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그랬을까. 사실 그렇게 그리워하던 품이었으면서. 아닌척하지않아도 괜찮았는데, 왜 알면서도 뿌리쳤을까 그렇게 내가 찬바람만 맞은채로 집에 돌아온 후 준회와 특별한일없이 겨울방학을 맞이했다. 그냥 길가다 몇번 마주친 준회는 그때 그 무표정했던 모습과 똑같았고, 나는 매번 얼었다. 내 기분탓인지. 아님 실제로 그런지. 하지만 준회의 무표정에서 예전처럼 느낄수있는건 없었다. 그저 무표정. 그냥 표정이없었을뿐더러 나를 쳐다봐주는일도 없었다. 오히려 참을 수가 없었던 쪽은 나였다. 그렇다고 당장 달려가 보고싶었다며 울고 매달리기엔 그 날의 내가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저 마냥 답답할 따름이었다. *** 겨울방학을 맞고 1,2학년이 함께하는 MT에 가게되었다. 학교일이라면 분명 구준회도 올게 뻔했기때문에 어떻게던 안가려고 몸부림도치고 머리도썼지만 1학년이 감히 MT를 빠지는일이란 말도안되는 일이었다. 친구들까지 니가 기죽을게 뭐냐며 나를 이끌었다. MT장소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겨울나름의 차갑고 차분한풍경과 함께 예쁜 펜션이 눈앞에 서있었다. 오기싫다고 몸부림쳤지만 기분이 좋아지면서 괜히 광대가 승천했다. "오기 싫다더니?" "좋지? 내가뭐랬어" 옆에서 친구1 김동혁이 핀잔을주자 옆에서 친구2 김지수까지 질세라 나를 팔꿈치로 찌르며 말했다. 참. 소개를 못한것같은데.. 김동혁, 정찬우, 김지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은 어릴때부터 붙어다니다가 신기하게도 대학까지 같이 온 친구들이다. 사실 그렇게 어릴땐아니고 17살때 만났으니까 만난지 4년쯤? 특히 김동혁은 중학교때부터 알았던 터라 더 지긋지긋한 친구다. 서로 여자친구있고 남자친구있을때도 양심의 가책같은건 못느끼고 만나서 맘편히 놀수있을만큼 편한. 이성이지만 동성같은 친구들이다. 몰론 구준회는 내가 김동혁만나는걸 반겨하지 않았었고, 김동혁도 그런 구준회를 마냥 곱게봐주지는 않았다. 뭐 어쨌던. 감상에 젖어있다가 애들이 트렁크에서 꺼내 넘겨주는 짐을받아 안으로 옮겼다. 펜션내부는 뭐 딱히 뭔가 많다기보단 그냥 넓게 트인 마루뿐이었다. 딱 MT오기 좋은 장소? 박스하나를 내려놓고 뭐 대단한일이라도 한듯 손을 탁탁 턴뒤 밖으로 나갔다. 아직 한참남은 짐을 옮기기위해 다시 트렁크로 향했다. 따로 모여 출발한 팀들이 하나둘 도착하고 주차장인 차가 늘어갔다. 사실 무거운 짐을 나르며 낑낑대느라 그런건 신경쓸틈이없었는데, 하필이면 놓고 나오는길에 마침 차에서 내려 선배님들께 인사하는 구준회를 봐버렸다. 나도모르게 다시 펜션안으로 몸을 숨겨버렸다. 그냥 왠지.. 여긴 구준회편이 많으니까... 내가 와서는 안될곳을 와버린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잠깐멈춰서서 그런 나를 짠하게 쳐다보던 김동혁이 나한테 성큼성큼 다가와 자기짐을 나에게 떠넘겼다. "아 뭐야!" "일 안하냐?" 그러곤 다시 돌아서서 짐을가지러가는 김동혁의 뒷통수를 한번 째려봐 주고 짐을 다시 놓고 나왔다. 괜히 쭈뼛거리며 뒤돌아섰는데, 뒤돌아서자마자 언젠가부터 와서 짐을 나르고있던 구준회와 부딪혀버렸다. 다행히도 넘어지진않았지만 나도모르게 눈이 커진나는 내 동공이 흔들리는 모습을 그대로 구준회에게 전달할수있았다. 나는 그렇게 바짝 얼었는데. 반면에 구준회는 아무렇지않은듯 "아. 미안" 하며 들고있던 박스를 내려놓고 뒤돌아서 가버렸다. *** 낮엔 내내 게임을했다. 그래도 술은 많이 안마셔서 건전한 편이구나싶었는데 왠열. 어두워지기가 무섭게 대놓고 술판이 벌어졌다. 처음엔 전부 둥그렇게 모여앉아 마시다가 점점 네명씩,다섯명씩 흩어져서 각자의 그룹을 이뤘다. 나는 김동혁, 정찬우, 김지수. 이렇게 넷이 모여앉아있었다. 나는 아까 구준회와의 그 작은일이 크게신경쓰였고, 그건 표정으로 드러났고, 친구들은 그걸 모를리가없었고, 그런내게 잔소리를 한번씩하지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힐애들이었다. "뭐냐 표정. 여기까지와서 헤어진티낼래?" "야. 너도 잊어. 잊은척이라도해!" "맞아. 쟤 저렇게 잘노는거 봐" 반박할 힘도없이 그저 고개만 슬쩍돌려서 구준회를 확인했다. 정말 잘만 놀고있었다. 나는 아닌데.. 억울함과 동시에 우울해진 내가 고개를 푹숙이고 한숨을 쉬며 술잔에 손을 가져다 대자 김동혁이 놓치지않고 나를 말렸다. "이거 마시고 뭔짓할려고. 너 저기가서 쟤붙잡고 울려고?" "뭐래.. 냅둬봐 좀" "너 내가 이거 진짜 냅두면 후회할텐데" "아 안울어! 냅 둬 나 성인이야!" "아오 진짜 말 좀 들어 가시나야. 후회하기전에 내놔" 결국 술잔을 빼앗긴내가 머리를 잔뜩헝끌고 고개를 숙이며 불쌍한척했지만 끝까지 단호한 김동혁이었다. "내가봐도 이건 말리는게 백번옳아. 너도 뺏기는게 백번천번 낫고" 옆에서 정찬우가 거들고 김지수까지 끄덕거렸다. "어떻게된게 내편이 하나도없어.." "야 다 니편이니까 이러는거잖아! 니편아니었음 나이거 병째로 너 줘버렸어. 아니 평소엔 줘도 안마시다가 왜그래?" "야 그냥 줘. 줘버려. 내일아침에 너 우리한테 뭐라그러면 죽여버린다"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쭉내밀고 삐졌음을 표정으로 다 보여주자 정찬우는 김동혁손에있던 술병을 뺏어서 나에게 들이밀었다. "됐어" 정찬우를 한번 째려보고 옆에있던 겉옷을 주섬주섬챙겨입으며 일어났다. "어디가?" "밖에" 내 주사가 무섭기도하고, 원래 술에 흥미도 없고, 잘마시지도않아서 그런지 익숙하지않은 술냄새를 맡고있으려니 머리가 아파왔다. 태어나서 제일 많이 마셔본게 2병. 그게 바로 구준회랑 헤어지기 직전. 대충 힘든 어른흉내 내고싶어서 생에처음 자발적으로 들이킨 술이었다. 그날엔 기분도 기분이니만큼 다행히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진 않았지만 원래는 울고, 전화하고, 잠들고. 그리고나서 일어나면 모든걸 잊는다. 뭐.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고들 하는데, 나는 우울할때만 마셔봐서 그런건 잘 모르겠고.. 술마신 날의 기억은 항상 안좋았기도하고 다음날아침이 속도 말이아니고.. 그냥 별로라서 나도 잘 안마실뿐더러 구준회가 술을마시는것도 싫어했다. 근데 내가 싫어하는 술냄새가 가득한 이안에서 저렇게 웃으며 술을 마시고있는 구준회라니. 내 눈치는 전혀 안보고? 겉옷을 챙겨입고 나왔는데도 꽤 추웠지만 다시 들어갈 생각은 없었기때문에 그냥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잔뜩 움츠린채로 테라스 울타리위에 걸터앉았다. *** 시끄러운 펜션안에있다가 밖으로 나오자 한없이 조용하게만 느껴졌다. 왠지모르게 울컥하는 기분에 눈물이 차올랐다. 괜히 눈동자만 치켜올려 밤하늘을 구경하고있는데 뒤에서 문여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놀란마음에 눈물도 쏙 들어갔다. "아 미안.. 놀랐어?" "아니예요! 괜찮아요!" 2학년 송윤형 선배였다. 구준회랑 친해서 자주 마주치긴했는데 그렇다고 둘이 만날만큼 친한사이는 아니었기때문에 그냥 차에 뭐 가지러 가시나보다. 하고 다시 앞을봤는데, 한숨을 푹 쉬며 내옆에 걸터앉으셨다. 놀란 내가 아무말도 하지못하고 크게뜬 눈으로 선배를 쳐다보자 선배는 능청스럽게 모른척했다. "아. 오해하지마! 작업 뭐 그런거 아니니까." 그러다가 잊은걸 당부하듯이 말하곤, 다시 앞을봤다. 아니 애초에 작업이라고는 생각하지도않았지만 그럼 왜? "아.. 이거 어디서부터 얘길해야하나" "에..? 뭘얘기해요?" "너랑 나랑. 얘기할게 걔말고 누구겠어" "걔요?" 당황한마음에 "걔"가 대체 누군지 생각하지못하고 되묻자 선배가 아홉손가락을 펼쳐 내게 보여주었다. "아.. 아아.." "넌 걔가 진짜 싫어?" "네..?" "구준회말이야" "아..." 그렇다고 대답하는건 어려운일이 아니었지만, 나는 망설였다. 아까까지의 내모습을 보셨으니까 나를 따라 나오신걸테고. 머리아파하고 속상해하던 내모습도 양심에찔렸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하는건 왠지 내키지가 않았다. "망설이는거보니 싫은건 아니네?" "예?아니.." "아냐? 그럼 싫어해?" "아니 그건 아닌데.." "뭐야 그럼. 좋은거야 싫은거야" "그..." "걘 너 좋아하던데" 정신없이 선배의 질문에 끌려다니다가. 마지막 돌직구에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벙찐 얼굴로 선배를 빤히 쳐다보자 선배는 아무렇지않게 말을 이었다. "아니 나랑 같이 있었거든 방금. 근데 얼마나 힐끔거리는지 나까지 힐끔거리게 되더라." ".......저를요?" "아니 내가 원래 오지랖넓고 이런성격은아닌데. 안타까워서 그래, 안타까워서. 웃는게 웃는게 아니더라고."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모르겠는걸 표정으로 드러내자 선배는 앞을보고 조금웃다가 다시 나를봤다. "자 지금 여기 우리둘밖에없다?그치?" "그렇죠." "그리고 내가 지금 이러고있어서 니가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나 입 되게 무겁다. 믿어?" "..네.." "넌 망설였어. 다시. 믿어?" "네 믿어요" "그럼 솔직하게 대답해주는거다." 나는 조금 불안했지만 어쩐지 선배가 하자는대로 끌려갈수밖에없었다. "넌 준회가 싫어?" "..아니요.." "그럼 좋은거네?" "아니 그건...아니..그러니까" "뭐야 하나만해. 솔직하기로 하지않았나?" 윤형선배가 재촉하니까 괜히 나올대답도 안나오는것같았다. 아니근데 뭣보다 내가 왜 대답을 해야하는거지? "아니 이건 완전 제 손해잖아요! 제가 솔직하게말하면 전 뭐가좋은데요?" "니가 솔직하게 말만해주면 내가 준회얘기해줄게. 좋지?" "네 뭐 좋네요" "그럼 준회가 좋다는건가?" 내가 도도한척 고개를 돌렸다가 선배의 기습질문에 다시 놀란눈을하고 선배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가 언제요?" "그게 아니면 내가 준회얘기해주던 말던 너한테 득될거 없는거잖아" ".........." "맞지? 좋아하니까 궁금한거아냐?" "아니..." "솔직하기로했는데.." 변명부터 하려는 나를 선배가 단호하게 다그치듯이 저지했다. 아.. 어쩌다 얘기가 저렇게 흘러간거지. 생각보다 똑똑한 선배네. "사실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게 좋아하는건지 뭔지" "그걸 왜 몰라? 그냥 좋으면 좋은거지" "그러니까 그게.. 아니 그냥 계속 생각나고 보고싶고 신경쓰이고. 이럼 좋아하는거 맞는건데, 또 준회가 와서 돌아가자고하면 그건 싫단말이예요.." "그럼 그냥 좋아하는거네. 좋아해도 안사귈수도있지. 좋아한다고 다 사귀는건 아니니까. 뭐가어쨌던 일단 좋아하는데, 사귀기 싫은거잖아. 좋아하는거네 맞지?" ".. 그런거 같네요" 인정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게 표정으로 다 세어나온건지 내기분을 알아챈 윤형선배가 조금 뜸을들이며 나를 쳐다보다가 "자." 하며 분위기를 바꿨다. "솔직했으니까 준회얘기 해줄까?" 나도 모르게 우울한 표정을 거두고 선배에게 집중했다. "준회가 나한테 니얘기 다하거든. 저번에 너네집앞에 찾아갔을때도 나랑 술마시면서 얘기하다가 내가 가고싶으면 가라고 그랬었는데 니가 돌려보냈잖아" "..네..." "그 뒤로 막 차도남인척하고 저러는데, 내가 왜그러냐고 물어봤더니 마음이 떠났데. 너한테 마음이없다고 그러더라고" "........" "누가봐도 그건 아니었단말이야. 근데 쟤 나 나오기전에 살짝 취해있었거든?" "구준회가요?" 난 구준회가 취한걸 본적이없다. 못먹진 않지만 그렇게 술을 즐기는 애가 아닐뿐더러. 내가 술을 싫어해서 늘 마시지말라고 말해왔고, 마셔도 생긴것만큼 술에도 세서 잘 취하지않던 준회였다. 근데 얼마나 마셨으면.. 담담하게 들을수가 없는 말이었다. "응. 되게 신나가지고 마시더라." "어휴 진짜" "근데 꼭 마시기전에 너 흘끔거렸다? 그리고 좀 애가 취하기시작하니까 흘끔이 아니라 대놓고 쳐다보고, 엄청 밝은척하고, 니 친구들중에 남자애들이 너랑 붙어있고 그러니까 손으로 괜히막 앞머리쓸고 한숨쉬고..아까 짐나를때도 너가 걔한테 뭐 웃어주는것도아니고 짜증내는건데도 엄청 째려보다가 나한테 걸렸잖아" "...아....아..뭐야..아까 한얘기랑 비슷하잖아요.." "그래. 내가 왜 두번이나 말해주겠어. 뭔소린지 알지?" "네?" "쟤가 괜찮은척하는거에 속아서 속상해하지말라고" ♡암호닉♡ 구주네 / 아이닌 / 아이콘은 축구중 / 뿌요 / 동동이 / 지나니 / 기묭 / 찌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