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교문에서 애들 머리 잡은것까지 썼었지?
이성열은 강당에서 걸리고 셋이서 교실로 갔지. 자리는 나랑 이성열이랑 앉고 그 앞에 남우현 김명수. 왜 넷이 붙어있냐고? 학교 방침이 그래. 입학하는날 제비뽑기로 4명이 3년내내 한 조가 되는거지. 반은 바뀌어도 조는 안바뀐다.. 슬프게도..
점심시간이었어. 밖이 시끌시끌하더라. 뭔가 해서 창밖을 봤더니 '그것' 이었어. 시계가 살짝 반짝반짝하더니 시계 화면에 이성종 얼굴이 깜빡깜빡거렸어. 교실에서 슬쩍 빠져나와 텅 빈 옥상에서 변신을 하고 운동장으로 날아갔어. 근데 '그것'이 누굴 잡고 있었는데 누구였게?
1번 지나가던 선량한 선생님
2번 오리걸음 하던 이성열
3번 쓸데없이 나대다가 잡힌 남우현
정답은 3번 나대다가 잡힌 남우현이야. 정의의 사도니 뭐니 이러고 나대다가 잡힌게 눈에 선명히 보이는 것 같아서 한숨만 나오더라. 내가 사뿐히 땅에 발을 디디니까 어디서 우오올 하는 소리도 나고. 좀 쪽팔렸지만 아무도 못알아보니까 상관없겠지 하는 마음에 초딩때 봤던 만화속 주인공처럼 막 했지. 막 요술봉으로 그것을 가리키면서
"어이! 거기 콜라겐덩어리! 그 애를 놔줘!"
응어엉어어얽 어이 거기! 래 지금 생각하면 내 발가락이 없어지고있으어엉얽 흑역사 갱신이요.. 근데 거기서부턴 입이 내맘대로 움직였어 난 아무생각 안하고 있는데 막 이상하게 말하고있고.. 막 이런거 있잖아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내가 이러고 있는거야 진짜로.. 당황스러워서 진짜.. 걔가 넌 누구냐 이래서 내가 뭐랬는지 앎?
"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바람타고 내려온 마법소녀, 줄리아.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다니, 용서 못해!"
으엉어어엉 누가 나좀 위로해줘.. 진짜 난 저럴 생각이 없었는데 지맘대로 팔다리가 움직이고 목소리가 나오고 막 이상한 제스처 있잖아 초딩만화에나 나올 법 한 유치한 포즈 이런거.. 흰색 요술봉 휘두르면서 열려라, 시공의 문! 이러니까 그거 뒤에 뭐 이상한 구멍 생기고 불어라, 바람의 소용돌이! 막 이래서 그거를 그 구멍에 넣어버리고 시공의 문이라는 걸 닫았어... 아 오글거려 으헝헝헝 그래서 그거 손에 들려있던 남우현이 뚝 떨어지고 내가 받아줬지. 조낸 무거워
아무튼 그걸 치워버리고 나니까 내가 내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 솔직히 엄청나게 많이 쪽팔리잖아. 빨리 도망갈라고 남우현을 내려놓고 몸을 돌리는데 누가 내 손목을 턱 잡았어. 누구게? 누구겠어, 남병신이지. 걔가 겁나게 감동받은 표정으로 날 쳐다봄.. 주위를 슬쩍 보니까 전교생이 날 보고있더라? 아 슬퍼..
"저기.. 초면이라 이런말 하기 뭐한데..."
남우현이 우물우물거리면서 말하는데 소름이 쫙 돋더라 진심으로. 그래도 열심히 표정관리를 했지. 빙긋 웃으면서 어버버대는 남우현을 봤지.
"사랑합니다."
이러곤 남우현이 수줍게 뛰어감. 뒤통수 맞은것 처럼 얼얼한 기분? 교실에서 자고있는 줄 알았던 김명수는 언제 나왔는지 사진을 찍고 있었어. 어디서 찰칵거리나 했네. 아무튼 누구한테 잡혀서 질문폭탄을 받기 전에 빨리 도망갔지. 마하의 속도로 날아서 아무도 못따라오게.
무사히 변신을 풀고 교실로 돌아가니까 이성열은 엎드려서 다리아프다고 찡찡대고있고, 남우현은 얼빠진 표정으로 허공을 보고있고, 김명수는 카메라 돌려가면서 찍은 사진 보고있더라. 내가 앉으니까 김명수가 물어봤어.
"너 봤냐?"
"뭘."
"아까 운동장에 마법소녀 나타났었는데."
"알게뭐람."
"존나 여신임."
기분 이상했어. 사진 찍었는데 볼래? 이러길래 카메라 받아서 이성열이랑 같이 봤지. 사진빨 좀 잘받더라 내가 봤을 땐 딱봐도 난데 다른애들은 그런 생각 못하나봐. 이성열이 옆에서 우와 개여신이다 겁나이쁨 이러고있는데 난 옆에서 계속 별로 거리고. 별로라 그랬다가 남우현이랑 김명수의 폭풍째림을 받음.. 남우현이 날 변호하기 시작함. 진짜 살면서 얘가 이렇게 말을 다다다다하는건 처음봤어.
"넌 눈이 없어? 어디가 별론데? 응? 얘가 키가 모자르냐, 얼굴이 못났냐, 몸매가 부족하냐? 응?"
"눈이 너무 작지 않나?"
"뭔 개소리야. 작은 눈이 대세인거 몰라? 너 이렇게 매력적인 눈 봤어?"
"내 눈도 작잖아."
"니 눈 작은거하고 이분 눈 작은거하고 같냐? 넌 그냥 작은거고, 이분은 매력적이게 작은거고. 쭉 째진게 아름답잖아.."
남우현이 아련하게 말하는데 어이없었다 진짜로.. 얘가 작은 눈 칭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내 첫 임무가 지나갔지. 그날 이후로 새로운 소녀의 등장! 줄리아, 그녀의 정체는? 막 이런 기사 폭풍으로 뜨고, 내 팬카페도 생기고, 팬페이지도 생기고. 그중에 제일 유명한 팬페가 김명수가 만든데임 ㅋㅋㅋ 뭐였더라? 이유도 모르는채? 어이가 없어서 ㅋㅋㅋ
여기까지 쓸게. 우리 누나가 집에 와버렸네. 다음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