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새끼.돌아도 단단히 돌았구만.
지원은 앞에 얼굴을 맞댄채 밥을 먹고 있는 준회와 진환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이유인즉슨 자기의 10년지기 부랄친구 구준회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것이다.
원래 구준회는 성급함의 끝.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표본이였다.
특히 점심시간은 구준회의 개같은 성급함이 더욱 심해지는 시간이였다.
룰브레이커답게 빼곡히 서있는 애들 줄은 가뿐히 무시하고 인상을 팍 쓰며 "급한 사람이 먼저 좀 가자"라고 구라를 시전하며 새치기를 하는건 뭐 기본이고 지원과 친구들이 밥을 받고 급식실로 들어갈때 다 먹은 식판을 들고 나오는 그런 엄청난 일상 스피드 광이였던 준회가,2학년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성급했던 구준회가 3학년이 되고나서,아니 정확히 말하면 김진환을 만나고 나서부터 딴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구준회는 우선 밥을 졸라 빨리 먹는다.어릴때 부터 그랬다.항상 빨리 밥을 먹어 해치워버리고는 운동을 하기 좋아하는 또라이였다.
한 번은 그런 구준회가 신기해서 몰래 관찰을 해본적이 있었다.도대체 어떻게 먹으면 저렇게 빨리 먹을수 있나.
지원은 그러고 나서 깨달았다.저 새끼는 많이씩 빨리 먹는 고수구나.먹보 타이틀에 약간의 위협까지 느꼈다.
구준회는 우선 숟가락에 푸는 양 부터가 다르다.숟가락에 넘치도록 아슬아슬하게 푼 다음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린후 그대로 넣는다
그 다음에 볼 빵빵해질 정도로 가득 들어찬 음식물을 한 두어번 씹은 후 그대로 꿀꺽 삼켜버린다.
그에반해 김진환은 존나 느리게 먹는다.전교에서 얘 보다 느리게 먹는애는 아마 없을 것이라고 김한빈을 걸고 말한다.
우선 밥을 풀때도 존나 콩알만큼 푼다.숟가락도 스몰 사이즈로 들고 다니는 주제에 그 숟가락에 반 정도 겨우 채워질 양으로만 밥을 푼다.
그다음에 천천히 숟가락을 가져간후 천천히 우물우물 씹어먹는데 주변에는 왜 그렇게 관심이 많으신지 한 번 씹고 주위 한 번 둘러보고 한 번 씹고 물 한 모금 마시고 한 번 씹고 국 한번 휘적이고 암튼 식사에 집중을 못하는 새끼다.
근데 이런 김진환이랑 반대인,완전 정반대인 구준회가 김진환을 만나고 나서부터 맛이 좀 간것같다.아니 갔다.
우선 개썅마이웨이로 혼자 밥 쳐먹고 축구하러 쌩하니 나가버리던 싸가지없는 과거와는 다르게 줄이란걸 서기 시작했다.
줄서는게 뭐 대수냐 당연한건데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딴 사람도 아니고 구준회다.이건 내가 뚜렷한 겉쌍이 생겨서 학교 공식 왕눈이가 되는것과 같은 희박한 확률에 기적이다.
그렇다고 기다리는 동안 별로 하는 일도 없다.
그냥 항상 멍하니 김진환 정수리만 쳐다보고 있다.병신같이 입을 헤-벌린상태로.
심지어 어쩌다가 김진환이 자기랑 좀 떨어져서 줄을 서게 된다면 화장실좀 다녀온다고 말한후 꼭 다녀와서 기다렸다는 듯 김진환 뒤에선다
이쯤되면 대충 눈치가 오지 않는가?아무리 넌씨눈이라고 불리는 나도 촉이란게 있다.
구준회는 분명...확실히..정수리 연구학과을 가고싶은게 분명하다.
쨋든 그렇게 평범하게 줄을 서고 밥을 받고는 자리에 앉을때도 꼭 김진환 맞은편에 앉는다.
여기서 잠깐 알려주자면 우리는 밥을 먹을 때 나,김한빈,김진환,송윤형,구준회,정찬우,김동혁 이렇게 총 7명이나 먹는다.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그렇기 때문에아무리 김진환 맞은편에 앉고 싶어도 매번 맘처럼 앉기 쉽지 않을텐데 신기하게도 항상 김진환의 맞은편은 꼭 구준회 차지다.
끈질긴 새끼.식판으로 고개를 숙인 김진환의 정수리를 다시 관찰하려는 끈기.짝짝.박수쳐줄만하다.
그리고 또 밥을 먹을 때는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이건 정말 드라마에서 집안빵빵 부잣집 도련님이 가난한집 청순가련 여주인공과 결혼을 하겠다고 깜짝발언을 할 때 뒷목잡고 쓰러지는 부모님이 느끼는 쇼크와 같은 정도의 충격이다.
물론 천천히 정수리를 탐구하려는 생각이겠지만 이유야 어찌됐던 정말 충격이다.
김진환의 맞은편에 앉은 구준회는 숟가락을 쥐고 밥을 풀때는김진환의 숟가락을 힐끔 쳐다본다.그리고는 지도 김진환이랑 비슷한 양을 푼다.니 덩치랑은 안 어울려 새끼야.
자기 숟가락에 반도 안되는 양을 입으로 넣는 구준회도 토나오고 김진환이 씹는 속도에 맞춰 느릿느릿 씹는 구준회도 토나오고 중간중간 김진환이랑 말하면서 입이 찢어져라 웃는 구준회는 더 토나온다.
다른 새끼들은 자라나는 새싹들 답게 열심히 밥을 쳐먹느라 이런 토나오는 구준회를 아직 발견 하지 못한것같다.
오직 관찰력 좋은 나.김지원(19세/눈치100단)만이 구준회의 희망학과를 알아낼수 있었다.
“야,구준회.밥 다먹고 운동장으로 나와”
“즐.밥먹고 뛰면 배땡겨.걍 끝나고 해.”
“지랄하네.1년전 니 모습 보면 입막고 울면서 뛰어가겠다.”
“나이 먹어서 허약해졌다.됐냐?걍 니들끼리해.”
맞아.이럴때도 있다.구준회가 축구를 포기할 때.이 때는 내가 방금 뭐를 먹었는지 다시 확인할수 있는 좋은시간이다.존나 토나오기 때문이다.
구준회가..수업시간에 퍼질러 자면서 잠꼬대나 하는 구준회가,.뭔가에 열정을 갖고 하다니 정말 적응이 안된다..
지원은 자리에 앉아서 생각하고 인상을 구기기도 했다가 헤실헤실 웃기도 하다가 결심을 한 듯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이언 특급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을수는 없어!
지원은 자리에 엎드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있는 중2병 돋는 고3 김한빈에게 다가갔다.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한빈의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 두 쪽을 빼버렸다.
“아 왜”
“야.요새 구준회 좀 이상하지 않냐?김진환 만난후로 말이야.”
“또 뭔 헛소리야”
김한빈이 짜증을 내며 귀에 다시 이어폰을 꽂으려고 하였다.
“들어봐.임마.이번에는 진짜 대박이라니까.”
“뭔데”
“원래 구준회 급식 빨리 쳐먹고 축구하러 나가는건 너도 알고 있지?니도 걔랑 2학년때부터 알던사이잖아.근데 3학년 올라와서 김진환 만난 이후로 이상하게 줄서면서 김진환이랑 시시덕 거리고 밥도 김진환 먹는 속도에 맞춰 먹고 그러는거야.돌은거지.그래서 내가 관찰해봤는데,”
“좋아하네”
“뭐?”
“구준회가 김진환 좋아하는거잖아.딱 보면 모르겠냐?모쏠 눈치 지리네”
한빈은 다시 이어폰을 끼고 책상에 엎드렸다.
에이..야 설마.
지원의 머리가 제야의 종이 한 7번 정도 울린 듯 멍해졌다.
그제서야 준회의 말이 이해가 갔다.
그래 정수리라면 나도 있고 김한빈도 있고 김동혁도 있고 만수르도 있고 다 있는데 왜 하필 김진환...아니다.우리 정수리 냄새 정 떨어진다고 저번에 말했던거같은데.높이도 김진환이 딱 보기 좋은 사이즈고.에이 뭐야.그런거네
근데 그럼 김진환 한테만 활짝 웃고 입에 묻은 밥풀 떼어주고 스킵쉽이라면 질색하는 새끼가 막 스킨쉽 하고 그랬던거는?
그것도 정수리 관찰을 위한 아부겠지.
지원은 한번도 틀린적 없었던 자신의 추리가(지극히 주관적인 지원의 생각) 틀렸을리 없다고 부정했다.
다른애도 아니고 구준회인데..연애에 조또 관심도 없는 새낀데..
지원이 한참 멘붕상태에 빠져있을 때 드륵-하고 뒷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준회와 진환이 들어왔다.
얼씨구.김진환 뒤에서 안고는 좋다고 웃고 있으니 한빈의 말이 더욱 그럴싸하게 들린다.
설마..구준회 너 진짜..
“구준회.너 김진환 좋아해?”
“..뭐?”
“아니지?니가 게이일 리가 없어.아니지?빨리 아니라고 말을 해봐.”
왜 대답을 못해.왜 얼굴이 빨개지는건데
시발.반에 커퀴가 하나 더 늘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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