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없는 이곳은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아냐. 난 널 따라갈거야, 민석아.
Aurora Polaris
Episode 1. Blossom-2
written by enae
아무것도 이상한 걸 느낄 수 없었다. 여느때와 같이 평화롭고 상쾌한 아침이었다. 창 밖에선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소리, 높고 높은 푸른 하늘엔 잔잔한 새털 구름, 정원에선 아침부터 신나게 놀고 있는 집 주인분들의 자녀들, 창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 이 모두가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루한은 창문으로 비쳐 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찌푸렸다. 이쯤이면 아침 8시는 되었겠지. 몸을 일으키기 전에 옆에 누워 있을 민석을 찾았다. 손을 뻗어 옆에 있을 사람에게 말했다. 민석아, 좋은 아침. 하지만 옆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오래 전에 일어나기라도 한듯이 따뜻한 온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는 민석이었지만 루한과 함께 살기 시작하며 루한이 일어날 때까진 옆에 있어주던 민석이었는데. 평상시와는 다른 하루의 시작에 루한은 당황했다. 민석아.
설마 씻고 있을까 싶어 방 안에 딸린 작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슬리퍼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루한은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민석아……. 줄라이의 방 안은 온통 장난감 투성이었다. 옆 방 에이프릴의 방에선 아이가 곤히 자고 있을 뿐이었다. 민석아! 일층으로 잽싸게 뛰어 내려갔다.
"아주머니, 민석이는요?"
"못봤는데 방에 없니?"
루한이 숨도 제대로 고르게 쉬지 못한 채로 뛰어 내려오자 아주머니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하얀 백금발 머리는 여기저기 헝클어져있었고 옷은 자다 일어난게 분명했으며 슬리퍼도 한 짝만 신은 채로 루한은 아주머니께 물었다. 민석이 본 적 없느냐고. 두 눈엔 벌써 눈물이 맺혔다. 아주머니는 설거지를 하다말고 루한에게 와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빗어 내려주며 대답했다. 본 적이 없다고.
"없어요. 방에없어요……."
"걱정하지마. 밖에 산책 나갔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저 한번도, 두고 간적, 없는데, 어떻게. 숨이 넘어갈 듯 울어제끼는 루한은 어린 아이와도 같았다. 비록 인간의 나이로 치자면 20살이 넘은 성인이고 겉모습도 온전히 성장한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생각과 행동은 마치 어린 애였다. 주인집 아주머니의 셋 째 아들인 열살 난 어거스트와 비슷한 정도일 뿐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걱정말라는 아주머니의 말은 루한에게 아무 도움도 되어주지 못했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디있어, 민석아! 제발 어디간거야……."
평소와 전혀 다를 것 없는 길 위를 달리면서 루한은 생각했다. 어젯밤 민석이 조금 이상했던 것 같다고. 평소에 울지 않는 그가 루한의 품에 안겨서 눈물을 보였다. 항상 말수가 적고 조용하게 생각이 많았던 민석이었지만 어제따라 그에게서 풍겨오는 분위기는 여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알 수 없는 고독 속에 사로잡힌 듯한 그런 모습. 그저 어제따라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이라 믿고 싶었다.
"장난치지 말고! 제발…… 어디있어?"
언제나 따뜻한 마을이었지만 유난히 따스한 4월이었다. 곧 있으면 민석과 만난지 2년이 되는 날이었다. 4월 18일. 이틀 후면 자신의 생일이 있을 날이었다. 민석과 그 북쪽 숲의 어두운 탑에서 만난지 벌써 2년이 되는 중요한 날이었다. 작년엔 서툴러 작은 컵케이크 밖에 만들어주지 못했지만 올해는 더 커다란 케이크를 만들어 주겠다는 민석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맛 좋은 달달한 과일이 잔뜩 들어간. 향긋한 식용 꽃으로 어여쁘게 장식된.
"아!"
서러움에 북받쳐 오열하며 뛰던 중에 커다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무릎이 아려왔다. 그를 만난 후로 한 번도 민석 없이 산적이 없던 루한이었다. 숲 속에서 빠져나와 강을 따라 내려 걸어올 때도 민석은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도 민석은 자신을 안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해 남쪽 숲으로 내려 올 때도 민석은 루한을 보며 웃어줬다.
'나는 너와 함께 있을테니까,'
그렇게 내 곁에서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지켜줄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루한도 그래주길 바라.'
쓸린 상처가, 돌에 찍혀 크게 벌어진 무릎 위 깊은 상처가 더욱더 아팠다. 입고 있던 바지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길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쉴새없이 흐르는 피를 바라보며 루한은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잘 걷지 못해 넘어지면 넌 내 옆에서 항상 약초로 치료해줬잖아……. 나보다 작으면서도 나 아플까봐 힘들게 업어줬었잖아. 또 그래줘야지 어딜간거야. 루한에겐 다리의 상처보단 마음에 생긴 상처가 더 쓰라렸다. 큰 구멍이 생긴것만 같아.
"루한형. 민석이형은?"
"없어……."
피가 흐르는 아픈 다리를 질질 끈 채로 마을 전체를 돌아다녀도 민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모여서 사는 작은 마을이라 모두가 서로를 아는 마을이었다. 사람들이 민석을 알아 보지 못할리가 전혀 만무했다. 하지만 어느 그 누구도 하루종일 본적이 없다 했다. 루한은 엄마새를 놓친 아기새처럼 시끄럽게 울었다. 내 전부를 돌려달라고. 내 세상을.
"없어…… 없다…… 없다……."
주변 사람들이 루한을 보며 괜찮냐고 다독이며 위로를 했다. 숨을 좀 고르라며 꽃차와 과일들을 루한에게 쥐어주었지만 이 모든것도 루한에겐 위로가 될 수 없었다. 민석이만 돌아오면 다 괜찮다고, 다 돌아올 수 있다고. 어거스트가 루한을 걱정하며 다리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었다. 어거스트는 민석이를 많이 닮았다. 하얀 피부에 적당한 볼살에. 아이를 보자마자 루한은 더욱더 서러워졌다. 루한. 괜찮아. 민석이 잠깐 강에 나갔을 수도 있는거고 멀리 안갔을거다. 한번도 그랬던 애 아니잖냐.
"한번도 그러지 않았으니까 지금 더 이러는거잖아요!"
옆집 아저씨의 손을 뿌리치고 루한은 집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설마 아침에 민석이 자고 있는데 자신이 잘못 본게 아닐까 잘못 느낀게 아니었을까하는 기대감에. 하지만 현실은 처참했다. 방 안에 들어서자 눈 앞에 드러난 새하얀 공허함에 루한은 또다시 두려워졌다. 정말 내 곁을 떠난거야? 어딜 갔어?
루한은 결심했다. 마침내 옷장 앞에 섰다. 다시는 어둠 속에서 혼자 있고 싶지 않았는데. 민석이 없는 밝은 세상은 있으나마나 였다. 그런 세상에 자신이 존재하나마나 였다. 옷장을 열고 옷들을 다 빼냈다. 화가 나서 모든 걸 어지럽히는 어린 아이처럼 루한은 자신의 모든 옷들을 뒤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남은 민석의 옷을 껴안은채로 옷장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얼마만의 어둠인가.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어둠 속 안식이었다.
"여보. 민석이가 아직 안들어오는데요. 루한은 그래서 지금 몇시간 째 옷장에서 안나오고 있어요."
"루한오빠 계속 울어."
"시간이 이렇게 됐는데도 들어오지 않는단건 무슨 문제가 생긴게 아닐까요?"
시간은 빠르게 지나 어느덧 선선한 저녁의 기운이 마을로 스멀스멀 기어들었다. 환하게 세상을 비추던 해는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루한이 보지 못하는 세계의 하늘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루한은 옷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단 한번도 잠에 빠진적이 없었다. 그저 민석의 셔츠 한장을 품에 안고서 민석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렸다. 민석아. 지금 여기있다면 어서 여기 있는 나를 구하러 와줘. 2년 전에 네가 그랬던 것처럼.
민석의 셔츠에선 오렌지 향이 났다. 숨을 들이실 때마다 마치 민석의 머리색과도 같은 향이 온 몸에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렌지 향을 맡고 있던 루한은 갑자기 일 년전이 생각났다. 집주인 가족과 민석과 함께 오렌지 청을 만들던 그 때가. 과일을 워낙 좋아했지만 난생 처음 맞보는 레몬청과 오렌지청에 두 사람은 모든 음식을 먹을 때마다 청들을 곁들여 먹었을 때가 있었다. 민석은 노란 레몬청을 더 좋아했고, 루한은 민석의 머리 같다며 오렌지청을 더 좋아했다.
'민석.'
'응?'
'너한테 오렌지 향 나면 좋겠다…… 머리도 오렌지색인데.'
'그게 뭐야…….'
이상하다며 루한을 놀리던 민석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하얀 피부에, 오렌지빛 머릿결에, 평소엔 짙지만 어두워지면 밝아지는 두 금빛 눈도. 모든 것이 밝던 민석이, 루한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나 아직 여기 있으니까 민석아. 나를 찾아와줘. 밖에선 사람들이 외쳤다. 김민석! 민석!
밤이 되어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마을 전체의 민석 찾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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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일주일에 적어도 세 편씩은 연재하려고 노력중입니다. 지금은 초반부니까 빠르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네요. 민석이가 마을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 루한은 어린 아이처럼 방황을 해요. 보고싶다고 울기도 하고 얼른 자신을 찾아달라며 보채기도 하고. 세상 밖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미숙한 루한이에요. 첫번째 에피소드는 대략 3편으로 이뤄질 것 같아요. 가 아니라 그렇네요.
엄청 예전부터 플랜하고 있던 작품이라서 대충 스토리라인은 확실한 것 같아요. 참고로 짤막한 스포 하나 해드리자면 엑소 멤버들이 다 나올 예정이니까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나올지 예상 해보시는 것도 좋은 일일거 같아요. 그래도 혼자 마음속으로만 생각해두기!
원래 배경을 검은색으로 지정해두었었는데 제가 보기엔 좀 읽기 힘들것 같아서... 하얀 배경이 나을지 검은 배경이 나을지 모르겠네요. 어느 배경이 더 나을까요.
먼저 연재하고 있었던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있는 곳"은 오로라 폴라리스를 연재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올릴게요. 흐름이 깨지는게 싫어서... 그리고 단편도 "시체에게 묻는다"처럼 그냥 뜬금없이 올라올 것 같아요. 이야말로 정말 흐름 깨뜨리는 일인 듯... 현재 생각해놓고 있는 소재만해도 수십개라 하나둘씩 연습삼아 써보고 싶습니다.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기법으로... 그저 인기만을 위한 글이 아니라 정말 제가 쓰고 싶은 글들만을 쓰고 싶어요!
제 이름은 "이내"지만 어떤 분이 "에네"라고 읽어주셨는데... 에네도 예쁜거 같지 않아요?... 저 순간 살짝 흔들렸다는... (단순) 어쨌든 이내는 친구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트윈홈에서도 사용하는 닉네임이에요~ 순우릿말로써 해 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이라고 초록창 국어사전님께서 말씀해주시네요. 말그대로 좀 아련한 이름이에요.
음... 암호닉은 언제나 받고 있습니다. 암호닉 신청이라니... 진짜 저에겐 과한... 신청해주신다면 기꺼이, 당연히, 넙죽 절 부터 하고 받을게요! 어느정도 연재하다보면 글이 끝나있겠죠? 그 때 제가 여태까지 쓴 글들 텍스트 파일로 만들어서 보내드릴게요~
언제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빨리 에피소드1, 3화로 돌아올게요! 더욱더 열심히 글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