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었나, 홍대거리에서 베이스를 치던 토끼 한 마리를 본적이있어.
빨간머리에 뽀글뽀글 파마머리였었지 아마.
그 토끼, 참 귀여웠었는데....다시 한 번 보고싶다.
그리고 우리 밴드에서 같이 연주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어.
“여자친구를 앞에 두고 누가 귀엽다느니,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살짝 미소지으며 농담하듯 말하는 예림이
예쁜 내 여자친구, 마음도 넓고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예쁜 내 여자
“난 너뿐이야, 알잖아~”
“모르는데요?히히”
내 빵모자를 톡톡치며 장난을 친다.
그러고보니까 예림이는 고양이상이구나, 그 토끼는 토끼상인가.
“그 토끼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글쎄, 홍대바닥 뒤져보면 볼 수도 있겠죠 아, 브래드왔네”
영어로 샬라샬라 반갑게 말하는 브래드와 예림이를 두고 밖으로 나왔다.
담배 다 떨어졌네, 사러가야겠다.
터벅터벅 편의점으로 걸어가고있는데 저기 멀리서 총총 뛰어오는 빨간머리, 빨간머리?
미간을 찌푸리고서는 나의 시신경을 총 동원해 자세히 살펴보니
동글동글한 눈에 딱 토끼를 닮은 걸 보니. 맞구나, 베이스
하지만 알아차리면 뭐하나, 겨우 두번 본 사람한테 '저기 나 기억나요? 당신을 우리 밴드의 베이스로 초청하고싶어요!'
하고 발랄하게 말을 걸 수도 없고. 예림에게 찝쩍대던 나의 자신감은 어디에 갔는지 그 토끼를 봐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 토끼는 총총 나의 옆을 뛰어 지나쳤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를 기억하려 애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