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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은 졸업작품으로 낸 15분 짜리 영화 한편으로 독립영화계의 새로운 신화를 썼다는 극찬을 받으며 영화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 해 영화제에서 정국의 영화는 매 후보에 올랐으며, 여러 작품을 제치고 5관왕을 달성했다. 사람들은 젊고 잘생긴(예대 오빠 클리셰를 꽉꽉 채워 담은)정국에게 환호했고, 투자사들은 그의 차기작에 투자 할 기회를 엿봤다. 

 

그리고 정확히 다음 해, '내 연애의 회고록' 이라는 첫번째 장편을 마지막으로 돌연 은퇴했다. 그의 기록은 끝났지만 현재까지도 그의 영화는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제거리였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 밤에 우리는 이미 희미해진 약속을 더듬으며 서로에게서 멀어져갔다. 우리의 짧았던 시간과 순했던 성격들 만큼이나 잔잔하고, 또 상냥하게, 그렇게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 조금씩 멀어지기로 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엔딩에 사람들은 기어코 문장의 주인을 찾아냈다. 도대체 누구기에 이렇게나 절절한 헤어짐을 고백하는지 사람들은 알아야 했다. 철저한 타인의 권리란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오래 된 사진 한 장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들끓었다. 

 

배우 김여주 측, '내 연애의 회고록' 전정국 감독과 과거 연인 사이? "사실 아니다" 

 

 

"여주씨. 끝으로 시청자분들이 가장 궁금하셨을 질문 드릴게요. 얼마 전 '내 연애의 회고록'을 연출하신 전정국 감독님과의 열애설이 연일 화제에요. 영화의 여주인공이 실제 본인이라는 네티즌 의견에 동의 하시나요?" 

 

리포터의 말에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가 싱긋 웃었다. 대본에 없던 질문이였다. 그녀의 매니저가 급히 나서 인터뷰에 관여하려던 찰나 그녀가 입을 떼었다. 그리고 이내 현장에 있던 스텝 모두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전 남친이 워낙 많아서 누군지 찾아봤어요. 이름은 익숙하더라구요. 그렇게 절절할 것 까진 없었는데. 모쪼록 고맙죠 뭐." 

 

징징 울려대는 핸드폰 전원을 끈 여주가 차 시트에 몸을 기대었다. 아까부터 매니저는 누군가와 전화하기 바빴다. 그게 누구인지, 어떤 대화가 오고 가는지 알고싶지 않았다. 그냥 얼른 집으로 가고 싶었다. 무거운 눈두덩이가 점점 내려왔다. 

 

 

영화과의 마지막 기말과제를 한달 앞둔 현재, 연영과의 공통교양 수업인 영화학개론의 쉬는시간은 사냥개가 먹잇감을 찾듯 치열했다. 

 

"선배님 영화 제가 하게 해주세요!" 

 

한국대 예대 건물 지하의 어느 후미진 동아리방. 이름도, 제대로 된 의자도 없는 이 곳에 갓 입학한 1학년 티를 폴폴 풍기는 여자아이 한명이 정국의 앞에 섰다.  

 

얘 뭐래? 

 

정국의 눈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보다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가 궁금했다. 그러나 저 반짝이는 눈을 봐선 일일이 따져 묻기에 귀찮은 대답이 오고 갈게 뻔했다. 

 

"연기?" 

 

"넵 연기과 김여주입니다! 아 참, 참고로 수석으로 들어왔어요! 무려 현역으로!" 

 

애들이 말한 연기과 1학년이 얘구나. 분명 그들이 말한 예쁘고, 스타성 있고, 그래서 제 영화를 빛낼 얼굴은 맞았다. 당장 대답을 기다리는 아이를 물끄럼히 보던 정국이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의 얼굴을 뜯어보는건 영화를 하며 얻은 일종의 습관이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제 얼굴에 닿는 진득한 시선에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정작 당사자는 이러고 있는 시간이 아까웠다. 예쁜거 알겠는데 그래서 뭐. 정국이 제 귀를 후볐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받아줘?" 

 

"네?" 

 

"너 내가 찍을 영화가 뭔지도 모르잖아. 그럼 준비한 연기도 없겠네." 

 

"아뇨 준비한거 있," 

 

"이렇게 대뜸 하겠다고 말해도 다들 얼씨구나 시켜줬나본데, 난 너 같은 거 안필요해." 

 

처음 듣는 거절이였다. 드라마처럼 순식간에 큰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찼다. 얘는 뭘 이런거로 울어. 정국이 당황함도 잠시, 가뜩이나 아픈 머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진동 소리 덕에 더 아파왔다. 분명 캐릭터가 맘에 안든다며 불평하는 김태형의 전화일게 뻔했다. 

 

"안나가?" 

 

녹슬어 열 때마다 소리가 나는 무거운 문을 열어젖힌 정국이 여주에게 말했다. 자존심에 크게 빵꾸난 여주가 발을 구르며 나섰다. 사람한테 너 같은 거라니. 그것보다 이 인간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는 사실이 더 수치스러운 그녀였다.  

 

"야!" 

 

여주가 동아리 방에서 저만치 멀어졌을 때, 정국이 그녀에게 큰 소리로 소리쳤다. 

 

"후문에 영화애들 많아! 정문으로 돌아서 가는게 덜 쪽팔려!" 

 

정국 딴에는 벌개진 눈으로 방금 수업이 끝난 인파를 지나기엔 여주가 학과에서 나름 유명인사였음을 고려한 나름의 배려였다.  

 

"미친 개 또라이 새끼..." 

 

제 욕을 하던 말던 갈 길 가는 정국의 뒷통수가 이렇게나 재수없을 수 없었다. 여주가 쿵쾅거리며 뒤돌아 정문으로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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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ㅁ츄ㅠㅠㅠㅠㅠㅠ배우랑 감독이라니 이런 플롯 너무 좋아요ㅠㅠㅠ
3년 전
독자2
와 같은 성격 너무 좋아요 ㅠㅠㅠㅠㅠ 예상합니다....
3년 전
독자3
와 이 단어들이 너무 부드러워서 좋아요..
3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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