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야 김태형 지금 여자친구 있어?"
어쩌다 CC
01. 관심 있으세요?
"어, 여주 하이."
"안녕. 김태형 어딨어?"
"태형이? 걔 아까 교수님이 불러서 나갔는데, 왜?"
아, 타이밍. 기껏 넘어왔더니 정작 있어야 될 사람 없이 그저 심부름꾼으로 전락해버린 상황이 괜히 짜증 나 들고 있던 선물을 던지듯 내민다. 이거 걔 줘. 갑자기 받게 된 박스에 눈 동그랗게 뜬 얼굴이 뭐냐 묻는 거에 물어 뭐하냐는 표정 지어보이자 아, 낮은 탄식과 함께 고개 끄덕인다. 아까부터 무겁게 느껴졌던 가방에서 책 몇 권 꺼내 상자 위에 같이 올려두고 다시 말끔하게 고쳐 멘다. 지금쯤 이미 김여주 인문대 떳다는 소식이 여기 저기 들릴 터. 당사자도 없겠다 빨리 자리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손 흔들어 보이곤 이만 가겠다는 모션을 취해본다.
"김태형 안 보고 그냥 가게?"
"언제 올 줄 알고. 그리고 걔가 내 남자친구라도 되냐."
"그럼 아니야?"
"또 그런다 또. 이러니까 내가 안 오려고 하지."
"알았어. 여주야 농담이야.ㅋㅋ 근데 나 아직 내기 걸어놨어."
"뭔 내기."
"김태형이랑 김여주 사귄다 안 사귄다."
"너도 그런 거 하니?"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 마냥 해맑게 웃는 얼굴에 차마 말 다 못하고 살짝 구겨진 미간으로 기분을 대신하자 더 큰 소리로 웃는다. 비단 박지민뿐만 아니라 학교 내에서의 초미 관심사 중 하나가 이거 일 거다. <김태형이랑 김여주는 사귀게 될 것인가?> 내리라 하도 난리 쳐서 현재는 없어진 대숲 투표도 그렇고, 과 회식도 그렇고. 재밌는 안줏거리와 하나의 놀이로 자리 잡은 지 오래. 심지어 50대 먹은 교수님도 알 정도였다. 대학교에서 교수가 학생 이름을 안다는 건 꽤 큰 낭패에 가깝지 않은가. 그러니까...찍혔다든가, 찍혔다든가. 교양 수업 끝나고 이어진 긴 공강에 카페에서 쉬었다 와야지 싶어 부지런히 짐 챙기던 중 들리는 "김여주 학생." 음성에 등골이 서늘 했던 게 불과 어제 오늘 일이다.
"네?" 긴장한 얼굴로 반문 해서 돌아온 건, 김태형 학생과의 만남에 대한 시답지 않은 질문이다. 그러니까 하다하다 나이 차이 20~30살 이상은 될 법한 이름 모를 교수들 마저 궁금해 하는 거다. 김태형은 그 잘생긴 외모로 여자 교수, 남자 교수할 거 없이 꼬리 흔들어 학점 잘 따내기로 유명했다. 원래도 공부 잘하는 놈이 예쁜 짓까지 하니 A+은 따놓은 당상이고, 추후 추천서까지 덤으로 챙겨 받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쓸데없이 유명한 것도 많다.
"나야 당연히 사귄다지."
이런 젠장.
과방으로 돌아와 다음 시간표를 확인 하곤 나란히 붙어 있는 두개의 카톡을 번갈아 보다 책상 위에 올려둔 채 남은 시간 동안 과제 할 생각으로 테블릿을 꺼낸다. 오늘 하루는 절대 김태형이랑 마주치지 말아야지. 남자들 기싸움도 제대로 붙으면 살벌하구나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요즘. 턱을 괸 채로 리포트 창을 열어둔 채로 잠시 생각해 본다. 언제부터 였더라 이 둘이 싸우게 된 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남자친구 입장에선 충분히 화날 만도 하다. 내 여자친구의 절친이 남자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내 남자친구한테 친한 여사친이 있다는 건데, 신경이 안 쓰일 수가. 게다가 본인은 다른 학교고 이 둘은 같은 학교인데. 하물며 남자친구와 알고 지낸 시간보다 김태형을 알고 지낸 시간이 훨씬 더 많으니 불안 한 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무 감정이 없는 걸.
난 그렇지.
그럼 여기서 사람들은 묻는다. 김태형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키보드 위로 움직이고 있던 두 손가락이 멈춘다. 태형이랑 여주 다 크면 결혼 시켜야겠네 하시던 부모님, 1지망과 2지망으로 붙었던 같은 중학교, 입시로 울고 불고 할때 맨날 옆에 있어 줬던 김태형.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 그러니까 어쩌면 김태형이 나를. 그 순간 고개를 저으며 하던 생각을 거둬내곤 다시 과제에 집중한다. 김태형의 비연애 기간은 일주일을 넘기는 법이 없다. 오죽하면 나중엔 사랑과 전쟁까지 찍더랬다. 전 여자친구와 전전 여자친구가 절친인 바람에 보기 좋게 머리 다 쥐여 뜯기면서. 미묘한 생각을 떨쳐내고 나니 훨씬 더 수월한 속도를 유지한다. 앉은 자리에서 쉬는 시간 하나 없이 그동안 미뤄왔던 과제를 반 이상 끝낸 후 개운한 기분으로 저장 버튼을 누르고서야 마지막 전공 수업을 듣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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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이번 주까지 현대미술 전시회 리포트 쓰는 거 잊지 말고, 내일 봅시다."
감사합니다. 곳곳에서 들리는 인사말과 함께 창문으로 고개 돌리니 예상보다 더 많이 쏟아지는 비에 차까지 얼른 뛰어가야겠다 생각하며 가방 챙겨 일어나자 가는 곳까지 우산 씌워 주겠다는 친구들 말이 들려온다.
"아, 오빠 차 있어서 괜찮아. 몇 걸음만 가면 돼."
"그 오빠는 우산 안 가져온데?"
"어차피 차로만 이동할 건데 뭐 하러 새 걸 사. 내가 됐다고 했어. 나 먼저 갈게, 내일 봐."
어차피 그때처럼 맨몸으로 오는 게 아니니까 괜찮겠지 싶어 정문 아래 주차장까지 와달라고 부탁해놓은 터라 손 흔들어 인사하곤 먼저 강의실 밖으로 나와 아래로 내려간다. 그때까지도 김태형에게선 카톡 하나 없었다. 연락을 기다리는 거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고 김태형의 존재를 당연시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다. 1층으로 내려오니 갑자기 내리는 장대비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데리러 올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과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릴 사람들까지. 입구를 막고 있는 사람에게 잠시 지나가자며 어깨 살짝 접어 앞까지 뚫고 나가니 안에서 보는 것보다 비가 더 많이 오고 있었다. 아, 아예 앞까지 오라고 할 걸 그랬나. 잠깐의 후회가 머릿 속에 스쳐지나가며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린 채 짧은 심호흡 후 밖으로 뛰쳐나간다.
뭐랄까. 비가 엄청 많이 오지 않았나? 손등이며 어깨 위로도 떨어지지 않는 빗줄기에 양옆으로 고개 돌리다 드리워진 우산 끝 그림자에 놀란 눈으로 고개 돌리니 평소와 같은 표정의 김태형이 서있다.
-걘 우산 없으면 사 올걸?
덜 떼어진 택이 대롱대롱 달린 채로 바람에 흔들린다.
"이거 쓰고 가."
그러니까
어쩌면 김태형이 나를.
관심 있는 거 같아요
여주 친구 번호는 숫자로 저장했다 9번까지 있다
여주 번호는 여주로 저장했다
김태형은 현재 우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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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쿠미 입니다.
음 분량이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긴 글 쓰시는 분들 존경 합니다,,
먼가먼가....태형이가 남친 있는 요자를 건드는 남자 같지만..
생각한 그림이 있으니 끝까지 봐주세요 데헤헤...
최대한 일주일에 한 편을 목표로 달려볼 예정입니다!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 맞춤법 및 오타가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