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 걸리네. 여기로 와."
여주가 제 앞으로 오자 윤기는 제 옆에 있던 쇼핑백을 건넸다.
"열어봐"
갑자기 제 손에 쥐어지는 쇼핑백에 여주는 당황했다.
"이게 무슨..."
쇼핑백을 여니 지갑이 들어있었고, 그 지갑안에는 카드 한 장이 들어있었다.
카드로 결제를 해주기만 했지 제 카드를 써본적도 가져본 적도 없는 그녀는 들어있는 카드를 보고 놀랐고, 이어지는 그의 말에 한번 더 놀랐다.
"필요한거 사라고. 아, 카드내역 다 나한테 문자오니까 허튼 데 가서 쓸 생각 하지마라."
어린신부.02
여주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윤기는 거실에 걸려있는 시계를 흘끗 보곤 시선을 여주에게로 돌렸다. 윤기는 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여주를 보곤 옅게 미소를 띄었다. 본인이 웃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정도로 옅은 미소였다.
침묵끝에 윤기는 여주에게 말을 걸었다.
"너 밥은."
한참의 침묵끝에 건네진 말에 여주는 고개를 숙이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여주는 고개를 들곤 윤기와 어색하게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요, 근데 안먹어도 되는데.."
"신경쓰이게 하지 말고 먹어."
""..배 안고픈데.. 이따가 배고프면 챙겨먹을게요."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여주의 말에 윤기는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기운이 없을텐데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하자 윤기는 여주의 몸이 안 좋은건가 싶어 물어볼까도 했지만 곧 생각을 지워냈다.
여주는 이 상황에서 윤기와 밥을 같이 먹는다면 꼭 체할 것만 같았다. 여주는 배 고프면 챙겨 먹는다는 말을 끝으로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그 때 윤기가 나가려는지 겉옷을 챙기며 말을 꺼냈다.
"옷입어, 나갈거야."
여주는 윤기의 앞뒷말을 생략하는 말투에 적응을 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옷을 입으라는 윤기의 말에 여주는 제 방에 들어가 얼마 있지 않은 옷을 뒤적거려 그나마 제일 멀쩡해 보이는 옷을 골라 집어 나왔다.
"근데 어디가요?"
"배고프면 챙겨 먹는다며.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어."
"..아."
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윤기를 따라나섰다.
주차장으로 내려간 둘은 윤기의 차에 올라탔다. 어색한 침묵만이 그 둘을 감쌌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침묵을 깬 건 다름아닌 여주였다.
"그..저기, 저는 그쪽 뭐라고 불러야 돼요..?"
여주의 목소리가 들려 운전을 하다 여주 쪽을 힐끗 본 윤기는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여주의 귀는 점점 붉게 물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고, 고민을 하고 있는지 손은 계속 꼼지락거리며 가만히 두질 못했다.
"편한대로 불러. 웬만한 건 상관없으니까."
윤기의 말에 여주는 고민하는 듯 했다. 호칭을 정하기 전에, 무엇보다 여주는 아직 윤기에 대해 아는 것이 이름밖에 없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제쳐두고 아직 그의 나이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 여주는 윤기에게 나이를 물어봤다.
"그쪽 나이는.. 몇 살이에요?"
예상치도 못하게 여주가 제 나이를 물어오자 윤기는 당황했다. 그가 여주에 대해 거의 대부분을 알고 있던 것처럼, 여주 역시 다 알고 있을거라는 생각을 그도 모르게 갖고있었다. 그제서야 그는 여주가 저에 대해 아는게 이름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 말 안 했나. 스물 여덟."
스물 여덟이라는 윤기의 말에 여주는 놀란 듯 눈이 커졌다. 아무리 많아 봤자 스물 다섯쯤 되겠거니, 했는데 그것 보다 세 살이나 더 많았으니 놀랄만도 했다.
"어.. 일곱 살 차이나네.. 그럼 뭐라고 부르지.. 아저씨?"
".. 아직 아저씨 소리 들을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윤기의 나이를 들은 여주는 일곱살의 나이차이를 곱씹으며 고민했다. 호칭을 겨우겨우 정해 아저씨라고 내놓은 여주의 대답에 윤기는 벙쪘다. 윤기는 삼십대가 되려면 아직 2년이나 더 남았고, 아직 앞날이 창창한 이십대였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오, 오빠는 좀 아닌것 같은데.."
여주가 '오빠' 라는 단어를 꺼내자 윤기는 주차를 하곤 체념한듯 제 머리를 헝클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오빠'는 너무 낯간지럽고, '아저씨'는 나이가 많이 든 것 같아 짜증났지만 그래도 불리기에 낯간지러운 '오빠' 보단 '아저씨'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기는 한숨을 내쉬더니 헝클이던 제 머리를 쥐고 입을 열었다.
"..그래, 아저씨 해라. 내가 뭐라고 하겠냐."
그제서야 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렸다. '오빠'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귀가 붉어진 윤기를 여주는 보지 못한 듯 했다. 여주가 내리자 곧 윤기도 차에서 내려 여주의 옆에서 걷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키 차이 때문인지 여주는 윤기의 발걸음을 쫓아가기에 버거워보였다. 윤기는 옆에서 걷고있던 여주가 뒤쳐지는 느낌에 잠시 멈춰서서 여주가 제 옆에 와서 걸을 때까지 걸음을 늦췄다. 그 이후로는 윤기가 쭉 여주의 보폭에 맞춰서 걷기 시작했다.
"이따가 배고프면 뭐 먹을건지 생각은 했어?"
"..아직이요."
윤기는 여주가 저와 같이 식사를 하는것이 불편해 끼니를 거를 생각을 하고있는게 눈에 훤히 보였다. 윤기는 식사를 같이하길 꺼려하는 여주와 굳이 지금 같이 식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 같이 밥먹을 기회가 지금만 있는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이왕 먹을거 윤기는 여주에게 조금 더 좋고 맛있는걸 먹이고 싶었다. 매장에 들어가기 전 쇼핑카트를 빼낸 윤기는 쇼핑 내내 카트를 끌고다니며 여주가 좋아할만한 음식 재료들을 이것저것 담았다.
윤기가 보이는건 죄다 넣는 것 같아 보여 뒤에서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돈 걱정을 하고있는 여주는 꿈에도 모른채로.
쇼핑카트가 음식재료들과 과일들로 가득 차여갈때 쯤, 윤기는 여주에게 말을 걸었다.
" 이정도면 되려나. 필요한거 다 샀어?"
머쓱하게 말해오는 윤기에 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못산거 있으면 내일 나 퇴근할 때 연락하던지, 아니면 집에서 줬던 카드로 나가서 사던지 해."
<과거의 윤기1 (윤기시점)>
- 13년 전, 희망보육원.
오늘로 여기서 생활하는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몇없던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보육원에서 나를 15년간 키워주신 선생님들께 인사를 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들어올 원장실에서 나는 나를 입양하겠다던 사람을 기다리며 앉아있었다.
행여나 이번에도 파양당하면 어쩌나, 여기로 다시 오게되면 어쩌지.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고있던 와중에 원장실 문이 열리고 검은옷을 입고 키가 큰 아저씨가 들어왔다.
"네가 윤기니?"
아저씨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끄덕였다. 사실 방금 들어온 아저씨가 검은옷을 입은데다 키도커서 굉장히 무서운 사람일줄 알았는데 첫마디는 생각보다 다정했다. 그런 아저씨의 말에 내가 파양당할까봐 불안했던 감정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BARAK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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