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SAE-RO-GO-CHIM
촬영 당일 새벽, 지훈은 침대에서 늦장을 부렸다. 앞으로 꼬박 하루 동안 자신을 경계하는 프로를 대해야 했으니 지금처럼 안을 수 있을 때 실컷 안아야 속이라도 풀릴 것 같았다.
공과 사가 뚜렷한 지훈에게 느닷없이 던져진 계약서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다. 냉정하게 말해 보편적인 남처럼 대하면 그만이었다. 하여 상대를 향한 느슨한 방치와 약간의 무신경이 필요했을 뿐이었는데, 문제는 그 상대가 지금 자신이 안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
― ‘무슨 프로가 노출에 허술해.’
대차게 배꼽을 열고 자는 프로의 배를 감싸며 오늘의 마지막 다정함을 매만졌다. 공과 사에 집착하는 얼굴을 상기하다가, 말도 안 되는 거리 유지에 웃다가, 세 번이나 바꾼 야식 메뉴에 못내 미소 짓다가…… 지훈은 가만히 그 얼굴을 내려다봤다.
― ‘오늘만 몰래 짝사랑하지 뭐.’
10.5 프로의 속사정 (지훈 번외)
지훈 씨, 집중!
포토그래퍼 장이 엉덩이를 엇박으로 흔들며 지훈에게 손가락을 튕겼다. 잘하다가 갑자기 왜 그래요? 배고파? 장이 무릎을 살짝 굽히며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지훈에게 보일 리가 있나. 방금 철제문 머리로 열고 들어온 짝사랑이 저기 있는데.
― ‘안녕하세요.’
담당자는 눈으로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얼음 주걱을 꽉 쥐고 오지 마, 외면해 줘, 날 지나쳐줘, 같은 회피성 언어를 차분한 눈빛으로 말했다. 지훈은 모른 척 컵을 내밀었다.
― ‘저도 주세요.’
― ‘커피요?’
― ‘코코아.’
오늘의 담당자는 존댓말에 빈틈이 없었다. 새벽 잠결에도 3억 따위는 없다고 말끝을 흐린 걸 보면 어지간히 채무자가 되긴 싫은 모양이었다. 장의 부름에 스탭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담당자는 옅은 숨을 쉬었고, 지훈은 담당자의 빈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껏 여유를 부리던 보조개가 주인의 멈춘 사고 속으로 빨려 들어간 건 단 2초.
― ‘반지, 있지 않았어요?’
금속 알러지는 그가 최근 들어본 Hut 소리 중 ‘얼척없음 베스트 탑 1위’를 기록했다. 부승관의 ‘힘들면 네 도면 내가 그려 줄게. 그림 판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를 뛰어넘은 얼탱이었다.
제 앞에서 싱글과 자유로운 연애로 야무진 자만추를 꿈꾸는 자칭 강아지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지훈은 슬쩍 눈을 굴리며 뒷공간을 쟀다. 얼추 각이 나왔다. 사각지대로 몰아 빠져나가려는 몸을 다리로 막고 어깨로 막았다. 그럼에도 담력 좋은 멍뭉이는 대략 다섯 명이 마음에 들었단다. 지훈의 구청 가자는 말은 정말 진심이었다.
―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지훈은 스튜디오 뒷문 근처에서 단발머리 직원과 얘기 중인 담당자를 보며 그쪽으로 엑셀을 밟았다. 그렇지 않아도 촬영을 핑계로 추파를 던지는 직원 때문에 인중만 벅벅 긁었던 그녀가 신경 쓰였던 차였다. 갓길에 브레이크 등을 올리자마자 직원이 보란 듯이 뛰어왔다. 자신의 담당자보다 조수석을 먼저 꿰찼을 땐 표정 관리조차 안 됐다.
― ‘지훈 씨, 나오세요.’
……
― ‘벤츠 운전은 처음이라 떨려.’
휴대폰 게임광인 지훈은 십 분째 1단계에 그쳐 있었다. 룸미러에서 마주치는 비밀스러운 시선에 도저히 집중되지 않는 거라. 자신의 자리에 앉아 운전 중인 그녀의 뒷모습이 묘하기도 했고 낯설기도 한 탓에 조수석 창문에 코를 박고 일어나지 않는 직원은 지훈의 안중 밖이었다.
잠시 후 지훈은 운전 값을 핑계로 뺨에 입술을 맞댔다.
― ‘발 안 아파?’
……
― ‘운동화 트렁크에 있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운동화를 들먹이며 지훈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도 몰랐던 습관적 스킨십이었으니까.
― ‘그날 약속 있어요.’
― ‘아직 날짜도 모르잖아요?’
― ‘모르는데 약속은 있을 것 같아요.’
― ‘약속 없는 날에 만나면 되죠?’
― ‘앞으로도 쭉, 계속 있을 것 같아요.’
유명 배우가 어떤 영화를 찍든, 누가 그 배우를 닮았든 지훈에겐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가장자리에서 ‘개불편’을 드러내며 이따금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담당자만 신경 쓰일 뿐이었다. 지훈은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부터 [도련님, 쇤네 전화 좀 받아주시옵쇼숑] 애원 중인 승관의 전화가 빗발쳤기 때문이라.
― [용건만 말해. 자리 뺏겨.]
― [뭐래 미친놈아, 수건돌리기 하세요?]
― [어, 내 차례야. 5초 준다.]
― [야이 씨, 울 라디오 강원도 벚꽃 여행 협찬 들어와서 울 동생 주려고 티켓 두 장 빼놨다. 갈 거지?]
― [곧 죽어도 너희 청취자만 줄 거라며.]
― [에게, 삐졌냐?]
― [난 사연 오백 장 갈겨써도 안 준다며.]
― [그래서 안 감?]
― [……내가 가지러 갈게.]
― [됐다. 퀵으로 쏴 줌.]
― [땡큐.]
― [아, 맞다. 아침에 김여주한테 너랑 사귀는 티 안 내고 돌아오면 숭어 쏜다고 했는데 같이 참여하실?]
― [넌 꼭 그런 걸 애한테 걸어야 돼?]
― [와 씨, 누가 누굴 위해주는지 모르겠네?]
― [됐으니까 너나 해.]
― [야, 김여주 숭어 개좋아하는데 혹시라도 지면 인성 파탄 오진단 말이여. 왜 마음만 들뜨게 했냐고 나만 또 생각 의자 앉아야 돼. 설마 그게 단 줄 알아? 아니? 어린이 뿌요뿌요 버스도 아니고 숭어 먹방만 24시간 존나게 틀어줘야 된다고. 그 미친 형벌 받기 싫다 친구야.]
― [어, 그건 좀 문제긴 하다. 근데 뿌요뿌요 버스 아니고 리틀베이비 버스.]
―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 [……야, 그럼 내가 이겨도 걔 숭어 사줘.]
― [아니, 뿌요뿌욘지 왕베이비 버스인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 이상해.]
― [오케이, 형이 모른 척 넘어갈게?]
― [이상한 생각 좀 쳐 하지 마.]
― [내가 뭘? 애초에 김여주 너 절대 못 이긴다고 판돈 걸고 있거든요? 걘 눈에 써 있잖냐. 난 이지훈을 좋아해요.]
― [좋아해요, 가 아니라 조아해요. 받침 없어야 걔 발음이야.]
― [그런 것 좀 연구하지 마 변태 새끼야. 겨울 벚꽃 보여주고 싶다고 강원도 시청 연락해서 매진된 티켓 두 장 열 배로 사겠다고 돈 지랄한 거 네 애인한테 불어 버리기 전에 조용히 해라. 새벽에 전화 때릴 수도 있거든요?]
― [어차피 안 받아. 걔 램 수면 시간이야.]
(여의도 라디오국 랜선 독침.boo)
(별안간 공격 당한 20대 남성.bbyo)
― [미친놈아 지랄도 풍년이 나셨어요.]
― [야, 끊어. 진짜 자리 없다. 퀵 쏘고 연락해.]
― [이 새끼는 아까부터 자리 타령이냐? 진짜 수건돌리기 하…….]
지훈은 제 담당자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부대끼는 건 죽을 만큼 싫어하는 그가 타인의 무릎과 무릎이 치열한 곳에 낑겨 앉은 이유는 단 하나.
― ‘꽃게탕은 이 테이블에만 있다길래.’
……
― ‘엄청 좋아하잖아요, 저.’
내가 널 엄청 좋아하잖아요.
언제나 짝사랑의 진심은 속마음에 있다. 담당자를 짝사랑하는 지훈의 마음도 그랬다. 간혹 숨기지 못한 눈빛에 자신의 담당자의 경고가 떨어지면 지훈은 짐짓 귀 끝을 만지며 당황했다. 사실 경고를 얼마나 받든, 이 계약의 끝에 채무자가 본인이 되든 별반 상관이 없었다. 3억의 채무보다 더 중요한 건 왜 전처럼 밥을 잘 먹지 않는 건지 내심 걱정됐던 것뿐이었다.
― ‘여주 씨 전해줄 수 있어요?’
갑자기 잡힌 회의에도 지훈은 기어이 산 샌드위치를 건넸다. 잘 먹겠다, 보고 싶다, 갖은 애교란 애교는 다 나왔다. 지훈은 정차 신호가 바뀐 줄도 모른 채 메시지를 곱씹었다. 뒤에서 여러 대의 클락션이 마구 울렸다. 그가 운전대를 잡은 이후 처음 겪는 도로 불법 점유였다.
K건설 로비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서 지훈은 자신의 매무새를 확인했다. 머리는 단정한지, 셔츠 단추는 세 개만 풀었는지, 자신의 담당자가 좋아하는 메탈 시계를 알맞게 찼는지 등 자신을 검열하는 눈이 바빴다.
― ‘그나저나 여주 씨, 남자 친구 있어요?’
― ‘제 별명 참 솔로.’
― ‘주변에 좋은 놈 하나 있는데 소개해 드려요?’
― ‘번호 지금 드릴까요?’
정돈된 머리가 한순간에 흐트러지길 여러 번, 엘리베이터에서 맞닿은 발칙한 스킨십에 지훈의 공과 사는 그렇게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비상구 계단을 급습한 팀장을 있는 힘껏 미워하기도 했고, 자신을 향한 다섯 대의 카메라보다 그녀의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 회의 내내 궁금했고, 혹여 비밀 연애 디텍터인 설계 팀장에게 걸릴까 노심초사 눈을 피하기도 했으며, 종국에는 미니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오는 그녀를 위해 일부러 느리게 발을 맞추기도 했다.
그녀가 이상형이라 강조하던 석민과 상견례 프리패스 상의 영향이었던지, 지훈은 저녁 야외 촬영 동안 단정함을 잃지 않았다. 그날 저녁, 지훈이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반항적 표정은 바로 이것.
들리는 후문에 의하면 이날 포토그래퍼 장은 자신의 사진 인생 역사상 입을 건 다 입고도 섹시한 피사체는 이지훈 단 한 명이었다고.
자정 가까이 즐긴 술자리에 그녀의 볼이 빨갛다. 빨대 두 개를 맥주잔에 걸어 고농도 음주를 즐겼으니 뒤처리는 당연히 지훈의 몫이 됐다.
― ‘지훈아.’
― ‘깼어?’
― ‘아까 워크샵 찾아봤는데 거기 인기 되게 좋대.’
― ‘시설 좋긴 했었지.’
운동화로 갈아 신은 그녀의 발이 공중에서 흔들렸다. 목을 감은 손이 서서히 느슨해졌다. 지훈은 편히 기댈 수 있게끔 허리를 더 굽혔다.
― ‘나 없으면 누구한테 업혀 오려고 이렇게 취했어.’
……
― ‘사람 별걱정 다 하게 만들어.’
지훈은 도어락을 열었다.
비밀 번호는 20160426.
― ‘2016 다음에 뭐라고?’
― ‘그거.’
― ‘그거 뭐?’
― ‘엉.’
― ‘이지훈 멍청해.’
― ‘다 들려.’
― ‘왜 이런 것만 잘 들어?’
술에 취한 지훈이 그녀와 함께 집에 왔던 밤,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말에 그녀가 입술을 꾹 깨물고 등을 졌던 그날 밤, 더 이상 그녀가 지훈과 함께할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밤, 결국 비밀번호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떠났던 그날의 밤.
― ‘어디 살아?’
― ‘반성문 왜 쓰는데?’
― ‘동생이나 형은?’
― ‘이거 다 채워야 보내준대?’
― ‘뭐 좋아해?’
― ‘오늘 집에 못 가겠네.’
20160426.
그날, 그 과학실.
― ‘……공과 사에 네가 있으면 분간이 되나.’
조용히 속삭이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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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ㅉ ㅏ님들 잘 지내시쥬 댓글은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있습니당 제가 기억하기로는 시즌 2 연재할 때 보보님 신입생이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취준생이라뇨 다시 신환회로 돌아와 주세요 제가 지금 그 시절 이슬 톡톡을 한번 따 보겠읍니다 , , Hut 소리 얼렁뚱땅 긍정의 힘이 벌써 입에 착착 붙어버렸어요 보보님도 저도 다른 분들도 취뽀를 위해 다 같이 주문을 외워봅시다(?) 합격하시면 언제든지 댓글 주세요 소장본 진행되면 같이 여섯 권 나눠 가져요 흐 ㅣ희 쿠키님은 인티 회원 되신 기념으로 보고 싶은 장면 하나 주세요 흐름 맞춰서 에필로그 포함 잘 스까보도록 하겠습니다 016326님은 암호닉 뜻 뭔지 물어봐도 되여? 사미님도 뜻이 뭐에여? 망고님은 요즘 뭐하세여? 애옹이님 시즌 3 조아하는 부분 알려주세영 도칠님은 제게 세 달 마지노선을 정해주셨어요 흐름 끊기지 않게 정 자세로 열심히 하겠습 ㄴ ㅣ다 . . . 근데 도제님 불막흐여? 불.막.흐? 불. 막. 흐? 저도요 ^_^ (대충 말고 진심으로 알아들었다는 뜻 도토리님 내적 scream 이거 다음편에 써도 되여? (허락 아니고 애교 부리는 거라 무족권 들어주셔야 댐) 사실 저 비회원 181.37 님은 댓글 오픈 될 때까지 기다림 ㅎ.ㅎ 이랑님은 세 번이나 보세요...? 그럼 틀린 맞춤법 알려조요..... 새벽에 일하다가 발견하면 그것만큼 ㅊ ㅑㅇㅍ ㅣ한 게 업 ㄱ ㅓ든여.. ,. 지단님 오늘의 tmi 알려주세여 전 레드불을 마셨습ㄴ ㅣㄷ ㅑ 그럼 지훈이랑 워크샵에서 또 만나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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