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국아, 나 고스톱 좀 가르쳐주라. 민화투밖에 못 쳐."
"민화투는 게임도 아녀. 형 이리 와보쇼."
"이거 내?"
"에, 그걸로 흑싸리 먹고, 뒤집고...,아- 쌌네, 쌌어."
"와, 너 왜 이렇게 화투를 잘 쳐?"
"형이 못 치는 건데. 박 형은 다섯 살 씩이나 먹어놓고 여태까지 고스톱 치는 것도 안배웠어요?"
"웅."
"헛살았네. 헛살았어."
*
요즘 유치원 애들 다 이렇가요?
W.또꾸또꼬
부제: 우리 아이들은 동양화를 좋아해요! 中
내 이름은 김탄소. BTS 유치원에 새로 온 유치원 선생님이다.
오늘은 처음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난 날이고, 나는 혼자서 즐겁게 엘사 색칠공부 놀이를 하고 있다.
왜냐고?
우리 애들은 고스톱을 치고 있으니까.
*
"나 스톱."
"...후,"
"기본 점수 따지고 쓰리고에 청단, 홍단, 삼광에 고도리. 아싸, 형님 보니까 피박 쓰셨고. 점 당 백원으로 걸었으니까 이게 얼마지...,"
"육천원."
엎치락 뒤치락 기싸움을 하더니 결국 정국이가 이겼는지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놀이방을 뚫고 나온다.
막상 저가 이겼어도 계산을 못해 버벅거리는 바람에 옆에서 책을 읽던 남준이가 귀찮다는 목소리로 석진이에게 받아야 할 금액을 친절하게 불러준다.
나는 여전히 쭈구리가 된 상태로 안절부절하며 애들 놀이방 앞에 상을 가져다 놓고 색칠놀이 프린트를 만들고 있다.
이 모든 걸 본 이후에도 이런 '평범한' 교재를 만드는 원동력은 고집이 아니라 거의 오기에 가깝다.
"그럼 육천원 내놓으시죠."
"얌마, 그거 내 한달 치 생활비야. 그런 거액을 어떻게 한번에 줘."
"그건 형님 사정이고. 요즘 주머니 사정이 원체 쪼들려서."
"120개월 할부로 줄게."
"아-나. 이 형님이 보자보자 하니까. 식비만 줄이셔도 일시불로 내실 수 있잖슴까."
여태 웃는 낯이었던 정국이의 얼굴이 할부라는 말에 험상궂게 구겨진다.
엘사를 색칠하던 손을 멈추고 걱정 가득한 눈으로 유리문을 넘어다보는데 하필이면 정국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색)
"뭘 보쇼."
아, 아무것도...^^
...
...,나는 정국이가 무섭다.
*
"엉아, 진짜루 돈 없쪄?"
"웅, 없또...,"
"...,돈 없으면 배 째야제."
"쳇. 안 속는군."
잠깐.
뭐시발?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정국아, 배를 짼다는 게 무슨 뜻인 줄은 알고 씨부리는 거니..?
깜짝 놀라 힘이 들어간 손에서 빨간색 크레용이 부러지는 바람에 엘사의 머리카락에 브릿지가 들어갔다. 아, 빌어먹을.
"하, 중국으로 팔아넘기기라도 하게? 진부하군."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치는 석진이의 목소리가 잘게 떨린다. 고작 7살, 꽃다운 나이에 중국산 원양어선에 갇혀 죽음을 맞아할지도 모른다는 허탈감이 묻어있다.
안쓰럽다.
"잠깐. 전정국, 정신 차리라. 아무리 그래도 형님 아이가."
맥주 사탕을 입에서 꺼낸 태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날 선 목소리로 정국을 쏘아본다.
놀이방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가라앉는다.
소리를 내어 책을 탁, 덮은 남준이가 대뜸 한 구석에서 야쿠르트와 콜라 폭탄주를 말던 지민이를 끌고 정국이 뒤에 섰다.
"하, 남준이 형 그렇게 안 봤는데, 편가르기 하시겠다?"
"참 나도 양심이 거시기 한데, money가 걸려있잖아, MONEY가.
전정국이가 이긴다에 천 이백원이나 걸었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지. 죄송해요, 석진 형."
"후, 그딴 식으로들 나와봤자 한개도 안쫄린다. 우리 형님 부자라 내일까지 다 낼끼다. 맞죠, 형님."
"..., 태형아."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는 태형이와 급격히 굳은 얼굴로 미세하게 속눈썹을 파르르 떠는 석진이를 번갈아보고 깨달았다.
우리 태형이, 눈치가 영 꽝이구나. 곧 극한에 몰린 석진이가 유혈 사태를 벌일 수도 있겠구나.
나는 범죄 현장의 문 앞에 잠복 중인 FBI 대원처럼 숨을 죽였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
말이 없어진 석진이을 곁눈질로 살핀 정국이 얄밉게 어깨를 으쓱거린다.
"나, 전정국. 산전수전 다 겪은 4년 흙탕물 인생, 돈돈이 배 하나 째는 건 일도 아니지."
"와, 석진이 형네 돈돈이를 건드려? 전정국 짤없네."
"..., 돈돈이로 협박할 거면 차라리 날 죽여라."
...?
돈돈이라면...
저거?
"...,잔인한 새끼."
ㅎ...
*
"...,야야, 막내야. 거 형님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잉, 선택권을 하나 드려잉. 돈돈이 배를 쨀 건지, '그걸' 할 건지."
피박도 광박도 면하고 일시불로 정산까지 마친 호석이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정국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모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것으로 봐서는 여간 대단한 형벌이 아닌가보다.
지민이는 바들바들 떨기까지 시작했다.
"너무, 너무 가혹해!"
"촤하! 정씨는 한술을 아예 더 뜨시는구만? 뭐, 그렇게 하기로 하고. 오늘의 승리를 자축하는 회식을 빼먹을 순 없제. 어이, 박씨."
"우웅?"
"저기 거, 이 돈으로 소년매점 가서 앙팡 세줄하고 쿠우 두병, 어린이 치즈 일곱개 마, 사다주이소."
"헐, 그거 우리 오늘 다 마셔? 내일 숙취 쩔겠다..."
"전정국 돈 좀 땄다고 개같이 쓰네ㅋㅋㅋㅋㅋㅋㅋㅋ"
"야!"
"뭐요."
"올 때 메로나도ㅎㅎㅎ"
".....퐐든?"
"아아아아이이잉~~
부둡굵!!!"
"후, 올 때 메로나도 하나 사오쇼."
"앗싸! 정국이 형 짱짱맨ㅎㅎㅎ"
...,태형이 너 분명 석진이 편 들어주지 않았니?
너, 되게 낯설다.
*
"박씨 갔다오는 동안, 우리 형님 선택을 하셔야지."
"..., 돈이 없다고!!!!"
"쳇, 그렇다면 '그걸' 하는 수밖에. 민씨 형님, 연장 챙겨오이소!"
"마, 살살 해라."
"아, 나 비위 약해서 못 보겠어."
"...., 나, 나도!"
"...,나도 나가 있을래."
놀이방 문이 거칠게 열리며 입을 틀어막은 남준이, 태형이, 윤기가 차례차례 뛰어나와 헛구역질을 한다.
깜짝 놀라 크레용을 집어던지고 윤기부터 등을 두드려 주려는데,
"..., 손 치워. 도움 따윈 필요 없어."
"그, 그래. 알았어."
나쁜 새끼
*
"이거 놔!!"
"정씨 형님, 큰형님 똑띠 붙잡고 계쇼."
"문제없지야. 형님, 죄송해요잉. 눈 감고 계시는 게 빠를껴."
"흣, 잔인한 새끼들...!"
"...,손모가지 똑때이 내미쇼. 자, 시작합니더."
잠깐, 손모가지라고?
머릿속에서 지난주말에 보았던 내부자들이 스쳐지나갔다. 석진이..., 이병헌처럼 만들어버리는 거 아냐?
"끄아아아아아아아앍!!!!!"
엄청난 절규가 휘몰아쳐나왔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피맺힌 비명이었다.
고문이라도 당하는 걸까, 석진이.
차마 유리문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정국이 이 녀석,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걸까.
내 옆에 모여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삼인방이 비명소리에 다시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허, 엄살도 심하십니더. 한손 마저 남았습니다."
"으아아아아아악!!!!!흣, 후."
"아유, 보고 있기가 다 딱하구먼..., 다 됐으니께 폭탄주나 원샷 하시고 기절하셔요잉. 잠든 사이에 처치 다 해놓을테니께네."
"더...., 센 게 필요해...,짜요짜요, 짜요짜요를 줘...,"
목소리에 맥아리가 하나도 없는 게 디멘터에게 영혼이라도 빨린 것 같군.
"...,끝났나보군."
"드, 들어가자고."
"...,하, 진짜 잔혹하다."
"거 형님들도 다 겁쟁이들이시가 보구먼? 난 이 짓을 주기적으로 해.
자.발.적.으.로."
"미친 새끼..., 제정신이 아니야."
....? 뭘 주기적으로 하는 건데? 손목을 뭘 어떻게 주기적으로 해?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고 유리문을 통해 놀이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정국이가 자랑스럽게 제 손목을 모두에게 내밀어 보이고 있다.
"와, 이 또라이 새끼. 소문이 진짜였어. 팔 전체를..."
"엄청난데. 이거 봐, 여기...,"
잠깐.
여기?
"도라에몽도 있잖아? 개쩌네..."
"흥, 이까이꺼 소리 한번 안지르고 참습니더."
"저거 떼는 거 개아파. 엄마가 때밀이 수건으로 졸라 쎄게 문지르면 차라리 죽고 싶어진다."
"홀, 유경험자 스케일 덜덜."
"그거 스카치 테이프로 떼면 되는데. 정국아 나중에 그거 테이프로 떼. 개 잘 떼짐."
"명심하겠심더."
...판박이?
그럼 석진이는?
"후, 이건 일생일대의 치욕이야...,"
신데렐라.......판박이
판박이 때무네 이지랄.....?
......,
시발 나 선생 안해
+)
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애들이 참....ㅎㅎㅎㅎ
동양화 특집은 늘 느와르 영화의 장면들을 기억나는대로 재구성해 쓰고 있습니다ㅋㅋㅋㅋ
어후, 정국이 판박이 스케일이..ㅋㅋㅋ
댓글과 엄지 척! 늘 큰 힘이 됩니당!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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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곰꼼히 체크하긴 했는데, 혹시나 신청했는데 빠지신 분들은 섭섭해하지 마시고 댓글로 빠졌다고 말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