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말없이 발끝만 쳐다보고있자 선배도 아무말없이 가만히 내 대답을 기다렸다. "근데 잘모르겠어서요." "뭘?" "왜 돌아가기가 이렇게 꺼려지는건지" "힘들었던거아냐? 기다리고 혼자남고 그런게" 그말에 나는 잠시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건 정말 제가 좋아서 기다렸던거예요. 그래서 아무렇지도않았는데.. 모르겠어요. 돌아가면 준회도 다시 똑같아질것같고.." "..그냥 넌 지금이 좋은거아냐?" "지금 이 엉망진창인 상황이요?" "그렇다기보다 준회가?" 내가 무슨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발끝에서 시선을 옮겨 선배를 쳐다보자 선배는 잠깐 나를 쳐다봤다. "니가 떠날까봐 불안해하고, 떠난다니까 붙잡고, 게다가 울고 그러는거. 처음보는 모습이잖아. 확인받는거같기도하고" "확인?" "그냥 널 얼만큼 좋아하는지.. 그런거에대한 확인." 정말 그랬던것같기도하다. 준회가 나를 안았을때. 이러지말자며 팔을 떼어냈던게 미안하고 아련하고 눈물까지 차오르긴했지만, 기분은 좋기만했었던것같다. 여태까지는 준회가 나를 기다리는 일은 거의없었다. 기다려봤자 5분.. 나는 늘 기다려왔으니까. 그게 싫다기보다. 지친다기보다. 준회가 알아줬으면..했던 마음 그동안의 복잡하고 답답했던게 아주 조금 풀리는듯했다. 생각할수록 더 풀리는것같은 기분에 젖어 계속 생각을 이어나가는데, 윤형선배가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아냐?"하고 물었다. 나는 윤형선배를 쳐다보며 조금 뜸을 들였다. "그런거같기도해요. 그냥 준회도 기다리는게 어떤건지.. 알아줬으면 하는마음" 내 대답에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되게 오랫동안 알아왔던 사람있어?" "네?" "뭐.. 친구나.. 아는동생이나.." "있죠. 지긋지긋한것들 세명. 저기안에" "만약에 걔네들이 어떤사람을 좋아하게된거야. 진짜 돌아버린것같이. 평소에 안그러던 애가 너한테와서 걔칭찬도 막하고, 어떻게 고백해야 좋아할거같냐면서 막 물어보고. 니가 귀찮을정도로 물어보고. 그럼 어떨거같아?" "처음엔 귀여울거같은데.. 나중엔 좀 짜증나지않을까요?" "그럼 너친구가 좋아하는 애한테, 니가 가서 너친구에대한 말을 해줘야한다고 생각해봐. 어떻게말해줄거야? 짜증나는애라고?" "아니요? 좋은애라고 말해줘야죠." "왜? 아깐 짜증난다면서. 막 지긋지긋하다며. 거짓말 쳐주는거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짜증날때도있고 지긋지긋하기도하지만 그래도 무슨일 생기면 제일 먼저와주는 애들이고, 위로도 쟤네가 해주고. 같이있으면 좋고. 거짓말 쳐주는게 아니고 진짜 좋은애들이니까요" "그치? 준회는 좋은애야" "..네?" 저 얘기가 나온것도 사실 뜬금없었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성심성의껏 답변하고있다가 갑자기 준회얘기가 나와서 살짝 당황했다. 처음엔 무슨소린지 몰라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네?하고 되물었지만 천천히 생각해보니 무슨 의미인지 알것같기도했다. "나도 준회 지긋지긋하게 봐왔거든. 그리고 걔가 나한테와서 니얘기할때 처음엔 귀여웠는데 갈수록 귀찮고 짜증도났고. 근데 난 거짓말쳐주는게 아니라 그냥 말해주고싶어. 준회는 좋은애라고. 너도 알수도있겠지만. 지금 조금이라도 의심하고있다면 그럴필요없다고" ".........." "준회가 나한테와서 누구얘기 그렇게 한적없어. 고백도 늘 받으면받았지 막 고백할거라고 설친건 처음이었어." "........." "그러니까 바뀔거야 준회는. 한번에 바뀌지는 않겠지? 아예 안바뀌거나 바뀌려다가 말수도있고? 그래도 너 잘이해해줄거야. 여태까진 아니었지만 이제 알았을거야 준회도. 무슨말인지 알지?" "...알죠!" 말없이 듣고만있던 내가 눈물고인 눈으로 선배를 올려다보며 씩씩하게 대답하자 선배가 웃으면서 나를 토닥였다. "강요는 아니다? 그냥 알아뒀으면 하는거지" "알죠~ 생각 좀 정리하고 돌아가려고요.. 준회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그래 나쁘지않아. 좋아" 선배와 나는 둘다 먼곳을 바라보면서 흐뭇하다는듯한 웃음만 지었다. 어색함과는 다른 정적이 흐르다가 선배가 먼저 그 정적을 깨고 나섰다. "춥다. 들어가자!" "네!" *** 그렇게 나름 무사히 MT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자선배들한테 인기많은 김동혁과 정찬우는 이리저리 불려다니랴. 술취한 김지수한테 찝쩍대는 남자동기들 치워내랴. 취한선배들과 취한척앵기는 선배들 챙기랴 취할틈이없었다며 돌아가저마자 쓰러져 연락도없고. 김지수는 말했듯이 사람구분도 못할정도로 취했던 터라 난리가 났을게 뻔했다. 그래서 생존자는 나뿐이었다. 나도 시끄러워서 못잔잠을 마저 자고, 저녁쯤 학교 연습실로 나왔다. 다들 쓰러진건가 연습하는소리가 들릴만도한데 조용하기만한 복도가 어색했다. 제일 안쪽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쪽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누가 올수도있는거긴하니까 그리 무서울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분명 1,2학년층엔 아무도없었던터라 조금 놀란 마음에 뒤를 돌아봤다. 진짜 운명인건지 뭔지 발걸음소리의 주인공은 구준회였다. 피곤해서인지 평소엔 올리고 다니던 머리도 올리지않고, 후드티에 롱코트를걸친 모습이 평소와다르게 편해보였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휴대폰을하며 걸어올라오던 준회가 멈춰서있는 나를 흘깃보더니 변함없이 차가운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지나쳤다. "구준회"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윤형선배와 나눴던말에 용기가생겨 덜컥 말을 붙여버렸다. 벌써 꽤멀리 떨어진 구준회는 그냥 아무말도 없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몸은 반쯤만 돌리고, 고개만 내쪽으로 틀었다. 한손으론 휴대폰을들고, 다른한손으론 한쪽이어폰을 빼서 들고있었다. 말은없었지만 "왜"라고 묻는것같은 눈빛이었다. 막상 불렀는데 무슨말을해야할지 몰라서 쭈뼛거리고있는데 구준회가 아예 몸을 돌리며 "왜."하고 물었다. "...어...안녕!" "........어.. 안녕" 내가 어색한 손동작과 함께 인사하자 준회도 당황하며 따라인사하더니 괜히 다른곳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다시 돌아섰다. "저기..!" 윤형선배의 역할이 너무 컸던걸까. 아님 그저 근거없는 용기인걸까. 준회가 이어폰으로 다시 귀를 막기전에 나는 다시 준회를 불렀다. 할말도없는데. 준회가 아까처럼 고개를 돌리고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나 노래좀 봐줄래?" *** 그렇게 나의 말도안되는 용기로 우리는 이 좁은방에 둘이 있게되었다. 사실 들려줄 노래도없었는데.. 어떤 노래를 불러야할까 생각하다가 임정희의 "나 돌아가"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그냥 준회와 헤어지고 집안에 혼자있으면서 제일많이 들었던 노래였어서 그런지 바로 생각이났다. 이미 오래되서 낡은티가 많은 악보를 피아노보면대위에 나란히 올려두고 떨리는 손을 피어노위에 올렸다. 한숨을 한번쉬고 구준회를 슬쩍보자. 표정없이 그냥 반대편벽만 가만히 응시하고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제발가지마 붙잡는 널 놔두고 돌아서 여기까지왔어 내 얘기같기만한 노래가사에 점점 빠져들어 떨리는 목소리는 사라지고, 대신 가사가 촉촉히 젖어갔다. 힘들었지만 잘한 결정이라 몇번씩 스스로 되새기면서 걸어갔어 걸어가는데 자꾸 한숨이 나오고 가슴이 점점 답답해져 지금 막 헤어져서 그럴거라 조금 더 멀어지면 괜찮겠지 했지만 나 나돌아가 다시 너에게로 발걸음을 돌려 지금 가고 있어 깨달았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아파지는 내 가슴을 보며 *** 그저 준회에게 내얘기를 해주듯 노래를 마쳤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눈물이 툭 떨어졌다. 원래 노래를하다가 감정이 복받치면 울먹임에 노래를 끊곤했는데, 오늘은 그저 복받쳤다기보다 몰입할수있었던 노래였다. 노래를 끝마치고 피아노에서 손을 떼어 무릎위에 올렸다. 그냥 가만히 앉아만있었다. 고개도 돌리지않고, 어때.라던가 하는 말도없었다. 다 전해졌을거라고 생각했다. 가사에 드러난것뿐만아니라 모든 내 감정이. 아니 사실은 전해졌으면했다. "..괜..찮네" 적막을 깨고 준회가 먼저 입을떼었다. 울먹이는.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가만히 앉아있던 준회가 후드티모자를 뒤집어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들지못하는 내어깨를 한번 움켜쥐더니 밖으로 나가기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바로 나가지않고 준회가 망설였다. 할말이라도 있는사람처럼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결국은 아무말도 하지않고 문을 꼭 닫아준채로 나가버렸다. 그저 가만히 앉아 떨리는 몸을 주체못하던 나는 달려나갔다. 그리고 준회의 팔을 붙잡았다. 준회는 내팔을 붙잡아 얼마든지 내가 자기쪽을 볼수있도록 돌릴수있었지만. 나는 그저 붙잡는것에 그쳤다. 준회가 쉽게 나를 떼어내고 갈까봐 잡고있던팔을 놓고 그냥 꽉 안아버렸다. 준회의 표정을 볼수가없었지만 아무말없는 준회가 불안해서 그냥 꼭 안아버렸다. "...나.....나지금 너한테 얘기한거야" ".........." "얘기한거라고...그냥 노래가사 아니라고!" "..........." 나는 대답않는 준회가 불안했다. 떨리는손으로 준회를 꼭 안고 조용한복도를 내목소리로 가득채우면서. 엉엉 울어가면서 말했다. 그날밤의 나처럼 떠날까봐. 준회가 내게 복수라도하듯 "우리이러지말자" 라고 할까봐. 나는 그렇게 해놓고 이제와서 나는 그렇게 말할 준회를 두려워하고있었다. 준회는 그렇게 우는 나를 가만히뒀다. 그러다가 나를 떼어냈다. 나 하나도 주체하지못할만큼 끅끅거리며 울던내가 나를 떼어낸 준회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가지마" 준회가 나를 떠나는일이 거의 현실이 되가는것만같았다. 나는 비교적 담담하게. 하지만 간절하게 준회를 붙잡았다. 준회는 내게 옷자락을 붙잡힌채로 아무것도하지않고 가만히있었다. 나는 그럴수록 불안해져갔고 불안해질수록 옷자락을 세게잡았다. 준회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는 눈을 꼭감고 고개를 숙였다. 비참한 내가 싫어서가아니라. 그냥 보고싶지않았다.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내가 눈을떴을때 처음부터 그랬던것처럼 아무도없는 장면이었다면 좋을것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준회는 앞으로 걸어나가지않고, 뒤돌아섰다. 뒤돌아서서 나를봤다. 준회의 옷자락을 붙잡았던손이 움직였다. 준회는 내손을 떼어냈고, 그대신 내 얼굴을 붙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게했다. 준회가 큰 손으로 내얼굴을 감싸고, 엄지손가락으로 내 눈물을 닦았다. 침착해진 내가 조용히 눈물만 흘리자 준회도 조용히 눈물만흘리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나를 내려다봤다. 꽤 오래 그렇게 나를 쳐다보다가 준회가 나를 꼭 안았다. 마치 품에 가둬놓듯이 안았다. 다시 감정이 차오른내가 울음을 토해내자 준회가 나를 더 꽉 안았다. "뭘 가지마.. 나 아무데도 안가" "가는줄 알았잖아 내가.. 내가 못되게 굴어서" "니가 뭘 못되게 굴어. 그런적없어" 준회는 눈물섞인 목소리로 나를 끌어안아 달랬다. *** 내가 좀 진정된후에, 우리는 연습실안에 들어가 피아노의자 하나에 나눠앉았다. 나는 준회의 어깨위에 기대어있었고, 방안은 그저 조용했다. 방음벽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나 술냄새나지않아?" "괜찮아" 내가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말하자 준회가 내 어깨에 팔을두르며 나를 빤히 내려다봤다. "괜찮아.. 진짜..?" "응?" 정면만 응시하고있던 내가 준회의 물음에 준회를 올려다보자. 준회가 고개를 내려 입을맞춰왔다. ♡암호닉♡ 구주네 / 아이닌 / 아이콘은 축구중 / 뿌요 / 동동이 / 지나니 / 기묭 / 찌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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