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감화서
w.규닝
04.
책장의 모서리를 짚고 선 우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침 강의에 들기 전이면 늘 그랬듯, 양심 값을 수금하기 위해 들른 도서고가 유난히 휑하다 느껴진다 했더니 그득그득 차 있어야 할 옥그릇에 엽전이 절반 넘게 비워져 있었다. 우현은 그 앞에 무심코 섰다가 발견한 해괴망측한 상황에 잠시 동안 넋을 잃었다가 뒷짐을 졌던 손을 풀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우현의 손이 천천히 그릇에 가 닿았다.
“두 냥…?”
우현의 손에 집히는 것은 정말이지 달랑 두 냥의 엽전이 전부였다. 본디 다섯 내지는 여섯 냥 정도가 그들 간의 ‘합의’에 있어서는 적당량이었다. 우현이 설마하는 목소리로 뇌까렸다. 우현의 손에서 엽전 두 잎이 땡그랑 소리를 내며 그릇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한 푼, 두 푼. 우현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천천히 입을 벌렸다.
“…기만하는 것이다.”
고 같잖은 서생원이 지금 나를 기만하고 있는 거다. 우현의 입에서는 절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하. 하. 곧이어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웃음을 자아냈다. 우현이 옥그릇을 덥석 집어 들어 제 눈 앞에 가져다 왔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두 냥이다. 두 냥? 그릇 바닥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엽전 두 냥을 태워버릴 듯 노려보던 우현이 팩 하고 고개를 떼어냈다. 그릇이 책장 위로 꽝,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존경각을 울렸다. 등 뒤의 책장 너머에서 서책을 고르던 두어명의 유생들이 우현을 힐긋거렸고 곧이어 성난 발걸음이 도서고 밖으로 휘적휘적 옮겨갔다.
장난하나 이게? 우현이 이를 바득 갈았다.
고작 한두 푼 받지 못해 골이 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유생 체면에 까짓 두어 푼이 뭐라고 이리 마음을 쓰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었지만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었다. 그러니까 우현에 있어서 이것은 고 조그만 서생원이 저를 기만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달고 있었다. 우현은 비천당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아침부터 불만스러운 기운을 팍팍 풍겨내기 시작했다. 동기 유생들의 눈매가 한 군데로 모아졌다.
도헌, 또 시작일세. 그의 방우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우현의 귓가에 들리지 않게끔 멀어졌다.
*
“어젯밤은 도련님과 제가 나누어 쓰지 않았습니까?”
당돌하게 치켜진 눈을 대적하자 우현의 입꼬리가 딱딱하게 굳은 채 올라갔다.
“뭐야?”
“어젯밤 도둑공부는 소인만 한 게 아니었다고 생각하여 절반의 값만 낸 것이온데, 성균관에 나머지 절반의 양심 값을 지불하시지 않은 것은 도련님이시면서 어찌 제게 절반 값의 책임을 물으십니까?”
성규가 얼핏얼핏 웃음을 흘렸다.
“이제 보니 참 도둑은 도헌이십니다.”
우현은 대책 없이 딱 딱 떨어지는 성규의 말에, 이것저것 몰아붙이려 준비해놓았던 지청구가 목구멍께에서 떡 하니 막혀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 답답한 속내로 헛바람이 들어찼다.
오후 강의를 마치고 오랜만에 방우들과 저잣거리를 노닐러 나온 와중에 맞닥뜨린 것은 성균관 구석에서나마 간간히 볼 수 있었던 서생원의 쥐꼬리였다. 우현은 장사치들의 수레 앞에 멀거니 서서 눈을 빛내고 있는 성규의 뒷모습을 발견하자 같이 있던 방우들더러 먼저 가 보겠다는 손짓을 한 후 감쪽같이 그의 뒤로 자리를 옮겼다. 장신구들을 훔쳐보던 성규가 이윽고 뒤를 돌았을 때에는 소리 없이 제 뒤에 버티고 섰던 우현을 발견하고 악 소리를 내질렀었다.
그러더니 묻는다는 것이 양심 값 절반의 행방이 아니겠는가. 성규는 화들짝 놀라 쿵덕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쏟아진 우현의 뻔뻔스러운 말에 입술을 물었다.
“양심은 도헌께 필요한 것임을 어찌 모르십니까? 소인은 언제나 제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지려하고 있으나, 그런 소인을 혼내고 있는 것은 도리어 도헌이시니 이리 억울할 데가 없습니다.”
“야! 그건 애초에,”
“애초에 도둑공부를 일삼은 것은 소인 쪽일지는 모르겠으나,”
성규가 지지 않고 눈을 번뜩였다.
“어젯밤은 둘이었습니다.”
제법 또박또박한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렸다. 우현의 입에서는 차마 다른 반박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둘이었지. 결국에는 성규의 말끝을 번복하는 목소리가 먼젓번보다 낮게 흘러나왔다. 우현이 당황하여 굳혔던 얼굴을 애써 천연덕스럽게 펴냈다.
“내 양심의 됨됨이는 너와 달라서, 두어냥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는 터라 그것의 곱절은 더 낼 수 있으니 염려 마라.”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저를 포장하기 위해 지레 늘어놓은 허풍에 오히려 제 얼굴이 더워지려 하고 있었다. 우현이 옷자락 속에 숨겨두었던 접선을 꺼내 들어 얼굴을 부쳤다. 성규가 제 필낭 끈을 단단히 여미다가 입술을 비죽였다. 그러시든지요, 하고 답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꾸역꾸역 참아낸 것이었다.
“헌데 어딜 가는 길이십니까?”
“너는 어딜 가는 길이었느냐?”
“소인은 궐에 들렀다가 북촌의 수의 대감마마 댁에 들렀다 오는 길목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에 잠시 반촌에 들러볼까 하여….”
우현이 아직 더운 얼굴을 연신 부쳐대며 떡 하니 뒷짐을 졌다.
“나는 방우들과 약주를 하러 가려던 참이다.”
그에 성규가 예,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우현이 사뭇 진지하게 헛기침을 했다. 큼, 흠흠.
“너는 나와 주막에 들러야겠다.”
“예?”
느닷없는 우현의 말에 그러려니 하며 숙여지려던 성규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주막이요? 성규가 우현의 뒷말을 번복하며 물었다.
“소인은 어찌…? 도헌께오서는 방금 분명 방우들과 함께,”
“너를 부르려다가 그만 방우들을 놓쳐버린 탓에 그들의 행방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에 내가 어찌 혼자 약주를 즐길 수 있겠느냐?”
우현이 접선을 소리 나게 탁, 접었다.
“네 탓에 방우들을 잃어버렸다.”
“…….”
“그러니 내가 약주를 하는 동안 너는 나의 앞자리를 지켜주어야겠다.”
우현은 접선을 도포 깃 속으로 쏙 집어넣고 인파 속으로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멀뚱히 서서 그의 뻗댄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리둥절하기도 잠시, 황당한 마음에 놓고 있던 넋을 황급히 붙잡은 성규가 그를 놓칠세라 우현의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저잣거리의 시끌벅적한 소음이 성규의 귓가를 어지럽혔다. 너무 빠르십니다! 잠시만 뒤쳐져도 한참을 앞서 걷고 있는 우현의 등에 투정을 부리듯이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그는 잠시 흘깃 뒤를 돌아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성규는 한참동안을 다른 이들과 어깨를 부딪치고, 여러 번 치이고서야 그의 옆에 당도했다. 우현이 성규의 필낭 끝부분을 집게손가락만으로 잡아당겼다.
“어린 아이도 아닌 게,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구나.”
그에 성규가 우현의 옆자리로 바싹 다가가 붙었다.
이른 시각부터 입궐해 전의감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던 데에다가, 수의 대감의 집에 들러 작문 일지를 올린 후 호되게 궂은 소리를 듣고 돌아오던 길이었던 탓에 우현까지 얹혀버렸기에 심신은 배로 힘들어져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뒤를 돌아, 가던 길을 마저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우현의 눈에 엇나가봐야 좋을 일이 없었기에 그의 뒤를 좇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야속했다. 성규가 조각걸음으로 그의 뒤를 열심히 좇아갔다.
그러나 푸줏간이 즐비한 길목에 들어서자 우현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성규가 의아한 눈으로 그의 뒷통수를 쳐다보았다. 바짝 긴장한 머리가 정면만을 보고 느리게 걸음을 옮기다가, 물건을 짊어진 장사치가 옆이라도 지나갈라 치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꼴을 보아하니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흐음. 성규가 우현의 뒷통수를 노려보다가 마침 눈에 보이는 푸줏간에로 달려가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 그, 그. 뭘 하는 것이냐?”
“아까부터 도헌께서 바짝 긴장하고 계시는 연유가 이것 때문이 맞습니까?”
“뭐? 내가 언제? 긴장?”
아까부터 저를 좇아오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아 미심쩍게 등을 돌렸던 우현은 별안간 제 쪽으로 돼지머리를 불쑥 내미는 손에 질겁하여 뒤로 물러났다. 아니옵니까? 성규가 제 품에 한아름 안아 든 돼지머리를 우현의 눈앞에 좀 더 들이밀었다. 그러자 무조건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치던 우현이 그 뒤로 지나가는 장사치들의 어깨에 사정없이 부딪혔다. 저리 안 치워? 어찌 성균관 유생을 이리 기만할 수 있는 것이냐? 잔뜩 겁을 집어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생입네 하는 목소리가 허세를 담고 있었다. 성규가 높이 치켜세웠던 제 팔을 아래로 내려 그 꼴을 보고 웃었다.
“어린 아이도 아니시오면서, 퍽 겁이 많으십니다.”
성규는 언제나 이렇게 동점을 먹고 나서야 직성이 풀렸다. 당장 그 해괴한 것을 치우지 않으면, 성규가 결국에는 악에 받친 목소리를 들어냈다.
경을 칠 것이야! 새파랗게 질린 목소리가 호령 같지도 않는 불호령을 외쳤고, 성규는 그제서야 푸줏간 문턱에 그것을 내려두었다.
*
초저녁에 접어드는 시각, 반촌 끝머리에 위치한 주막의 마당 등에 불이 올랐다. 우현과 성규가 자리를 잡을 때 까지만 해도 드문드문 찼던 상에 어느덧 사람들이 한 가득이었다. 이게 몇 전이요, 저게 몇 전이요 떠들어대는 장사치들의 말소리에 귓가가 아플 지경이었다. 성규가 우현의 앞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한바탕 자존심이 상해 심술이 나 있는 얼굴을 오목 조목 살펴보았다. 괜찮으십니까? 조용히 묻는 성규의 목소리에 우현의 얼굴이 홱 들려 성규를 흘겼다. 성규가 비실비실 웃음이 터지려는 입가를 꾹 내리고 시선을 비켰다.
어스름한 땅거미가 주막 앞마당을 채웠다. 우현과 성규의 상에서 가까운 연등에도 불이 켜졌다. 덕분에 미미하게 밝혀진 불로 서로의 얼굴 윤곽이 한 층 분명하게 드러났다. 우현이 제 사발을 들어 올려 성규에게 내밀었고, 멀뚱멀뚱히 상만을 쳐다보고 있던 성규가 넙죽 술병을 받아 들었다. 콸콸콸, 우현의 사발로 술이 흘러들어가는 소리가 시원스러웠다. 먹고 죽으라는 건지. 우현이 짐짓 인상을 찌푸리다가 제 쪽에서 먼저 잔을 높이 드는 것으로 병목을 끊었다. 성규가 그제서야 술병을 거두어갔다.
“너는 한낱 서생 주제에 어찌 이리도 나를 기만하려 드는 것이냐?”
“송구합니다.”
“하나도 송구스럽지 아니한 목소리로 송구스럽다고 말하는 것도 나를 기만하는 것이다.”
성규가 웃음기를 꾹 눌러 담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천한 소인, 도헌께오서 돼지의 머리를 두려워하시는 줄 꿈에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소인은 그저 자꾸만 도련님의 발길이 멈추었다 가시기를 반복하기에 혹시나 하여…”
“시끄럽다. 너는 나를 기만하고 또 기만하려 드는 것이로구나.”
우현이 성규의 말을 덜컥 잘라내며 인상을 그었다. 아 예. 우현의 지청구에 도란거리던 입을 다물은 성규가 제 잔으로 기울어지려는 술병에 공손히 사발을 받아 들었다. 우현에게 그랬던 것처럼, 성규의 잔에도 콸콸콸 술이 쏟아져 들어왔다. 결국엔 사발 끝까지 채워진 술에 성규가 작게 눈썹을 찌푸렸다. 그러기를 잠시, 어서 들지 않고 뭐하냐는 듯한 우현의 얼굴에 쓰게 웃다가 사발로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너는 아직 내가 너에게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지를 직시하고 있지 아니한 게 분명하다.”
우현이 제 사발을 절반 정도 들이킨 후에 상 위로 소리 나도록 내려두었다. 성규도 그를 따라 술로 입술을 축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입에 머금은 술이 꼴깍 하며 목구멍을 타는 소리가 선연하게 울렸다. 예?
“어인 뜻이십니까?”
“분명하게 말하거라. 너는 분명 내게 억하심정을 품고 있지 않느냐?”
“억하심정이요?”
“그렇지 않고서야 틈만 나면 고 작은 눈으로 나를 흘겨보거나 툭툭 가시 돋친 말을 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성균관에 하사된 지식이 한 데 모여 있는 존경각에서 그 뜻을 훔쳐 도둑 공부를 일삼고 있는 일개 의학 생도를 눈감아주고도 어찌 나는 네게 홀대를 받고 있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다.”
우현이 진심으로 답답한 목소리를 내었다. 분명 제가 생각하는 것만큼의 접대를 받지 못한 까닭에 심기가 틀어진 것이었다. 성규가 우현을 따라 들었던 사발을 제 앞에 조용히 내려두었다. 우현은 사뭇 진지하게 가라앉은 성규의 눈을 마주보다가 우악스럽게 제 잔을 들어 올려 남은 술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뭘 그렇게 보느냐? 대답은 않고. 애먼 눈이 줄곧 저를 향해 있자 민망함을 담은 목소리가 삐딱하게 뱉어졌다. 성규가 쉬이 변하는 우현의 표정을 찬찬히 뜯어보다가 눈을 접어 웃었다.
“홀대가 아닙니다.”
“허면?”
“소인을 대하심에 있어서 너무하신 감이 없지 않아 있어 투정을 부려 본 것이옵지 소인은 한 번도 도련님을 기만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다음번에 성균관에 들를 때에는 도련님께 드릴 약제를 따로 빼 둘까 생각도 해 두었습니다.”
“꼭 선심 쓴다는 듯이 말하는구나.”
“…….”
“그것은 내가 너한테 명했던 것이니 마땅한 일이니라.”
또 옳다꾸나 하며 대번에 건들거리기 시작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 하니, 매번 그리 나오시니 저도 자꾸 엇나가는 것이옵니다. 하며 뱉고 싶은 말을 목구멍 너머로 삼켜두며 성규가 달갑지 않게 웃었다.
홀대가 아니라는 말을 들어내자 또 금세 기분이 풀어진 것인지, 술맛 좋구나 하며 제 사발을 연달아 들이키던 우현이 다시 한 번 병목을 잡았다. 그의 기분에 맞춰 홀짝 홀짝 잔을 들이키던 성규가 조금 웃었다.
“헌데 고뿔은 벌써 싹 나으신 듯 합니다.”
그 말에, 신나서 사발에 술을 쏟아 붓던 우현의 손이 뚝 멈추었다.
“뭐야?”
“잠겼던 목소리도 어느덧 쌩쌩하니 풀어지신데다가 하는 행동마다 씩씩하니 기운이 넘쳐나시기에 드리는 말입니다. 도헌께서는 아마…약제는 더 이상 필요 없지 아니하실까 생각됩니다.”
성규의 말에 우현이 느닷없이 헛기침을 시작했다. 잘만 넘어가던 술이 목구멍 가운데에서 딱 막혀 사레에 들려버리기도 한 데에다가 목소리가 쌩쌩하다는 말에 여지껏 잘만 나오던 제 목소리를 다시금 가다듬어 보기 위함이었다. 우현이 단박에 소리를 낮추어 미간을 구겼다.
“너는 돌팔이다.”
우현이 두 손을 제 무릎에 딱 갖다 댔다.
“너 같은 돌팔이가 어찌 장차 주상전하를 보필할 어의가 될 것이란 말이더냐? 나는 지금 고뿔에 든 것이 맞다. 삼의사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의학생도라더니 별 거 없구나. 그런 것 하나 가려내지 못해낼 바에는 출세고 뭐고 초야에 묻혀 살 것을 권한다.”
먼젓번과는 달리 티가 나도록 시름시름 앓는 목소리가 사뭇 진지하게 성규를 꾸짖고 있었다. 풉! 아무 생각 없이 사발을 들이키려다 우현의 연기에 웃음이 터진 성규가 제 입가로 흐른 술을 옷깃으로 더듬더듬 닦아내었다. 우현이 뭘 보냐는 듯 성규를 쏘아보았다.
약제가 필요 없을 것 같다는 말에 거짓으로 꾸며 앓는 목소리가 웃겨 죽을 지경이었다. 성규가 허리를 굽혀 고개를 박고 앉아, 한참동안이나 상 아래로 머리를 숨겨 웃음을 참았다. 끅끅대며 웃는 통에 자꾸만 그의 어깨가 들썩여졌다. 우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성규의 갓머리를 쏘아보았다.
“왜 웃는거야? 돌팔이란 말이 그리도 좋더냐?”
“소인은,”
잠시동안 웃음을 멈추었던 성규가 다시금 터져버린 웃음에 손바닥으로 제 입을 틀어막고 입가를 진정시켰다. 심술이 들어찬 눈이 성규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화륵 불이 오른 제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던 성규가 제 입가를 겨우 진정시키고 눈을 접어 웃어보였다.
“소인은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우현이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사발을 들이켰다. 성규의 입가가 작게 올라갔다.
“도헌께서는 참 알다가도 모르실 분입니다. 그래서 소인은 도련님을 아무리 뵈어도 당최 모르겠는 기분입니다.”
무심하게 술을 들이키면서도 두 눈은 말하고 있는 성규의 입술에 가 닿았다. 우현이 천천히 사발을 내려두었다. 성규가 한 층 터진 목소리로 다음 말을 이었다. 소인이 생각하기에…
“엄한 분이신지, 허술한 분이신지.”
성규가 제 손가락을 차례대로 하나, 둘 꼽은 후에는 잠시동안 다음 말을 망설였다. 그리고 하나 하나 셋, 네 번째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말을 이었다.
“고약한 분이신지…다정한 분이신지를.”
성규가 마지막 네 번째 손가락을 꾹 접은 직후에 고개를 들었다. 가만히 성규의 말을 듣고 있던 우현이 들이키던 사발에서 입술을 떼지 않고 성규의 손목을 가져다 왔다. 순간적으로 억센 손아귀에 확 잡힌 손이 우현 쪽으로 팩 끌어졌다. 성규가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우현이 성규의 첫 번째 손가락과 네 번째 손가락을 꾸역꾸역 펴냈다.
“엄하고, 다정하다.”
그에, 우현에게 잡힌 제 손목을 당황스레 내려다보고 있던 성규가 자연스레 펴진 두 개의 손가락과 우현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우현이 눈빛으로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성규가 무릎 위에 올려 둔 제 반대편 손을 꼼지락거렸다. 제 손목을 붙든 우현의 손에 힘이 더해지자 더욱 당황한 눈이 도륵 굴러갔다. 소, 소인의 이견입지만…, 성규가 저도 모르게 다음 말을 더듬었다. 우현의 억지로 펴졌던 네 번째 손가락을 조심스레 접은 후에 가운뎃손가락을 대신 폈다.
“어, 엄하고…, 고약하신 줄 압니다.”
우현이 저를 향해 번듯이 펴진 성규의 가운뎃손가락을 노려보았다. 뭐야? 은근히 심기가 나빠지려고 했을 때 즈음에는 성규가 먼저 그에게서 서둘러 손을 거둬갔다. 우현이 이내 관심 없다는 듯 먼저 고개를 돌렸다.
느즈막히 들러 앉아, 인경에 거의 가까워졌을 무렵 반촌 어귀에서 두 사람의 발길은 틀어졌다. 성균관 길목의 반대편에 서서,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순라군의 앞에서도 유생입네 하며 팔자걸음을 하는 우현의 뒷모습에 멀거니 시선을 박던 성규가 오른손을 들어 올려 제 옆머리를 긁적였다.
자꾸만 우현에게 붙잡혔던 손목 언저리가 불에 덴 듯 화끈거려 기분이 가히 이상했다. 평소에 우현이 제게 내리는 불호령이 입 대신 손목으로 쏟아진 것이라 생각해보니 이해는 되었다. 우현은 제게 있어서 언제나 갑이었고, 두려운 존재였기에. 성규가 괜한 제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아마, 그렇잖아도 무서우신 분이 갑자기 팔목을 잡아 챈 탓에 너무 놀라버린 심장이 쿵쿵 뛰어버린 것이고ㅡ 그 심박수가 아마 팔목으로 옮겨 가 버린 것이겠거니 하고. 제 손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성규가 이마께로 흘러내린 갓을 두 손으로 잡아 고정했다. 이미 우현의 뒷모습은 저만치 멀리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성규의 걸음도 반촌의 반대편으로 꺾어졌다. 그리고 조금 돌아왔던 반촌 어귀를 다시금 지나치게 되었을 때에는 우현의 것인 게 분명한 접선이 길바닥 한 가운데에 적나라하게 떨어져있었다. 성규가 그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허술하고…,”
성규가 다시금 제 두 번째 손가락을 꼭 접었다. 조금 전에 제가 정의했던 네 개의 선택지를 떠올려보다가, 잠깐의 고민 끝에는 네 번째 손가락도 천천히 펴 보였다.
“다정한 분이 맞습니다.”
소인의 이견으로는. 성규가 슬금슬금 웃으며 그의 화려한 접선을 집어 들었다.
*
“내가 고약한가?”
결국은 인경이 넘어 성균관으로 들어온 우현이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갓을 풀어헤치고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등잔을 켜 두고 오랜만에 조용히 서책을 읽던 방우가 눈썹을 구기며 우현을 쳐다보았다.
“어딜 갔다가 이제야 온 겐가? 저잣거리에서 통 보이질 않더니.”
“묻질 않았는가. 내가 고약하냐고?”
우현이 방우에게로 가운뎃손가락을 버젓이 펴 보였다. 성규가 내려 준 세 번째 선택지가 영 마음에 걸리는 탓이었다. 그 손가락은 뭔가? 방우가 의아한 듯 묻자 우현은 잠시 동안 그의 얼굴이 성규라도 된 것 마냥 태워 죽일 듯 노려보다가 방바닥으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아무것도 아닐세. 우현이 자꾸만 바늘 같은 것으로 쿡쿡 쑤시는 것 같은 제 속을 재워보려 물주전자를 들이켰다.
*
거의 닷새 남짓한 시간동안 성규는 성균관에 찾아 들지 못하고 있었다.
활인서(活人署)의 의관으로서, 혜민서에서 서촌 어귀의 강 일대에 등창 환자들을 보살피라 내린 밀지에 따라 성규는 몇 날 며칠을 그 곳에서 꼬박 밤을 새워내야 했다. 그만큼 피로도 쌓여가는 데에다가 먹은 것도 시원치 않아 음식물을 게워내기도 몇 번, 결국에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환자들만 겨우 치료해내고 서촌을 떠야 하는 성규의 발걸음도 가히 가볍지는 아니했다. 한양으로 돌아와 어쩐지 알 수 없는 회의감에 빠져 스스로 그렇게 단식을 하기도 꼬박 하루가 지났다. 어찌되었건 성균관 약방에 약제는 가져다 놓아야 했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는 와중에도 미처 치료하고 오지 못한 환자들이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아 기운이 없었다.
“반촌 바닥이 좁구나.”
그러다가 역시나 바빴던 하루의 끝에서, 보기 좋게 맞닥뜨린 것은 우현이었다.
약방에 약제를 놓고 돌아오는 길, 신삼문 층계 앞에서 대면한 우현은 며칠 전과 다름없이 썩 괜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얼 해도 기운이 나질 않아 축 쳐져 있었던 어깨가 바르작거리며 올라갔다. 우현이 성규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봤다.
“굳이 만나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리 쥐꼬리가 쉬이 잡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헌데 어딜 가는 길이었느냐?”
“소인이 성균관 앞에서 도련님을 마주쳤다는 것은, 당연히 약제를 놓고 온 길이 아니겠습니까?”
성규가 힘없이 배시시 웃어보였다. 그 말에 떡 하니 뒷짐을 지고 섰던 우현도 넌지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다. 별 시덥잖은 말로 대답을 마무리한 우현이 멀거니 섰는 성규의 걸음을 재촉했고, 층계 아래로 걸음을 내딛으려던 성규가 조심스레 물었다. 나가십니까? 그에 우현이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려는 길에 너를 만난 것이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반수교 앞에 가 닿았다.
헌데…, 잠시 침묵이 흐르던 것도 잠시, 우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는 나와 맞먹으려 드는 것 뿐만 아니라 양심마저 상실해버렸더냐?”
“예? 소인 말입니까?”
“그래. 너 말이다.”
우현이 찌릿 성규를 흘겼다.
“요 며칠 새에 옥그릇에 너의 양심이 매번 비워져있더구나.”
“아, 그것은….”
“도둑 공부를 하는 것을 허락한 것이었지 도둑이 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규가 우현의 말에 제 필낭의 끈을 꼭 잡아 쥐었다.
“알고 있습니다. 소인도 이제는 양심 값을 내지 말라고 이르셔도 낼 겁니다. 그 편이 소인에겐 더욱 편한 일일 것 같기에…. 단지 요 며칠 사이는 엽전을 내지 않고 다녀간 것이 아니라 찾아들지 아니한 것일 뿐입니다.”
“뭐야? 어째서?”
“나병환자를 돌보고 왔습니다.”
그에 우현의 걸음이 잠시 동안 뚝 멈췄다.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대답이었거니와, 성규의 입에서 덜컥 떨어진 말은 평온한 그 표정과 달리 아주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우현이 단박에 굳은 눈으로 성규를 보았다. 성규가 터덜터덜 걷고 있던 걸음을 멈추고 옆을 돌아다보았다. 나란히 하던 인기척이 어느덧 저 뒤에서 그쳐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규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찌 그러십니까?”
“나병이라 일렀더냐?”
우현이 설마하는 목소리로 묻자 성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소인, 활인서에 배당되어 닷새 가까이 서촌에 머물면서 등창 환자들과 나병 환자들을 만났습니다. 헌데 도헌께서…”
성규가 단단히 얼어있는 우현의 곁으로 한 발짝 다가갔다.
“표정이 좋지 아니하십니다.”
성규가 보기에 우현의 표정은 마치 못 볼 걸 보기라도 했다는 듯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성규와 나란히 길을 걷던 우현도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두 다리가 뻣뻣히 굳어 뿌리 내린 듯 자리에 섰다는 것을 알았다. 분명 제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성규가 한 발짝 다가오자 저도 모르게 흠칫한 몸이 한 발짝 멀어져 섰다. 성규가 다가오려던 몸을 그 자리에 세웠다.
내, 내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은…, 우현이 어설프게 입을 떼었다.
“아직 고뿔이 낫지 않아 그런 것이다!”
성규가 더듬거리며 떨어지는 우현의 말을 마저 듣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뻔한 거짓말인 게 분명했다. 고뿔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한 기색을 띠고 있으면서 한다는 핑계가 겨우 그것이라니. 성규가 우현에게서 먼저 등을 돌렸다. 도헌께서는 벌써 열흘은 전에 걸렸던 고뿔을 아직도 달고 계시다니요. 참 오래 가십니다. 성규가 다시 걸음을 옮기자 저쪽에서부터 얼어있던 우현의 걸음도 천천히 떼어졌다.
나란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기에 둘의 걸음도 어느새 나란히 가까워졌다. 좀 더 느리게 걷는 성규와, 좀 더 빠르게 걸은 우현이 결국에는 옆으로 나란한 속도로 걸었다. 단지 둘 사이의 거리가 전보다 다섯 폭은 더욱 멀어졌을 뿐이었다. 성규가 우현을 힐끔거렸다.
성규는 제가 쥔 필낭 끈을 꾹 여몄다.
“서운합니다.”
그렇게 잠시 후에는 고요해진 목소리가 조용한 길바닥 위로 뱉어졌다. 멀찍이 떨어져 아닌 척 논바닥을 보며 걷고 있던 우현의 고개가 천천히 성규 쪽으로 돌아왔다. 성규가 묵묵히 제 짚신 끝을 내려다보며 걸었다.
“소인이 가까이 있는 게 싫으십니까?”
바닥을 향해 떨어졌던 눈이 올곧게 정면을 향했다. 점점 반촌 저잣거리에 가까워지려는 둘의 걸음이 동시에 느려지기 시작했다. 우현이 짐짓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천천히 풀어냈다. 우현의 입에서 쉬이 대답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성규도 결국에는 말을 잃었다. 조용해진 둘 사이에 풀벌레 우는 소리가 간간히 들어찼다. 겨울의 초기에 들어서니 한 층 차가워진 바람이 흐드러지며 그들의 머리맡을 스치고 지나갔다. 덕분에 차게 얼은 갓머리가 조금 뒤로 넘어갔다. 우현이 조금 느린 손으로 제 갓을 고쳐 썼다. 그의 턱 끝에서 달랑거리는 갓끈이 목 언저리를 간지럽혔다. 아마 그 탓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쉽사리 대답이 떨어져 나오지 않는 것은 단지 내 목이 지금 간지럽기 때문인 거라고. 우현은 차마 나병환자라는 말 때문에 쉬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음이라 이르지는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을 곱씹어보다가 옆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아무런 표정 없이 정면을 향해 걷고 있는 성규의 옆으로 슬금슬금 붙어 섰다. 성규가 별안간 느껴지는 인기척에 조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눈에 들어차는 것은 우현의 비단옷 어깨 언저리였다. 성규가 눈을 천천히 꿈뻑였다.
“이러면 안 서운하느냐?”
그렇게 말한 우현은 성규에게서 얼른 대답이 떨어지지 않자 더욱 가깝게 어깨를 당겨 걸었다. 걷고 있는 두 사람의 어깨가 거의 닿을 듯 가까워졌다. 성규가 가만히 제 어깨 끝을 훔쳐다보았다.
결국에는 간간히 닿고 있는 어깨 맡에서 옷깃이 닿아 사각거리는 소리가 간지러웠다. 성규가 얼른 고개를 바로 했다.
“물었지 않느냐. 서운치 않느냐고?”
저를 매몰찬 사람으로 볼까봐 얼른 행동을 고쳐 물었건만 제가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고 있자 애가 닳은 우현이 재차 물었다. 괜한 헛기침과 함께 성규의 얼굴을 훔쳐보는 얼굴에 안이한 불안감이 서렸다. 성규가 그것을 느끼곤 조금 웃었다.
“조금.”
“…….”
“서운하지 아니했던 건 아니지만, 서운함이 가셨습니다.”
성규가 자꾸만 제 어깨맡에 와 닿는 낯선 인기척에 왠지 모르게 배 밑을 간질이며 달아오는 느낌을 모른 척 하며 뱉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능청스럽게 대꾸하려 한 것이었지만, 제 심장께가 이상하게 뭉글하다는 것을 알게 된 직후 이상토록 묘한 느낌에 제 걸음이 느려진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피하려던 것 아니었다. 단지 밤 논길이 아름다워 보여 구경을 좀 하고 있었던 탓에 걸음이 느려진 것 뿐이었다. 애써 저를 포장하려는 목소리가 성규의 귓바퀴에 늘어졌다. 그러나 이미 그의 변명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성규가 자꾸만 제 어깨로 와 닿는 옷깃의 느낌에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한 발짝 비켜 섰다.
우현이 성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유연히 변명을 늘어놓던 입을 딱 다물고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느냐?”
“소인, 농을 한 것이었습니다.”
성규가 어느새 그 자리에 딱 멈춰 서 말했다. 성규가 괜히 제 필낭 끈을 두 손으로 힘주어 잡았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등창 환자만을 돌보고 왔을 뿐이지, 나병 환자는 구경도 채 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우현이 성규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더디게 반응했다. 뭐라? 우현이 헛웃음을 지었다.
“네가 나를 놀린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뵙는 도헌의 얼굴이 반가웠기에 소인 지나친 농을 해 보았던 겁니다. 그러니 소인은 도헌께 서운할 것도 없고…도련님께서는 저를 달래려 가까이 오실 일도 없고…”
성규가 말 끝을 흐렸다. 가만히 멈춰 선 성규의 발 끝에 힘이 들어갔다. 필낭 끈을 꼭 쥔 손에 땀이 어려 자꾸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제 풀에 말이 막힌 성규가 자꾸만 눈을 바로하지 못하고 우현의 등 뒤 풍경만을 배회했다.
“그러니 소인께 그리 붙어 서지 아니하셔도 됩니다.”
결국에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성규가 덜컥 제 할 말을 뱉고 나서 입술을 물었다.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우현이 허, 하고 황망한 숨 뭉텅이를 내뱉었다.
“나를 놀려먹은 것으로도 부족해 명을 하는 것이더냐?”
우현이 기가 막히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성규의 똑바른 시선이 저를 향했고, 어쩐지 또 일개 서생에게 넘어가버렸다는 생각에 분한 우현이 일부러 성규의 앞에 성큼성큼 다가섰다. 힉! 성규가 숨을 들이켰다. 가까이 오지 말라 청했건만, 오히려 제 앞으로 바짝 붙어 코 앞까지 얼굴을 가져온 우현에 답답한 숨을 한껏 들이켰다. 우현이 잔뜩 심술이 난 얼굴로 성규의 눈을 바로 내려보았다.
“너는, 나를, 기만하는 게, 맞다.”
우현이 성규의 이마께를 꾹꾹 눌러가며 말했다. 그 덕에 성규의 갓머리가 조금 뒤로 젖혀졌다. 두 사람의 갓 끝이 사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겹쳐졌다.
“어인 이유로 자꾸 너는 나를 들었다 놨다 네 마음대로 하려는 것이냐?”
“속에 불길이입니다.”
성규가 대뜸 목소리를 내었다. 우현이 잔뜩 힘을 주고 있던 눈을 깜빡였다. 성규가 뒤로 넘어간 제 갓 끝을 앞당겨 쓰며 못마땅한 어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자꾸만 제 속에서 천불이 난 듯 야단이란 말입니다.
“도헌께선 제게 너무 무서운 분이셔서 그러합니다.”
“뭐라?”
“항상 저보다 우위에 서 계시는 분이십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소인은 도련님 앞에 설 때마다 자칫하면 불호령을 받을까 항상 노심초사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도헌을 뵐 때에 소인은 항상 놀라기만 합니다. 그래서인지 매번 자꾸 뛰는 것이…”
“…….”
“아마 그 탓에 불길이 이는 걸 겁니다. 소인은 도헌과 가까이 할 만큼 너른 배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 뵀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성규의 목소리가 거의 기어들어갔다. 가까이 오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결국은 천천히 느려진 손이 가까이 붙어 선 우현의 어깨를 밀어냈다. 그저 가만히 성규가 하는 말을 들어내고 있던 우현이 얼떨결에 떠밀려 한 발짝 비켜섰다. 성규가 먼저 홱 몸을 틀었다. 우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무어라 하는 것이냐?”
“…….”
“너무 어렵다.”
“그냥 두십시오…소인을.”
성규가 후닥닥 걸음을 옮겼다. 우현이 그의 턱 끝에서 달랑거리며 멀어져가는 갓끈만을 지긋이 노려보다가 얼른 걸음을 옮기는 그 뒤를 좇아 발길을 뗐다. 성규가 멘 필낭이 자꾸만 어깨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우현이 그보다는 느리게 걸음을 떼다가 흐음, 하며 숨을 삼켰다.
“서생원!”
우현이 성규를 불러 세웠다. 그러자 한껏 빨라졌던 걸음이 주춤하는 것이 보였다. 성규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예. 우현이 뒷짐을 풀었다.
“가만 보니 나는 네 이름조차 모르는구나. 이름이 무엇이더냐?”
성규가 가만히 걸음을 옮기며 제 헤진 짚신 끝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둘의 걷는 속도가 일정해졌다.
“서생원입니다.”
역시나 기만하는 것이다. 우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성규의 대답에 눈썹을 구겼다. 가르쳐주기 싫은 모양이었다. 우현은 그 자리에 뚝 멈춰 섰다. 그리고는 바쁘게 혼자 걸음을 옮겨가고 있는 성규의 뒤에다 대고 뻗댄 목소리를 뱉었다. 그렇다면 서생원, 멈춰 서라. 저만치 멀어져 걷던 성규가 조금 뒤를 돌아다보았다. 뒷짐을 푼 우현이 제 옷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던졌다.
무심코 뒤를 돌았다가 날아오는 물건을 얼떨결에 받아 든 성규가 제 손 안에 안착한 물건과 우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주위가 어두운 탓에 그게 무엇인지 쉬이 분간이 가지 않았다. 성규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엇입니까?”
“향낭(香囊)이다.”
우현이 뻣뻣하게 대꾸했다.
“너는 돌팔이기에 내 병세를 모르고 있으니 내 친히 일러주자면, 내 고뿔은 아직 낫지 않았다. 내 약제를 지어오기로 했던 것이 벌써 닷새나 지났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반촌 어귀의 주막에서 했던 말을 이르는 것이었다. 성규가 까무룩 잊고 있던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괜히 머쓱해진 탓에 우현이 던진 향낭을 만지작거렸다. 우현이 밉지 않은 투로 타박했다.
“어찌 되었건 네가 나의 약제를 지어 오기로 약조하였으니, 앞으로 내게 가져올 약제는 거기다 담아 대령해라.”
“…….”
“너의 뒤주머니는 불결해 못미더우니 주는 것이다. 나를 위한 약제이니 나를 위해 준 것이고.”
병세가 악화되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하루빨리 약을 지어 내게 돌아오라. 우현은 성규의 대답 같은 건 들을 생각도 않았는지 곧바로 등을 돌렸다. 성규가 받아 든 향낭을 매만지며 그 뒷모습을 멍청히 바라보았다.
그가 저 쪽 끝 반수교에 다다를 때까지 거두고 있지 않던 시선을 뒤이어 향낭에게로 가져왔다. 어둠에 가려져 정확히 분간은 되지 않았지만 그 겉면은 갖은 색으로 어우러져 상당히 멋들어져있었다. 성규가 가만히 그것을 눈앞까지 가져와보았다. 여인들이나 가져야 할 법한 분냄새가 완연했다. 한참을 같은 자리에 서서 향낭의 끈을 조였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던 성규가 다시금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갈대가 떨궈내는 갈잎이 유난히 성규의 발목을 간질이는 것 같았다. 성규는 줄곧 제 손아귀에 꾹 쥐고 있던 향낭을, 집 앞까지 다다라서야 필낭 끝에 단단히 동여맸다. 그에게서 나는 분 냄새에 어쩐지 마음이 아찔해지려는 귀갓길이었다. 아까처럼 간간히 울어대던 풀벌레 소리가 이윽고 성규의 귓가로 울창하게 뛰어 들어왔다.
*
반수교[ 泮水橋 ]
성균관 동쪽에 놓였던 다리
향낭[ 香囊 ]
향을 넣는 주머니
활인서[ 活人署 ]
조선시대 도성내의 병인을 구료하는 업무를 관장하였던 관서.
인경
통행 금지를 알리기 위하여 밤마다 이경(10시)에 쇠북을 28번씩 치던 큰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