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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강원도로 워크샵을 왔는데, 조별로 밥도 먹고 심지어 숙소도 두명이 함께 쓴다니 낯을 심하게 가리는 나에겐 너무 당혹스러웠음. 도착해서 바로 세미나실에 모여 발표와 강의를 듣고 점심식사를 하게 됨. 업무 관련해서 몇 마디 나눠봤지만 전혀 친분이 없는 분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데, 다른 분들은 서로 조금씩 아는 사이인 듯 했음. 서대리랑 다른 조인게 불행 중 다행이지만 항상 차장님 아니면 대리님들과 함께였다가 떨어져 있으려니 적응 못하는 전학생마냥 어색했음.
"왜 이렇게 못 먹어요"
씩씩해 보이려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는데, 첫인상은 몹시 차가웠던 같은 조 여직원분이 말을 걸어주심. 자원 3팀 정수정이라는데 이름만큼이나 얼굴도 아주 예쁨. 이런 저런 얘기도 몇 마디 나누고 조금은 편하게 밥을 먹음.
"난 302호"
"저도 302호요"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속으론 무척이나 기뻤음. 모르는 사람 어색한 사람과 한 방에서 내가 밤에 잠이나 잘 수 있을까 싶었는데 너무나 다행이었음.
숙소로 가는 길에 저번에 갔던 야유회 생각이나서 차장님은 어디 계시나 하고 두리번 거려 봤지만 찾을 수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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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에 있는 숙소에 엘레베이터가 있을리 없고, 계단을 올라가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음. 2층을 향해 힘겹게 낑낑 거리며 캐리어를 들고 올라가는데 갑자기 손이 가벼워짐.
"몇 호"
차장님이 한 손엔 자기 짐을, 한 손엔 내 캐리어를 들고 몇 호냐고 물으심. 아, 네, 302호요. 하고 어리둥절 대답했더니 양손에 가방을 한 개씩 들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심.
덩달아 나도 빨리빨리 3층까지 올라감. 3층에 도착해선 캐리어를 내려놓고 다시 올라가심. 내 뒤에 오던 수정언니가 매너 갑이라고 감탄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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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프로그램이 끝나고, 저녁식사까지 마친 뒤, 캠프파이어를 하러 모임. 드디어 차장님이랑 만나게 되었음. 이산가족 상봉한 것 마냥 맘속으로 환호성을 백번 지름. 옆사람과 박수도 치고 하면서 레크레이션을 하는데 괜히 차장님이랑 손이 닿았을 때 움찔함. 옆에 있는 동료에게 미안했던 점, 하고싶었던 말을 하는 시간이 있었음. 왼쪽에 있는 사람 먼저 시작하라고 해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말을 꺼냄.
"출근도.. 더 일찍하고"
"야근할 때 졸지도 않고"
"열심히 할게요"
앞으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하니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차장님이 그냥 고개만 끄덕끄덕 하심.
"출근 더 일찍 안 해도 되고"
"야근할 때 졸아도, 뭐 괜찮아요"
"맨날 데이트 대신 일 시켜서 미안해요"
"그냥, 사랑한다고"
완전한 음성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게 몇번이나 되는가. 마음이 간질거려 얼굴이 빨개짐. 차장님께는 불이 뜨거워 그렇다고 둘러댐. 고해성사의 시간 후 악수와 포옹의 시간이 있었는데, 남녀가 짝이었던 팀들은 대부분 악수만 하시길래 나도 손을 내밀었음. 내 왼손 민망하게 아무런 반응이 없으시던 차장님이 나를 세게 안으심.
"팀워크 도모하려고 온거니까"
놀란 눈으로 쳐다보니 나를 내려다보시며 피식, 웃으시곤 손을 세게 잡으심. 잠깐 차장님 손의 온기를 느낄 틈도 없이 날 부르는 수정언니 목소리에 다급하게 뒤를 돌아봄.
"ㄴ,네"
"왜 그렇게 놀라"
"아니요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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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파이어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술자리가 열렸음. 부서 상관없이 모여 앉아 마시고 마시고 또 마셨음. 내 왼쪽엔 차장님이, 오른쪽엔 수정언니가 있었음. 어리다는 명분으로 한잔, 게임에서 져서 한잔, 그냥 한잔 하다보니 정신이 좀 몽롱해지긴 했지만 그동안 회식자리에서 쌓아온게 있기에 버틸만 했음. 야외라 그런가 그냥 좀 으슬으슬 춥다는 것 외에는 차장님도 옆에있고 나름 즐거웠음. 차장님이 잠깐 나가시길래 담배 태우러 가시나 했는데 자리에 앉으셔서 테이블 밑으로 겉 옷을 건네심.
끝이 보이지 않던 술자리도 어느정도 마무리가 되고 밤이 깊어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부축되어서 돌아가시는 분들이 대다수였음.
"야, 정수정 일어나"
수정언니를 부른 건 박대리님이었음. 아는 사이였나? 하고 갸우뚱 함. 수정언니가 박대리님께 부축되어 가고, 나도 일어날 채비를 함. 옆에 계시던 차장님이 일어나려던 나를 붙잡고 많이 춥다. 또 감기 들겠어. 하시며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모자를 씌워주심.
"아~ 훈훈한데요"
어디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싶어 보니 이과장님이었음
"엇 안녕하세요"
"뭘 새삼스럽게 안녕이야 아까도 봐 놓고"
"그런가요"
"키 줘, 너희 애 잘 챙겨 들여보내라"
차장님께 키를 받아들곤 먼저 갈게~ 하며 가심. 차장님과 나도 숙소로 돌아가려고 일어섬
천천히 걸어가는데 숙소까지가 꽤 멀었음. 다리는 아팠지만 그래도 같이 있을 시간이 있어서 좋았음. 차장님이 어깨에 팔을 올리셨다가 다시 팔을 내려 손을 잡으심.
"있을만 해요"
"네 나름 재미써, 재밌었어요"
"많이 마셨네"
"아니에요"
"정말?"
"저 아까 항정살 먹었어요"
"맛있었어요?"
"네 완전"
"그래요, 서울가서 또 사줄게"
뭉개진 발음으로 대답하니 차장님이 아빠미소를 하고 쳐다보심. 계속 되는 내 횡설수설에도 하나하나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심.
"시계 예쁘죠"
"응, 예뻐요"
"남자친구가 사줬어요"
"다음에 반지로 바꿔줄게요"
+
많이 늦었네요 반성합니다 8ㅅ8
이제 더이상 암호닉은 받지 않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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