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세대Ⅰ.
「 Bobby의 뒤를 이을 신예배우 구준회의 차기작 '혼돈' 11월 2일 개봉 coming soon」
노이즈와 겹쳐진 화면에서 몇개월 전부터 저의 자리를 노려보는 애송이 하나가 비쳐졌다.
그다지 위협은 되지 않는 정도라 신경 안쓰고 있었더니, 요즘에는 묘하게 걸거쳤다.
불이 붙여지지 않은 담배를 씹으며 소파에 눌러 앉아 귀를 괴롭히는 텔레비전의 전원을 껐다.
저것도, 씨발 원래 내건데.
저런 류의 반항적인 젊은 세대의 영화는 주로 독보적인 캐릭터인 내 차지였다.
모든 감독들은 머리 끝까지 도도하게 구는 제 비위를 맞추려 끙끙대기 바빴지만 저 녀석이 등장하고 태도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했다.
저보다 신선하고, 어리면서도 이미지는 비슷하고, 신인치고는 높았지만 저보다는 낮은 콧대.
저에게도 충분히 매력있는 사람이었지만 정황상 제가 미워해야할 상황은 맞는것 같다.
'Rrrrrrrrrrrrrr'
막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찰나, 텔레비전 옆 전화가 우렁차게 울려댔다.
급하다면 계속 오겠지, 여유롭게 담배에 불을 붙이고 비어버린 컵에 맥주를 채워 올 때 까지도 전화는 울리고 있었다.
"어 그래, 동혁이냐. 무슨 일이야, 잘 지내고?"
오랜만에 듣는 제 사촌의 목소리에 한번 빨아올린 담배를 미련없이 쓰레기 통에 던져넣었다.
"응, 그래. 만날 수 있지. 너 그런데, 아니다. 만나서 얘기하자. 그래."
왠지 상기돼보이는 동생의 용건은 '할말이 있는데 만나자' 였다.
저번에 들어보니 기숙사를 못 들어갔다던 것 같은데, 집 문제인가?
먼지쌓인 피아노 앞에 삐뚤게 놓인 의자에 걸쳐진 코트를 들고 손때범벅인 거울을 보고 머리를 정리했다.
피아노도 안친지 꽤 됐네, 싶어 가장 끝에 걸려있는 라음을 살짝 눌렀다.
안그래도 듣기싫은 음이 엉망으로 울렸다.
조율해야겠네
-
여어, 김동혁 오랜만이다
형! 형은 하나도 안변했네
집에 들어오자마자 제게 안겨오며 말갛게 웃어보이는 동혁에 오랜만에 웃어보였다.
우리 그정도로 안보지는 않았거든
내 말은 그러니까, 형 영화 찍을 때는 항상 바뀌잖아 뭔가. 아무것도 안하나봐?
그렇지 뭐, 좋은 게 안들어오니까. 그나저나, 무슨 일인데
에..라며 잠깐 뜸을 들이더니 베싯웃고 그냥. 얘기하고 싶어서. 이모도 궁금해하고. 라는 그의 말에 장난스레 딱밤을 먹였다.
이게 진짜. 집은 구했어?
아 나 기숙사 들어갔어. 그 얘기 해주려고 전화한거긴 한데.
너 저번에 기숙사 자리 없다며.
그게 자리가 났다나봐. 선배 한명이 퇴학당한 모양이야.
그래?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글쎄. 아무튼 내 방 룸메이트 형이 글쎄, 특이한 것 같아.
같은 과? 글 쓰는 사람중에 특이한 사람들 많지.
그래?
응, 근데 뭐. 어떤데 그래?
뭐, 형이랑 맞먹는 꼴초인데다가 항상 무슨 생각에 빠져서 말 듣지도 않고 수업도 잘 안 듣는것 같던데.
그 좋은 학교까지 가서 왜 그런대, 돈 아깝지도 않나
집이 엄청 잘 산다나 봐. 이름이 송윤형인데.
송윤형? 송민호랑 관련있냐?
동생이라나 봐.
말도 안돼.
송명호라고 내뱉어서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간첩일게 틀림없었다.
송민호는 송명호의 아들, 그리고 그 둘째 아들이 송윤형, 그 작자라니.
송명호라 함은 이 나라를 꽉 쥐고 있는 가문이자 대기업의 창업자로,
죽음이 코 앞이라 곧 송민호에게 회사가 넘어 갈 것이 뻔했는데
언론에 노출은 커녕 찌라시조차도 잘 없는 둘째 아들에겐 아무런 상속 소식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었다.
뭐, 얘기는 좀 해봤어?
아니, 기숙사에도 늦게 들어오거나 안들어오고 다른 생각만 잔뜩 한다니까.
뭐야. 좀 친해져봐. 혹시 모르냐 국물이라도 떨어질지.
아 진짜, 아. 한번 나한테 글 좀 보여줄 수 있냐고 하긴했는데.
그래서?
전에 과제로 낸거 줬지.
잘쓴거야?
아니. 그때는 만족했는데, 점수는 똥이었어.
아, 뭐야. 잘 쓴걸 줘야지.
아 그땐 잘 쓴 줄 알았다니까. 아무튼 그거 그 형이 가져갔어.
가져갔다고?
응, 이거 가져가도 되냐고 묻더니 그거 들고 바로 어디 나가던데
그 이후론 얘기 안했어?
응, 뭐. 딱히.
에이, 야 나 담배 한대 펴도 되냐?
응, 나도 한대 줘봐.
..너 담배도 펴?
아, 그게. 그 형이 하도 꼴초라. 배웠다고 해야하나. 자연스럽게 피게 되더라고.
좋은것도 아닌데, 많이 피지 마.
걱정마. 가끔 피는 거니까.
어렸을때부터 거의 형제나 다름없이 자라 온 터라 사촌을 많이 아꼈는데,
마냥 어리고 순수해보이던 제 사촌이 담배를 핀다니까 기분이 착잡해졌다.
하지만 막상 불을 붙이고 마주보며 입에 담배를 물고 있으니 담배연기와 함께 간질간질한 기분이 피어오른건 사실이었다.
내가 너랑 마주보고 담배를 필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나도.
아 맞다 형.
그래.
말도 안되는 거 하나 더 알려줄까?
뭔데.
방에 형 포스터 잔뜩 붙여져 있어.
나?
응, 걱정마. 말 안했으니까.
잘했어.
막 타들어가기 시작한 담배를 한번 빨아들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나를 좋아해준다니 고마워 해야 하나, 곱게 자란 도련님이실텐데.
대충 걸친 후드 주머니에 반쯤 남은 코카인 병을 한손으로 꽉 쥐고 뚜껑을 톡톡 건드렸다
조금 궁금하긴 하네.
-
매일 오전에는 사장이 카운터 옆 소파에 앉아 그날의 신문을 구인광고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었다.
하지만 그 날은 왜인지 이른 오전 셔터에 '오후 늦게나 올테니 알아서 잘 하고 있어라'라는 쪽지만 작게 붙어있었다.
하필이면 이런 특별한 날, 왜 저를 만나러 오는 사람이 이리 많은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이른 오전부터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로 지나가는 김진환과 눈이 마주쳤을 때 부터 예상을 하긴했다.
오늘 일진 별로겠네.
오전에는 항상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간간히 문가를 살피며 타자기를 두드렸지만 억지로 쥐어짜내는 문구만이 고스란히 담길 뿐이었다.
김진환은 한두시간 정도 우리 인쇄소의 맞은편에 있는 음식점에 앉아 앞에 놓인 샌드위치를 먹지 않고 그저 앉아있었다.
애써 무시하고 11시쯤 도착할 손님을 위해 타자기를 카운터 아래로 내렸다.
대충 가게 안을 둘러보며 아침에 청소를 스킵했는데 티가 나진 않겠지, 라는 시덥잖은 고민을 잠시 했다.
괜히 잉크통의 정렬만 맞추고 있을 때, 딸랑하고 문에 달린 종이 맑게 울렸다.
어서오세요, 이 한마디를 미처 끝내지 못하고 잠시 멈칫했다.
형, 오랜만. 한쪽손을 들어보이며 문가에 서있는 구준회에 중지하나를 내밀어 보였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긴, 형 보고 싶어서 왔지. 오랜만이잖아.
검은 후드에 반쯤 가려졌지만 밝은 금색의 머리와 꼴에 배우라고 관리받은 얼굴이 능글맞게 웃어재끼는게 보였다.
너 영화 나온다더니, 한가해?
아니, 개 바쁜데 시간 쪼개서 온거거든. 감사한줄 알아야지.
시덥잖은 소리에 팔을 휘휘 저으며 욕을 지껄이려는 찰나, 다시 문이 열리며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
작게 저기, 대기실 -사실 가게 한쪽 구석에 테이블과 소파를 둔 것 뿐이지만-에서 기다리라 속삭이고 손님을 받았다.
다행히 양도 그리 많지 않았고 기계도 순조롭게 돌아가 작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계의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이 커다란 기계는 자주 말썽을 부리고 했지만 오늘은 종이 한장에 잉크를 남발해버린것을 제외하고는 양호했다.
인상 좋은 손님은 대기실에 앉아 맞은 편에 앉은 묘한 분위기의 남자를 흘긋거리는 것 같았지만 알아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가끔 돌아볼때마다 구준회는 살짝 미소를 띄고 대기실에 널려있는 잡지와 신문들을 읽고 있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순조롭게 작업을 마치고 손님은 돌아갔다.
감사합니다 한마디와 함께 본 맞은편 가게에 김진환은 언제부터인지 가고 없었다.
형, 너무한거 아니야?
뭐가.
오랜만에 왔는데 이렇게 방치만 해두고.
내가 오라고 안했거든.
와, 매정한거봐.
읽고있던 잡지를 테이블 위로 툭 던지며 툴툴거리는 말에 픽 웃고 급하게 탄 커피를 구준회 맞은편에 앉아 내밀었다.
어차피 오늘 예약 손님도 없고, 온다고 하더라도 사장님을 핑계로 돌려보내면 그만이었다.
아침부터 서있었던 탓인지 앉자마자 노곤해져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고 마지막 남은 한 개피는 구준회에게 건내주었다.
형. 이거 다 읽어봤어?
신문만 읽었지. 손님용이야.
그래?
왜?
그냥, 말도 안되는 가십거리들 다루는거 형이 읽나 싶었지.
너 평소에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냐?
물론 아니지.
동시에 뿜어내는 담배연기가 테이블 위에서 만나고 동시에 둘 다 말을 잃었다.
구준회는 금새 능글맞았던 표정을 지워내고 굳은 표정으로 김인지 연기인지 모를것이 맴돌고 있는 커피만을 내려다봤다.
무슨 일인데.
글은 잘 써져?
제 물음에 저를 한번 쓱 보더니 담배를 테이블에 지져 버리고 말을 돌리는 그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아니고.
나 때문에?
아니, 그냥.
한번 봐도 되냐는 그의 말에 기꺼이 카운터 아래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왔다.
자세를 고쳐 앉더니 종이위의 글들을 쓱 흝는 그에 얼굴에서 사뭇 진지함이 느껴져 살짝 미소지으며 남은 커피를 들이켰다.
제 의미모를 미소에 나를 흘긋 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하고 아직 보지 못한 오늘자 신문을 집어들었다.
형.
그래.
학교, 다시 가고 싶지.
이 상황에 또 그 주제가 피어오르자 신문을 접고 그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왜 갑자기.
형은 너무 자존심이 쎄.
무슨소리야.
가고싶으면 가고싶다고 말을 해, 비꼬지 말고.
예리한 그의 일침에 마른기침을 한번 하고 그의 손에서 종이를 뺐어들었다.
애써 숨기고 들킬바에야, 먼저 그 애증을 밝히고 드러내.
꼰대같은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말해.
뭘.
무슨 일이냐고.
타고난 감으로 정확하게 찝어주는 그에 민망함이 올라와 거의 다 탄 담배를 지져끄며 괜히 화살을 그에게로 돌렸다.
나도 글을 쓰면서 한심해 했던 대목이었다, 그가 읽고 있던 부분은.
그게 그러니까.
어, 말해.
형, 김진환이…
-
그때 구준회의 말은 갑자기 들려오는 종소리에 끊겼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봤던 문에는 웬일인지 송윤형이 손에 종이 뭉텅이를 들고 서서는 구준회를 빤히 바라보고 서있었다.
배우 bobby를 남몰래 -어쩌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은거겠지만- 흠모하던 그는 구준회를 단번에 알아본 것이었다.
구준회는 굳이 그의 눈빛을 거부하지 않으며 나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거의 매일을 보지만 또 보는 그의 모습이 좋아서, 나는 구준회의 마지막 마디를 단번에 잊고 일어났다.
송윤형, 너 학교는.
나름 엄하게 말한다고는 했지만 숨길 수 없는 미소에 송윤형도 구준회에게서 눈을 떼고 저를 보며 베싯 웃어보였다.
우리 항상 이런 날씨에는 수업 안들었잖아.
저런 태도로 나오면 제가 화를 낼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별 수 없이 뭐라 더 말하지 못하고 그를 제 옆으로 끌어 앉혔다.
어, 그러니까. 여기는 구준회. 알지?
응. 물론.
그리고 여기는 송윤형. 나보다 한살 형이고 학교 룸메이트였어.
어색함을 가득 담은 소개가 끝나자 둘은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구준회는 입모양으로 작게 '뮤즈?'하고 속삭였고 나는 송윤형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송윤형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고 어색해지려는 찰나 구준회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한빈이 형이랑 같은 학교면, 글 쓰시나 봐요.
네, 요즘은 잘 안쓰긴 하지만.
말 편하게 해도 돼요. 한빈이 형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구준회의 말에 송윤형은 저를 흘긋 쳐다봤다.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자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응. 그런데 한빈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영화관에서 만났었어요.
영화관?
네, 그 영화가...「Silver Chalice; 은술잔」이였나.
뭐야 김한빈, 그런것도 보러 갔었어?
형한테 보러가자 했으면 욕했을거잖아, 그런거 안본다면서.
내 말은, 그런 취향이였냐는거지. 니가 그렇게 혐오하는 올드한 취향.
그의 말에 나는 살짝 웃음이 터졌다. 형, 거기 주인공이 김진환이잖아.
순간 송윤형의 입이 살짝 불거졌다 금새 제자리를 찾았다.
살짝 묘해진 분위기와 상황에 다시 구준회가 입을 뗐다.
윤형이 형?
그래, 그렇게 불러.
한빈이 형 룸메이트였으면, 이제 새 룸메이트 들어왔겠네요.
응, 마침 그 얘기로 찾아온거였어.
룸메이트?
응, 그 전에. 담배 있는 사람?
나는 주머니에 있는 비어있는 담배갑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새끼, 좀 채워다니지. 라며 타박하는 그에 형이나 들고다녀, 돈도 많으면서. 라고 하자 저를 째려보는게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던 구준회는 제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송윤형과 저에게 한개피씩 건내고는 자기 입에도 하나를 물었다.
지포라이터로 불을 붙인 담배를 셋이 사이좋게 나눠물자 송윤형은 그제서야 들어올때부터 꼭 잡고있던 종이 뭉치를 제게 건내주었다.
구준회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몸을 기울여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이게 뭐야?
신입생 룸메이트 과제.
시네. 서사시 느낌인건가.
글쎄.
종이에서는 신입생의 패기가 가득담겨 모 영웅에 대한 예찬이 가득 담겨있었다.
두서없어 보이기도 하고 정신없는 문체였지만 하고자하는 말은 정확했다.
자기는 존나, 영웅-더더욱 남자-을 좋아한다고.
이름 모를 학생이 영웅의 섹슈얼함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을때 저와 송윤형은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대충 흝어본 종이를 읽으려고 노력하는 구준회에게 넘기고 저는 오랜만에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어때?
괜찮은데?
호메로스랑 단테 끼고다니는 범생이치고 대범해.
응, 점수는 어땠어?
당연히 꽝이었지.
역시.
한번 만나보는게 좋겠지?
응, 물론이지.
다 읽은건지 미소를 띄며 종이를 정리하는 구준회에게 던지듯 물었다.
넌 어때보여?
윤형이 형도 그의 견해를 궁금해하는 모양이었다.
아마 마음에 들어할테지, 그는 배우로 남기 아까울만큼의 센스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존나 정신없어. 마약으로 비유하자면 펜시클리딘?
헛웃음을 지으며 내뱉는 구준회의 첫마디에 송윤형은 크게 한번 웃었다.
그래도 오히려 이게 얘 매력인 것 같아.
맞아.
그런데 내 생각엔 이 느낌을 유지하면서 문체하고 표현만 좀 다듬으면 될 것같은데.
구체적으로?
이거 읽을때 얘가 되게 흥분해서 쓴게 느껴지잖아.
그렇지.
그건 되게 좋아, 좋다고 봐.
얘 매력의 근원이지.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확실하지 않지만, 문체나 표현도 습관같아.
응, 습관이야.
그럼 그것만 다듬으면, 흥분해서도 이렇게 두서없이는 안나오지 않을까?
열심히 맞장구를 치던 송윤형이 대답이 없자 나와 구준회는 종이에 박고있던 눈을 올려 송윤형을 쳐다봤다.
그는 살짝 미소짓더니 구준회를 바라보며 너 좀 괜찮네. 한마디를 던졌다.
형, 나는.
넌 김진환보러 「은술잔」이나 보고 와.
형 질투했구나.
너야말로.
-
구준회와 송윤형은 생각보다 금새 친해졌고, 우리 셋은 점심을 먹으러 가게 주변 레스토랑으로 갔었다.
꼴에 공인이라고 큰 소리 못내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다니는 구준회가 안쓰럽기도 했다.
송윤형 학교 얘기나 구준회가 들려주는 영화계 가십거리들을 들으며 의미없게 시간을 떼우다
스케줄이 있다며 자리를 뜨려는 구준회에 송윤형이 따라 나섰다.
조금 더 있다 가지 왜.
됐어, 담배도 없고 헤로인도 없고.
너무 자주 하지마.
알아, 걱정마.
널부러져 있던 종이뭉치를 챙기는 송윤형과 포옹을 잠시 나누고 구준회에겐 어깨를 툭 치는 것으로 대신했다.
잘 가라, 영화 나오면 보러 갈게.
당연하지.
언제 또 보려나. 바쁘신데.
바빠도 와야지. 영화 개봉하고 얼마만 지나면 시들해져.
그래. 수고해라.
응, 윤형이 형도 연락할게요, 또 봐요.
그래. 영화 기대할게.
-
장정 두명이 가게를 나서자 복작했던 가게가 휑하니 빈 것 같았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온 사장님 덕에 남은 오후 내내 타자기를 두드리며 시간을 보냈다.
가게 셔터를 닫고 제가 사는 좁고 환기 되지 않는 공동주택에 도착하니 시간은 시계바늘은 정각에서 만날 준비 중이었다.
코트를 벗으니 피곤함이 급격히 쓸려왔다.
요즘 전국 각지에선 1896년, 루이지애나 주에서 벌어졌던 흑인들의 백인 전용 차량 탑승 사건을 들먹이며 많은 흑인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백인들도 따라 나서 흑백인권분리법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데요. 그에 반해 대부분의 백인 고위급 인사들은 이 사태를…
대충 주파수를 잡은 라디오에서는 노이즈와 함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곤함에 뉴스가 귀에 제대로 들어오는것 같지도 않아 소리를 조금 더 작게 줄이고 침대위로 풀썩 쓰러졌다.
다음 소식은 조금 가볍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마전부터 영국에서 들어온 숯불 다리미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작은 라디오의 소리가 아득히 멀어지는가 싶더니 뉴스가 다음 토픽으로 넘어갈 쯤,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은 영화계 소식인데요. 은술잔, 거리의 공황등의 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김진환에 대한 소식인데요…
결국 다음 뉴스는 듣지 못한채로
웰컴백 |
사실 배경은 1950년대 미국입니다. 하지만 픽 구성상 완벽하진 못해요. 대충 1945년부터 1950년대 까지 큰 특징만 잡아 끼워 맞췄습니다. 배경은 미국이긴 하지만 미국이 아닌 그런 느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