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그 불완전한 나이.
15
집에 가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벌써 집에 가고 싶다. 학교 온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뭐가 이렇게 휘몰아치는 건지. 고3이 되면 공부에만 신경 써도 벅차다고 생각했는데 공부는 커녕 다른 것들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수업시간 내내 좋지 않은 내 머리로 그 셋의 관계에 대하여 열심히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차근차근 하나씩 짚어보자면, 최유진은 전원우랑 사귀었던 사이라고 했다. 김민규랑 전원우는 뭔진 몰라도 사이가 안 좋은 것 같고. 그럼 뭐… 삼각관계였나? 이게 그나마 제일 현실성 있는 가설인데, 이상한 건 김민규가 고백을 받은 적은 많아도 여자친구를 사귀었던 적은 없다는 것이다. 저번에 여자한테 별로 관심이 없다고도 했었고, 혹시나 나 몰래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하더라도, 그러면 나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었을 텐데 그러긴 커녕 매일 같이 붙어 다녔으니까….
그리고, 최유진은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김민규가 불쌍하다고 했지…. 이유는 뭔진 몰라도 나 때문인 것 같은데, 왜? 내가 김민규한테 뭐 잘못했나? 나 걔한테 딱히 뭐 잘못한 거 없는데? 김민규도 내 앞에서 이상한 낌새 보인 적도 없었고. 그런데 최유진은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예전부터 느꼈다는 걸 보면 김민규랑 안 지 좀 된 거 같은데. 나도 모르는 김민규의 모습을 최유진이 알고 있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아, 그냥 모르겠어! 최유진도 모르겠고, 김민규도 모르겠고, 전원우도 다 모르겠어!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던 나는 생각하던 것을 포기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걔는 아까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 사람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아오, 짜증나.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크게 내쉬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 툭 건드려왔다. 갑작스런 터치에 놀라 고개를 드니, 언제 온 건지 친구가 옆에 서 있었다.
"너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리 하냐."
"…어? 아니, 뭐…. 왜?"
"아까부터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니 낭군님 오셨다."
저기. 친구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전원우가 있었다. 아, 무슨 낭군이야! 옆에서 큭큭 웃는 친구를 한 대 때리고는, 뒷문에서 나보고 나오라는 손짓을 하는 전원우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갔다.
"왜?"
"연락이 안되길래."
카톡하면 바로 바로 답장했었잖아. 그런데 오늘은 답이 없길래 무슨 일 있나 싶어서…. 그 얘기를 듣는데 음… 내가 너무 칼답을 했었나. 하긴, 솔직히 김민규 카톡은 귀찮아서 일부러 늦게 답장한 적은 많아도, 전원우한테서 카톡이 왔다 하면 바로 답장하곤 했었으니까.
"오늘 핸드폰을 놓고 와가지고…. 그래서 답장 못했어. 미안."
"아니야. 뭘 미안하기까지. 별 일 없으면 됐고."
순간, 등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제 무리 가운데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최유진이 보였다. 아… 쟨 또 왜 저렇게 쳐다봐. 여기서 이야기를 더 하다가는 쟤가 또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 무슨 얘기를 하고 다닐지 몰라 나는 전원우를 끌고 계단으로 데려갔다. 갑작스런 나의 행동에 놀랐는지 전원우의 얼굴에는 약간 당황함이 서려있었지만, 나는 그저 못 본 척하고 물었다.
"그것 때문에 온 거야?"
"어? 뭐… 그런 것도 있고, 그냥 보고 싶어서 온 것도 있고."
'전원우가 너한테 잘해주니까, 너 좋아하는 거 같지?'
픽 웃으면서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전원우를 봐서일까, 아니면 교실을 나오기 직전 최유진을 보고 와서일까. 아까 화장실에서 최유진이 했던 말들이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착각하지 마. 지금 너도 놀아나고 있는 거니까.'
'예전의 나처럼.'
최유진의 말들이 떠오르자 갑자기 드는 거부감에 나도 모르게 전원우에게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여주야?' 나를 부르는 전원우의 목소리에 어, 어? 하고 어색하고 대답하니, 전원우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안색이 안 좋네…."
"어… 아무 일도 없어. 그냥 좀 졸려서 그래."
"…그래. 오늘도 야자해?"
"응. 넌?"
"난 오늘 학원 때문에 뺐어."
"그렇구나…."
"아… 그냥 오늘 학원 가지 말고 야자 할 걸 그랬나."
"어?"
"어제처럼 너랑 같이 집에 가고 싶었는데."
아쉽다…. 시무룩해져선 입술을 쭈욱 내밀고 말하는 전원우를 보는데, 아까 최유진이 했던 말들이 오버랩이 되면서 점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저 표정이랑 말들이… 정말 진심이 아니라고? 나를 가지고 노는 것 치고는 너무 진심으로 아쉬워 보이는 듯한 전원우였기에 나는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뭐가… 진짜인 거지. 혼란스러움에 이도 저도 못하고 있을 때, 전원우는 제 손목에 채여있는 시계를 보더니 '종 치겠다. 데려다줄게.' 하고는 우리 반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멍하니 그의 뒷모습만 쳐다보다가 아차 싶은 나는 전원우의 팔을 잡고 황급히 멈춰 세웠다. 지금 전원우랑 같이 반에 갔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왜? 라고 묻는 전원우에 어… 하고 뜸을 들이다가 눈 앞에 보이는 화장실을 보고 급하게 말했다.
"화장실! 화장실 좀 갔다 가려고… 그러니까 안 데려다줘도 돼."
"그래? 그럼 좀 이따 연락… 아. 핸드폰 안 가져왔다고 했지. 집 가면 연락해."
"응응. 알았어."
갈게. 내게 손을 흔드며 자기 반 쪽으로 걸어가는 전원우를 보며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 여태까지 내게 했던 모든 말들과 행동들이 다 거짓된 것이었다면… 그 거짓된 것들에 혼자서 좋아하고, 설레했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착잡해졌다. 정말 나 혼자서만 신났던 것이었나, 하고.
…근데 전원우가 나를 가지고 놀아서 뭐 어쩌려고?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꼬셔서 할 게 뭐가 있을까. 인정하긴 싫지만 최유진 말처럼, 정말 내가 예쁘기를 해, 아님 돈이 많기라도 해? 난 그냥 평범한 앤데… 이과 탑에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큰, 어디 하나 모자른 구석이 없는 녀석이 왜 나를 가지고 노냔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걔한테 어떠한 이득도 주지 못했다. 대체 나를 왜….
"아- 누구는 좋겠다! 남자친구가 반까지 찾아오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반에 딱 들어오자마자, 나를 향해 비꼬는 최유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무리들은 뭐가 그리도 웃긴지 깔깔대며 웃고 있었고. 대놓고 나를 저격하는 그들을 노려봐도, 최유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아, 나도 연애하고 싶다-."
"야. 너 저번에 남소 두 명 받았잖아. 걔네 만나."
"음… 그런데 둘 다 놓치기 싫은데. 그냥 누구처럼 나도 양다리나 걸쳐볼까?"
아오, 진짜. 양다리 아니라니까! 걔한테 뭐라 한 마디 하려고 입을 열려는 찰나, 나는 이내 입을 꾸욱 다물고 자리에 조용히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반 애들이 최유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긴가민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여기서 내가 날뛰면 저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기에, 속은 부글부글 끓어도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일단 전원우를 믿기로 했다. 안 지 얼마 안 된 최유진의 말을 들을 바엔, 그래도 전원우를.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지는 몰라도, 그래도 일단은 전원우를… 믿기로 했다.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가 되면 그때 물어보자. 지금은 너무나도 정리를 할 게 많으니까…. 그래. 이 많은 일 중에서 지금 내가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은 그거야.
김민규한테 물어보는 것.
*
학교 수업이 다 끝나고, 종례가 끝나자마자 나는 얼른 12반으로 뛰어갔다. 핸드폰이 없으니까 김민규가 오늘 야자를 하는지, 안하는지 뭐 알 수가 있어야지. (물론 학교에서 핸드폰을 쓰는 건 안된다.) 사실 몇 번이고 12반에 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반에는 전원우도 있으니까… 좀 망설여지곤 했다. 믿는다고는 다짐은 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은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리고 그때 자기를 보러 반을 오네마네 그런 소리를 괜히 해가지고…! 약간 껄그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가야지, 뭐 어떡해. 내가 평생 저 반에 안 갈 것도 아니고, 또 물어볼 건 물어봐야지.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제 친구들과 놀고 있는 김민규를 불렀다. 항상 김민규가 나를 찾아왔었지, 내가 김민규를 찾아간 적은 별로 없었기에 자기를 찾아왔다는 사실이 기쁜 건지 김민규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열, 김여주! 웬일이야. 나 보고 싶어서 왔어?"
"헛소리 말고 잠깐 나와봐."
"왜?"
"아, 빨리!"
김민규를 끌고 나오려는 순간, 하필이면 그때 전원우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 지금은 마주치질 않길 바랬는데. 나는 어색하게 손인사를 한 번하고는 도망치듯이 김민규를 데리고 나왔다.
"왜. 뭔데?"
"야. 너 최유진 알아?"
"최유진?"
"어."
"걔가 누군데?"
…엥?
"…너 최유진 몰라? 왜, 긴 생머리에 좀 이쁘장하게 생겨가지고. 키도 크고!!"
"미안하지만 모르겠는데. 왜, 걔가 나한테 관심있데?"
"아, 뭔 소리야! 진짜 몰라?"
"어. 모른다니까?"
정말 모른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는 김민규에 나는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데. 최유진이 아는 김민규가 다른 김민규인건가?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으아아아! 또 다시 복잡해져 오는 머리에 나는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김민규한테 물어보면 조금이라도 뭐가 해결될 줄 알았더니… 이게 뭐야. 해결되긴 커녕 머리만 더 복잡해졌잖아.
"됐다… 모름 말고."
"뭐야. 이게 끝?"
"어."
"에이. 재미없어."
"오늘도 야자 안해?"
"당연. 넌 오늘도 야자?"
"어…."
"힘내라, 몬난아…. 독서실은?"
"안 가."
"왜!!! 공부해야지!!!!"
"아, 오늘은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그냥 오기 귀찮다고 말해, 몬난아…."
아, 아니거든?! 김민규 정강이를 한 번 퍽 걷어차고는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고통을 호소하는 김민규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냥 앞만 보고 걸었다. 귀찮은 게 아니고, 진짜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고…. 뭔가 실마리가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기대하고 왔었는데 이건 뭐… 하아.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
어제 하루 종일 그들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느라 공부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아서 나는 그들에게 신경을 끄기로 했다. 김민규는 최유진이랑 모르는 사이라고 하니까, 일단 그거에 만족하자. 최유진이 나를 비꼬든 말든 나는 그냥 평소처럼, 평소처럼 김민규랑 전원우랑 지내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사실 그런 것보다 내 공부가 더 중요한 거니까. 그런 거에 일일이 반응을 하다가는 정말 이 중요한 시기를 그냥 헛으로 보낼 것만 같았다.
그렇게 굳게 다짐을 하고 집을 나섰다. 아침에 김민규를 만나서 둘이 깔깔대며 학교에 왔고, 학교에 도착하자 우리는 각자의 반으로 흩어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애들은 많이 와 있었다. 와…다들 엄청 부지런하네. 나도 내일부터는 일찍 와서 공부나 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반에 들어갔다.
그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평소와 똑같았다.
"야. 빨리 나와 봐."
내가 반을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이상하리만큼 반이 조용해졌다. 너무나도 싸늘한 반 분위기와 덤으로 내게 향하는 수십 개의 시선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애들을 바라보자, 애들은 고개를 휙 돌리고 다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너무 얼떨떨한 상황에 어찌할 줄을 몰라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는데, 얼굴이 사색이 된 친구가 급하게 나를 데리고 복도로 끌고 나왔다.
"너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지금 반 분위기 왜 저래? 나만 이상한 거 아니지?"
"야. 너 지금 완전 쓰레기로 소문 났어!"
"…뭐?"
이건 또 뭔… 소리야.
"아…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되지. 나도 방금 학교 와서 들은 건데…."
"왜. 최유진이 그래? 내가 남자애들 어장 치고 다녔다고?"
"니가 최유진 남자친구를 뺏었고, 자기랑 헤어지게 만든 것도 모자라서 그 남자애 간 보고 있다고…."
"뭐…?"
"그런데 이미 너한테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 남자친구 몰래 지금 최유진 남자친구랑 썸타고 있는 거라고…."
"…허."
"너 지금 완전 더럽게 소문 났어. 아직 뒷반까지는 소문 안 난 것 같은데…. 야. 지금 최유진 남자친구라는 애가 전원우지? 그리고 니 남자친구라고 소문난 애가 김민규고?"
"……."
"아, 이게 뭐냐고! 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진짜 어이가 없어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기가 차서 헛웃음만 나올 뿐. 내가 누굴 뺏어? 간을 봐? 너무 열이 받아서 그런지 손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걘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내가 그때 전원우랑 같이 있던 게 그렇게 큰 죄였던 걸까? 걔가 나 가지고 노는 거라며. 그렇게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으면 그냥 나 놀아나는 꼴 보면서 즐거워하면 되지, 뭘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문까지 내는 건데…!
"이게 뭔 일이냐… 여주야."
아… 울고 싶다.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4일만이네여!!!! 저 나름 일찍 오지 않았나요?!!!ㅎㅎㅎㅎㅎ 한 번 일찍 와서는 너무 좋아하고 있네요... 원래 이래야되는데..ㅎㅎ... 저번 화 댓글 보니까 독자님들 하나같이 다 최유진 ㅂㄷㅂㄷ 거리고 계시더라구욬ㅋㅋㅋㅋ 진짜 너뭌ㅋㅋㅋㅋㅋㅋ 웃겼습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저런 인물이 하나쯤은 나와줘야죠ㅎㅎㅎ 이야기가 너무 복잡하죠...? 저도 복잡해요... 왜 이런 식으로 스토리를 짜놨을까요.... 독자님들이 제대로 이해했으면 하는데 워낙 제 필력이 똥이라.. 하... 다 못난 제 탓입니다... 그래도 우리 독자님들은 똑똑하시니까 다 이해하셨을 거라고 전 굳게 믿고 있어요! (뻔뻔) 이제 고생길이 열렸네요...☆ 뭐.. 여주 알아서 잘 헤쳐나가겠죠 뭐..ㅎ....
암호닉 : 꽃소녀님, 천상소님, 일공공사님, 너누리님, 여남님, 아봉님.
그리고 암호닉 아니신 독자님들두 항상 감사합니다ㅎㅎㅎㅎㅎ 다음에도 일찍 오도록 노력할게요! 우리 독자님들 정말 정말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