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환은 아까부터 딱 죽을 지경이었다. 쿡쿡 아려오는 허리와 따뜻하게 목욕도 했겠다 딱 침대에 쓰러져서 잠이나 자고 싶다는 생각이 아까부터 강하게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한국에 온 건 두번째라더니 뭐가 그렇게 신기하다고 작은 자취방을 그렇게 쥐잡듯이 뒤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꾸만 내려오는 눈꺼풀에 힘을 딱 주고 쑨양을 쳐다보려해도 자꾸 슬금슬금 감기는 눈은 어쩔 수 없다.
*이...이거..태환이 쓰는 칫솔이야?*
언제 또 욕실로 들어갔는지 제가 쓰는 파란색 칫솔을 쥐고 도도도 뛰어나오더니 지치지도 않는지 생기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다. 대체 무엇에 감격한건지 볼은 상기된채로 얼씨구 말까지 더듬으신다.
*야 이 바보야!! 당장 안 빼? 뭐해!*
비실비실 천치같은 웃음을 흘리면서 칫솔을 이리 한 번 저리 한 번 둘러보더니 냉큼 입 안에 집어넣고 씩 웃는다. 감히 남의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것으로 모자라 이젠 칫솔까지? 하는 생각에 한숨을 푹 쉬자마자 이제는 또 부엌에서 혼자 방방거린다.
작은 통에 담겨있던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안그래도 큰눈을 부담스러우리만치 꿈벅꿈벅 거리며 *이..이것도 태환이 쓰던거야?* 하면서 또 슬금슬금 제 바지 주머니에 넣는다. 물론 그 바지 주머니에는 아까 저를 소리지르게 했던 파란색 칫솔과 그 전에 또 넣었는지 제 어릴 때 사진이 담긴 작은 액자가 빼꼼히 보인다.
*왜 자꾸 남의 걸 들고가!! 딱 여기 놔둬!!*
*싫어! 내가 몇개 들고갈거야! 태환은 많이 있잖아!*
*네가 뭔데 내걸 들고가아아!! 더럽게 자꾸 입에 넣지 말고 내놔!*
얼굴이 갑자기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말이 없다. 혼자서 비시시 웃다가 갑자기 또 당당히 고개를 치켜들더니 *난! 태환이랑 비밀연애하니까!* 당당하게 외친다. 제가 외치고 뿌듯하다는듯 칭찬해달라는 어린아이 마냥 입을 단정하게 다물고 눈에 힘을 주고 똘망똘망하게 저를 바라본다.
*웃기시네. 빨리 안 내놔?!!*
허리가 아파서 차마 일어나지는 못하고 계속 갈라지는 목소리로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봤자 힘들지도 않은지 그 큰 키로 풀쩍풀쩍 뛰며 집 안을 헤집고 다닌다.
*태..태환의 집에는 가져갈게 많아...사진 더 없어?*
*하아....사진은 무슨 사진이야. 그냥 좀 있어, 안그래도 머리 아픈데 더 징징거리게 하지 말고.*
양 손에 쥐고 있던 숟가락과 칫솔을 툭 하고 쨍그랑 거리는 쇳소리가 둔탁하게 바닥과 충돌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슬쩍 들자 부산스럽게 양 팔을 퍼덕거리며 저 쪽으로 빠르게 뛰어온다. 무섭다. 저 키로 파바밧 뛰어오는 꼴이 가히 위협적이었다.
*태환, 머리 아파? 응?*
*그래, 그래 그러니까 조금만 조용히 하자, 응?*
*진짜..아파? 많이?*
금새 축 가라앉은 목소리에 이건 또 왠 오반가 하는 생각과 나름 귀염성있는 모습에 속으로는 피식하는 웃음이 터진다.
*아, 그냥 요즘들어서 이런거니까 괜찮아.*
*진짜 괜찮아? 나 때문에..그런거 아니지? 그치?*
계속 죽죽 처지던 목소리가 이젠 물기까지 머금었다. 다소 당황스러운 기분에 눈을 떠야겠다고 생각하자 마자 볼에 축축하게 물이 떨어진다. 불규칙적으로 투두둑 떨어지는 물방울에 놀라 눈을 뜨자 툭툭 눈물만 떨궈내는 사내의 모습이 눈 안에 가득 찬다.
*왜..왜 울어!*
*태..태환이 아프다며....*
*아 정말, 뭘 그런걸 가지고 우냐 또.*
닦을 생각도 않고 계속 눈물만 툭툭 떨궈내면서 저를 빤히 쳐다본다. *많이 아파?* 다정스레 물기어린 목소리로 물어온다. 미안한 마음인건지 쭈뼛대는 모양새가 딱 초등학생의 소년이다.
좋아하는 같은 반의 여자아이를 괜히 넘어뜨려 소녀가 새로 입고 왔던 예쁜 분홍빛의 원피스를 진흙탕물 범벅으로 만들어 놓고서는 그 옷을 부여잡고 엉엉 서럽게도 울어대는 소녀의 옆에 가서 쭈뼛쭈뼛 어깨를 톡톡 치고 발간 눈동자로 저를 쳐다보는 소녀에게 조막만한 고사리 손으로 학교오기 전 엄마에게 받아와 아껴두었던 달큰한 막대사탕을 쥐어주고 도도도도 뛰어가는 소년 딱 그짝이었다.
두살이나 어리다는게 여기서 드러나는건가 싶어 살풋 웃으며 머리를 콩하고 쥐어박았다.
*이그! 그냥 평소에도 이러는거야. 너 때문에 그런거 아니니까 뚝! 하자 뚝!*
7살난 어린아이를 달래는 엄마마냥 뚝뚝 거리는 저를 슬쩍 눈으로 흘기더니 그제서야 손으로 눈물자국을 닦는다. 멀쩡한 제 손을 놔두고 왜 남의 손을 가져가 닦는지는 미지수이다.
*놀랬잖아. 그런 말 막 하지마.*
*뭘 그런걸 가지고 풀이 죽고 그러냐. 일로 와.*
여전히 제 옆에 다가오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사내의 팔을 끌어 제 옆에 눕혔다. 제법 큰 쇼파였음에도 다리 끝이 덜렁 남아 공중에 붕 뜬다. 작은 머리통을 무릎 위로 얹혀놓고 아직 축축하게 젖어있는 볼을 쓸어내렸다. 사소한 일로 울지 말라는 다정한 충고도 함께였다.
*처음 태환 숙소 갔을 때 생각난다.*
*그 때 얘기 하지마. 창피해.*
*그 때처럼 머리 쓰다듬어줘. 이번엔 잘한 건 없지만 그래도 해줘.*
그러고는 눈을 슬쩍 감는다. 동양계열에 속하는 중국인 답지 않게 동그랗게 크던 눈이 감기고 그 자리를 가지런히 내려앉은 속눈썹이 대신했다. 오밀조밀 빽빽하게 자리한 속눈썹을 한 번 쳐다보고 손을 들어 머리로 향했다. 새카맣던 머리칼, 그 첫날 제 숙소에 들어와 쓰다듬어달라 더듬더듬 말하던 그 기억이 떠올라 슬쩍 머리칼을 헤집어본다. 그 때와 다름없이 여전히 부드럽게 감겨오는 머리칼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아, 기분 좋다. 태환 손 좋아.*
*나도. 쑨양 좋아.*
좋기만 하랴. 좋은 걸 넘어서서 미칠 지경이다. 눈만 마주해도 볼이 붉게 달아올라서 화끈해지고 눈동자는 제 갈 길을 잃고 데굴데굴 굴려진다.
고개를 들어야 마주볼 수 있는 작은 얼굴이 참 좋다. 유독 보드랍고 하얀 피부도 오밀조밀하게 자리잡은 눈코입도 그 중에서는 항상 저를 바라보는 눈이 입이 맞닿을 때마다 슬쩍 스쳐지나가는 코도 다정하게 닿아오는 약간의 까슬한 감이 없지않아 있는 붉은 입술이 좋다. 길게 잘 뻗은 팔다리가 제 허리라던지 몸을 감싸안아올 때 미칠듯이 뛰어오는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넓은 가슴팍에 제 머리를 갖다댄채로 부드럽게 감겨오는 머리칼을 만질 때 마다 귓가에 크게 울리는듯한 심장소리에 괜히 제 심장소리가 신경쓰인다.
그와 더불어 괜히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언제 이 관계가 끝날지 막연히 끝도 없이 그저 나아가기만 해야하는 관계인건지 남들이 보기에는 서로 이겨야할 라이벌, 혹은 막연한 우상과 그것을 따르려는 관계.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관계는 무엇인지 저로써도 알 수가 없다. 이대로 쑨양이 중국에 가게 된다면 자신들의 관계는 이대로 끝인건가, 직접 보지는 못해도 괜히 사람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감정만을 가지고서 관계를 유지해나갈까. 아직 어리고 이제 뜨기 시작한 샛별과도 같은 쑨양과 저는 다르다. 아직 몇번의 세계 선수권과 아시아 대회, 올림픽에도 참가할 수 있는 어린 사람과 이제 슬슬 은퇴를 바라보는 저와는 다르다. 저의 은퇴 이후에는 서로 볼 수도 없는 설화의 견우직녀가 되는 것은 아닌가. 온갖 쓸데없는 걱정들이 머리 속을 헤집는다.
*왜 그래?*
어떻게 또 본건지 슬쩍 미간에 주름을 잡고 인상을 찌푸리자마자 큰 손이 제 손을 잡아온다. 동그랗게 뜬 눈이 선한 눈빛을 하고 저를 바라본다. 그 눈빛 앞에서는 뭐라 불평불만 하나도 털어놓을 수가 없다. 결국은 슬며시 입으로만 웃어보였다. 그럼에도 계속 눈을 마주봐오는 선한 눈동자에 결국 고개를 숙히고 눈을 떨굴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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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분이 좋답니다ㅠㅠ하지만 학원 숙제도 해야하고,,학교 숙제도,,나름 특목고 지망생이라 걱정도 되고ㅠㅠ소설은 또 쓰고 싶고ㅋㅋㅋ
제가 찾던 독자님들 중 두분 중 한분을 찾아서 오늘은 기분이 좋아요! 납치범님이랑 한 분은 아직 찾지를 못해서...ㅜㅜㅜ
빨리 나타나 주셔요ㅠㅠ
아, 그리고 새로 암호닉 신청하신 분들! 잘 부탁드립니당)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