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우 군, 선생님한테 궁금한거 있어요?]
[아니요. 없어요]
정신병동 이야기 10
"찬우 군. 지금보다 더 심해지거나 기분이 안좋아지거나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치료 들어가야 해요."
"그런거 필요 없어요."
"찬우 군이 지금 힘든 거 다 이해해요. 형때문에 그런 거 다 알아요."
"....형은 저보다 배는 더 힘들었어요."
"찬우 군, 지금 힘들 수 밖에 없는 거 잘 알아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 상황에대해 찬우 군이 죄책감 느낄 필요 없어요."
상담실 안에서는 찬우와의 상담이 이루어졌고, 다음 차례였던 동혁이 센터 안으로 들어왔다. 며칠 사이 동혁은 준회와의 만남이 없었다. 준회가 센터로 심부름을 왔을 때에도 준회는 동혁을 아는 척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쳐도 준회는 그저 동혁을 피하고 자기 갈 길을 갔다. 동혁은 그런 준회를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갑작스럽게 온 관심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나는 것 같았다.
찬우의 상담이 길어지자 동혁은 대기실에 구비되어있는 녹차를 마시기 위해 일어섰다. 대기실 한켠에는 센터를 방문하는 이들을 편안히하기 위해 정수기와 녹차, 커피 등이 있었다. 종이컵에 약간은 뜨거울 수 있는 물을 따르고 녹차티백을 우려내며 자리로 돌아오던 동혁은 상담실에서 문을 벌컥 열고 나오는 찬우와 부딪혔다. 녹차는 동혁의 몸쪽으로 엎어졌고 동혁의 교복은 녹차로 엉망이 되었다. 찬우는 당황하여 그 자리에 멈추어 섰고 동혁도 뜨겁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미...미안해요."
찬우가 말하며 동혁의 몸을 휴지로 닦으려 하자 동혁은 찬우의 손길을 뿌리치며 괜찮아요라며 상담실 안으로 들어갔다. 찬우는 동혁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팔을 거두지 못한 채로 서있었다. 그러고는 뒷처리는 자기가 하겠다며 가도 좋다는 센터 직원의 말을 듣고 센터 밖으로 나갔다.
"수상하지?"
찬우가 센터 밖으로 나가던 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음의 목소리가 찬우의 귀를 때렸다. 찬우가 소리나는 쪽으로 보니 찬우를 바라보는 준회가 있었다. 날카로운 그 눈빛이 항상 찬우가 봐오던 준회의 눈빛이 아니었다.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있는 폼이 더욱 그를 거만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준회는 찬우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쟤 말이야. 겉으론 모범생인데 뭔가 켕기는게 많아 보여. 그치?"
준회는 턱으로 센터쪽을 가리켰다. 찬우에게 물어보지만 대답을 바란다기 보단 그저 혼잣말에 가까웠다.
"그래서 더 궁금하지 않아? 대체 어떤 사람인지?"
준회는 벽에서 떨어져 찬우에게 가까이 오며 물어봤다. 찬우는 그런 준회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러고는 준회에게 두었던 시선을 돌려 제 갈길을 가려 했다.
"허어...감정 숨기는 건 좋은게 아니야. 너도 쟤 관심있잖아."
준회의 직설적인 말에 찬우는 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준회를 바라보았다. 준회는 찬우를 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려 웃었다.
"난 절대 내 감정 안 숨겨. 말도 안 숨기고. 그러니 아깝다는 생각 마. 내가 먼저 선수칠테니까."
준회는 찬우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털며 갈길 가 라며 찬우에게 할 말이 끝났다는 듯이 말했다.
"쟤도 알아요? 그 쪽이 그런 생각인지?"
찬우의 말에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준회가 동혁을 그저 놀잇감 취급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엔 찬우에게 동혁은 너무나 약하고 아까운 존재였다.
"알지. 쟤도 감정을 숨기거든. 모르는 척, 못하는 척, 싫은 척... 척이 몸애 밴 애야. 그런데 난 그게 눈에 보이거든. 그래서 더 궁금하고 관심이 갈 수밖에."
준회는 조소와 함께 말한 후 자신의 센터 방향으로 들어갔다. 찬우는 그 자리에 서서 준회의 말을 곱씹었다. 어쩌면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준회와 동혁의 사이가 깊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동혁이 위험하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감지했다.
동혁의 상담이 끝난 후 J는 동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7시. 너희 집 앞 스타벅스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이미 아까 J는 동혁이 상담실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는 찬우에게 접근하여 자신을 내비친 것이다. J는 준회가 난처해지는 상황을 즐겼다. 그래서 처음에 동혁에게 접근했고, 준회가 자신의 병을 들키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더 자신을 표출할 때 준회와는 다른 성격과 눈빛을 가지게 된 것이다. 동혁은 J의 전화를 받고는 한숨을 쉬고 집으로 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집 앞으로 나갔다. 통이 큰 회색 후드와 검정색 스키니진을 입은 동혁은 꾸민듯 꾸미지 않아 더욱 세련되었지만 동혁은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두려움을 느껴 후드를 뒤집어썼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J는 동혁을 보더니 이리오라며 손짓했다. 동혁은 마지못해 J가 있는 테이블 쪽으로 갔다. 아메리카노 한 잔과 카푸치노 한 잔. 그리고 앞에 놓여진 작은 조각케이크 하나. 부모님이 카페를 하는 동혁의 입장에서 보면 사치도 이런 사치가 있을 수가 없었다. J는 아는지 모르는지 동혁을 보고 카푸치노 한 잔을 내밀었고 동혁은 그저 카푸치노가 담긴 머그컵으로 얼은 손을 녹이고 있었다.
"너 카푸치노 좋아하지? 마셔. 그리고 이거 먹어."
동혁은 J가 어떻게 자신의 식성까지 알고 있는지 당황했다. 그냥 찍은거겠거니라고 생각하기엔 J의 말엔 확신이 가득 차있었다. 동혁은 원래 단것을 좋아하였지만 왠지 J가 주는 케이크는 먹고 싶지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이었다.
"저한테 이러시는 이유가 뭔데요."
동혁은 카푸치노가 담긴 컵을 만지작 거리며 물었다.
"이거 맛있대. 먹어."
J는 동혁의 말을 들었는지 그저 무시하는 것인지 동혁에게 케이크를 내밀며 말했다.
"저한테 이러시는 이유가, 뭐냐구요."
동혁은 J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그리고는 J를 빤히 쳐다보았다. J는 그런 동혁의 눈을 바라보며 눈 깜빡 하지 않고 말했다.
"그냥. 내가 너 좋아하니까."
동혁은 J의 말에 경악하여 눈이 커졌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 J는 그런 동혁의 반응을 말끔히 무시하고는 동혁의 입 가까이로 케이크를 뜬 포크를 대었다. 동혁은 뒤로 몸을 뺀 후 J의 팔을 치우고 일어섰다.
"제발. 다시는 오지도 말고, 연락도 하지 마세요."
동혁은 이 말을 끝으로 스타벅스 밖으로 나갔다. 동혁이 나가는 모습을 J는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한쪽 입꼬리만 씨익 올려 웃은 후에 동혁을 뒤따라 갔다. 그리고는 얼마 가지 않아 동혁을 본 J는 그대로 동혁의 한 쪽 팔목을 붙잡았다. 동혁은 자신의 팔목을 잡은 사람이 누구인지 본능적으로 눈치챈 후 팔을 빼려했다. 그러나 J의 말에 동혁은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너 게이잖아"
J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실로 동혁을 당황시켰다. 동혁은 자신의 비밀을 자신이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만 말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떠나갔고, 항상 자신이 믿었던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떠나가는 것을 느낀 후 동혁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 비밀을 J는 알아버린 것이다. 동혁은 자신의 비밀을 남에게 들켰다는 모멸감과 수치심에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풀렸고, 동시에 힘을 주었던 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야? 너 그거때문에 힘든거잖아. 그 누구한테도 말도 못하고. 그 비밀때문에 너 자신도 싫어져서 더 너 자신을 옭아맨거잖아. 혹여나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건 아닐까 항상 숨기고 산거잖아."
J가 말하자 동혁은 붙잡힌 팔목이 아닌 다른 팔로 눈물을 닦으며 J를 쳐다봤다. 그 눈엔 모멸감과 분노, 원망이 모두 들어있었다.
"맞아요. 저 게이에요. 그런데, 그거가지고 뭐 어쩌자구요? 그 쪽이 잘해주면, 제가 뭐 몸이라도 대줄줄 알았어요? 게이니까 쉽게 구슬리면 다 해주겠지 이런 생각이었어요?"
동혁은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말했다. J는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동혁의 눈을 보며 약간은 냉정한 어투로 대답했다.
"아니. 너. 너 때문에. 너는 누가 너 힘든거 알아주고 보듬어주길 원했으니까. 너 입으로 말 안해도, 너가 어디가 어떻게 힘들어서 마음이 어떻게 아픈지 알아주길 바랬으니까."
동혁은 준회의 말을 듣고는 겨우 버티고 서있었던 다리의 힘이 풀려 그자리에 주저앉아 소리내어 울었다. J는 동혁이 울려그랬던 것을 알았는지 동혁을 감싸안았다. 그리고는 아무 말없이 동혁을 꼭 안아주었다. 동혁은 J를 꼭 붙잡고는 J의 품 안에서 서럽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