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좋아하잖아.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몇 년째 말 할까 말까 하다 지금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 지랄맞은 이 타이밍에 말하는 거야."
"……."
"이제 눈치 좀 채줘라, 제발. 아닌 척 하기도 힘들다."
"...구준회?"
"너 좋아한다고 내가."
그리고 들어버렸어.
*
"...아, 그러니까 구준회... 지금은."
"내가 전에도 말했잖냐."
"……."
"멀리 있는 거 보지 말고 옆에 있는 거 보라고."
"……."
"둔해가지곤. 너 곰 아니냐? 사람이 이렇게 감이 떨어져서야 쓰나."
말 그대로 머리가 새하얘졌어. 아무리 구준회가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여도 나는 다 보였으니까.
오히려 구준회쪽이 더하면 더했지, 나 못지 않게 복잡한 눈을 하고 있었어. 서로를 봐온 것만 몇 년인데 내가 설마 저 얼굴도 못 읽을까. 어색함으로 들어찬 이 분위기 속에서 내가 무슨 말을 더 얹을 수 있겠어.
"구준회, 나는..."
"아, 거기까지. 스탑. 말하지 마."
"...응?"
"내가 여기서 너 뭐라 할지 모를 것 같냐."
"……."
"원래는 더 나중에 말하려고 했는데, 네가 그 사람 좋아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이니까 가만히 못 있겠더라."
"……."
"오늘은 뭐 선전 포고 겸. 알아두라고, 내가 너 좋아하고 있는 거."
"나중에 좀 더 분위기 잡히면. 너도 내가 너 좋아한다는 사실이 조금 더 진지하게 보일 때, 그 때."
"……."
"나 받아줄 건지, 안 받아줄 건지. 그 때 대답해달라고."
"...준회야."
"ㅇㅇㅇ 내가 고백했다고 갑자기 성 떼고 어색하게 부르는 거냐? 때려치지? 오글거리는데."
이 새끼가 진짜. 심란함 속에서도 저 입을 한 대만 치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해졌음.
"그 사람 좀 강적인 것 같던데 나 분발해야겠네."
"……."
"바로 이 앞이니까 너 혼자 들어갈 수 있지? 나 당장은 쪽팔려서 지금 너 못 데려다 주겠다."
"...데려다 달라고 한 적도 없거든?"
"아, 예. 설레발 쳤네요 제가. 간다. 잘 들어가고."
먼저 뒤돌아서 돌아가는 구준회 뒷모습이 마음에 걸려서 한참을 바라보다 겨우 발걸음을 뗐어.
-
너 좋아한다고 내가.
너 좋아한다고 내가.
너 좋아한다고 내가.
아, 미쳤나 봐.
집으로 오는 내내 구준회의 저 말만 머리에서 울려 퍼지더니 기어코 구간 반복 재생이 됐음. 이게 뭔데 진짜... 나 이제 쟤 얼굴 어떻게 보지.
그럼 이수현은 이 모든 일들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던 거야? 무당이라도 되나? 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본 거? 이거 꿈 아니야?
구준회 말에 대꾸도 제대로 못 했던 바보 같은 나도 한없이 싫어지더라. 어쩐지 오늘은 잠이 안 올 것 같았어.
[12층입니다.]
내려야 할 곳에 도착했는데도 어쩐지 내리기 싫었어. 답답해진 마음 때문이었는지, 며칠 전부터 열려 있던 옥상이 생각났어.
다시 엘리베이터 문을 닫고, 옥상에서 몇 층 아래인 층에 내린 다음 옥상으로 걸어 올라갔어.
난간에 기대 서 있는 아저씨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어.
내가 괜히 왠지 오고 싶던 게 아니라니까, 하고. 이제 아저씨 찾는 레이더 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새어나오더라고.
"...ㅇㅇ?"
"...네."
"왜 올라왔어, 추운데."
"아저씨야말로 출입 금지 써 있는데 잘도 여기 있네요."
"나쁜 생각으로 온 건 아닐 거고. 옷 줄까?"
이미 옷 던져 줬으면서 내 의사를 묻는 이유가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ㅋㅋㅋㅋㅋㅋ 그냥 네, 하고 짧게 대답한 다음 아저씨가 준 겉옷을 걸쳤어.
옆을 슬쩍 돌아보니 아저씨도 제법 추워 보이는 거임... 다시 옷을 줄까 하다가도 너무 따뜻하길래 도로 입 다물고 입었음^^...
"그 친구랑 얘기하고 왔지."
"...아, 네."
"뭐가 속 시원하게 안 풀렸나 봐?"
"……."
"더 복잡해진 얼굴을 하고 있어, 왜."
아저씨의 그 말을 듣자마자 참고 있던 한숨이 터져 나오더라ㅋㅋㅋㅋ...
그것보다 마지막에 '왜-'를 끝으로 아저씨 입에 물리는 담배가 '매우 심하게' 눈에 거슬렸음 ^^...
끊으라고 말했는데 진짜 중독이 무서운 건가 싶더라고... 이래서 호기심에라도 입에 대보지 말라는 건가.
무슨 용기였는지 아저씨 입에 물린 담배를 손으로 탁 빼서 멀리 던졌음; 나 무슨 패기?
"...아, 마지막이었는데 그게."
"무슨 마지막이요? 끊게요, 담배?"
"지금 나한테 있는 마지막 하나였다고. 심지어 장초였는데."
"그래서 안 끊겠다고요?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응. 보자보자 하니까 왜?"
"...몰라요."
"뭐야 그게."
"담배 좀 끊어요, 진짜!"
"노력 중이다. 안 그래도."
잠시 아저씨도, 나도 옥상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조용히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먼저 침묵을 깬 건 나였고. 그 다음 말을 꺼낸 건 도대체 무슨 심리였는지.
"준회가 저 좋아한대요."
여름의 밤바람이 쌀쌀하게 와닿았어. 내가 말하고도 깜짝 놀라서 아차, 싶었지만 후회는 늦었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걸 왜 말해선. 죄 없는 양손만 꾹 쥐었어.
"...그래?"
"네. 장난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잘 해봐, 그럼. 나쁜 친구는 아닌 것 같더라."
저 말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어.
괜한 기대를 품고 꺼내본 말이었다는 걸.
아저씨는 나한테 관심도 없는데. 저걸 말해보면 혹시라도, 아저씨가 받아주지 말라는 말이라도 해줄까 봐 나도 모르게 해본 말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아저씨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 라는 결론에 제대로 맞닥뜨리고 나니까 눈물이 핑 돌더라. 나도 미쳤지. 무슨 기대를 한 건지.
아저씨 앞에서 우는 건 보이기도, 들키기도 싫어서 잽싸게 등 돌리고 그대로 뛰어갔어.
그 와중에 왜 가냐고 묻지도 않는 아저씨한테, 내가 눈물이 터진 걸 눈치도 못 챈 것 같은 아저씨한테 괜스레 화나는 내 자신이 다시 한 번 싫어졌어.
-
집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엎어져서 펑펑 울었어 ㅋㅋㅋㅋㅋ
어쩌다 아저씨를 좋아하게 된 건지, 구준회는 또 왜 내가 좋은 건지, 심지어 왜 난 어린지에 대해서도 화가 났어. 어디 하나 화풀이를 하지 않을 곳이 없더라.
차라리 아저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 마음이 편했을 텐데. 시간을 되돌리고 싶기도 하고.
이미 좋아진 이상 내 마음이 향하는 발길을 끊어낼 수도 없다는 사실이 겁나는 거야. 날이 갈수록 커져가는 이 마음이 너무 무서웠어.
한참을 그렇게 울다 씻으러 가려고 늘어진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웠는데 인터폰이 울렸어.
이 시간에 누구지, 해서 인터폰으로 확인해 봤더니 아저씨더라.
아저씨가? 왜?
설마... 갑자기 왜 내려갔냐고 물어보러 온 거? 나 지금 몰골 엄청 흉할 텐데요? 헝클어졌을 머리를 대충 빗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덤덤한 척 문을 열었어.
"ㅇㅇ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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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저를 매우 치십시오... 이게 얼마만이야ㅋㅋㅋㅋㅋ
그 동안 잘 지내셨나요! 데뷔도 안 했을 때 마지막으로 썼는데ㅠㅠㅠㅠㅠㅠㅠ 후우...
그 동안 전 콘이들 콘서트도 다녀오고... 덕질은 여전합니다,,,
오랜만입니다 많이 그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