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어째 불길하다. 닭의 울음소리로 깬 것이 아니라, 총성으로 하루를 시작하다니. 놀라긴 했으나 깊게 생각지 않는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작게 읊조리며 일어나 옷을 갈아 입는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아침이다. 총성 덕분에 늦잠을 자진 않았다. 오늘은 걸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문 밖을 나서니 바람이 차다. 금방 손이 시렵고, 볼이 빨개진다. 괜히 걸어간다고 했나 싶다가도 차가운 바람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바꾼다.
나는 겨울이 좋다. 몸이 얼면 생각까지 얼어 버리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방법만 있다면, 마음과 머리를 도려 내어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다. 그저 멍청하니 일만 하고 싶다.
내가 생각을 해봤자 무엇 하나. 이미 이 세상은, 이 조선은 망했는 것을.
주위를 둘러보고 싶지 않아서 땅바닥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걷는다. 그러고보니 내 신발도 많이 낡았구나. 앞 부분이 너덜너덜 하니…
‘툭’
“스미마셍! 스미마셍!”
낭패다. 앞을 보고 걸었어야 했다. 바로 엎드려 빌었다. 부딪혀서 미안하다 라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살려달라고 빌고 있는 것이다.
이 자가 일본인이라면 나는 분명 맞을 것이다. 그게 총이나 칼이 아닌 주먹이나 발이길 바랄 뿐.
정신없이 엎드려서 사과하고 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살짝 고개를 들어보니 부딪힌 그 사람은 여전히 나의 앞에 서 있다. 신발. 비싸보이고 반짝반짝한 남자 구두를 신었다.
“일어나세요.”
한국인. 살았다. 한국인이다. 후딱 일어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개화복을 입고 나를 내려다 보는 이 남자. 피부는 뽀얗고, 머릿결은 매끄럽다. 얼굴만 봐도 선한 성품을 지녔다는 것이 보인다.
멍하니 쳐다보니, 사내는 헛기침을 한다. 너무 바라보았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아, 죄송합니다. 앞을 보고 걸었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그럼…”
가볍게 눈인사를 한 후 고개를 돌려 걸어가는 저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냥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말을 걸고 싶었다.
“저기…!”
“…저는 여기 앞 류에다방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멍청이. 다짜고짜 사람을 불러 하는 말이 자기 일하는 곳 소개라니. 최악이다.
어떻게든 다른 말을 해야 한다며 허둥대고 있던 찰나에, 그 사내는 나를 보며 웃는다.
“예. 나중에 꼭 들리도록 하지요.”
예의상 한 말일 것이다. 속으로는 당황스러워 하며 도망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설레인다. 기대하고 있는 내가 싫다.
이건 당신이 잘못한 겁니다. 기다릴 이유를 만들어 준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