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철아.”
“오냐.”
내가 왜 갑자기 자철이의 이름을 불렀는지는 나도 이유를 알 수 가 없었다. 난 그저 침대에 걸터앉아 땀에 젖은 유니폼 상의를 벗어던지는 녀석의 모습을 뒤에서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이름을 부르고 말았다. 양말까지 마저 벗고는 대충 말아서 구석으로 살짝 던져놓은 녀석은 반바지차림을 하고서는 여전히 날 쳐다보며 욕실 문 앞에 서있는 상태였다. 맘같아선 제발 내 앞에서 그렇게 훌러덩 벗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내가 이상한 놈 취급을 받겠지.
“아, 뭔데! 빨리 말해. 찝찝해 죽겠다.”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뭐야. 죽을래?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나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 거 몰라? ”
“그냥 한번 불러봤다. 빨리 씻기나 해. 나도 좀 씻자.”
“무슨 말 할려고 했냐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번만 더 물어보면 샤워 내가 먼저 한다.”
“아오. 치사해. ”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자철이는 치사하다는 말만 내뱉고는 욕실로 쏙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소리가 욕실 문 너머로 들려왔다. 오늘따라 왠지 그 소리를 듣는 것이 힘겨웠다. 샤워를 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는지, 흥얼대는 녀석의 목소리도 간간히 들려왔다. 내 머릿속에서는 자철이의 샤워씬이 수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물론 상상만 해봤지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그나저나 내가 생각해도 나 존나 변태같잖아.
“미치겠네….”
힘없이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이 무너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이 몸에 비누칠을 하는 중인지 머리에 샴푸칠을 하는 중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욕실에서 들려오던 물소리가 잠시 멎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조용함 때문인지 괜히 긴장이 되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시 물소리가 들려왔을 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 비슷한 걸 내뱉었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서 베개로 두 귀를 틀어막아버렸다. 온 신경이 욕실로 향해있는 터라 그리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런 것밖에 없었다. 10분쯤 흘렀을까. 달칵-하고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나에겐 마른침을 삼키다가 사레가 들려도 놀랍지 않은 상황이었다.
“누워서 뭐하냐?”
갑작스러운 자철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고 녀석을 쳐다봤다. 자철이는 위, 아래 옷을 다 챙겨 입은 상태였다. 더 이상 녀석의 맨살을 보지 않아도 되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녀석의 머리칼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물방을 들로 인해 티셔츠의 어깨부분이 조금씩 젖고 있다는 것을 자철이도 느꼈는지 그제서야 녀석은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탈탈 털기 시작했다. 녀석은 샤워를 한 탓에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아 개운하다. 남의 속도 모르고 개운하다고 혼잣말하던 녀석은 자기 침대에 걸터앉았다. 내 침대와 녀석의 침대는 1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데, 나한테는 그 거리가 그렇게 가깝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가까워서 그런지 맑은 물방울이 자철이의 볼을 타고 목에서 쇄골 언저리로 흘러 떨어지는 것까지 보였다. 멍하니 넋 놓고 자철이의 쇄골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데 녀석이 발을 뻗어 내 침대를 툭 친다. 아씨. 놀래라.
“누워서 멍 때리지 말고 빨리 씻어. 땀 냄새 나.”
“…야, 너 앞으로 브이넥 입지 마.”
“뭐?”
“브이넥 말고 라운드넥 입어. 아니다. 라운드 말고 그 왜, 목까지 올라오는 거 있잖아. 그거입어.”
“뜬금없이 대체 뭐라는거야? 돌았냐?”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도대체 지금 뭘 하고있는거지. 내가 자철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녀석을 좋아한다는 내 마음은 점점 더 확실해 졌지만 그게 다였다. 자철이에게 내 마음을 고백해야 할지, 아니면 죽을 때 까지 이 마음을 숨기고 친구로 지내야 할지. 둘 중 어느 쪽으로든 결심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고백하자니 둘도 없는 친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고, 마음을 숨기자니 내가 너무 힘들고 아팠다.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마음먹으려니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다.
“…그러게.”
“어?”
“나 진짜 돌았나 봐.”
“…야, 기성용. 무슨 일 있어?”
“…나 씻는다.”
자철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고 욕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따뜻한 물이 머리위로 쏟아지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에서 녀석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떡하지? 너 진짜 어떡할래. 기성용. 너 진짜 어떡할거냐고.
끝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괜시리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눈을 꼭 감았다. 정말로 울고 싶은 오늘. 오늘은 내가 녀석을 좋아하는 마음을 깨달은지 딱 한달째 되는 날이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걍 한번 써봤어여.....ㅎㅎㅎㅎ
다음편이 나올지는 잘 모르겠어요.....낼부터전바빠지니까여....ㅎㅎㅎ
그래도시간내서 틈틈히 쓰기는 할꺼에여!!!!
하지만 장담은못드리니깐 그냥 단편이라고 생각하고 읽으시면.......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