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한빈아. 오늘은 어떠니?]
[A.밝음. 햇살. 나뭇잎...]
정신병동 이야기 09
"김한빈 환자 보호자 되시죠? 이 쪽으로 앉으세요."
한빈의 엄마는 떨리는 손을 최대한 가방을 잡으며 가린 후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설령 한빈의 모습을 보기라도 한다면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져 한빈을 치료하지 못하게 될까봐 한빈이 입원 후 한번도 병원을 찾은 적이 없는 그녀였다. 그러나 어제 저녁, 한빈의 담당의사에게 전화가 왔다. 한빈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 그의 소견이었다.
"처음 한빈이가 병원에 왔을 때, 단순한 공황장애와 우울증, 대인기피증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워낙 속을 이야기하지 않는 아이였으니까요. 이야기를 해봐도 항상 수박 겉핥기로 살짝씩만 이야기하고 다가가려고 하면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다보니 마음의 병이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약간의 정신분열 초기 증세가 나타나는...."
"저...정신분열이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아들이 그 정도로 아팠는데도 몰랐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두 손을 만지작 거리며 담당의의 말을 계속 들었다.
"정신분열증이라고 해서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한빈이의 경우는 다른 상처가 덧난 후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더욱 생긴 것 같습니다. 일단 저희도 한빈이의 건강이 제일 걱정됩니다. 마음이 몸을 지배하게 된다면 몸도 성치 않거든요. 어머님께서 조금 노력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제가 뭘 해야 하죠?"
그녀의 눈빛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의지만 남아있었다. 마음으로 아들을 잃고 남편을 잃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그 전과 달라진 아들 뿐이었고 그녀는 이 아들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한빈이가 지금 병원에서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게 가장 심각해요. 여기 들어오면 다들 서로 관계를 가지거든요. 간호사와 소통을 한다든지, 같은 상처를 갖고있는 사람들끼리 친해진다든지...그런데 한빈이는 방에서도 아무 말도 없습니다. 그저 잠만 자고 일어나서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다죠. 그러다보니 속에서 곪고있는 것입니다. 어머님께서 한빈이에게 말해주세요. 때로는 가족이 가장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녀는 의사의 말을 듣고는 곧장 한빈에게 면회신청을 넣었다. 한빈은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 그녀를 무심히 보더니 도로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못보던 새에 한빈은 조금 더 어두워지고 더 힘들어보였다.
"밥은...잘 먹니?"
그녀가 입을 뗐다.
"아들..."
"아들 아니잖아요. 누구세요."
그녀의 부름에 한빈은 차갑게 답했다. 그의 표정에는 그 무엇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 누구도 품을 수 없을 정도로 한빈의 가슴은 차가워졌고 그 누구도 그를 안을 수 없을 정도로 한빈에겐 가시가 돋쳐있었다.
"대화가...중요하대...굳이 엄마가 아니더라도...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해..."
"엄마는 제가 뭘 들었는지 모르시죠? 여기도 인터넷은 켜져요."
여기도 인터넷은 켜져요. 이 말을 들은 그녀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한빈이 환자들과 소통하지 않고 관계자들과 소통하지 않은 이유였다. 한빈은 지금 그냥 모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자신을 보는 그 누구의 눈빛에서도 한빈은 차가운 느낌만을 골라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 한빈아. 괜찮아....너 잘못 아니야..."
"네. 제가 그 여자랑 만난게 아니니까요. 전 그냥 실수로 태어.."
"너 내가 낳았어 한빈아. 너 낳고 결혼했다. 오해하지 마. 넌 내 아들이야."
한빈은 그녀의 단호한 말에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었다.
"돌아가세요."
한빈은 침대에서 일어나 협탁 앞으로 가서 서랍에 자신이 보고있던 책을 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이불을 머리 끝까지 쓰고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새벽이 되어 한빈은 잠이 깼다. 사실 한빈은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 그저 눈만 감고 선잠을 왔다갔다 거릴 뿐이었다. 방도 깜깜했고 복도도 깜깜했다. 침대에서 나와 방문을 열어보았다. 새벽냄새가 나는 공기가 한빈을 덮쳤다. 차가움. 그리고 약간의 물기. 한빈은 그대로 복도로 나섰다. 복도를 지나가던 중 한빈은 다른 방 문 앞에 쭈그려 앉아있는 어떤 사람을 보았다. 울고있는 모습이었다. 아무에게도 들키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한빈은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눈물. 차가움...물기...당신"
한빈의 목소리를 듣고는 그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한빈은 고개를 든 그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힘들어요? 나보다?"
남자는 한빈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천천히 돌았다. 한빈은 그런 남자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한빈은 사람은 눈으로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슬퍼요. 엄청 많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쩌면 당신보다 더.'
한빈은 그를 잡지 않았다. 그저 방문 앞에 쓰여있는 이름을 보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김진환....눈물....새벽...'
한빈은 그렇게 아침 해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