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 창고와 주인장
그는 고물상을 겸한 전당포를 운영했다. 주차장만치 너른 마당에는 온갖 철고물들이 쌓여있고 한 편에는 DK-2177 구형이 주차돼 있다. 누군가 전당포로 맡긴 건지 고물로 팔아넘긴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곳. 낮이면 가게 안에서 돌아가는 턴테이블이 20세기와 21세기 유행가들을 틀고, 저녁이면 앞마당 중앙의 엉성한 나무 패대기에 모닥불이 피워지는 곳. 이 근방 구역 사람들은 그곳을 ‘창고’라고 불렀다. 그리고 저 DK-2177 구형의 보닛 위에 잠들어 있는 자는 창고의 주인장.
태, 주. 성 없이 태주. 사람들은 그를 주인장이나 ‘주’라고 불렀다. 성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거나 묻지 않는다. 정보가 돈인 세상에서 그럴 수가 있나. 창고는 모든 정보가 거쳐 가는 곳이고, 주는 이곳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물건을 맡기고 돈을 받아가는 사람이나 고물을 팔고 돈을 받아가는 사람이나 그 돈의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이 철칙. 이를 지킬 자신이 있는 사람만이 창고에 들를 수 있다.
그 날도 누군가 주의 영업장에 들어왔다. 계십니까, 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잠들어 있는 주는 듣지 못 했다. 손님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왔다. 턴테이블은 돌아가고 있고 간판은 OPEN을 껌뻑이고 있다. 손님은 주위를 쭉 훑었다. 보닛 위에 처자고 있는 주가 보였다. 손님은 다가가서 보닛을 두드리고 다시 우렁차게 소리쳤다.
“오늘 영업 안 합니까!”
“아 씨발 깜짝이야.”
주는 아주 평온한 목소리로 욕을 뱉었다. 몸도 안 일으키는 모습에 손님이 어이없단 듯 웃었다. 소문대로 지맘대로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뭐, 찾으러 왔어? 아님, 맡기러?”
“둘 다인데.”
“비싼 건 안에서 거래하고 안 비싼 건 밖에서 거래한다. 먹을 거 안 받고 보석은 보증서 있는 거 아니면 안 받어. 뭐 가져왔는데?”
“찾는 거 먼저.”
손님이 잘 빠진 스카쟌 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낸다. 멀끔한 겉봉에 비해 속에서 나온 종이는 낡은 것이었다. 주가 보닛에서 내려와 종이를 받았다.
『 대 한 제 2 국 소 탕 작 전 합 류 동 의 명 단 』
워낙 낡고 바랜 종이라, 아래 명단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마지막에 적힌 이름만 육안으로 겨우 구분할 수 있을 정도.
“여기 동의한 사람들을 찾는데.”
“장난이겠지?”
“당신 찾으러 온 사람 중에 장난치러 오는 사람도 있습니까?”
주가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 손님을 살폈다. 적갈색 머리가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견고하면서도 단단한 몸집이 스카쟌 밖으로 삐져나왔다. 몸의 움직임이나 말투에서 묘하게 기시감이 들었다.
“맡기는 건 이거고. 찾는 건 여기 명단 사람들이라는 건가?”
“잘 아시네.”
“요즘 복원술이 귀하다는 건 알고 있지? 더군다나 이 다 낡은 종이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도.”
“그걸 당신이 한다는 것도 알고.”
“그럼 얼마나 비싼지도 알겠네?”
“돈보다 더 귀한 정보를 넘기면 되려나?”
주가 잠시 얼어 있다 웃었다. 푸하하! 배를 잡고 몸을 휘청이면서. 선글라스를 벗고 눈물이 비져 나올 정도로 크게 오랫동안 웃었다. 손님은 주가 웃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그 태도가 꽤나 여유로웠다.
“나한테, ‘정보’가. 값이 될 것 같아?”
이곳에서 주보다 많은 정보를 아는 이는 없다. 주도 그걸 알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웃음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전정국.”
“…….”
“그 사람이 이 명단에 있는데 말이야.”
주가 옆에 세워둔 쇠파이프를 들었다. 순식간에 벽 쪽으로 손님이 포박되었다. 목을 압박하며 물었다.
“너 누구야.”
“어디서 얻은 정보인지, 궁금하지 않아?”
“누구냐고!”
“전정국, 이랑, 같이, 일했었지.”
그 말에 주가 파이프를 내려치듯 바닥에 떨궜다. 와중에 컥컥거리던 손님이 웃으며 쳐다본다. 주는 미세한 몸의 움직임과 걸음걸이, 가끔씩 내비치는 말투에서 기시감 느꼈던 것을 떠올렸다. 마음에 안 든다는 기색을 잔뜩 표하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너 어디서 왔어. 소관을 대라.”
“그 명단에, 나도 있었다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주가 다시 종이를 쳐다봤다. 다행이 얌전히 바닥에 떨어져 더 구겨지지는 않은 채다. 맨 아래에 육안으로 살펴 볼 수 있는 유일한 글자, ㅈㅎ석.
“VUS 부대 사령관, 정호석. 입니다만.”
주와 호석의 시선이 맞물렸다. 옛날에 크게 유행했다는 가수의 노래가 턴테이블을 도는 소리만, 가게 안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