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
Mark Lee / Jeno
deep.
Q
quiz, quiz, quiz
"별 볼일 없는 그리핀도르가 왜 슬리데린 기숙사까지 와서・・・"
"별일이야 정말."
퀴디치 연습을 끝낸 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저와 같은 초록색과 은색의 넥타이를 맨 학생들이 곁을 지나치며 쑥덕이는 소리에 마크는 고요히 눈썹 한쪽을 치켜올렸다. 그러나 고요히 나아간다. 별 같잖은 논쟁이라도 치뤄지는 건가 그렇게 여기며 유유히 발걸음을 옮겼다. 여즉 논쟁을 치루고 있는 건지 음산하기 짝이 없는 지하감옥 복도가 왕왕 큰 소리로 울리고 있었다. 복도에 진입하는 모퉁이에 몰려든 학생들은 불안한 눈치로 마크를 흘깃댄다. 머지않아 고상하게 옮기던 발걸음은 멈춰진다. 저 포함 모든 사람들의 발길을 묶은 목소리는 제가 너무나도 잘 아는 목소리였으니까. 순간 표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마크의 얼굴에 파란이 일었다. 울음 섞인 목소리가 또다시 메아리쳤다. 이제노, 너 진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마크는 제 기억을 더듬는다. 분명히 무도회날 얘기하기로 했었는데. 여주 옆에 앉아있던 자신이 모를리 없었다. 못박힌듯 멈춰세웠던 발을 내딛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제 팔을 억세게 잡아챘다.
"나서지 마."
"・・・놔."
"김여주랑 이제노 사이 일이야. 너까지 나서서 일 치르지 말라고."
이 악물고 이동혁이 조용히 일갈한다. 네 팔 없애버리기 전에, 놓으라고. 마크의 눈이 사납게 동혁을 비추었다. 그러나 마크를 가로막은 손은 떨어지기는 커녕 더더욱 힘을 준다. 네가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이건 네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야. 아무리 니가 쟤 남친이더라도. 따라붙은 그의 말에 마크는 세게 입술을 짓씹었다. 복도 안쪽으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이들의 시선 몇몇이 저와 동혁을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사방을 울리던 목소리는 잦아들고 울음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내가 말했어. 싹 다. 김여주 다 듣고 이제노 찾아간거야. 자세하게 뭘 말했는지 부연설명까지 덧붙인 동혁의 말들을 들은 마크가 눈살을 찌푸린다. 제 계획이 완벽히 틀어졌음을 실감케하는 그 울음이 동혁의 말과 함께 골을 울렸다. 이어지는, 울음에 잠겨버린 다른 하나의 목소리도.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파란이 일던 얼굴은 기어코 구겨지고야 말았다.
"미안해."
"그런 짓을 할 만큼, 너를 사랑해서 미안해." 허, 참을 수 없는 헛웃음에 입매가 비틀렸다. 한낱 죄인이 언제부터 사랑을 말할 자격을 가졌던가. 마크는 절절한 짝사랑에 찬물 끼얹듯 비소를 던졌다. 미안해, 미안해. 고인 눈물 위로 사과의 말들이 쌓여갈 때였다. 벽 뒤에 숨어 지켜보고 있던 학생들 사이에서 불현듯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외마디 비명처럼 공기 중에 튀어올랐다. 상황을 확인하던 동혁의 동공이 커지며 마크의 팔을 틀어쥐었던 손에 힘이 쑥 빠졌다. 힘없는 손을 떨쳐내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막는 이도, 막을 수 있는 이도 없는 자의 걸음은 한 치 흔들림도 없이 또다시 나아갔다. 와, 좆됐다. 멀어지는 마크에 떨쳐진 제 손처럼 고개 푹 떨어트리며 이동혁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내 모두가 숨을 삼키게 만든 그 장면을 마크는 목도한다. 이미 금이 간 얼굴도, 발걸음도. 그 장면 앞에서 차게 굳었다. 그렇잖아도 얼음장같은 분위기는 살벌함이 추가되어 냉골이 따로없었다. 그러니 이 상황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동혁이 할 수 있는 거라곤 헝클어진 머리를 더 헝클이는 것밖에 없었다. 엿같은 상황은 이럴때 쓰이라고 만들어진 말이겠지, 하하・・・ 동혁의 입에선 연거푸 한숨만이 뿜어졌다.
그러니까, 이제노가 김여주를 안았다. 그게 숨까지 들이마시며 놀랄 일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슬리데린 학생회장보다도 높은 지위를 꿰어찬 마크 리와 나름 호그와트 유명인사 중 하나인 김여주의 관계를 알고 있는 이상 이게 놀랍지 않은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히 충격적일 수 밖에. 덤스트랭에서 호그와트로 넘어와 단숨에 유명 인사들 축에 끼워진 이제노가 그 김여주를 안았다는 것이. 한 번 숨을 삼킨 학생들은 마크의 등장으로 한 번 더 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개중엔 입을 틀어막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노는 울음으로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몸을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홧김에 먹은 마음은 행동마저 홧김에 실행에 옮기도록 부추겼다. 스스로에게 그 아이를 안아 달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으나 그는 그 다짐을 어김으로써 또 하나의 죄를 저질렀다. 사랑을 위해, 사랑에 의해 죄인이 된 그는 또 한 번의 죄인이 되는 길을 택했다. 자신의 선택에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어버린 무고한 한 사람을 껴안는 것으로.
그러나 더 나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껴안기 전 어그러진 시야 끝에 맺혔던 입술을, 애써 눈가에서 지워내며, 제노는 몸 따라 떨리는 여주의 목덜미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미안해."
오늘만 해도 수십번 뱉었던 말이다. 또한 오늘까지 속으로 수도 없이 삼켰던 말이다. 기억을 지운 이후로, 또 기억을 지우려고 시도했던 그 이후로. 제게서 뒤돌아서는 뒷모습의 온도를 불문하고, 또 여느 주문보다 입 속으로 입 밖으로 수없이 되뇌인 말. 등허리 온힘껏 안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기적이라서 미안해, 널 사랑해서 미안해. 내 사랑으로 너를 아프게 해서 미안해. 뒤늦은 고해성사에 자신의 신은 끝끝내 응답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제노는 완성되지 않은 제 마법처럼 그 말을 중얼거렸다.
*
내 기억 어느 부분이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아차렸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너는 내 곁에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비맞은 강아지마냥 애처로운 손길로 나를 안아오는 이제노를 밀어낼 수 없었다. 제 앞에 서서 우는 나를 안고서도 이제노는 끊임없이 미안하단 말을 반복했다. 거짓말처럼 울음은 다시 차올랐다. 왜 날 사랑해서, 왜 내 기억을 지워서. 왜 넌 날・・・. 원망하게 만들어. 내 손에 넘겨받은 사실의 진위 여부를 확인했음에도, 마법으로 바뀌어진 기억은 돌아올 생각조차 않았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안고 흐느끼는 이제노에 대한 원망밖에 없었다. 왜, 왜, 왜. 고장난 로봇처럼 내뱉는 말에는 원망들이 섞여 난잡한 색을 띄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잡다한 감정들이 뭉쳐져 내 머리를 짓눌렀다. 순간 흐릿한 시야가 일렁였다. 갑작스럽게 덜어진 무게에 몸이 휘청였다. 헐, 야 쟤네 싸운다! 뒤쪽 벽에 학생들이 몰려있던 모양이었다. 눈을 깜박이자 후드득 눈물이 떨어져내렸다. 보다 선명한 눈 앞의 광경이 들어찬다. 힘없이 나가 떨어진 이제노의 멱살을 잡은, 너무나도 낯익은 슬리데린 퀴디치복을 본 순간, 익숙한 이름 하나가 입 밖으로 튀어나갔다.
"마크?"
"아, 씨."
언제 온건지 이동혁이 옆에서 곤란하다는 얼굴으로 제 머리를 헤집고 있었다. 언제 왔냐는 물음을 던질 새도 없이 엎치락 뒤치락하는 소리가 정신 사납게 공간을 채웠다.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이따끔씩 섞이는 것 같았으나 주변의 소음으로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갑작스레 벌어진 싸움을 말리기 위해 몰려든 슬리데린 남학생들이 겨우 둘을 떼어놓았다. 그렇잖아도 기숙사 점수 깎일 대로 깎인 슬리데린이라 더이상의 감점은 있어서는 안되었다. 마법학교에서 머글들처럼 싸우는게 말이나 되냐며 쑥덕이는 소리와 함께 마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흉흉한 눈빛으로 걸어나오는 그에 잠깐의 소란스러움이 잦아들었다. 나와 눈을 마주친 마크는 내게로 다가오는 대신, 잘난 얼굴 곳곳에 얼룩덜룩한 상처를 매단 이제노를 향해 다시 뒤를 돌았다. You should have to tell her everything. 그 문장 하나가 콱 박혀들었다. 내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더 있단 말인가? 잔뜩 엉킨 실타래같은 머릿속으로 굴러들어온 그 문장 하나와 함께 이제노와 시선이 부딪혔다. 한차례 눈물을 쏟았는데도 그렁한 두 눈동자. 그리고 시야에 천천히 침투하는 손 하나.
"・・Sweetie"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 또한 맞은건지 입술이 터진 채 나에게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올곧은 그의 눈길과 함께였다. 믿어야 할까? 뻗어나가던 손이 주춤거린다. 이제노로 인해 깨져버린 믿음은 불신을 낳았다. 진득할지도 모르는 덫에서 발을 한발짝 물려야 할 때일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그 덫이 내 발목을 자를 지라도, 또 그 덫 너머엔 커다란 구렁텅이가 기다리고 있더라도. 기꺼이 나는. 그 손을 잡았다.
*
지하감옥에 위치한 슬리데린 기숙사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나와 마크를 향한 수군거림은 따라붙었다. 아까 전의 상황에 대한 얘기일 것이 분명했다.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한숨을 내쉬자 잡은 손에 힘을 준 그가 나를 이끌었다. 복도를 걷고 걷다 거대한 벽걸이 양탄자 맞은 편의 빈 벽 앞을 세번 지나자 필요의 방으로 향하는 입구가 나타난다. 그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자 마치 양호실과도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내가 필요한건 이게 아닌데. 뭐가 필요했던 건지는 모르겠다만 마크가 툴툴대는 소리에 가만히 그를 한쪽 구석에 놓인 침대에 앉혔다. 슬리데린 여학생 셋한테 당한 뒤 그가 나를 치료해줬던 것처럼. "Well, I can do it by myself." 연고를 집어드는 나에게 머뭇대며 말하는 그의 입을 막았다.
"내가 해주고싶어."
난 마법으로 상처 없애는건 못해서 그래. 머글들이 쓰는 약이 다 여기 있네. 급한 대로 손가락에 연고를 짜 그의 상처에 살살 바르며 중얼댔다. 입술의 상처 뿐만 아니라 이제노를 때리다 생긴 손마디 위의 생채기 위에도. 약을 다 바르고 난 뒤 밴드까지 야무지게 붙여놓고선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머리 속에선 이어붙이려던 퍼즐이 맞춰지지 못한 채 뱅글뱅글 맴을 돌고 있었다. 섣불리 물어보지도 못한 채 입술을 달싹이다 이동혁이 나에게 해주었던 그 방대한 양의 이야기들을 회고했다. 한 번에 알아듣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들을. 타인이 말해주는 가려지고 뒤섞인 내 기억들을. 펜시브가 있다면 하나하나 훑어볼 수 있겠지만 그것 또한 수정된 기억일 것이 자명했다. 그저 이동혁의 말들을 듣고 상황을 유추하는 것이 다였다. 이동혁이 손에 쥐고 있어 구겨진 신문 속 얼굴들이 흐릿하게나마 허공을 부유하는 듯했다.
'이제노가 나한테 그랬던 이유,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 알아.'
'어떻게?'
하, 이걸 말해, 말아. 어지간히 골아픈 건지 이동혁은 미간 찌푸리며 고민한다. 우리 아빠 예언자 일보에서 일하셔. 알고 있었나? 내 독촉에 꺼낸 이동혁의 첫마디였다.
'어, 나야 몰랐지.'
'그래서 안거야. 네 오빠, 그러니까・・・,'
'우리 오빠가 왜.'
'저번부터 물어보고 싶은거 있었는데. 물어봐도 되냐?'
석연찮은 태도에 묻자 도리어 질문이 돌아온다. 고개를 갸우뚱하자 이동혁은 주섬주섬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꺼낸다. 읽어 봐. 이동혁이 내민 건 다름아닌 예언자 일보였다. 내게로 건너 온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색이 바랜 신문지를 내려다보았다. 커다란 글씨로 박힌 헤드라인이 눈에 꽂혔다. <마법부 오러 살해 ••• 죽음을 먹는 자들 소행으로 밝혀져>. 그리고 대문짝하게 실린 범인의 머그샷까지. 광기 어린 눈으로 카메라를 보는 얼굴이 왜인지 모르게 익숙했다. 기사 읽어 봐. 이동혁의 언질에 그 밑으로 나열된 활자들을 훑었다. '오러사무국에 따르면 범행 현장으로부터 도주하던 피의자는 오러에 의해 체포되었다. 피해자는 N.E.W.T.(고난이도 마법사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졸업한 뒤 오러사무국에 채용된 김 ・・・,' 어딘가 이상했다. 여행을 간다고 떠났던 오빠의 이름이 피해자란 주어와 함께 문장 속에서 서술되고 있었다.
'이상하지.'
'이게 무슨・・・'
어안이 벙벙해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막막한 심정은 이동혁도 마찬가지인건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한다. 적힌 그대로야. 저번에 오빠 얘기 여러번 나왔을때, 그 때마다 모르는 것 같길래. 알려주려고 했었어. 말문 트는 것이 어려웠던 건지 이후에는 술술 다 털어놓는다. 골치 아프단 듯 미간을 눌러가면서도 그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그 범인, 이제노 아버지야. 거센 기억의 소용돌이였다. 그 중심에 서있는 나는 손을 쓰지 못하고 멍청히 서서 휘말릴 뿐이었다. 산산조각난 내 기억들은 어디로 자취를 감춘 것인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줄 알았던 오빠는 호그와트 전투 이후 몰락한 죽음을 먹는 자들 잔당에 의해 살해되었고, 내 오빠를 죽인 사람은 다름아닌 이웃에 살던 이제노의 아버지라는, 내가 모르는 내 기억들의 파편들. 또 그걸 부순 사람은・・・. 갈피 잡지 못한 시선에 이동혁이 잡혔다. 그 사람마저도 알고 있는 듯한 그 눈빛. 끝도 없을 것 같은 한숨 뒤엔 청천벽력같은 말에 눈물이 맺혀버렸다.
'이제노가 네 기억 수정한거야.'
'아닐 수도 있잖아.'
'프리오르 인칸타토로 알아낸거야. 이제노 지팡이에서・・・,'
강화된 법률에 따라 죽음을 먹는 자들이 체포될 경우 그들의 가족 구성원들은 지팡이를 일시적으로 반납해야한다. 그들의 지팡이들은 오러들에 의해 프리오르 인칸타토, 특정 지팡이가 가장 마지막으로 행한 마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주문으로 마지막에 행했던 주문이 무엇인지, 또 그 주문을 누구에게 사용한건지 검사하게 된다. 용서받지 못할 저주들을 시행한 전적이 있는 지팡이들은 압수되며, 그렇지 않은 것들은 다시 주인들에게로 돌아간다. 예언자 일보와 오러 사무국 모두 마법부 산하 기관이었기 때문에 예언자 일보 소속 기자였던 이동혁의 아버지는 어렵지 않게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노의 지팡이에서 기억을 수정하거나 지우는 용도로 사용되는 오블리비아테 마법이 사용되었다는 것부터, 이제노가 나에게 그 주문을 사용했다는 것까지 모두. 제 아버지의 서재에 우연히 들어갔을때 그 모든 것을 알게되었다고 이동혁이 말하는 것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이제노의 아버지가 내 오빠를 죽이고 아즈카반에 갔다는 것. 또 이제노는 그 기억을 통째로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는 것. 그 사실들만이 너무나 크게 귓가에서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
"Sweetie."
현실으로의 회귀였다. 언제 흐른 건지 알 수 없는 눈물들이 축축하게 내 볼을 물들이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눈길과 손길로 내 눈물을 훑는 그에 괜찮다며 고개를 흔들어보였다. 그러다 그 또한 이 도박판 위에 서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아직 이 도박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체감한다. 마지막 남은 사람은 그 하나였다. 그는 어떤 대답을 나에게 줄까. 이미 내 손에는 무거운 진실들만이 들려져 있다. 그는 어떤 무게의 진실을, 또는 거짓을 내 손에 쥐여줄까. 세번째 게임은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무도회 다음날에 이뤄졌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 게임을 앞당기기로 결심한다. 바로 지금, 여기, 필요의 방에서.
"나, 다 알았어. 이제노・・・."
"아,"
"그러니까 말해줘."
이제노란 이름이 나오자마자 굳어져있던 그의 얼굴이 더더욱 굳어진다. 나는 개의치않고 말을 이었다. 말해줘, 내가 뭘 더 모르고 있는건지. 제발. 울음이 질펀한 목소리로 그에게 간청한다. 굳고 깊은 그의 눈동자는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다. 제발, 나 머리가 너무 아파. 내가 쓰고 있던 눈가리개는 벗겨졌으나 여전히 시야는 혼탁하다. 보이지 않는 눈가리개를 하나 더 쓰고 있는 것처럼. 쉴 새없이 눈물이 고여왔다. Okay, okay. 말해줄게. 내 볼을 감싸고 저와 눈을 맞출 수 있도록 고개를 들어올리며 그가 낮게 말한다. 그러니까, 울지 마. 무너진 난데, 제가 무너진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선 엄지로 내 눈물을 닦아주는 그에, 속절없이 눈물은 이미 난 길 위로 또다시 흘러내렸다.
"네가 잃어버린 다른 기억이 있어."
또다른 게임의 서막이었다. 그러나 승패를 떠난 게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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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마크 위주로 전개될 예정입니ㄷr,,,
다들 추위 조심하시구 코로나 조심하세요!
사랑하는 암호닉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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