껴지는 건 없지만 모래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어 지분거려 봤다. 모래알이 잡히기는커녕 손바닥을 매끈하게 통과한다.
‘모래는 무슨 감촉이었을까.’
“.............”
‘태형이가 나 대신 만져 줬으면 좋겠다. 대리 만족? 뭐 그런 거라도 느껴 보게 ㅋㅋ’
혼잣말을 연신 늘어놓던 여주도 답이 없는 상대에 지쳤는지 별안간 입을 꾹 다물었다.
“...........”
태형은 생각 중이었다. 이틀 전, 박지민과 전정국이 제게 했던 말을 토시 하나 안 빠트리고 기억하고 있었다. 여주가 자살을 했는데. 사실은 자살이 아니랜다. 자살이 아니면 뭐냐고 물어보려는데. 그건 여주한테 직접 들으랜다. 이 시발 무슨.... 좆같은 전개냐고.
‘와 나 진짜 심심해서 죽을 거 같아.’
“............”
‘이미 죽었지만 이 상태로면 또 죽을 수도 있을 거 같아.’
여주가 비밀을 숨기고 제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대도 그건 여주의 잘못이 아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태형은 화가 났다. 여주가 괘씸했다. 전정국과 박지민 새끼는 다 알고서 나를 며칠째 괴롭히는데, 여주는 볼 때마다 늘 봐 왔던 웃음으로 날 바라본다. 예쁘긴 더럽게 예뻐서. 어떻게 화를 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화를 낼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대가리가 존나 터져 버릴 것 같았다.
‘태형아아.’
“.............”
‘내 목소리 안 들리는 척하지 마. 나 진짜 울 것 같아.’
“......... 너,”
여주의 목소리가 응어리진 듯 울려서 무의식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응, 태형아. 나 뭐?’
될 수만 있다면 여주가 죽던 그날 밤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날 밤 여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정국과 박지민 말대로 여주가 여주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게 아니라면. 여주를 그렇게 만든 사람은 대체 누군지.
죽음 앞에서 그 누구보다 두려웠을 여주를 감싸 안고 묻고 싶었다.
‘뭐야? 지금 나 두고 가는 거야 김태형? 어? 마저 말해 주고 가야지! 나 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여주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태형은 여주를 마주볼 자신이 없었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나 피하지 마 태형아. 내 모습 볼 수 있는 사람 김태형, 너뿐이고. 내 목소리 들을 사람도 너 하나뿐이야. 이대로 너한테 잊혀지잖아? 나 그럼 영영 네 옆에 못 나타날 수도 있어. 네가 보고 싶다고 해도 못 와.’
여주가 죽은 이유 중에 혹시라도 제가 존재할까 봐서.
“...........”
태형은 갑자기 두려워졌다.
*
늘 그러했듯 상담실 안엔 정적과 서늘함이 맴돌았다. 딸각, 탁. 딸각, 탁. 딸각, 볼펜 윗 부분을 열었다 닫으며 반복적인 소리를 내던 지민이 마침내 탁, 볼펜 뚜껑을 닫은 뒤 입을 뗐다. 답지 않게 지민은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뭔데.”
“뭐가.”
“왜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니랑 뭔 말을 해 내가.”
“나 말고,”
“니 말고 뭐.”
“여주랑.”
태형이 고개를 저으며 무시하려 하자 지민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왜 여주 무시하냐고. 여주가 뭐라 말해도 듣는 척도 안 한다며.”
“니도 여주 보냐?”
“잠깐 보여, 잠깐. 니처럼 24시간 내내 보이는 게 아니라. 그리고 지금 그게 중요하냐. 여주 왜 무시하냐니깐?”
“무시한 거 아닌데.”
“지랄.”
“지랄은 니 면상이고.”
말을 하다 말고 답답해진 지민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속으론 그 생각을 했다. 여주는 이딴 새끼를 왜 좋아했을까. 당장이라도 태형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여주의 답답함을 풀고 싶었다. 여주가 며칠 연속으로 제 시야에 보이는 건 드문 경우니까. 지금도 자신을 피하는 태형을 배려한다고 운동장을 부유하고 있는 여주가 마음에 걸렸다.
“여주가 잘못한 게 있으면 말을 해.”
“그런 거 없어.”
“없는데 왜 그 따위로 행동해, 여주한테.”
“..........”
태형은 할 말이 없었다.
“밖에 비 와.”
“그래서,”
“비는 안 맞는대도 한기는 느낀다 했어.”
지민과 정국에게는 허물없이 다 털어놓고선 제 앞에만 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을 내보이던 여주가 미웠던 건 맞다. 그리고 혹여나 여주의 죽음에 제 이름 석 자가 연관돼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내내 두려움에 떨었던 것도 맞다. 자신이 기억해 왔던 여주와 그 둘이 말하는 여주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라. 태형은 혼돈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주에게 말을 걸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
상담을 끝마치지 못하고 상담실을 뜬 태형은 곧장 지민이 말한 운동장으로 향했다. 비는 새차게 내렸고, 우산을 챙길 생각조차 없었던 태형의 교복은 순리대로 빠르게 젖어갔다. 비가 내려 텅 빈 운동장엔 여주와 태형만이 자리했다.
세찬 빗줄기에 태형의 안색이 파래졌다. 멀리서 지켜보던 여주가 달려와 태형의 머리 위로 손바닥을 펴 비를 막아주려 했지만, 되도 않는 우산 역할이었는지. 고스란히 여주의 손을 통과한 비는 더욱 세차게 태형의 머리를 적셨다.
‘감기 걸려 태형아. 일단 학교로 들어가서 교복부터 닦자. 너 여기 계속 있으면 진짜 감기 걸려. 빨리. 응? 내가 다 잘못했어.’
여주의 입에서 잘못했다는 말이 나오길 바랐지만 막상 그 말을 듣고 나니 가슴이 저릿했다.
“누가 죽였어.”
속으로 수없이 물었던 물음을 입밖으로 내뱉었지만 여주는 답을 하지 않은 채 태형의 등을 밀어내려 했다. 감기 걸리면 너만 힘들어져. 얼른 들어가자.
“여주야,”
‘응.’
“내가 죽였어?”
허공에 의미 없게 펄럭이던 여주의 손이 드디어 태형의 등에 닿았고, 그로부터 이끌리듯이 걸음을 옮긴 태형은 어느새 학교 안에 들어서 있었다. 태형의 머리를 털어 주려 제 사물함을 열어 수건을 꺼내던 여주의 손도 그때쯤 효력을 잃었다.
‘아니야. 아니니까 그런 생각하지도 말고, 하려고 하지도 마. 그냥 넌 네 삶 살아. 태형아. 내가 죽은 건 너와 아무 관련이 없어. 정말이야. 나 믿지? 지민이랑 정국이가 무슨 말을 하든, 그건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돼.’
신경 쓸 필요 없어.
“왜.”
‘.............’
“내가 너한테 아무 존재도 아닌 사람이라?”
여주가 상처 받은 눈을 했다.
“적어도 나는 네가 왜 죽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
상처는 내가 받았는데.
*
여주는 기본 옵션처럼 멍을 달고 살던 애였다.
“이거 뭐야.”
“ㅋㅋ”
“어디서 엎어졌는데.”
“계단에서.”
“그러니까 내가 아래 좀 보고 다니라 했잖아.”
원래도 잘 엎어지는 애라 태형은 그날도 습관처럼 잔소리를 늘어놓고서 아무렇지 않게 제 가방에서 반창고를 꺼냈다. 어떻게 하면 이틀에 한 번 꼴로 이렇게 심하게 다쳐올 수 있는지. 태형은 도저히 여주의 덤벙거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번은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다.
“너 누구한테 맞고 다니냐?”
“내가 맞을 사람으로 보여?”
“아니.”
“ㅋㅋㅋ 나 팔꿈치도 까졌어. 여기도 발라 주라.”
태형의 기억 속엔 여주는 연기를 지지리도 못해서 표정에서 다 티가 난다고 생각했다. 누구한테 맞고 다니냐는 태형의 말에 자신이 맞고 다닐 사람으로 보이냐는 여주의 말이, 아니 그렇게 말하는 여주의 표정이 너무 덤덤하고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태형은 당연히 그 말이 거짓이란 의심은 1%도 하지 않았다.
“아파.”
“살살하고 있는데. 엄살 심한 거 봐라.”
“.... 진짜 아픈데.”
“뚝. 울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주신대.”
오히려 아프다며 우는 여주의 눈물이 거짓인 줄 알았다. 애가 나한테 투정도 부리는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던 것 같다.
“태형아.”
“왜.”
“넌 내가 죽으면 울 거야?”
“뭔 그딴 소리를 해.”
“ㅋㅋㅋㅋㅋㅋ 그냥. 궁금하잖아. 나는 너 죽으면 따라 죽을 거야.”
요즘 들어 부쩍 죽는다는 단어를 자주 꺼내는 여주 때문에 태형은 안 그래도 다쳐서 오는 여주가 일부로 제 몸을 이렇게 만든 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했다.
“솔직히 말해.”
“.... 뭘.”
“진짜 다친 거야, 자해한 거야.”
“난 내 몸 끔찍이 아끼거든.”
끔찍이 아낀다는 애 몸이 이렇게 멍투성이란 게 말이 되냐. 지 몸도 지가 제대로 못 챙기면서. 뭘 아낀다고.
“등신.”
끓어오르는 답답함에 처음으로 여주에게 모진 말을 내뱉었던 그날의 태형은 태형의 뇌리에도 잊혀지지 않았다. 등신. 그 말을 들은 여주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마저 밴드를 붙여 달라 했지만, 태형은 하얀 피부에 자리한 멍들을 볼 때마다 속이 문들어지는 것 같아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홧김이었지만 홧김은 아니었다.
*
그리고 채 아물지 못한 그날의 상처를 현재의 여주가 보란 듯이 달고 있다. 날이 갈수록 선명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차마 눈에 담기 버거워서 고개를 돌렸다. 옥상문이 보인다. 그냥 내려갈까.
‘.......’
일단 시작한 고민은 잠들어 있던 여주가 두 눈을 뜰 때쯤에 비로소 멈췄다.
“..............”
내가 너한테 아무 존재도 아니냐는 질문은 하지 말았어야 했나. 때늦은 후회가 들었다. 태형아. 여주의 소리가 들렸다. 아슬한 모양새로 난간 위에 걸터앉은 김여주. 다급하게 발걸음을 뗐다. 본능적으로 움직였던 것 같다.
“위험해. 내려와.”
‘안 죽어.’
“그래도.”
이틀 간 비가 내려 축축했던 땅이 마르고, 햇살이 학교와 여주를 비췄다. 여주는 잘 입지 않던 하복 체육복을 입은 채였다. 햇살이 비춘 곳마다 반짝이처럼 가려진 여주의 멍들이 빛났다. 무릎 위로 자리한 멍은 생전 처음 보는 거였다.
‘아빠가 때리더라.’
여주의 목소리가 떨렸다.
‘가끔 엄마도 때리고 그래.’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목구멍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말하려는 여주를 눈에 담을 뿐이었다.
‘고분고분해서 하는 말마다 네네, 대꾸 없이 순순히 따르는 자식을 원하셨나 봐.’
일단 나는 아니었던 거지.
‘어느 날은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는데. 아빠가 날 보더니 대뜸 재수가 없다는 거야. 니는 밥 먹을 자격도 없다면서 내 밥그릇이랑 수저를 휴지통에 던져버리는데. 나도 좋은 말이 나갈 리가 없잖아. 그래서 아빠한테 막 소리쳤다?’
왜 그러냐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맞다가 정신을 잃었어. 깼을 땐 병원인 줄 알았는데 내 방이더라. 일어나서 보니까 날짜도 이틀이나 지나 있고.’
기억 나지?
‘나 이틀 간 잠수 타서 네가 엄청 빡쳤던 날.’
그날이야.
“..............”
태형은 말문이 막히다 못해 여주가 뱉은 말의 단어가 조각조각 날아와 제 목구멍을 베는 것 같았다. 자그마치 1년 전의 일이다. 여주는 자신의 부모라 불리는 사람에게 족히 1년을 넘게 맞아 왔다. 아물만 하면 생기던 상처는 여주의 어리숙함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가정 폭력에서부터 온 거였다.
모든 걸 알게 되니 여주를 두고 죽고 싶어졌다.
‘죽은 날에도 엄청 맞았는데. 직감? 직감 같은 게 딱 오는 거야. 아, 오늘 진짜 운 안 좋으면 처맞다가 골로 가겠구나. 아빠가 담배 피러 간 사이에 책상에 앉았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까 너 밖에 안 떠오르더라고. 그래서 네 이름 석 자 적고 아래다 몇 자 더 끄적였지. 군대 간 남친한테 여친이 편지 부치는 것 마냥... ㅋㅋ’
울지 말고 씩씩하게 지내.
‘근데 맨날 울고. 나 너 울보인 거 죽어서야 알았잖아. 나보고는 울면은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준다고 뚝하라나 뭐라나 그랬으면서.’
여주의 형상이 점점 흐릿해져 갔다. 햇살이 존나 강해서 눈알이 제 역할을 못하는 건 줄 알았는데. 여주가, 아니 여주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부터 온 태형의 환각이 이젠 사라질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여주야,”
“그러니까 내가 궁금해 하지 말라고 했잖아.”
“가지마.”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보고 싶은데. 몸이 이래서 속상하다.”
“안 가면 안 돼...?”
“응, 안 돼. 넌 네 삶 살아야지. 언제까지 나 붙잡고 엉엉 울 순 없는 법이잖아. 지민이랑 정국이처럼 내가 곁에 없다 해도, 씩씩하게. 어? 공부도 좀 하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웃으며 태형의 팔을 툭 치려던 여주의 손이 정말 태형의 팔을 툭 쳤다. 허공으로 통과되지 않았다. 마지막 버프인가 싶었다. 영원히 김여주가 네게 닿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김여주가 사라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운동장 이후로 2번째네? 신기하다.”
“가지마.”
“그 말도 지겨워. 다른 거.”
“..... 가지마.”
“처음 말하는 건데, 내가 가는 게 아니라. 태형이 네 머릿속에서 날 지워내고 있는 거야. 네 죄책감이 풀리고 있는 거라고.”
“............”
“좋은 거야.”
너에게도 나에게도. 두 눈이 시뻘개진 태형을 보고 여주는 팔을 대자로 벌렸다.
“한 번만 안아보자.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환상처럼 태형이 여주의 품에 안겼다. 덩치로 봐서는 누가 봐도 여주가 태형에게 안긴 꼴이지만, 여주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여주를 으스러질 듯이 끌어안은 태형은 곧 주인을 잃을 강아지 같이 처연했다.
“여주야......”
“응.”
“미안해.”
“괜찮아.”
별안간 균형을 잃은 태형이 옥상 바닥에 주저앉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느껴졌던 여주의 온기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
15일에 걸친 환각이 이내 막을 내렸다.
*
“김태형.”
“어.”
“나와. 밥 먹으러 가게.”
여주의 존재 유무는 대부분 학생들에게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여주와 꽤나 가까웠던 태형과 지민. 그리고 정국을 제외한 이들은 흘러가는 대로 일상을 보낸다. 이젠 여주의 이름을 과자 까먹듯이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이들도 있다.
“너 이제 여주 안 보인다고 했냐.”
“어.”
“존나 이상하네. 왜 난 계속 보이지.”
“정신과 상담 받아.”
“니가 그 말 하니까 존나 짜증 난다.”
태형이 여주의 환각을 보지 않게 된 날로부터 어느덧 1달이 지났고, 1달 전 여주를 완전히 떠나보낸 태형과 달리 지민은 여전히 일주일에 1번 꼴로 여주를 보고 있다. 답을 알고 있는 태형은 묵묵히 씹고 있던 밥알을 삼키고 우유 주둥이를 깠다.
“여주, 네가 죽인 거 아냐.”
“뭐래.”
태형의 시선을 일부로 피한 지민이 느린 젓가락질을 했다.
“죄책감 덜라는 소리야.”
“............”
“그래야 여주가 마음 편히 뜨지.”
터 놓은 우유를 한 번에 원샷 한 태형이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새끼야.”
“옥상.”
“뛰어내리면 뒤진다.”
“밥이나 처먹어.”
환각을 잊긴 쉬워도 온기를 잊긴 어렵다.
“박지민,”
“뭐.”
“여주 만나면 그냥 안아 줘.”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고 말해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