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가 길어져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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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왔냐.”
“예...”
교무실로 가자 담임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저 내 얼굴을 보기만 했다.
“...왜요?”
평소 친한 쌤이긴 했지만
남의 얼굴을 눈 앞에서 찬찬히
감상중인 사람은 누구든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나는 대체 이 선생님이 뭐하는건가,
싶어 먼저 말을 꺼냈다.
“김한빈아. 니 어디 아프냐?”
“예?”
“얼굴이 영 아니긴 한데. 골골대는 거 같지는 않고...
고민있냐?”
젊어서 그런가
애 같은 구석이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지만
워낙에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선생님이기도 했다.
작년에 김여주랑 같은 반일 때부터
좋아했던 쌤이었다.
물론 김여주도.
그래서 아주 아-주 가끔 질투를 하긴 했지만.
고민상담은 물론, 가끔 연애상담도 해주곤 하시는
좋은 쌤이다.
“김여주랑 싸웠냐?”
“...”
“맞네, 싸웠네, 싸웠어.”
“....선생님이 할 일도 없나. 남의 일에 관심이 많아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거든여? 학생은 신경끄시져?
그리고 니 일은 신경쓸거거든요? 나는 선생이니까.“
“...이런 것도 권력남용인거 같은데요.”
쌤은 내말을 깔끔히 무시했다.
“짜식아. 그 나이땐 말이야. 좀 더 사랑해도 돼.”
“네?”
내가 예상했던 대화 주제와는 다른
사랑타령에 나는 조금 놀랐다.
“나처럼 나이 들면 어차피 사리게 돼있어. 그러니까
어릴땐 더 맘껏, 더 열정적으로 좋아해도 된다고.
어린 놈이 뭐가 그렇게 무섭냐?“
“별로...그런거 아닌데...”
아, 물론 조금 찔리기도 했다.
솔직히 ‘쌤...귀신이신가?‘ 싶었다.
“어릴땐 다 괜찮아.
자존심 버려도, 미친 듯 매달려도, 세상 무너진 듯
울어도, 어려서 그랬다. 한마디면 다되는 나이라고.“
“아...”
“그러다 나중에 후회한다? 불을 보고도 뛰어들지 못한
한낱 고상한 나비가 된 걸. 두고 두고 후회할거다.“
“...쌤...”
역시나 국어선생은 말발부터 달랐다.
“...뭐라는지 모르겠어요.”
*
교무실에서 선생님을 만난 길에
김여주의 담임선생님께 붙들렸고,
한가지 일을 맡아버렸다.
바로 학급행사 준비위원인 김여주의 일을
도와주라는 것이었다.
이 일을 맡게 된 이유는
첫째, 내가 눈에 띄어서
둘째, 김여주의 남친이라는 이유로.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하는지
김여주의 담임에게 저희 헤어졌어요, 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이미 기정사실이긴 하지만
말하고 나면 정말로
얼굴보기도 힘들까봐.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물론 지금도 얼굴을 보기는 조금 힘들지만.
이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김여주의 담임쌤은 내게
김여주랑 방과후에 남아 일을 하라고
일거리를 잔뜩 안겼고,
나는 어쩔 줄 몰라하다 결국
그 일을 들고 반으로 돌아와야했다.
우리 반 담임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도 눈도 깜짝 안했고,
종례를 마치자마자 친구 녀석들도 빠르게 귀가했다.
정말이지...
다들 짜고 치는게 아니고서야
어쩜 이렇게도 녀석과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지는 건지.
“아니지, 굳이 같이해야 돼? 혼자하면 되지.”
혼자 남은 교실에서 그 궁상을 떨었더랬다.
항상 이놈의 오기가 문제였다.
처음 이별을 맞았을 때였던 거 같다.
그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낸 것은 너였다.
나는 그때 너의 남사친인가 뭔가 하는 주변남자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그래서 헤어지자는 너의 말에 나도 홧김에 그래 그러자 했다.
지금에서야 깨달았지만
너는 그때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냥 아는 사람이고 친구일 뿐이라는 네 말을
믿는다 말하면서도 속으론 전혀 믿지 않았던
나를 보며 너는 점점 지쳐갔던게 아닐까.
고집이 센 나 때문에
그때 우린 다시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항상 너에게만 고집불통이라 놀리며,
그 성격 좀 고치라 타박했지만
정작 고쳐야할 사람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때 뜬금없이 울리는 전화의
수신자는 엄마였다.
“여보세요...”
-“어, 아들. 아직 학교야?”
“어.”
-“해도 져가는데? 학교가 학생한테 무슨 일을 그렇게 시킨다니~?
그것도 꼭 너랑... 아, 아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러는데?”
-“아니, 별건 아니구... 혹시, 아들. 지금 여주랑 같이 있니?”
“어? ...아닌데.”
우리 엄마는 나랑 김여주가 사귄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건 김여주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늘 엄마가 여주네 놀러를 갔잖니?”
게다가 두 분은 친하기까지 하셨다.
하지만 두 분 다 우리가 그동안 몇 번이나 헤어진 걸 전혀 모르셨다.
헤어질 때 마다 타이밍을 놓쳐서 일수도 있고,
굳이 그런 걸 알려서 두 분 사이까지 망칠
필요있나 싶어서 였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지금 엄마의 뜬금없는 김여주의 이야기에
이게 하루에 몇 번이나 듣는 김여주 소식인가 싶었다.
대체 다들 왜 나만 보면 김여주 이야기인가...
주변사람들은 마치 우리를 부록처럼 항상 엮어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싫지가 않았다.
-“글쎄, 여주가 아직도 안들어 왔대. 전화도 안되구.”
안 들어와?
-“여주 엄마가 안 그런 척 해도 걱정을 엄청 하더라구~
난 또 너랑 있는 줄 알고.
아직 시간도 얼마 안됐는데 곧 들어오겠거니~ 했지.
어쩌나...“
갑자기 김여주가 사라졌다는 얘기에 나는
엄마의 전화를 그냥 끊어 버렸다.
분명히 김여주네 담임선생님께서
내게 녀석과 남아 일을 마무리하라 했었다.
그럼, 녀석이 있어야 할 곳은 당연히
녀석의 반이라던가, 학생회실 정도?
어쨌든 학교 안에 있어야 할 터였다.
이상하게 불안한 마음에
뛰쳐나가 온 학교를 뒤졌지만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이 기집애가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나는 지금 내가 무슨 상황인지 생각도 못한 채
익숙한 11자리를 눌렀다.
신호음은 가는데 받질 않는 전화에
몇 번이고 다시 했지만
전혀 받지 않았다.
답답함에 휴대폰을 던져버릴려다가 힘을 뺐다.
그래, 내가 뭐라고.
걔 걱정을 해.
어디서 놀고 있겠지.
나는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인 일거리를
쳐다보았다.
“일은 또 왜 이렇게 많아?”
본능적으로 또 신경질을 내버렸다.
생각해보니 너는 이렇게 많은 일도 늘
너 혼자 해냈다.
너는
변덕스럽고 까칠하기는 또 하늘을 찔러서
같이 일하는 애한테 늘 화내기 일 수 였다.
나중엔 본인도 후회를 하면서도
버릇을 고치기가 영 힘들어보였다.
결국엔 선생님께 혼자 일을 하겠다고 까지
말해버려서 이 사단이 나버렸다.
이 많은 양을 어느 세월에 다하려고...
이런 일엔 늘 적극적인 김여주 때문에
방과 후에 잘 놀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괜찮다, 괜찮다 하다가 결국엔
한번 빵 터져버린 일도 있었다.
있는 고집을 모두 부려 일을 해결하겠다는 김여주와
없는 고집도 다 부려 놀러를 가고 말겠다는 나와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소릴 높여가며
싸웠었다.
결국 둘 다 지쳐서
선생님께 마감을 늦춰 달라 부탁하곤
신나서 놀러 나갔었다.
그때 재밌었는데...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넋을 놓자 해가 거의 다 저물어
버린게 보였다.
이대로 있으면
김여주와의 추억에 빠져 벗어날 수 없을까봐
교무실로 가 선생님께 마감을 늦춰 달라 부탁했다.
“아, 그래 그럼. 알았다.”
“네, 죄송합니다.”
“아니야~ 여주가 아프다는데.
그동안 여주가 일을 얼마나 잘해줬는데.“
“아, 네...”
“아, 맞다. 전에 말이야.
내가 여주 일하는 거 똑소리 난다고, 다음엔
위원회장 좀 맡아달라고 했는데.
글쎄 그 여시 같은게 뭐라는지 아니?“
선생님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으신지
쿡쿡 웃으며 여주 자랑 아닌 자랑을 해대셨다.
“회장하면 바쁘잖아요. 남친이랑 데이트할 시간 없어서 안돼요.
이러는 거 있지? 기집애가 눈 똥그랗게 뜨고~
그때 내가 어찌나 웃기던지.”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는 그동안
일한다고 바쁘다던 녀석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 너는 항상 일이 있다 말하면서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는 내게 늘 미안해했다.
생각해보면, 그럴때마다 너는 주말마다 친구들과
약속도 취소하고 나와 놀아주었다.
나는 어쩜 너에 대해 이다지도 소홀했고
알려하지 않았던 걸까.
그러고 보니 너의 친구들도 내게 그랬다.
‘어쩜 김여주에 대해 그렇게도 모르냐?’
“하...”
지금 당장 너를 만나야겠다.
/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다음 편이 마지막인거.
PRAY FOR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