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 너 안 넘어왔잖아 "
와.. 방금 넘어갈뻔했다.
저 얼굴로 이런 눈빛이랑 목소리로 말하면 누가 안 넘어가냐고..
자기 얼굴에 대한 자각이 없나? 저 얼굴로 저런 말 하는 거 유죄 아니야, 유죄?
저 여우한테 넘어가면 안 돼. 정다은 정신 차려
" 선배 앞으로 저한테 말 걸지 마세요 "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더 가까이 다가와서 날 본다.
어엇- 다가오지 마세요. 그거 반칙이라구요.
" 어..? 이,이렇게 내려다보는 것도 금지! "
" 너 지금 얼굴 빨개졌는데 "
" 어어-! 특히 스킨십 금지!! "
빨개진 얼굴을 손으로 가리키며 터치하려고 하는 김선호의 손을 급히 내치고는 급히 앞장서서 걸어갔다.
김선호는 그런 날 보며 능글능글 웃으며 날 뒤따라왔다.
" 그럼 뒤에서 따라가는 건 괜찮나? "
" 아아- 말 걸지 마요 "
" 혼잣말한 건데 "
" 호..혼잣말은 안 금지.. "
" 정다은 귀엽네..
왜? 혼잣말은 금지 아니라며 "
당황해서 혼자 막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김선호는 그런 날 보며 보조개가 쏙 들어가게 웃으며 계속 바라본다.
웃지 마요. 나 안 넘어갈거에요.
그렇게 투닥거리다 선배는 뒤에 남은 수업을 들으러 간다며 먼저 갔고
난 남은 공강시간 동안 뭘 할까 하다 카페에서 시간이나 때우자 싶어 학교 근처에 있던 카페로 향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하고 카드를 내밀자 뒤에서 '아메리카노 한잔 추가요-' 하는 말이 들렸다.
추가? 누구야 하고 뒤를 돌아보자 헤헤 하며 안녕? 하는 시윤이 보였다.
" 오랜만이야 정다은 "
중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시윤은 대학교를 올라오면서 유학을 떠났고, 그 뒤로는 연락이 끊겨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훌쩍 떠나서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웃고 있으니 멍하니 보고 있다 정신이 들었다.
" 아, 너 외국 갔다고 했잖아 "
" 오래간만에 친구 좀 만나러 들어왔지 "
" 아- 그랬구나. 잘 지냈지? "
" 어 잘 지냈지. 너는? 남자친구는 있어? "
" 아니, 너는 있어? "
" 나야 뭐 보다시피 인기가 너무 많아서 피곤하징 "
오래간만에 봐서 좀 바뀌었나 했는데, 여전히 재수는 없구나. 그래, 사람이 너무 바뀌어도 안 좋다 그랬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나 끄덕여 주고 있으니 시윤이 너도 여전하다- 며 푸흡 소리 내 웃었다.
" 아, 너 무슨 연출 전공할 거라고 그랬지 않아? 지금도 하고 있어? "
" 아니. 나는 연출하기엔 이 얼굴이 아까워서 배우를 할까 싶다~ "
" 니 얼굴이 아까우면 선호선배는 이미 데뷔했겠다. "
" 선호선배는 또 누구야? "
무의식중에 나온 말이었는데, 시윤이 선호선배가 누구냐며 되물어봤다.
" 내가 선호선배라고 그랬어? "
" 엉, 뭐야 뭐야~ 짝사랑이야?? "
혼자 막 꺅 하며 누굴까? 누구야? 사진 있어? 하며 관심을 가졌다.
너한텐 절대 안 보여주지. 선호선배 얼굴 보면 분명 백프로 관심 가질게 뻔한데..!!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시윤이와는 남자 선배로 많이 싸웠었다.
내가 누구 관심 있다고 하면 시윤은 그 선배들에게 접근해서 막 갑자기 친한척하기 급급했다.
결국 난 고백도 못 하고 떨어져 나갔고. 아.. 또 생각하니 열받네??
" 꿈 도 꾸지마라? 야, 가라. 워이 워이- "
" 몇 년 만에 본 친구한테 그게 뭐냐? 심하네 "
시윤이 알았다며 몸을 뒤로 젖혔고 나는 시윤을 경계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벨소리가 들리고 시윤이 전화를 받더니 이내 나중에 또 보자며 나가려다 다시 와서는 내 번호를 물었다.
그래, 뭐- 몇 년 만에 봤는데. 번호를 알려주자 시윤이 그럼 나 진짜 간다 하고는 고개를 숙여 내 볼에 자연스레 입을 맞추고 일어나다 본인이 진저리를 쳤다.
" 으악!! 유학하면서 하던 게 습관됐어! "
자신의 입을 막 때리면서 아주 펄쩍펄쩍 뛰며 나갔다.
저 또라이...
....엄마, 왜 내 옆에는 죄다 이상한 사람들뿐일까요..
*
*
수업을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가 나는 저녁을 준비했다.
오래간만에 파스타~ 파스타스타아~ 콧노래를 부르며
빠지면 섭섭한 버터를 넣고 재료들을 손질해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으음~ 맛있는 냄새! 오늘은 좀 많이 먹어볼까 하고는 면을 뭉텅이로 잡아넣었다.
면 삶을 때 중요한 소금도 넣고! 촤- 핫!
혼자 무슨 셰프라도 된 것 마냥 요리를 하고 있는데 '딩동댕동' 하는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 누구세요- "
" 나야. 선호 "
문을 열자 오늘도 어김없이 웃으며 날 보는 선호선배의 얼굴이 보였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선하게 생겼지,
" 어 선배 무슨 일이에요? "
" 나 책 가지러 왔는데? 뭐야 요리 중이야? "
들어오라는 소리도 안 했는데 자연스레 들어와서는 만들고 있는 파스타를 구경했다.
저기요 선배. 저 초대 안 했는데요? 눈독 들이지 마세요. 저거 다 내꺼니까
" 와 맛있겠다! 누구 와? 양이 많은데 "
" 저 혼자 먹을 양인데요 "
" 이걸? 혼자서? "
" 네, 혼자서 "
" 나도 저녁 먹을 시간인데.. "
" 그러면... 선배도 같이 드실래요? "
아구 그래도 될려나~ 하면서 자연스럽게 식탁의자에 앉는 선호를 보며
참 뻔뻔해 라고 생각하면서도 선배의 귀여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손부터 씻고 오세요 "
" 어! 손 씻고 상 차리는 거 도와줄게 "
입고 있던 옷의 팔을 걷으며 선호가 화장실을 갔다가 머뭇거리며 나를 불렀다.
" 저... 다은아.. "
" 네? 왜요? "
" 어... 잠깐 와볼래 "
손 씻으러 갔는데 내가 갈 일이 뭐가 있나 싶어 화장실로 갔다.
으어어어어엇!!!
화장실로 들어가니 아까 손빨래한다고 물에 담가놓았던 내 속옷들이 세면대에서 헤엄을 치며 있었고
선호는 난감하다는 듯 나를 부른 후 본인의 뒷머리를 긁으며 잠시 뒤돌아있었다.
아 미쳐 진짜....ㅠㅠㅠㅠㅠ 심지어 장난삼아 친구와 샀던 망사 속옷일게 뭐냐고...
급히 물기를 짤고는 수건으로 싸서 베란다로 달려갔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어 벽에 머리만 콩콩 찧고있었다.
다은아 죽자 죽어... 이대로 선배 얼굴을 어떻게 보냐고...
벽에 두어 번 머리를 찧다가 뭔가 다른 느낌에 눈을 뜨고 보자 선호의 손이 내 이마를 감싸며 더 이상 벽에 쿵쿵 박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 나 배고픈데.. "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하던 김선호를 올려다 보다 다시 아까의 일이 생각나 울상을 지으며 다시 주방 쪽으로 갔다.
서랍에 있던 반찬통을 꺼내어 파스타 담고는 뚜껑을 닫고 선배에게 손만 내밀어 반찬통을 건넸다.
" 파스타 다 가지고 가요 "
" 어? 너는.. "
" 저는 안 먹을래요.. "
민망함에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자 선호는 반찬통을 식탁에 올려놓더니 갑자기 자신의 바지를 들어 보였다.
" 저기, 민망하면..! 나,나도 보여줄게! "
" 미쳤어요?!! "
놀란 나는 토끼눈이 되어 급히 바지를 살짝 내리려는 선배의 바지춤을 움켜쥐었고 선배는 그런 날 보더니 막 웃어 보였다.
그러더니 마치 강아지들에게 애정표현을 하듯 내 머리를 막 헝클이고는 다시 예쁘게 정리를 하듯 쓰다듬었다.
" 미안해. 불쑥 집에 찾아와서 "
" 너만의 공간이고 안식처인데, 내가 신경을 못썼어. 정말 미안해, 사과할게 "
" ..아니에요, 괜찮아요 "
이상하게도 선배의 말이 꼭 주문처럼 들렸다. 내가 민망해했던 이 상황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내 부주의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선배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니까 그냥 별일 아닌 것 같았다.
내가 표정이 서서히 풀리며 눈썹을 꿈틀대자 선배는 그런 내 어깨를 잡고는 탁자 의자에 앉혔다.
" 그럼 같이 저녁 먹자-! "
" 잘 먹겠습니다!! "
저녁을 다먹고 김선호는 파스타 너무 맛있었다며 다음번에도 얻어먹으러 오고 싶으니 초대해달라며 애교를 피웠다.
' 알았어요, 엇 스킨십 금지! ' 라는 내 대답을 듣고는 마치 강아지들이 신나면 꼬리를 흔들듯 엉덩이를 씰룩대고는 설거지를 했다.
진짜 댕댕이 같네- 처음 봤을때에는 꼭 모지리 처럼 보이던 모습이였는데
이젠 너무 귀여워 보여 뒤에서 조용히 웃다가 한 가지를 깨달았다.
' 나, 선배한테 넘어갔나봐.. '
뒷이야기 |
설거지를 다한 선배가 그럼 나 갈게 하고는 책을 챙기고는 신발을 신다 무언가 생각난듯 나에게 귀를 대보라는듯 손짓을 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귀를 가져다 대고는 할 말을 기다렸다. " 너 나랑 취향이 같더라 " " 네? 무슨취향...? "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김선호의 표정을 보고는 알았다. 무엇을 말하는지 " 저..저는 그런취향 아니에요!! " " 아~ 크림 파스타는 취향이 아니였어? " ....? 파스타? 망사 아니구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버버하자 김선호는 그런 날 보고는 재미있다는 듯 웃더니 그럼 나 진짜 간다- 며 손을 흔들고 나갔다. 아아아... 나 또 당했네.. 나 미쳤나봐 진짜.. 저런 모습도 섹시해보이면 어쩌라는거야.. 나는 침대에 누워 발길질을 막 하다 베란다에 대충 놓아둔 속옷이 생각나 급히 다시 세탁을 하고는 널었다. 설마 진짜 망사가 취향인가...? 다은이는 그렇게 답을 알수없는 의문을 머리속에 가득 가지며 잠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