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2편까지 나오지 않았지만 이 배틀호모 썰에서 알아야하는 인물이 있어. 바로 정국이와 지민이의 담임선생님이야. 국민이들의 담임선생님은 쟈가운 듯 하지만 뒤에서 잘 챙겨주는 스타일로 별명이 ‘학생밀당남’이지. 틱틱거리면서도 누구보다 고민상담을 잘 해주고(특히 연애상담). ㅎㅎ..예상한 꼼있나 모르겠지만...그래 마쟈 미뉸기 선생님이야. 윤기 쌤은 문학담당이고. 연애 상담을 하면 연애 카운슬러와 대화하는 것 마냥 찰지게 잘해줘서 교내 커플인 아이들에게 인기가 만점이지. 말빨이 장난이 아니라서 남자 여자 따질 것 없이 인기가 많은 선생님들 중 한 사람이야. 하지만 신은 공평했는 지 이런 윤기쌤에게도 인기에 해가 갈만큼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그건 수행평가를 폭탄으로 준다는 것. 윤기 본인 말로는 ‘아이들의 능력을 한 두 개의 시선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라고 하지만 선생님의 깊은 뜻을 알리 없는 애들 입장에선 자기들을 혹사 시키는 것으로 밖에 안 느껴지지. 윤기가 한 달에 두어 개씩 주는 수행평가는 다양해. 문법문제를 푸는 것, 좋아하는 시를 필사해 오는 것, 단편 소설을 써오는 것 등등. 따지고 보면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들이라 아이들은 윤기 쌤에게 애증을 느끼는 거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윤기가 아이들에게 수행평가를 내지 않았어. 그에 대해 아이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안심했는 데..... 하지만 역시나! 중간고사가 끝나고 체육대회가 일주일 남은 시점에서 윤기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수행평가를 내줘. “친애하는 학생 여러분들 제가 선물을 가져 왔어요.” “우-!” “쉿, 내 얘기 들어봐. 이번 수행평가 진짜 재밌는 거야” “뭔데요?” “자작 시 써오기”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어도 ‘오글 거려!’라는 말을 내뱉는 요즘아이들에게 ‘시 쓰기’라니. 아이들은 벌써부터 제 팔에 몰려오는 소름 때문에 진저리를 쳐. 소리를 지르면서 싫다고 하는 애들도 있었고. 이번 수행평가에서 윤기가 준 주제는 ‘사랑’. 윤기의 입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저도 모르게 지민이는 정국이를 봤어. 그러다 정국이와 눈이 마주치자 그 곧은 시선이 부담스러웠는 지 급하게 앞을 봐. “너희 이런 거 잘해야 나중에 여자한테 잘 먹힌다? 로맨틱한 남자가 요즘 대세야, 대세.” 그리고 니들 얼굴로 여자친구 사귀려면 말이라도 멋있게 해야지- 그렇게 농담하듯 말하던 윤기는 A4용지를 나눠주며 수행평가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사랑이라는 개념이 꼭 이성과의 사랑만 나타내는 건 아니잖아. 가족 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하다못해 애완동물이나 미미쨩에 대한 사랑도 괜찮으니까 다음 주 수요일까지 내라.” 아이들의 원망소리가 들려오자 씩 웃은 윤기가 빠져나가고,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각자 무얼 쓸 지에 대해 떠들어댔어. 지민이 앞자리인 석진이는 무언가를 끄적여 쓰곤 뒤돌아 앉아 지민이에게 말을 걸어. “난 소시 누나들에 향한 마음을 담아 쓸꺼야. 오, 나의 여신! 나의 천사! 태연! 티파니!” “...윤기쌤한테 욕 처먹고 싶어서 그러는 거 맞지?” “나 나름 진지하다. 빡찌, 내 팬심 모욕하냐? 그러는 넌 뭐 할 건데, 혹시” 주변 눈치를 휘휘 보던 석진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김연주?’ 하고 작게 속삭여. 지민이가 아직도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거든. 하지만 석진이 생각과 다르게 그 얘길 들은 지민인 고개를 옆으로 저어. 그 반응에 석진이는 ‘아니긴! 맞을 거 같은데!’하고 이야기하며 의심스럽단 눈으로 흘겼지만. 애들이 보는 것처럼 지민이에게 연주는 ‘처음 좋아해 본 여자아이'야. 많이 좋아하기도 하고. 하지만 지민이는 연주를 ‘사랑’이라는 감정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해. 지민이가 생각했을 때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누구와 사귀든 어떤 관계든 빼앗아서라도 자기 옆으로 데리고 오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연주는 정국이 옆에서 빼앗아 오고 싶진 않았거든. 걱정되고 안쓰럽긴 했어도 연주가 정국이 옆에서 행복하다면 자기는 뒤에서 멀찍이 있어도 괜찮으니까, 많이 좋아하되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한 거지. 그래서 지민이는 조금 고민하다 주제를 적는 칸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라고 써. 그걸 보고 석진이는 ‘마마보이가 여깄네!’하고 낄낄거리고.서로에게 '빠돌이인 너보다 효자인 내가 낫다', '요즘 여자 애들이 마마보이 진짜 싫어하거든?' 하며 싸우던 둘. 그 장난은 석진이가 어딘 가를 빤히 보며 감탄해서 멈추게 돼. “야, 전정국이 열심히 쓰네. 김연주 보여주려고 그러나?” 그 말에 지민이도 시선을 정국이에게로 옮겨. 샤프를 끄적이는 하얗고 긴 손, 고민하는 듯 잔뜩 찌푸린 미간. 모두 장난하며 히히덕거릴 때 홀로 진지하게 임하는 옆 모습을 넋 놓듯 보던 지민이는 ‘전정국, 열심히 하네’하고 툭 던지듯 말해. 그리고 그 순간 정국이가 고개를 들어 지민이를 봐. 민망했는지 지민인 괜히 정국이의 시선을 무시하며 석진이의 드넓은 어깨를 꼬집어대고. - 오늘도 역시나 시간을 빨리 넘겨 수행평가를 걷는 날이 되고, 윤기 쌤은 교무실에서 아이들의 자작시를 봐. 개중엔 장난치는 듯이 웃기게 쓴 시도 있었고, 절절한 감정이 흘러 넘치다 못해 오글거리는 시도 있었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들, 고민들이 잘 묻어나오는 것 같아 윤기는 내심 이 수행평가를 내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해. 하지만 흐뭇해하는 마음과 달리 점수를 기록하는 란에 쓰여지는 것은 온통 C나 B뿐이야. 저기 저 멀리 남해안에 있을 염전보다 더 짜게 냉정히 점수를 매기던 윤기의 손은[2학년 5반 31번 전정국]이라고 정갈하게 쓰여있는 장에서 갑작스럽게 멈추게 돼. [주제: 짝사랑] 윤기는 정국이와 연주가 사귀는 걸 알고 있었어. 연주가 윤기에게 ‘정국이가 먼저 고백하긴 했지만, 저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고민상담도 많이 했거든. 그런데 주제가 짝사랑이라니. 어린놈이 벌써부터 까져서 도대체 여자를 몇 명이나 꼬시려고- 라고 생각을 한 윤기는 의자에 등을 편히 기대곤,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정국이가 쓴 시를 봐. 가볍게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무거운 감정들을 견뎌내야 했다는 사실을 너는 알까 첫 문장부터 어린 감정들이 흘러나와 윤기는 입가에 미소를 천천히 지어. 짜식, 나중에 여자는 잘 꼬시겠네- 하고 혼잣말도 하고. 정국이 시는 생각보다 짧은 편이라 금방 읽을 수 있었어. 그냥 치기 어리게 쓸 줄 알았는 데 나름 생각을 많이 하고 쓴 것 같은 티가 나서, 정국이가 시의 모티브가 된 아이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여실히 드러났어. 열 여덟 소년의 짝사랑이 가득 담긴 시를 읽고 난 후, 윤기는 정국이 시를 따로 빼서 놓고는 책상위에 쌓여있던 종이들 사이에서 클립으로 고정되어 있는 종이뭉치를 꺼내. 그리곤 자기가 시킨 심부름을 마쳤는 지 제게 '이제 심부름 시키지 마세요'하며 다가오는 남준이에게 이야기 해. “실장아 미안한데, 가서 정국이 좀 교무실로 오라고 해라” 남준이는 선생이든 애들이든 자기 못부려먹으면 죽냐고 궁시렁대며 반에 들어갔고, 친구들에게 둘러 쌓여 있으면서도 어딘가를 넋놓고 보는 정국이에게 다가가. 정국이가 보는 쪽을 힐끔 보니 복도에서 지민이랑 호석이가 서로에게 형님으로 부르라며 아웅다웅하는 게 눈에 들어와. 그 쪽을 향해 자꾸만 시선을 주는 정국이에게 다가간 남준이는 잔뜩 이골이 난 목소리로 이야기해. "담임선생님이 너 부르신다" 윤기의 뜬금없는 호출을 받은 정국인는 제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얼떨떨하게 윤기에게로 가. 정국이가 교무실에 들어오자 윤기는 제 앞에 간의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하고. 정국이가 주춤거리며 의자에 앉자 뉸기는 정국이 시를 손가락으로 톡톡치며 ‘시 잘 봤다. 짝사랑 주인공 연주 맞지?’하고 장난스럽게 물어. 그러자 제가 왜 끌려왔는지 몰라 어벙하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데, 평소엔 어른스럽던 정국이가 이렇게 어린 티를 내는 게 귀여워서 윤기는 작게 웃고 말아. 자기 대학 시절 전공이 국어국문이라 시라면 질리도록 봤는 데, 정국이가 연주에 대해서 쓴 게 아니란 걸 모를 리가 없지. “정국아” “네” “욕심 부리지 말고 한 명만 골라.” 그 말에 정국이가 딱딱하게 굳혔던 표정을 조금 풀곤 무심하게 '원래도 한명이었어요'하고 대답해. 정국이의 대답을 들은 윤기는 결국 소리 내서 웃어. 얼마나 크게 웃었냐면 주변 선생님들이 '윤기쌤 무슨 재밌는 일 있어요?'하고 물어올 정도야. 주변에서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자 조금 창피했는 지 큼-하고 목을 정리한 후 윤기는 정국이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해. “재밌긴 한데, 내가 이런 거 물어 보려고 너 부른 거 아닌 거 알지?” “...저 뭐 잘못 했어요?” “아니, 아니.” 윤기는 고개를 절레 절레 젓고는 정국이에게 종이 뭉치를 내밀어. 제일 앞면엔 [청소년 문학 대회]라고 쓰여져 있고. “사실 요번 수행평가 낸 이유가 이거 였거든” “아.” “내가 이거 담당인 데, 학교 이름 걸고 나가는 거 이왕이면 잘 하는 애들이 나가는 게 좋잖아. 상금도 있는 데 생각있으면 체육대회 끝나고 바로 준비해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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