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내 집은 이곳이 되었다. 신은 단 한번도 내가 이곳에 머물게 된 이유를 말해준 적이 없었다. 눈 떠보니 여기 였고 사고를 할 줄 아는 순간부터 천신이 시키는 자질구레한 일들까지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신은 내가 여기 있는 이유를 혼자서 알아내라고 했다. 이런 무책임한 신이 다 있는가? 그래도 풍족하게 먹고 잘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내가 반역은 안 일으켰다.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천신 종노릇을 위함이란 걸 깨달은 후 나는 더 이상 그 따위의 고민은 하지 않기 시작했다.
“현동아 오늘 모실 손님은 몇이나 되는 것 같으냐”
“월님, 명월당 손님 끊긴 지가 언젠데요 거진 7~8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너는 진짜 쓸모 없는 제자다.”
“아니 스승님 제가 그걸 알고 있으면 지금 스승님 옆에 안 있고 천신 곁에 있었죠”
“아니 사장이라고 부르라니까?”
“진짜 성격 더러우신거 아십니까? 차라리 일신께 보내주십시오 일신과 함께 일하는 것이 훨씬 살 것 같을 겁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일신이 나한테 직접 너를 보냈다니까”
“.... 일신께서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성격 더러운 이에게… 보내실 리가 없어요!”
“너는 일신을 한참도 잘못알고 있다. 일신이야말로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넌 평생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똑똑’
“월님! 일신께서 오셨다고…”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오늘 재수가 참으로도 없겠구나. 일신한테 나 아프다고 돌아가라고 전하거라.”
“그래도.. 월님…!”
“나는 아파. 나 일신 맞이 못해. 현동아, 너도 따라나가서 일신 그 새끼 마중하고 오거라 네가 사모하는 분 아니더냐”
“월아, 내가 그럴 줄 알고 친히 여기까지 들어왔다.”
“...!! 헉 일신님..!! 저.. 소자는.. 월님을 모시고 있는 현동이라고 합니다. 만나뵙게 되어서..!”
“현동아 호들갑 떨지 말거라 명월당 품위는 지켜야지.”
“언제부터 저희가 품위를 지켰답니까요!”
현동이는 어렸을 때부터 김석진을 참 좋아했었다. 자신의 롤모델이라나~ 그런 현동이가 나는 안타까울 뿐이다. 때가 되면 김석진 가출했던 이야기를 한번 해줘야 할 것 같다. 환상 다 깨지게.
“네가 현동이구나”
“야 김석진, 니가 현동이, 나한테 보낸거라고 말 좀 해줘라 내가 하니까 믿지를 않는다.”
“월님! 신께 야라니요! 일신께서 명월당에 복을 안내려주면 어쩌려고!”
“현동아 나는 김석진이 복을 안내려줘도 뒷배가 많다. 천신이 김석진 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
“월님….!!”
“현동이라고 했었지? 월이하고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나중에 다시 돌아오려무나.”
나름대로 평화로운 하루가 될 수 있었는데 갑자기 찾아온 불편한 김석진 덕분에 하루를 망치게 되었다. 언제는 나를 일춘당으로 오라고 시키더니. 갑자기 찾아오지를 않나. 뭐 볼 것도 없다. 천신이 시켜서 온 걸테니까.
“우리 일신께서는 왜 찾아오셨습니까”
“천신께서 너를 찾는다. 시키실 일이 있다고.”
“ 나 당분간 바빠. 아까 올라오면서 봤겠다만, 우리 명월당 아주 바빠. 장기 투숙하는 망자들도 있고 매일매일 찾아오는 손님도 있어. 간간히 영물 찾으러 다녀야해서 바빠. 나. 자리 못 비워.”
“월아, 8개월 동안 손님 없다는 이야기 들었어”
“너,함부로 월이라고 부르지마. 명월당 손님 없는 거 아니야.”
“고집 좀 부리지 말고 천신께서 하라는 거 해”
“안해. 가.”
“...”
“꺼져”
천신은 나를 종 부리듯 일을 시켰다. 망자들이 묵을 수 있게 명월당을 맡으라고 해서 나는 명월당에서 일을 했고. 집나간 아들 찾아오래서 천신의 집나간 아들인 김석진 잡아왔고. 현동이 책임지고 가르치라고 해서 책임지고 가르치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천신이 하라는대로 쭉 해왔었다. 솔직히 김석진 잡아오라고 했을 때는 안간다고 생떼 부리긴 했다. 김석진 잡아오고 나서는 100년간 천신한테 찡얼거리기도 했다. 천신한테 고마운 것도 많고 미안한 것도 많은데. 아 나도 이제 힘들다고.
“나, 더 이상 천신 밑에서 일 안해. 언제까지 나를 부려먹을 건데! 너도 천신 되면 날 이렇게 부려먹을거냐!? 내가 천신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묵묵히 일했는데! 아직도 시킬게 남았냐고! 너 저번에 기억나냐? 천신이 잃어버린 개새끼 주워오라고 했던거? 지가 갈 것이지! 아니 그 유능한 신이 개 하나 못찾는게 말이 되는거냐?”
“월아,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셔.”
“어~ 그거 300년 전에도 니가 천신 아프다고 해서 갔더니 나랑 장기 두려고 부른 거 였어. 그딴 개구라 안속아”
“아 진짜 이번엔 장기 아니야!”
“아 그럼 뭔데! 바둑이라도 되냐!”
“..아 일단 따라와봐”
일신은 갑자기 내 팔목을 잡고 천신의 거처로 이동했다. 망할 천신. 또 무슨 일을 시키려고. 천신의 거처로 나를 옮긴 김석진은 천신 방으로 나를 질질 끌고 갔다.
“ 아 왜 불렀는데요! 이번엔 또 뭔데! 어! 뭔데!”
“월아, 이번엔 바둑이다. 장기는 네가 훨씬 잘하겠지만. 내가 바둑은 자신이 있다.”
“뭔 놈의 신이 이렇게 하찮아!!!”
“월이는 여전하구나.”
“헐 사신! 나 완전 보고 싶었어요!”
“나도 꽤나 보고 싶었다. 어째서 지하까지 오지 않는것이냐?”
“천신이 자꾸.. 일 시켜서… 못가요..”
“사신, 월이는 명월관에서 할 일이 많아 지하까지 못가네.”
“일신께서는 바쁘지도 않은가봅니다. 제가 올 때마다 계십니다.”
나는 사신을 좋아했다. 사신은 영문도 모른 채 천신을 위해서 일하는 날 도와줬다. 게다가 정 못해먹겠으면 지하에 내려와서 살아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다정함은 대략 1200년이나 산 내게 설램을 선사해준다.
“월아, 대체 지하에는 언제 올 것이냐? 놀러온다고 한지 벌써 30년이 되었다.”
“사신.. 나 너무 바빠서 못갔어요… 명월당 문 닫으면 갈게요…..”
“명월당은… 문을 닫지 않지 않느냐. 망자 보낼 때 한번 오너라.”
“사신, 월이 데리고 내가 같이 가도록 하지요”
“일신은 지상에서 맡은 바를 수행하셔야지요 지하에 오시면 머리 아프다고 하시던게 누구던지…”
“월아 저기보거라!”
“뭔데요?”
“아 내가 잘못 보았다.”
“천신! 밑장빼기하지 말라고요!”
“월아, 신을 상대로 농이 지나치구나, 고귀한 내가 무슨 밑장빼기 같은 천박한 짓을 한단 말이냐”
“천신 진짜 짜증나는거 알아요?”
“월아.”
“일신이나 천신이나 나 월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미안하다니까 그러네 그거 가지고 아직도 삐쳐있는게냐?”
“네~ 저 속 좁아서 아직도 삐쳤어요.”
“월아, 명월당으로 오늘 손님이 찾아갈 것이다. 떠날 때까지 잘 모시거라”
어쩐지 8개월 동안 손님이 없더라니. 천신은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또 무슨 일을 시키려고 손님이 온다는 말을 이리도 중대발표 하듯이 말해주는지.
“나 이제 갑니다.”
“월아 지하로 올것이지?”
“손님 다 보내고 나면요.”
“기다리마”
8개월 만에 손님이 온다는 말에 나는 조금 들뜨기도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무려 천신이 부탁한 손님인데 대체 어떤 이 일지. 아 근데 천신이 부탁해서 그런지
“현동아! 손님이..!”
“사장님.. 어디갔다오셨어요,, 벌써 오셨다구요,,,”
“안내하거라.”
'소곤소곤'
"야 지민아 저 사람이 여기 주인인가봐"
"정국아 가방 다 챙겼지?"
"형들 국이 배고파."
"지민아 주머니에서 손 빼, 나이 많은 사람 앞에서 주머니에 손 넣는거 예의 아니야!"
휴양지에 놀러 온 것 같은 남자 셋이 명월당 마당 앞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모습을 봤을 때 나는 천신을 때려주고 싶었다.
"저기 저 소곤거리는 이들이 손님이냐..? 현동아..?"
"예... 저도 셋이나 와서 놀랐습니다..."
아니.. 손님이 오는건 알겠는데 셋이나 보낼 거라고는 안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