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김지원. 너 이 회사 이 새끼 다니는지 알고 있었지?"
"뭐라는거야. 누가 다니는데."
"구준회."
"뭐? 진심 아니. 몰랐지. 알았으면 내가 거기 넣으라 그러겠냐."
"말에서 지진이 일어난다?"
"....."
뚜뚜뚜뚜뚜
이 짐승만도 못한 새끼. 이 개새끼. 찔리니까 전화 끊는거 봐. 니가 시발 나한테 이 회사 추천해줬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와 진짜 무슨...배신도 이렇게 때리냐? 아니 언제부터 구준회랑 그렇게 쿵짝이 잘 맞았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열받네 진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건데!
§장난같은 운명 02
동혁이 입사한 지 한달이 넘었다. 아직도 동혁과 준회는 서로 냉한 기운만 있을 뿐 누가 서로 먼저 아는 척 하려 하지 않았다. 준회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동혁은 최대한 준회와 떨어져있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신입사원인 동혁의 사수는 준회였고, 어쩔 수 없이 준회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많았다. 더군다나 여기는 사회생활의 기본인 회사였다. 동혁은 힘겹게 얻은 회사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았다. 준회에게 회사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환경을 물어보기만 하고 다른 신입사원과 사수 관계에서 나타나는 애틋함이나 갈등 등은 나타나지 않았다.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로 돌아갔고, 그것이 더 동혁은 마음에 들었다.
"동혁씨~ 오늘 넥타이 정말 이쁘다~"
동혁의 옆 부서의 김 대리가 지나가며 말했다. 김 대리는 준회와 같이 들어온 입사 동기였다. 여자가 봐도 부러운 몸매와 살짝 올라간 눈꼬리, 포니테일로 묶은 갈색 웨이브진 머리에 빨간 립이 잘 어울리는 그녀는 입사 첫날부터 모든 사원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외모를 이용하여 화려한 남성 편력을 지녔으며 한번 그녀의 눈에 꽂힌 남자는 절대 놓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김 대리는 동혁을 볼 때마다 동혁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거나 자신의 책상에 있는 물건을 가져다 달라는 심부름 등을 시키는 것이었다.
"동혁씨~ 미안해. 우리 부서에는 신입이 없잖아~"
동혁은 그녀의 되도않는 변명에도 신입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서 그녀의 심부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김 대리에게 서류를 가져다 주는 동혁의 모습을 준회는 아무도 몰래 지켜보았다. 동혁은 준회가 자신을 지켜보는줄도 모른 채 김 대리의 부탁을 모두 들어주었다.
"동혁씨~ 이리 와서 이것 좀 봐줘. 내가 컴퓨터를 워낙 못해서~"
김 대리의 부름에 동혁은 이골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김 대리의 자리로 가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 하며 김 대리의 부탁에 대답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김 대리의 자리로 갔다. 흔한 수법이었다. 자기 자리로 오면 그때부터 동혁의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손으로 쓰다듬고 넥타이를 매만져주며 김 사원~ 요즘 힘든 거 없어? 라며 추파를 던진다. 동혁은 처음 당했을 때 굉장히 놀랐고 당황했지만 이것도 당하다보니 좋은건지 나쁜건지 무뎌졌다. 제발 빨리 자신의 아래 기수가 들어오길 바랄 뿐이었다. 김 대리의 부서로 들어간다면 동혁이 지금 당하는 수모는 끝날 거라 믿었다.
"동혁씨~ 오늘 저녁에 뭐해?"
"아...오늘...저녁은...제가 오늘 야근이어서요."
"김 사원 오늘 야근입니다. 김 대리님."
동혁은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김 대리의 자리까지 온 준회는 동혁을 슬쩍 보더니 김 대리에게 목례를 하며 그럼 김 사원은 데려가겠습니다. 서류 정리 좀 해야할 게 있어서요. 라고 했다. 동혁은 갑작스러운 준회의 개입에 놀랐다. 그럼...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준회는 다 봤다는 거야? 내가 김 대리한테 어떤 일을 당하고 있었는지, 그러면서도 아무 말 못하고 있었던 것을 넌 다 보고있었던거야...? 동혁은 김 대리가 자신에게 한 행동보다 그것을 쭉 지켜보고 있었다는 준회에게 더 화가 났다. 그렇게 관심없는 척, 남인 척 하더니 대체 왜 날 보고있었던거지? 자리로 돌아온 동혁의 머릿속엔 물음표만 떠다녔다. 기계적으로 서류를 정리하면서도 머리는 준회의 행동을 계속 곱씹고 있었다.
준회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알던 동혁은 아니면 아니다. 맞으면 맞다 확실히 선긋는 아이였다. 그것때문에 준회는 동혁에게 더 빠진 것이었고, 열렬히 동혁을 사랑했다. 물론 동혁과 자신은 모든 것이 정반대였다. 동혁이 사소한 것에도 상처받는 줄 알았지만 연애 초기에나 동혁의 기분을 신경썼지 천천히 동혁이 자신의 곁에 있는게 익숙해지자 그저 항상 옆에 있겠거니 방심했다. 동혁에게 용서를 빌기도 전에 동혁은 떠났고, 자신도 엉겹결에 동혁을 계속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준회는 회사에 입사했고, 학교를 외국에서 졸업한 준회는 더 이상 동혁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야 구준회."
그 때 마침 지원에게 전화가 왔었다. 동혁이 준회가 다니는 회사에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지원은 동혁의 스펙이 좋으니 꼭 될것이다, 사실 너희들 그렇게 싸웠어도 미운 정도 정이라고 동혁이가 술만 마시면 니 얘기를 했다, 라며 준회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다. 같은 회사라도 워낙 회사 자체가 크기 때문에 준회는 동혁과 같이 출근한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의 사수로 동혁이 들어온 것이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준회가 인사를 하기 전 동혁의 얼굴을 준회는 똑똑히 기억했다. 묘하게 일그러지면서 현실을 부정하려는 그 얼굴을 보고, 차마 준회는 동혁에게 아는 척을 할 수 없었다. 동혁에게 아는 척을 하기라도 한다면 동혁에게 또 다른 아픔을 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