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 Lost Star
눈에서 렌즈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눈부신 조명.
그 조명 아래에서 무대를 반짝반짝하게 닦기 위해 걸레질을 하는 다른 스텝들.
나는 그 스텝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서있었다. 내 옆에서는 코디 언니들이 메이크업과 헤어를 매만져주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무대 위에 올라갈 차례이다. 내 뒤에 있는 다른 멤버들은 이제 긴장도 되지 않는지 거울을 보며 앞머리를 또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오늘도 무대는 립싱크였다. 하지만 라이브인 척을 하기 위해서라도 마이크를 들고 올라가야했다.
뭐. 어차피 상관없었다. 3분에서 4분가랑되는 노래 중 내 파트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으니까. 또 그 노래 마저도 2분대로 반토막났을게 뻔하니까.
무대 위에 올라서자 멀지 않은 곳에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팬들이다.
팬들은 다들 슬로건 또는 플랜카드를 들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많은 풀랜카드 중 내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 이름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정연이의 이름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 나는 무명 아이돌이었다.
무명 아이돌도 연애한다.
01
w. 복숭아 향기
무대는 늘 그랬듯이 심심했다. 정연이가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나는 그 뒤에서 춤만 추면 되니까.
가끔 카메라가 다가오면 애교 섞인 듯한 윙크나 손뽀뽀를 날려주는 것은 기본이었다. 사실 이쯤되면 내가 가수인지 댄서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언니. 배 안고파요?"
인기가 가장 많음에도 아니 사실 우리 그룹을 이끌고 가는 거의 유일한 멤버임에도 불구하고 정연이는 참 싹싹했다.
나는 정연이를 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 직업을 갖고 난 이후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장점이 있다면 식욕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서 젓가락 다리로 또각또각 걸어다니는 멤버들이 있으니 어찌 식욕이 나겠어.
지금껏 말랐다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나도 간단하게 44사이즈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으니 참 슬프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정연이는 팬들에게 받은 도시락 인증 사진을 찍으러 대기실로 달려갔다.
다른 멤버들 역시 오늘은 무슨 반찬이 있나 구경하러 같이 달려갔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벽에 기대섰다.
지금 들어가봤자 좋은 소리는 못들을게 뻔했다. 정연이 옆에 있으면 있을 수록 비교되는 사람은 나였다. 조금 있다가 들어가야지.
가만히 대기를 하고 있다보니 어느새 다른 선배들 무대가 하나둘씩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좋겠다. 우리는 아니 나는 언제 저렇게 뒤에 사전녹화를 깔끔하게 마치고 나서 티비에 모습을 비칠 수 있을까. 아니 티비에 나오는 것도 감사해야하나.
나도 모르게 바람빠지는 듯한 픽 하는 웃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까 우리가 무대에 올랐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시작했나보다. 무대를 힐끗 보니 올라간 가수는 방탄소년단이었다. 이번에 1위 후보라고 하던데... 나는 씁쓸한 침을 꿀꺽 삼키며 무대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이상한 사진이라도 찍힐까봐 벽에 기대고 서있던 몸도 제대로 자세를 갖췄다.
아무리 무명이라지만 건방진 듯한 사진을 찍히면 안되니까. 잘못하면 승승장구하고 있는 정연이 미래까지 망칠 수도 있었다.
5명으로 알고 있었는데 무대에 올라간 사람은 4명 뿐이었다.
누가 없는 거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다 그제야 알아챌 수 있었다. 제이.. 홉이었나?
아무튼 거의 센터에서 춤을 추던 그 분, 혼자 말하니까 그냥 말해야지.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 발목에 부상을 입어 입원을 했다는 기사를 얼핏 본 것도 같았다. 사람이 아프면 기사도 나는구나.. 하면서 신기해했기에 기억을 할 수 있었다.
사람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티가 얼마나 많이 날까 했는데 아무래도 무대가 평소보다 비어보이기는 했다.
다른 6명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온전한 무대에서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되더라도 저렇게 많은 표시가 날까? 당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답은 no 였다.
노래 파트도 거의 없겠다, 춤도 대부분 정연이 뒤에 딱 숨어서 추겠다 티가 날리가 없잖아. 나는 무대를 뒤로 하고 대기실 복도 안으로 들어갔다.
계속해서 선배들 무대를 보고 있으면 오히려 내 자존감만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
무대 아래도 그렇지만 대기실 안은 더욱 복잡했다.
걸그룹들은 헤어와 메이크업을 수정하느라 바빴고 남자 그룹들은 다시 한 번 안무 점검을 하느라 바빴다.
중간중간 게임을 하느라 바쁜 사람도 있었다. 바로 여기. 내 옆에.
"왜 이제 와요?"
쇼파에 걸터 앉아서 게임을 하던 은영이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작게 저을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은영이도 그저 형식적인 질문이었는지 별다른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어차피 오늘 이 스케줄이 끝난다고 해서 바로 숙소로 가는 것도 아니고 연습실로 직행을 해야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기는 싫었다.
방송국에 있을 때면 내가 더더욱 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그랬다.
나 원래 이런 애 아니였는데... 성이름. 성질 많이 죽었다. 중고등학교 때 까지는 진짜 안이랬는데...
나 화장실.
짧게 말을 하며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처음 데뷔했을 때는 화장실도 다같이 가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것도 다 사치인가보다.
아니면 나한테 다가올 사람이 없다고 다들 판단을 했던가.
내가 보기에는 후자.
화장실까지 가는 길도 뭐 이리 긴건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이따 코디한테 한소리 듣겠네.
무거운 하이힐을 이끌고 겨우 화장실에 도달했을 때 갑자기 누군가 내 팔목을 확 끌어당겼다. 누구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돌려보자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처음보는 하지만 키도 덩치도 매우 작은 한 여자아이였다.
교복을 입고 있는 걸 보면... 중학생? 아니면 고등학생?
"누, 누구세요?"
"저... 언니... 이거..."
아이가 나에게 내민 것은 다름아닌 음료수였다. 연예인들이 많이 먹는다고 선전하는 비타민 음료.
이걸 나한테 왜 주는 거지? 정연이 갖다 주라는 건가보다. 나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아이가 주는 음료수를 받아들었다.
"고마워요. 정연이한테 잘 전해줄게요."
"그, 그거 정연 언니꺼 아닌데..."
"네?"
"정연이 언니 말고... 언니꺼에요... 언니 마시라고 제가 사온 거에요..."
"아, 아... 네... 고마워요."
처음이었다. 아마 데뷔를 한 이후로 처음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팀 단체로 선물을 받는 거 말고 혼자 선물을 받은게.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별 거 아닌데... 그냥 편의점에서 2000원만 주면 살 수 있는 그런 음료수인데...
나는 애써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아이는 왠지 모르게 긴장을 했는지 교복치맛자락을 그러쥐고 있었다.
"정말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다른 언니들 주지 말고 언니 혼자 먹어야 해요. 알았죠?"
"알았어요."
내가 대답을 하자마자 아이는 반대편으로 멀리 뛰어가버렸다. 나풀나풀한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나는 비타민 음료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이따 연습하다가 목마르면 먹어야지. 오늘 저녁도 안먹어서 배고팠는데 먹을 게 생겨서... 음... 다행이었다.
사실 배가 좀 고팠는데 말이다.
-
[민피디]
- 어디야
- 말이 짧아진다
- ㅡㅡ
까라고 한 사람이 누군데 -
- 오늘도 밥 안먹었어?
- 굶었지?
남이사 -
만날 밥 안먹는 사람이 누군데 -
애인님이 걱정해요 -
아저씨 -
- 뒤질래?
- 아저씨 아니라고
- 미친년아
애인 있는 거 부정은 안하네 -
어우 -
커퀴 -
- 뭐 씨발
됐어 -
나 연습실 가 -
오늘도 연습 -
- 피곤하겠네
- ㅅㄱ
카톡 왜 했는데 -
- 밥 먹으라고
- 굶지말고
나도 오늘 먹을 거 있어 -
알아서 잘 먹어 -
- 지랄
이 새끼를 죽여 말아...
나는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이 새끼한테 카톡 온 거를 받아준 게 잘못이지.
나름 신비주의랍시고 어디 가서 얼굴도 안보여주는 놈인데 그냥 기자들한테 얼굴 뿌려버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애써 참아냈다.
그 신비주의로 먹고 사는 놈이었다. 그러니 나한테 가끔 밥도 사주고 그러지.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다른 멤버들을 모두 자고 있었다. 이상하게 딱히 스케줄이 많은 것도 아닌데 늘 늦은 시간에 우리는 연습실로 향했고 늘 수면시간이 부족했다.
그런데 좋은 피부 좋은 몸매 좋은 머릿결을 유지하라니... 회사도 가끔은 머리가 없는 사람들만 모아놓은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쩌겠어. 우리는 힘없는 을인데.
연습실에 도착하려면 한 10분 정도 남아있었다. 자기에는 좀 부족한 시간이었다.
아까 전 아이에게서 받은 비타민 음료를 가방에서 꺼냈다. 차가웠던 음료수가 미지근하게 식어있었다. 지금 먹을까?
이따 연습하다보면 물 먹을 시간도 부족할게 뻔했다.
쉬는 시간 되면 바로 연습실 바닥에 풀썩 쓰러지고 말겠지. 나는 혀로 입술을 축이며 뚜껑을 땄다.
손에 쥐어진 뚜껑 느낌이 뭐랄까... 좀 까슬했다.
뚜껑을 열자 단내가 훅 느껴졌다. 내가 단게 고프기는 고팠나봐. 나는 망설임없이 음료수를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
"이름아. 이름아? 야! 너, 너 왜그래!"
"언니? 언니!"
"오빠! 이게 무슨..."
그리고 바로 허리를 숙여 차 바닥에 목구멍으로 넘겼던 음료수를 다 게워내고 말았다.
아니. 다 게워내지는 못했나보다. 내가 게워냈던 위액과 섞인 음료수로 난장판이 된 그 바닥 위에 그대로 쓰러진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
참 클리셰 돋게 내가 눈을 뜨자마자 느낀 것은 코끝을 찌르는 병원냄새였다.
나는 어울리지 않게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팔에는 보기만해도 징그러운 링거바늘이 꽂혀있었다.
침대 옆에는 매니저 오빠가 엎드려서 자고 있었고 다른 멤버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연습실에 있겠지.
속이 거북했다. 고개를 두리번거려도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 1인실인 듯 했다. 하긴... 연예인이 입원해있는데 1인실 쓰겠지.
아... 내가 연예인이었던가. 회사에서 답지 않게 돈을 참 많이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니저 오빠가 눈을 떴다.
오빠의 말에 따르면 진짜 내가 골로 갈 뻔했단다. 그 자리에서 음료수를 게워냈으니 그나마 이정도인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음료수 안에는 본드가 들어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 본드가 들어간 음료수를 마신 거고.
회사에서는 바로 경찰에 음료수를 넘기고 수사에도 들어갔다고 오빠는 내가 전해주었다.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오빠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어... 내가 딱히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감이 오지도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말하는 것도 힘들었다.
속이 거북한 만큼 목구멍도 아팠기 때문에.
수술 때문인지 아니면 빈속에 음료수 아니 본드 들어간 음료수만 먹고 게워냈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랬다.
목구멍이 따끔거리는 만큼 얼굴도 점점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름 처음이었는데...
나름 처음으로 선물을 받았던 건데 그 선물이 나를 해하려 준 선물이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대기실에 교복을 입은 아이가 어떻게 들어왔는지부터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뭐 잘못했나? 그렇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애를 쓰고 또 애를 썼지만 그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름아..."
내 이름을 불러오는 매니저 오빠의 목소리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불 위로 무언가 한 두방울씩 뚝뚝 떨어지기도 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뭔가 내가 운다 라는 것을 인정하면 내가 더 비참해지는 기분이었다.
손짓으로 오빠에게 나가라는 시늉을 했다.
오빠는 머뭇거리며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병실 밖으로 나갔다. 혼자 있고싶은 내 마음을 이해해준 모양이었다.
손을 뻗어 침대 옆 서랍 위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민피디에게도 김남준에게도 카톡이 잔뜩 와있었다. 물론 엄마랑 아빠한테서 부재중 전화도 잔뜩 와있었고.
연락들을 모두 무시하고 포털사이트에 들어가니 참으로 드물게도 내 이름이 검색어 3위에 올라있었다.
옆에 2칸 내려갔다는 표시가 있는 것을 보아 방금 전까지는 1위였던 것 같았다.
내가 검색어 1위라니. 이거는 꼭 봤어야 하는데... 나는 푸스스 웃으며 가장 위에 떠있는 기사를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걸그룹 OOO멤버 성이름. 본드 음료수 마시고 병원 行]
기사 내용은 별 거 아니었다. 그냥 내가 본드 음료수를 마시고 병원에 실려갔다. 지금은 안정을 취하고 있으며 어쩌고 저쩌고.
그 와중에 기사에 있는 내 사진은 다행스럽게도 이상한 사진이 아니었다. 다행이다 생각을 하며 입꼬리를 말아올리려했을 때
읽고 말았다.
댓글 중 가장 위에 있는 베플이라는 것을.
저 듣보는 누구?
- 추천수 996
병신인가? 본드도 그냥 마시게
- 추천수 854
아깝다. 최정연 돈 다 빼먹던 년 아니야?ㅋㅋㅋㅋ
- 추천수 668
.
.
.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핸드폰을 집어던지고 말았다.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다른 댓글들은 괜찮았다. 근데 아깝다... 아깝다라니. 한두방울씩 떨어지던 눈물이 이제는 내 손등과 손바닥을 모두 적시고 있었다.
안되겠어. 여기 더는 못있겠어. 어디로 가야하지. 옥상으로 갈까?
아깝다잖아. 내가 안죽어서 아깝다고 하잖아.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모른 채 팔에 있는 링거 바늘을 빼버리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야하지. 숙소로 돌아갈까. 연습실로 가야하나. 아니면 회사 가서 빌어볼까. 나 이제 못할 거 같다고.
나보고 안죽어서 아깝다는 말 보면서 더이상 못버틸 거 같다고.
아니. 회사에서도 정연이 돈 빼먹으면서 너도 참 뻔뻔하다고 나올까. 지금 내가 있는 이 병원비도 다 정연이 돈으로 내는 걸까.
퍽
"죄, 죄송합니다..."
정신없이 정처없이 병원 복도를 걸어가는 도중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혔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누구야...
방금 전 아니 방금 전이 아닌가. 음료수를 줬던 그 아이를 만났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바들바들 떨리던 두 손이 이제는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오기 시작했다.
"저기... 괜찮아요?"
아니. 안괜찮아. 나는 두 손을 등 뒤로 숨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는 여전히 푹 숙인채로.
목소리를 들어보니 남자였다. 다행이야. 여자가 아니라서. 아니. 여기서 또 사진 찍히면 안되는데... 남자랑 같이 있는 사진 찍히면 안되는데...
나도 모르게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팔에서는 링거를 뽑으며 상처가 났는지 피가 방울방울 흘러내리고 있었다.
"피. 피..."
남자는 중얼거리며 내 팔을 얼른 낚아챘다. 싫어... 안돼...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남자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힘이 달려 그럴 수 없었다.
목소리는 왜 안나오는 거야...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잠시만요. 피 나잖아."
남자는 자기가 입고 있는 환자복으로 내 팔에 묻은 피를 꾹꾹 눌러 닦아주었다. 그러자 남자의 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던 내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남자는 갑자기 발버둥을 멈춘 내가 이상했는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쳐왔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성이름?"
다른 사람도 아닌 제이홉, 본명 정호석인 그 사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