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저새끼....저거...제발 그새끼가 아니길 비나이다....비나이다...제발 아니길 비나이다........진짜 저새끼가 그새끼라면 정말 이건 안 되는 겁니다. 하느님. 제가 얼마나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요. 정말 안 돼요. 왜 하필 저 새끼 인겁니까....제발 안됩니다 하느님...아니 부처님 알라신이시여....제가 비록 절은 안다니고 한번도 코란을 읽어본 적은 없으나 정말 제발 저 새끼가 그새끼가 아니길 제발 제발제발제발...이렇게 두 손 꼭 모아서 기도드립니다. 어 온다온다...아니 제발 그 새끼만 아니면 됩니다...제발제발..
"안녕하세요. 김동혁 사원? 오늘부터 김 사원의 사수를 맡은 구준회 대리라고 합니다."
나는 감고있던 눈을 살짝 뜨고 고개를 빼꼼 들어 남자를 보았다. 아.....하느님.....부처님....알라신이시여...정말 너무들 하시네요. 제가 진짜 그렇게 빌었는데 왜 하필이면 이 새끼가..그것도 내 사수?...와 정말 진짜 이제 교회 안다닐 겁니다. 정말 너무들 하시네요 진짜.
"아...하하하...하하...안녕하십니까. 오늘 처음 입사한 김동혁 사원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구준회 대리님."
멎쩍은 웃음과 어색한 미소, 굳어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악수를 하려 손을 내미는데 저 새끼 저거는 그냥 뒤를 돌았다. 저저저 재수없는 거 봐라. 미친놈. 하나도 안 변했어.
네가 나에게서 떠났을 때 너는 개새끼였다. 그리고 네가 나에게 다시 왔을 때 넌 개씨발새끼가 되어 돌아왔다.
§장난같은 운명01
"야 진짜 너네 그만 좀 싸우면 안 되냐? 진짜 사랑싸움도 한 두번이지..."
"사랑 싸움 아니거든 김지원 이 미친새끼야!!! 어디서 사랑싸움이래!!! 시발 그 새끼랑 다시는 안 본다 개새끼 진짜"
"병신아 너 그 소리 3일 전에도 한 거 아냐? 니가 시발 그래가지고 내가 구준회한테 한 소리 했다가 니가 존나 나한테 뭐라 했잖아!"
"내가 뭘!"
아니 왜 이 새끼도 지랄인거야 진짜. 안 그래도 구준회 때문에 짜증나 죽겠구만. 물론 구준회랑 한 두번 싸웠던 것은 아니다. 전부터 항상 구준회와는 맞지가 않았다. 뭐만 하면 그 새끼는 깐족깐족대고 진짜 어이가 없어서...그리고 항상 나만 쪼잔한 놈, 소심한 놈으로 만들어버리고 끝에는 항상
"동혁아. 내가 미안하다. 한 번만 봐줘라."
라고 하면서 혼자 진지한 척, 멋있는 척은 다 한다. 다들 얘가 그래서 존나 멋있고 괜찮고 섹시하고 애인한테 잘 해주는 애로 알겠지. 근데 실상은 아니라고.... 완전 좆고딩도 이런 좆고딩이 없다. 그래서 오늘 헤어지기로 한거다. 내용은 참 어이없었지만 나름 진지했다.
"야. 여기있던 이어폰 어디다 놨어."
라고 하는거다. 이어폰? 나는 내 이어폰 밖에 안 쓰니까 그냥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라고 말했다. 내 말이 어디 잘못된 구석이 있나? 그리고 하던 폰게임이나 계속 했다. 지가 찾겠지 뭐. 그런데 폰게임을 하다가 구준회를 딱 봤더니 엄청 한심한 눈빛으로 쇼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붙들고 있는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굉장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야. 너는 내가 이어폰을 잃어버렸는데 그게 눈에 들어오냐?"
라고 하는거다!!! 아니 그러면 뭐 내가 이어폰 잃어버렸다고 막 아이고....아이고...준회 이어폰이...어디갔나...이러면서 곡이라고 해야하는건가? 지가 잘못놔서 지가 잃어버린걸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몰랐다. 아니 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설마 내가 썼다고 생각하는건가...?
"야. 너 그거 내가 썼다고 생각하는거냐?"
"어. 너 그거 탐냈잖아."
탐냈다니 병신아! 그냥 니가 존나 사놓고 자랑하길래 응.이쁘네 라고만 한거야!! 그 이어폰 존나 내 스타일 아니었거든! 나는 원목 이어폰만 쓴다고! 메탈은 귀 존나 시려워서 쓰지도 못해. 와 나 이거 존나 어이없는새끼네 이거.
"내가 안 썼거든."
"그럼 누가 썼는데"
니가 썼겠지!!!니가 쓰고 아무데나 놨겠지!!! 왜 승급하려고 경험치 쌓는 나한테 와서 왜 지랄이냐고!!
"내가 썼다는 증거라도 있어?"
"내가 안 썼으니까 니가 썼겠지. 그리고 아무데나 놨겠지. 그러니까 내가 지금 못 찾는거고."
아니 시발 왜 니가 썼다는 전제는 배제하고 생각하시는 건데요? 아나 진짜 어이가 없어서...
"남에 거 함부로 쓰고 제 자리에도 안 놓..."
"내가 안 썼다고 병신아!!!! 내가 안 썼어!! 내가 니거 만지는 거 봤어? 내가 너야? 막 남의 물건 만지고 다니게? 내 물건도 소중해서 못 쓰는데 내가 무슨 니 물건을 만졌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어이가 없어서. 야. 너 어제 내 니트 입고 니 옷장에다가 그대로 박아놨지? 시발 내가 말 안하고 그냥 갖고오긴 했는데 존나 사람 몰아가는 것도 한 두번이지. 저번에 니가 내가 니 핸드폰 비밀번호 바꿔놨다고 지랄했는데 시발 그냥 니가 패턴 까먹은거였잖아 병신아! 왜 나한테 지랄인데!!!"
진짜 몰아가는 것도 한 두번이지 이번에는 정말 못 참았다. 진짜 나는 다른 사람 물건을 안 만진다. 심지어 같이 사는 준회의 물건도 청소할 때 빼고는 거의 만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 구준회 이 새끼는 내가 이쁜 옷만 사면 가지고 가면서 나한테 막 이 지랄을 하는거다.
"남의 물건? 함부로 만져?"
"그래 시발!!! 니 내거 훔쳐간 것도 몇 갠데!! 그래. 물론 니는 그게 훔쳐간 거라고 생각 안 하겠지. 그냥 빌린거라고 생각하겠지. 미친놈아. 그럼 쳐 빌렸으면 쳐 가지고 오시든가. 왜 니 옷장에 서랍장에 책장에 고이 보관해놓고 계시는건데요!"
화가나서 계속 소리를 질렀더니 목이 아팠다. 그래서 인상을 찡그리고 목을 한번 만졌다. 아 진짜...저런 놈때문에 화나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싫었다. 그리고 잠시 후 회의감이 들었다. 왜 내가 저런 애랑 계속 사겨야하는거지? 왜? 날 사랑하지도 않는 것 같고. 이제 남은 정이라고는 미운 정밖에 없는 것 같은데 왜 내가 사겨야하는거지...?
"야 김동혁. 말 다했냐."
"아니 아직 말 다 안했어."
아까까지만 해도 둘 다 흥분해서 말했는데 이번에는 나나 구준회나 모두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준회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는건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상태라는 징조다. 항상 이럴 때마다 난 그저 준회에게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오늘은 대꾸도 했다. 도저히 이러고는 못 살것 같았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았다.
"너 나 사랑하긴 하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교 2학년까지. 우리는 약 3년동안 연애를 했다. 그래. 그럴만도 하지. 사랑이 식을만도 하지. 그런데 있던 정마저 없어지면 안되지. 내 엄마 아빠가 왜 지금까지 사는데...정때문에 사는건데, 그것도 사랑인데...근데 너 왜 망설이냐? 왜 저 질문에 대답 안해? 내가 너한테 뭐 어려운 질문했냐? 연인 사이에 사랑하냐고 물어보는데 왜 표정이 일그러지냐? 사랑한다고. 그렇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되는데 왜 갑자기 인상쓰고 머리를 헝크러뜨리는건데...
"내가 저 대답에 답해야되냐?"
정말 어이없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준회가 물어왔다.
"응. 대답해. 너 나 사랑해?"
"확신이 없냐 너는?"
"말 돌리지마. 대답해. 너 나 사랑해?"
"하...그래. 뭐 그냥 끝났네. 야. 너 내가 봐준게 얼마나 많은지 알아?"
"대답하라고. 사랑하냐고 안 사랑하냐고."
답답해 미쳐버릴 것 같다. 그냥 사랑한다고 한 마디만 듣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부탁인가? 내 질문이 그리도 너를 힘들게 했니? 왜 자꾸 말을 돌려? 그러면서 왜 자꾸 너가 더 힘들다는 표정을 짓는건데? 내가 너한테 무슨 그렇게 큰 잘못을 했다고...
"아니. 나 너 안 사랑해."
"그럼 나가."
"그래. 나간다. 짐은 너 없을 때..."
"그냥 나가 개새끼야."
준회가 식탁 의자에 걸려있던 검은색 점퍼를 손에 들고 나갔다. 도어락 잠기는 소리가 들리고 그제서야 나는 참고 또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왜 우리가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알 수 가 없었다. 그저 난 준회에게 사랑한다 한 마디만 듣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래서 너 어떡할거냐"
"뭘."
"구준회랑은 쫑난거 확실한 것 같고. 근데 너 다음달 입대 아니냐."
"응. 근데 구준회한테 말할 기회가 없었어."
"병신아! 그걸 말 안하면 어떡해!"
"악! 왜 때려!!"
김지원 이 새끼는 왜 사람을 때리면서 말해?
"아니 그럼 싸웠는데 거기다 대고 준회야. 나 근데 다음 달에 입대해. 그니까 다음달에 헤어지면 안 될까? 이렇게 말하냐? 대가리가 안 돌아가?"
"병신아 대가리가 안 돌아가는 건 너야. 구준회 그 새끼 착각하고 자기 때문에 입대한다고 생각할거아니야."
"설마."
"는 사람을 잡아."
지원이는 말이 끝난 후 맥주를 한입 가득 퍼부어 마셨다. 동혁은 그런 지원을 보면서 준회 생각을 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착각할까? 자기 때문에 상처받아서 입대했다고? 설마. 동혁의 생각에 준회는 자신을 그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준회에게는 준회 자신이 가장 우선이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위주로 돌아가야했다.
"김 사원. 이거 프린트 해오세요. 프린터 어떻게 다루는지는 알죠?"
"네."
진짜 이건 운명의 장난이다. 왜 사수가 구준회인거지? 내가 전생에 이완용이었나? 아니면 이렇게 꼬일리가 없었다. 군대를 갔다 와서는 한번도 구준회를 본 적이 없었다. 소문으로 듣자면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거기서 아예 학교를 졸업했다나 뭐라나. 아니 그럼 거기서 계속 살지 한국엔 왜 다시 들어왔대?
삐비비비빅. 삑. 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
어 이거 왜이래. 왜 이러지? 어 이거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한번 쳐봐야되나? 한 번도 대형 프린터를 다뤄본 적이 없는 동혁은 적잖이 당황했다. 아무리 쳐봐도 프린터는 계속 소리가 났을 뿐이었다. 그 때 준회가 동혁이 있는 곳에 와서 프린터의 헤드를 들고는 용지를 빼내었다.
"이거 때문에 그래요. 회사 생활에서 프린트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뭐가 잘못되었나 여기 이 모니터로 다 뜨니까 이거 보고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제 프린트 하세요."
와...저거....진짜 정말 하나도 안 변했네...거만하고 어깨 힘 빡 들어가있고 아주 달라진게 하나도 없어 재수없는 새끼.
"여기 150부 다 했습니다."
"수고했어요. 자리로 가세요."
동혁은 한번 성의없이 꾸벅 하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서류 정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동혁의 연필꽂이에 못 보던 쪽지 하나가 끼워져있었다. 뭐지? 동혁은 서류를 정리하다 말고 쪽지를 열어보았다.
【너만 싫은거 아니야. 여기 회사다. 공사 구분은 좀 하지?】
누군지 안 써있는데도 시발 누군지 알 것같다. 와 진짜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알고도 지금까지 모른 척하고 지낸거야?
동혁이 준회의 자리를 눈으로 흘겼다. 그 때 준회가 동혁과 눈을 마주치고 정색하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뭐하냐.'
동혁은 준회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빨개졌다. 생각보다 회사생활은 더 순탄하지 않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