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seven days(7일 동안) # Monday4
쑨양에게 이끌려 상영관에 들어갔다.
좌석을 찾느라 앞장 서있는 쑨양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뒷머리가 목덜미에서 살랑거리고 자켓을 타고 흐르는 반듯한 등줄기가 참 멋드러졌다.
어둑한 상영관에서 천장에 달린 주홍색 불빛에 의지하며 미리 상영관 입구에서 확인했던 좌석을 찾아낸 쑨양이 뒤를 돌아 조금 떨어져서 걸어오는 나에게 손짓했다.
어둑어둑한 공간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그의 웃는 얼굴에 방금 전, 그의 손이 닿았던 어깨가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꼭 짝사랑 남자의 의미없는 터치에도 볼썽사납게 두근거리는 여자 같아서 기분이 묘하다.
쑨양의 당연한 여자취급에 익숙해져서 머리까지 여자화된게 아닐까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런데 같은 동성에게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을 무척 불쾌해야하는데 오히려 좋고, 기쁘기까지 한 것은 왜인지.
좌석은 맨 뒤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일반좌석과 많이 달랐다.
보통 앉는 좌석은 양옆에 컵홀더가 달린 팔걸이에 크기도 혼자 앉을만큼의 의자이다.
그러나 쑨양이 안내한 좌석은 일반 좌석을 두개 붙여 놓은 것보다 조금 더 크고 양옆으로 쿠션이 날개처럼 붙어 있었다.
색깔도 일반 좌석이 회색이나 남색계열이라면 이 좌석은 붉은 색이었다.
맨 뒤쪽은 모두 이런 좌석들로 나열되어 있었다.
"이쪽 좌석은 다른 좌석들과 다르네요?"
왠지 연인 포스가 물씬 풍기는 좌석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쑨양에게 물었다.
나의 물음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커플석이거든요."
"아?"
커플석? 커플석이라면 연인사이가 좀 더 그네들끼리 붙어서 함께 있고 싶을 때 앉는 자리가 아닌가.
들리는 소문으로만 알고 있었지 실제로는 처음 보았다.
영화관에 처음 와보는 것도 아니고 가끔씩 왔었지만 이런 좌석이 있는 것은 처음 알았다.
커플석은 그 좌석들만 모여 있는 스위트박스? 뭐 그 상영관에서만 있는게 아니었나?
일반 상영관에도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같은 동성끼리 일반적으로 남녀 연인끼리 앉는 자리로 지정된 좌석에 앉는다는 것이 어색했다.
사람들의 시선들보다 이 자리를 선택한 쑨양의 생각이 궁금했다.
"왜 이 좌석으로 했어요?"
나의 물음에 쑨양은 뜸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너무도 술술 나와 대본까지 준비한게 아닐까 의심도 들었다.
"이상해요? 아, 남자끼리 이런 좌석에 앉는게 이상하긴 하죠."
"전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일반적으로는 보통 남녀커플들이 앉겠죠."
"다행이네요. 싫어하진 않아서. 다 큰 남자들이 커플석에 앉는 건 좀 그렇지만 그러할 이유가 있어요."
"이유? 뭔데요."
"여기 봐요. 앞좌석과 거리가 일반 좌석보다 더 넓죠?"
"음...그러네요."
긍정하는 나의 대답에 쑨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서 말했다.
"태환도 알죠? 앞좌석에 무릎이 닿고 옆 사람들 때문에 다리를 옆으로 뻗지도 못하는 고충을."
"맞아요. 그래서 영화볼 때 항상 끝좌석에 앉아요. 통로의 비상불빛때문에 불편하지만 그나마 다리를 뻗을 수 있으니까."
"전 어떻겠어요. 태환보다 더 크고 덩치도 있는데. 거기다 키가 큰 만큼 앉은 키도 커서 뒷사람한테 피해주니까 아예 뒤로 빠지는거에요."
그의 논리적인 이유에 고개를 자연스럽게 끄덕였다.
평균 키보다 큰 편인 나도 나지만 나보다 훨씬 큰 쑨양에게 좁다란 영화관 좌석은 확실히 불편한 의자였다.
그렇다고 영화는 안볼 수 없었기 때문에 불편함을 참고 최대한 덜 불편한 좌석을 모색하는 것이 이 커플석이었나보다.
커플석은 쑨양의 말대로 앞좌석과 좀 더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좌석은 두개의 좌석을 합친 것보다 더 넓었고 옆의 다른 커플석과 거리도 있어서 양옆으로도 여유가 많았다.
거기다 맨 뒤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도 주지 않는다.
그나마 편하게 앉아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상영관 안으로 사람들이 속속히 들어왔다.
커플석에서 서성거리는 우리들을 주목하는 시선들을 느꼈지만 별 상관하지 않았다.
남들의 시선에 신경쓸 여유따윈 없었다. 그저 쑨양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게 행복할 뿐이다.
"앉아요."
쑨양의 말에 좌석에 앉았고 그도 따라 앉았다.
차에서 내릴 때나 탈 때 문을 열어주고 닫아주는 친절함과 동일했다. 정말 이 남자 어느 때든 날 여자취급이다.
싫지 않아서 내버려두는 나도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넓어보였던 좌석이지만 덩치 큰 두 남자가 앉으니 꽉 차는 것 같다.
좌석 사이에 팝콘 놓기에는 부족해서 내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여기에 팝콘 놓을테니까 알아서 먹어요."
팝콘을 몇개 집어 입안에 넣으며 쑨양에게 말했다. 쑨양은 알았다며 즉시 손으로 팝콘을 한움큼 집었다.
팝콘을 먹다가 처음 앉아보는 커플석 좌석을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살짝 거친 직물의 느낌이 아닌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다.
따뜻한 부드러움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좌석에 앉아볼만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때요? 나쁘지 않죠?"
"네. 좋네요. 앉아볼만 한걸요."
"그 느낌 중독될 걸요."
벌써 자신은 중독이 되었다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쑨양의 말에 난 쿡 하고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나를 웃겼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인지 씨익 웃음 짓는 쑨양을 보고 난 또 웃고 말았다.
-
스크린에서 의례 몇편의 광고와 예고편이 지나고 안전수칙과 영화관람의 예절 등 안내사항을 내보냈다.
그와 동시에 통로 계단의 푸른 불빛을 제외한 상영관의 등이 모조리 꺼지고 상영관 내부는 새카맣게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둡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이 순간이면 난 이 어둠 속에서 혼자가 되는 느낌이 든다.
어둠 속에서 헤메는 미아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작은 불빛을 찾아 울면서 뜀박질하는 아이.
오랜만에 온 영화관은 더욱 그런 기분을 부채질했다.
어둠 속에서 부유하는 느낌으로 멍하니 앉아 있는데 차가워진 손끝에 누군가의 체온이 느껴졌다.
쑨양이었다.
어느새 쑨양의 손끝이 내 손 위에 올라와 있었다.
손에서 팔로, 팔에서 목으로, 목에서 얼굴로 천천히 시선을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어둠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따뜻한 체온은 나를 미아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모를테지만 그의 체온은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지탱할 수 있는 지지대가 되었다.
이윽고 스크린에서 불빛이 들어오고 본 영화가 시작되었다.
스크린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화는 멜로물이었다. 보통 액션을 좋아하는 남자들의 성향을 생각하면 의외의 선택이다.
물론 사랑이야기를 좋아하는 남자들도 많겠지만 그 이야기를 보러오는 남자들은 대부분 여자친구와 함께 보지 않을까.
남자 둘이서 볼만한 영화는 아님은 분명했다.
쑨양, 그는 의외로 사랑이야기를 좋아하는 로맨티스트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겠지. 그의 다정함을 떠올리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정함이 가끔 정도가 지나쳐 여자취급하는 경향이 강해져서 난감하게 만들지만.
갑자기 멜로물을 보는 흔한 남녀커플처럼 내가 여자고, 쑨양 자신은 남자로 생각하고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치솟았다.
고개를 돌려 쑨양을 쳐다보았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팝콘을 먹으며 내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괜한 생각이겠지?
팝콘을 한움쿰 쥐어서 한알한알 씹어 삼키며 영화를 보았다.
음료에는 손을 거의 안돼었다. 컵에 빨대가 달린 탄산음료와 달리 플라스틱 통에 든 이온음료는 손이 잘 안갔다.
영화는 흔히 남녀의 사랑이야기였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 서로 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이야기.
패턴만 바뀔 뿐 거기서 거기인 식상한 내용이지만 영원한 테마.
감흥없는 얼굴로 팝콘만 축내었다.
".....!!!!!"
순간 찾아온 통증에 비명이 나오려는 입을 급하게 막았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명치 끝을 쑤셔되는 느낌에 가슴을 꼭 부여잡았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뒷주머니에 넣어둔 비상약통을 꺼냈다.
약을 꺼내 입안에 넣고 이온음료의 뚜껑을 비틀었다.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뚜껑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빌어먹을!
겨우 뚜껑을 열어 서둘러 입안에 쑤셔넣다시피 알약과 함께 삼켰다.
숨을 헐떡이고 싶었지만 옆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쑨양이 눈치챌까봐, 좌석의 팔걸이를 꼭 부여잡고 통증이 가라앉기를 계속 빌었다.
곧 통증이 가라앉았다. 이마와 목덜미가 축축해진 느낌이 났다.
역시나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니 흥건하다. 바지에 문질러 닦아내었다.
이제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때문에 미칠 것 같다.
혹시 쑨양이 알아챘을까 싶어 곁눈질로 그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눈치를 못챘는지 앞만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영관이 어두워서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후우..."
미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힘이 빠져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몸을 겨우 의자에 걸쳤다.
영화는 중반부를 지나고 조금 템포를 늦추고 있었다.
거의 의자 끝에 걸치다시피 등을 기대고 앉아 있으니 자꾸 미끄러진다.
포기하고 좀 더 깊숙히 앉아 쑨양의 어깨에 기대었다.
움찔하며 쑨양이 나를 내려보았다.
"어? 태환, 왜 이렇게 땀을 흘려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말할 힘이 없었다. 그냥 손만 들어 손사래만 쳤다.
그러자 쑨양은 자신의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목덜미를 닦아주었다.
거의 쑨양의 품에 안긴 채 그가 땀을 닦아주는 것을 내버려두었다.
목덜미에 쑨양의 숨결이 느껴졌다. 뜨거운 숨결이 피부에 닿자 오싹오싹해졌다.
왠지 모를 소름에 몸을 움찔거렸다.
가만히 있으라고 속삭이며 좀더 자신의 몸에 기대도록 하고 이마에 맺힌 식은땀도 닦아냈다.
그러나 쑨양의 속삭임에 더 움찔거렸다.
귓가에 닿은 중저음의 목소리와 숨결이 더욱 오싹오싹하게 만들었다.
왜 이러지?
알 수 없는 몸의 저항에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쑨양의 품에 꼼짝없이 기대어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봐도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 닦아냈어요. 태환, 어디 몸이 안좋아요?"
또다시 귓가에 속삭이는 쑨양때문에 움찔거리는 몸을 진정시키느라 힘겨웠다.
어서 영화가 끝나서 밖으로 나가고 싶다.
"나갈까요?"
차마 영화를 보고 있는 쑨양에게 미안해서 말을 못하고 있는데, 쑨양이 먼저 제안을 한다.
조금 마음이 걸렸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대답에 긍정을 했다.
"알았어요. 나가요."
쑨양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가 휘청였다.
휘청이는 나를 억세게 잡는 팔이 있었고 그 팔은 쑨양이었다.
안색이 조금 굳어 있었다. 이렇게 표정이 좋지 않은 그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부축을 받으며 아직도 어두운 상영관을 나왔다.
상영관을 나온 우리는 통로를 걸었다. 그런데 쑨양이 나의 팔을 잡았다.
"왜 그래요?"
나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뒤이어 말을 꺼내는 쑨양의 물음이 가슴이 철렁 내려앚았다.
"나에게 할말 없어요?"
혹시 내가 아픈걸 본걸까?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가 본걸까? 안돼. 아니야. 별별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래. 알았다면 이렇게 물어보지 않았을거다. 직접 물어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어두웠는데 봤을리가 없다. 신음소리조차도 내지 않았다.
그냥 내가 몸이 좋아보이지 않아서 그러는 것일거다. 내가 괜한 반응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달래며 말없이 내 대답을 기다리는 쑨양의 팔을 잡았다.
그의 대답에 조용히 대답했다.
"네. 할말없어요."
내 대답에 좀더 힘을 주어 나를 품속에 가둔다.
조금 뜸을 들인 후 쑨양이 말했다.
"그래요. 혹시 몸이 안좋아서 그러거면 어쩌나 했는데 괜찮으면 됐어요."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쑨양."
"태환이 미안할 필요 어딨어요. 내가 미안해요."
"쑨양이 왜요?"
"몸도 좋지 않은데 내가 영화보자고 해서."
"아니요. 나 건강해요! 그리고 오랜만에 영화를 봐서 좋았어요."
"정말요?"
"네. 저 행복해요."
그제서야 굳었던 쑨양의 얼굴이 풀렸다.
그의 얼굴에 그려진 해사한 미소는 고통으로 지친 나를 달래주었다.
그래요. 나 행복해요.
이렇게 당신과 영화를 본 것도 당신이 웃는 것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모두 나를 행복하게 해요.
쑨양이 미안해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줄래요?
아직 두려워요. 당신에게 말하기가.
혹시나 당신을 잃을까봐 겁이나요. 당신과 함께 하면 할수록 겁만 많아져요.
다 보지 못하고 나왔던 영화가 끝날 때까지 쑨양의 품에 안겨 있었다.
차가워진 내 몸을 감싸는 그의 몸은 몹시나 따뜻했다.
===============================================
히륜입니다.
음...비축분없이 쓰니까
이야기 제대로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재밌게 읽으셨나요^^;
그리고 원래 예정으로는 다음편이 불꽃마크 달려고 했는데요.
쓰다보니까 다다음편으로 늦춰질 것 같아요.
기다리시는 독자님들 죄송합니다ㅠㅠ
좀 더 태환의 감정을 좀더 세밀하게 이끌어가고 싶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