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야, 화보 하나 찍을래?"
박찬열도 나도 비수기라 우리 집에서 편히 쉬면서 지내고 있는데, 매니저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화보 촬영이라...... 단독이야? 내 질문에 언니는 아니, 신인 모델 김종인인가? 하고 대답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박찬열이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다. 요즘 뜨는 모델인데, 인터뷰에서 나를 이상형으로 꼽은 적이 있다. 어디 화본데?
"엘르."
"헐, 야 찬열아 엘르래. 찍는다?"
"아, 진짜 마음에 안 들어, 김에리."
"언니, 찍을게. 언제야? 이번 토요일? 알겠어."
전화를 끊고 박찬열을 쳐다보자, 뚱한 표정으로 앉아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야, 얼글 좀 보지? 내 말에 끄덕도 않고 휴대폰만 쳐다본다. 얼굴을 잡고 마구잡이로 뽀뽀를 하자, 웃더니 끼부리면 죽는단다. 알겠다고, 촬영만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웃었더니 약속 하면서 손을 내민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지 하며 비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토요일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고, 박찬열은 자기도 가면 안 되겠냐고 찡찡 거렸다. 말이야, 똥이야. 손을 저은 뒤, 휴대폰을 챙기고 갔다 올게 하고 인사를 한 뒤, 손키스를 날리자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보인다. 귀여운 새끼.
촬영장에 도착해서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아있는데, 감독님이 오시더니 모델 분이 앞에 촬영이 조금 딜레이 되는 바람에 30분 정도 기다려야 오실 거 같다는 말을 전한다. 네,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하고 웃은 뒤, 휴대폰 화면을 켰다.
[촬영해?]
[ㄴㄴ아직 안 옴. 앞 촬영 딜레이래.]
[군기가 빠졌네.]
[웃기고 있네.]
박찬열과 문자를 하다 보니, 30분은 금방 지나갔고 패딩을 입은 남자가 터덜터덜 걸어오더니 소리 없이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밝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는 남자다. 감독님이 오시자, 패딩을 벗더니 손을 내밀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다. 김종인이네, 말이 없는 타입인가?
촬영 컨셉을 받아 들고 메이크업을 받으러 대기실로 이동했다. 스타일리스트 언니와 코디 언니에게 요즘 일이 없어서 쉬는 건 좋은데, 너무 심심하다며 투정을 부리다가 매니저 언니가 들어오는 걸 보고 입을 닫았다. 이 말을 들었다면 폭풍으로 스케줄을 진행할 걸 알기 때문이다. 메이크업이 끝나고 의상 피팅도 끝낸 다음 촬영장으로 나왔더니, 김종인은 이미 카메라 앞에 서있다. 가볍게 눈으로 인사를 한 뒤, 나도 그 옆에 섰다.
"둘이 조금만 더 가까이 설게, 오케이."
"팔을 좀 더 뒤로 할까? 넥타이 좀 더 풀고."
"개구진 표정, 좋아. 그대로 컷."
촬영이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연예 프로그램 카메라가 다가왔고 나는 익숙해서 반갑게 인사를 건냈지만 김종인은 어벙벙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리포터 분은 내 팬으로 유명하신 분이라 나한테 근황과 이것저것을 물으시더니, 김종인을 보며 죄송하다고 제가 너무 흥분해서 하고 끝말을 흐리시며 사과를 하셨다.
"종인 씨는 급부상 하고 있어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잘 모르겠습니다."
"아... 화보 촬영 이외에 다른 활동은 하지 않으시는데 이유가 있으신가요?"
"화보 촬영이 제일 편해요, 이런 방송 카메라는 아직 익숙치가 않아서."
정말 말이 없는 타입이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김종인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난 미소를 잃지 않고 리포터와 김종인을 번갈아 보면서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상형으로 에리 씨를 꼽았는데, 이유가 있나요?"
"티비에서 봤을 때, 예쁘고 매력있다고 생각했어요. 대부분 다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나요?"
"그렇죠, 저도 에리 씨 팬입니다."
"감사해요."
인터뷰가 끝난 뒤에, 리포터 분이 컴백에 대해 물으시기에 곧 하니까 기대해달라는 말을 전하고 조심히 가세요 하며 촬영팀 전체에게 인사를 했다. 김종인은 벌써 대기실로 들어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대기실로 들어와 화장을 지우면서 휴대폰을 켰다.
[싸가지 없어.]
[너보다?]
[죽을래? 음 싸가지 없다기 보단 말이 없어.]
박찬열과 문자를 주고 받다가 피팅룸에 들어가 원래 입고 왔던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을 본 뒤, 대기실을 나왔다. 스텝분들께 인사를 한 뒤, 나가려고 하는데 김종인이 내 팔을 잡는다. 최대한 상냥하게 뒤돌아보자 휴대폰을 내민다. 네? 하고 쳐다보자, 피식 웃더니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란다.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자, 주셨으면 좋겠는데? 란다.
조졌네, 생각보다 끈질기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 하고 최대한 빨리 계단을 올라왔다. 바로 보이는 차에 최대한 빨리 탄 후, 출발하라고 매니저 언니를 재촉했다. 언니는 출발 하면서도 왜 그러냐고 물었고, 나는 김종인한테 번호 따일 뻔 했다고 말했다. 언니는 웃으면서 네가 남자친구한테 그러는 거 알면 다 도망갈텐데 하고 웃었다. 나는 그런 언니에게 그건 박찬열 한정이고 하며 고개를 저었다.
"여보세요?"
"촬영 끝남?"
"어, 번호 따일 뻔."
"미친? 번호 줬냐?"
"줬겠냐? 또라이야. 나도 예의는 지킬 줄 알아."
티격태격하는 소리를 듣더니, 매니저 언니는 한숨을 쉬었고 나는 그런 언니에게 윙크를 했다. 언니는 웃더니 운전을 계속했고, 나는 박찬열과 말싸움 아닌 말싸움을 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는데 매니저 언니 휴대폰이 울린다. 언니는 블루투스 연결을 하더니, 전화를 받았고 네, 매니저님 무슨 일이세요? 하고 말했다. 언니의 휴대폰 화면을 보니 김종인 매니저라고 찍혀있다.
"다름이 아니라, 종인이가 에리 씨 번호를 궁금해해서요. 곤란하겠죠? 저희도 이런 게 처음이라."
"아, 죄송합니다. 저희도 곤란해요. 제가 나중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언니는 전화를 끊더니 날 보고 웃으며, 야 네가 진짜 마음에 들었나봐 하며 놀렸고 나는 하지 말라고 얼굴을 가렸다. 뒤에 앉아있던 메이크업 팀 언니들도 웃으며 이런 일은 오랜만이라며 웃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린 뒤 열린 차창에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잘 가요, 언니들~ 하고 손인사를 하고서야 엘리베이터를 탔다. 집에 도착해서 들어가자 박찬열이 쪼르르 달려나오더니 왔어? 하고 나를 반가워했다.
"반가워?"
"뭐래."
"네 표정이 그래 지금."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뒤, 화장까지 지우고 나오자 박찬열이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비빈다. 하지마, 얼굴 빨개져 하고 밀어내자, 보는 사람도 없는데 하더니 계속 비빈다. 결국 힘을 써서 밀어낸 뒤에야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박찬열이 화보촬영에 대해 안 묻기에 얘기를 다 하자, 내가 가지 말랬잖아 하고 소리를 친다. 아, 진짜 귀 찢어지겠다. 목소리도 낮아서 더 귀 아프다.
"아 씨발."
"왜 욕이야."
박찬열이 자기 휴대폰 화면을 나한테 내민다.
[찬열아, 너 아직 에리 만나?]
[종인이가 에리 연락처 물어서.]
박찬열은 사귀니까 절대 알려주면 안 된다고 답장을 보낸 뒤, 나를 째려봤다.
"야, 내가 가지 말랬지?"
"난 거절 했다? 매니저 언니한테 전화해? 끼 안 부렸어, 연예가중계에서도 촬영 나왔었는데 내가 미쳤다고 그랬겠어?"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짜증나게."
"말 이쁘게 해라."
이러다가 싸울 거 같다. 싸울 거 같으니까 그만하자 했더니 뭘 그만 하냐고 묻는다. 하, 진짜. 못살겠다. 매일을 싸워야 직성이 풀리나. 결국 대판 했다. 나는 방에서 박찬열은 거실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매니저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나한테 나오라고 한다. 안 나가!!! 내가 소리지르자, 박찬열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나와 하고 내 손을 잡고 거실로 끌고 나온다.
"아는 척 하지마."
"미안."
"뭐라고?"
"미안해!!!!!!!"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매니저 언니는 우리를 보고 너네 초등학생이냐? 하고 물었고, 우리는 서로 자긴 아니라며 서로를 가리켰다. 매니저 언니는 웃더니, 스케줄이 적힌 종이를 주더니 하기 싫은 건 선으로 그으라고 말하곤 펜도 건낸다.
"이거, 이거 안 돼."
박찬열이 고른 건, 남자 아이돌과 같이 하는 카페 광고와 화장품 광고였다. 매니저 언니는 힐끔 보더니, 스킨쉽 없고 서로 따로 촬영하는 거라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박찬열은 수긍하더니, 그럼 찍어 하고 다시 동그라미를 쳤다. 매니저 언니는 그러면 이대로 넘긴다? 하고 말했고, 나와 박찬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네 싸우지 말고 있어라, 이따 한 번 더 온다."
"네~ 언니 잘 가."
"조심히 가세요."
"너넨 왜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냐."
언니는 고개를 저으며 숙소를 나갔고, 박찬열은 웃으면서 오늘은 내 잘못이니까 사과할게 라면서 손을 내밀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착해졌대?"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철 들었나봐."
나는 손을 뻗어 박찬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