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스노우
"지민씨!!"
지민의 가냘픈 몸이 바닥으로 추락하기 직전에 가까스로 태형이 받아내었다. 지민의 약하게 떨리는 속눈썹 사이로 투명한 눈물이 도로록 흘러내렸다. 한쪽 무릎을 꿇어 좀 더 편하도록 지민의 몸을 받쳐든 태형은 깜짝놀랐다. 이미 젖을대로 젖어버린 옷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지민의 몸을 휘감고 있었고 미약한 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 있는 지민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흘만에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작게 말하던 좋아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태형은 조심스럽게 지민을 안아들어 카페 안쪽 깊숙히 있는 자신의 작업실로 향했다. 연한 살구빛색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제까지 지민에게 보여주었던 카페의 내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공간이 나타났다.
"뭐야, 그 인간 왜그래? 어디 아퍼?"
"좀 있다가 말해, 슈가."
반짝 거리는 가루를 날리며 팔랑팔랑 날아오는 슈가를 무시하고는 태형은 눈에 보이는 침대에 지민을 뉘었다. 색색 거리는 숨소리가 커지는게 점점 열이 오르는 모양이었다. 어쩔수없이 지민에게는 되도록이면 쓰지 않으려했던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야 했다. 태형이 침대에 누워있는 지민의 명치부근에서 오른손을 살짝 허공으로 올린 채 살짝 미간이 찌푸려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태형이 살짝 눈을 감자 반짝이는 연두색의 빛이 지민의 몸을 스르르 감싸다가 사라졌다. 금세 보송보송해진 지민을 보며 후. 하고 한 번 숨을 내쉰 태형이 수백개의 작은 플라스크들이 놓여져있는 선반들로 다가가 몇 개를 집은 후 옆에 놓인 검은 책상위에 두었다. 가져온 플라스크들의 마개를 연 뒤 익숙한 손놀림으로 호리병 모양의 조그만 유리병에 조금씩 옮겨담았다. 병 윗부분을 잡고 가볍게 두어 번 흔들어주자 곧 연분홍색의 투명한 액체가 환한 빛을 내며 느릿하게 소용돌이쳤다. 빠르게 지민에게로 다가온 태형이 스탠드 옆에 약병을 놔두고는 지민의 옆에 앉아 어깨밑으로 손을 넣어 상체를 자신에게 기대도록 하였다.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누워있는 지민의 목을 살짝 손으로 감싸 대강 상태를 체크했다.
"몸이 많이 약한가보네.."
태형이 조용히 읊조렸다. 지민의 어깨를 감싼 손으로 입을 살짝 벌린 뒤 다른 손으로 약병을 집어 지민의 입안으로 조심조심 흘려넣었다. 살짝 턱을 뒤로 젖혀서 연분홍빛 액체가 목으로 넘어가도록 했다. 그렇게 지민을 안고 몇 분쯤 있었을까. 다시 이마에 손을 올리자 아까보다 훨씬 내려간 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태형이 다시 지민을 침대에 눕혔다. 작은 의자를 가지고 침대 옆에 앉아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든 지민의 앞머리를 쓸어내렸다.
'좋아해요.'
경황이 없어 잠시 잊고 있었던 지민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눈물이 맺힌 간절한 눈으로 쓰러지기 직전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어떻게 자신이 내린 비를 맞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지민을 봤을 때 부터 태형은 첫눈에 반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마법으로 기억을 지우고 돌려보냈겠지만 지민은 달랐다. 해맑게 웃는 모습을 한 번 더 보고싶었고 지민이 힘들어 할때면 어떻게해서든 위로를 하고 힘을 주고 싶었다. 네가 그렇게 인간을 대하는 건 처음 본다며 핀잔을 주던 슈가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많은 선반들 중 하나에 걸터앉아 태형이 하는 행동들을 팔짱을 끼고 뚫어지게 응시하던 슈가가 태형의 곁으로 날아왔다.
"슈가."
"응."
"...아니야."
"싱겁긴."
갖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왜 비를 다 맞으며 들어와선 자신을 보고 펑펑 울었을까. 지민이 정말 자신을 좋아하는걸까..
"어, 저 인간 깨어나려나봐."
슈가가 지민의 옆으로 다가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주위를 날아다녔다. 지민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곧 무겁게 짓눌려 있던 눈꺼풀이 들어올려졌다. 밖은 여전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지붕위에 있던 장미 몇 송이가 갈색으로 변하며 시들었다.
***
분명 비에 푹 젖어 오들오들 떨던 채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은데 몸이 가뿐해진것을 느끼며 지민이 천천히 눈을 떳다. 아직 흐릿한 시야 앞에 반짝이는 작은 물체가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정신이 좀 들어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따뜻하고 달달했다. 몇 번 눈을 깜박였다가 뜨자 그제서야 눈앞이 맑아지며 자신을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는 태형의 단정한 얼굴이 보였다.
"태형씨.."
지민은 그제서야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태형에게 좋아한다고 한 건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야 인간, 너는 김태형 덕분에 살아난 줄 알어. 태형이가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서 다행이지 너 안그랬음 며칠동안 끙끙 앓았을걸?"
그때, 어디선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서야 지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어디지.. 한 번도 와보지 못한 새로운 공간이었다. 거기다 이 목소리는 대체 어디서 들리는 건지 정신이 없었다. 눈을 댕그랗게 뜨고 반쯤 일어나 이리저리 둘러보는 지민을 보며 미소를 지은 태형이 여전히 지민의 옆에 앉은 채로 오른손을 살짝 앞으로 내었다. 지민이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태형의 얼굴을 한 번, 손을 한 번 쳐다보았다. 순간 반짝이는 빛이 저 멀리서 날아오더니 태형의 손 안으로 안착했다.
"흐익!”
지민은 태형의 손에 철퍼덕 앉아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팅커벨 같은 모습을 한 작은 생물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슈가. 인사해.”
태형이 손 안에 있던 슈가가 폴짝 뛰어올라서더니 지민을 마음에 안든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김태형이 매일매일 귀가 아프도록 말해대던 박지민 이라는 인간이야?”
"슈가.”
태형이 엄한 표정으로 슈가를 다그쳤다.
"네? 태형씨가요? 제가 박지민이 맞기는 한데..”
슈가의 까칠한 말투에 슈가보다 훨씬 큰 덩치를 가진 지민이 잔뜩 위축되어 작게 대답했다. 그나저나 태형이 자신의 얘기를 매일매일 한다니, 내심 기분이 좋아지는 지민이었다.
"근데 너 얼굴 되게 빨갛다? 아직 열이 덜내렸나? 태형이가 만들어준 약 먹었으면 지금쯤 다 나아야 정상인데에.”
"아,아니에요!!”
슈가가 반짝거리는 가루를 떨어트리며 포르르 날라올라 지민의 이마를 짚어보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까 화르륵 달아오른 얼굴이 아직 그대로인지 지민은 깜짝 놀라 양 손등을 볼에 대며 어쩔줄 몰라하며 발끝만 바라보았다.
"슈가. 일단 좀 나가있어.”
둘을 보고 있던 태형이 지민이 많이 당황하고 곤란해 하는 것이 보여 딱 잘라 말했다.
태형의 말은 들은척도 하지 않은 슈가가 도도하게 팔짱을 끼고는 눈을 지그시 뜬 채 새초롬한 표정으로 지민을 바라보았다.
"흥, 망개떡같이 생겨가지고는.”
"ㅁ, 뭐..”
"그리고 김태형, 저런 망개떡같이 생긴 애가 그렇게 좋아서 허구한 날 나한테 얘기했어? 보니까 쟤도 너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냥 고백하면 되지 그걸 못하냐?? 난 간다. 둘이 잘해봐 어디.”
속사포처럼 말을 꺼내 지민과 태형을 벙 찌게 해놓고 유유히 날아 문밖으로 나가버린 슈가였다.
"....”
"....”
슈가 덕분에 서로의 속내를 다 들켜버린 지민과 태형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쳐다보지 도 못한 채 고요한 정적의 시간 속에 머물렀다.
"지민씨. 나 좀 봐요.”
"...”
정적을 깨고 나지막히 말을 꺼낸 태형이 지민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태형과 눈을 마주치게 된 지민이 어느 때보다 진지한 눈빛에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후우.”
태형이 크게 한 번 숨을 내쉰 뒤 지민을 곧게 바라보았다.
"나, 지민씨 좋아하는 것 같아요. 지민씨 처음 봤을 때부터 반했어요. 날 다시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서 기억도 일부러 지우지 않았어요. 내가 내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 지민씨가 너무 예뻤어요."
"..태형씨."
"지민씨가 여길 찾아오고 나서부터 무료하게 흘러가던 내 일상이 바뀌었고, 지민씨 기다리는 시간이 왜 이렇게 길고 느린지, 함께 있는 시간은 또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어쩔 땐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지금까지 지민씨가 부담스러울까봐, 거부감 느낄까봐, 혹시 이런 말 하면 내가 싫어질까봐 무서워서 지민씨만 보면 두근대는 마음 일부러 숨겼던 거예요. 정말 진심을 다해서 좋아해요. 그리고 이렇게 내 마음을 고백하게 돼서..미안해요.”
"....”
"정말 미안해요. 혹시 기분 상했으면 그냥 내말은 잊..”
"나도.”
"...?”
"나도..태형씨 좋아한다구요.”
지민이 태형의 걱정어린 말을 단번에 끊어내었다. 쌍커풀이 없는 기다란 눈에서 눈물방울이 툭 하고 하나 둘 씩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지민은 억지로 눈물을 삼켜보이며 태형을 향해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태형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운을 떼던 첫 마디부터 지민은 눈시울이 발개지기 시작했다. 혼자서 태형을 좋아하는 마음을 꽁꽁 감추려고 매일 아무렇지 않은 척, 두근대는 마음을 억누른 시간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결국 후두둑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갑자기 시야가 깜깜해지며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온 몸에 전해졌다. 자신을 껴안고 있는 단단한 팔의 감촉도, 볼에서 느껴지는 왼쪽 가슴의 체온도 모두 꿈만 같았다.
"고마워요, 지민씨.”
태형의 한마디가 지민의 온 몸을 타고 퍼졌다. 태형의 성대의 울림이 지민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품속에서 눈을 살포시 감은 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지민이 두 팔을 천천히 올려 태형의 허리를 꼭 안았다.
"나두요.”
"칫, 진작에 저랬으면 얼마나 좋아. 나를 그렇게 괴롭히더니.”
살짝 열린 문 틈으로 둘을 지켜보던 슈가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반짝반짝 날아갔다.
그렇게 둘의 마음을 확인한 작은 소란이 있었던 날, 둘은 침대에 함께 앉아 그 동안 못했었던 얘기들을 풀어나갔다. 지민이 태형의 품에 폭 안겨 오밀조밀 입술을 움직여 가면서 말을 꺼낼때면 태형은 그런 지민을 세상 누구보다 따뜻하게 바라보며 천천히 얘기를 들어주었다. 지민은 태형이 치유를 담당하는 마법사 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쓰러졌을때 태형이 옆에서 계속 간호를 해주었다는 사실을 듣고 얼굴이 또다시 화르륵 불타올라버렸다.
자신의 카페가 잠시 동안 보이지 않았다며 울먹이며 지민이 상황을 설명했다. 혹여나 다시 열이 오를까봐 괜찮다며 별것 아니니 자신이 확인해 보겠다고 지민을 안심시킨 태형은 마음 한 구석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지민에게 카페가 안보였다면... 아무래도 슈가와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태형씨?"
웃다 말고는 생각에 잠겨있는 태형을 지민이 불렀다. 아까 카페가 보이지 않았다는 말을 한 이후로부터 한 번씩 무엇을 자꾸 생각하는 듯한 태형을 보며 살짝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여느때와 다름없이 웃으며 이런저런 말을 꺼내는 태형을 보며 그런 생각들은 이내 지워버린 지민이었다.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고 밝게 웃으며 초록빛 문을 나선 지민을 한참동안 바라보는 태형의 귓가에서 슈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꽃들이 계속 시들고 있어, 태형아."
"알고있어."
"꽃들이 계속 시든다는 건.."
"나도 알아, 슈가. 하지만 이제야 서로 마음을 확인했는데 벌써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어."
"태형아."
"응."
"너의 힘으로 이 공간을 지키려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슈가가 낮은 목소리로 태형을 설득하려 했다. 태형이 마법사가 되었던 그 순간부터 함께했던 슈가는 태형이 아프게 되는것을 바라지 않았다.
"알아, 하지만 지민씨한테도 시간이 필요해. 조금만..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
"후..알겠어. 이제 조금씩 아파올.."
"윽-"
"김태형!!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너 괜찮아??"
갑자기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에 태형이 급히 명치를 부여잡고 상체를 숙였다. 몇 초 동안 눈을 질끈 감고 멈춰있는 태형의 주위로 슈가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치유력이 있는 자신의 날개에서 나오는 반짝이는 가루들로 태형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 듯 했다. 조금 뒤 괜찮아진 태형이 쇼파에 털썩 앉아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꽃들이 시들고 있다는 것은 태형의 힘이 점점 약해진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잠시동안 지민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더이상 허물어지지 않도록 지키려 하니 이렇게 고통이 따르는 것이었다.
"김태형.."
눈 앞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작은 얼굴이 가득 찼다. 항상 말은 까칠하고 도도하게 하는 슈가였지만 언제나 태형을 먼저 생각하는 것도 슈가였다.
"나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지민씨한테 잘 말하고 너랑 같이 떠날 테니까 한 달만 시간을 줘."
"딱 한 달인거야. 약속하는 거지?"
"응."
태형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온 카페를 채웠다.
평화로운 나날은 계속되었다. 지민은 매일 마다 태형의 카페로 찾아왔고 태형은 여전히 지민에게 툴툴대는 슈가와 함께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 날 이후 둘의 인사는 서로를 꼭 껴안아 주는 것으로 바뀌었고, 함께 쇼파에 앉아 태형의 품에 폭 안긴 지민이 커피잔을 들고 오물오물 입을 움직이며 태형을 올려다 보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지민과의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싶지 않은 태형은 지민에게 애정표현을 무척이나 많이 해주었다. 촉- 하고 지민의 볼에 입맞춰 줄때면 이젠 익숙해 질 만도 한데 항상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지민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도 행복한 일 중 하나였다. 태형의 몸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지만 다행히 지민의 앞에서는 통증이 찾아오지 않았고 지민이 가고 난 후 찾아드는 고통에 슈가의 걱정도 하루하루 늘어만 갔다.
***
"태형씨, 나 왔어요."
지민은 오늘도 어김없이 태형의 카페를 찾았다. 회색 구름이 낀 우중충한 날씨였다. 비가 올 것 같았지만 우산은 그냥 챙기지 않았다. 눅눅해진 공기를 들이마시며 카페의 문을 열었다. 태형의 향기가 훅 끼쳐왔다.
"왔어요?"
항상 들려오던 밝은 태형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지치고 힘이 없는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형씨 어디 아파요?"
태형의 안색은 매우 좋지 않았다. 하얀 얼굴이 아예 창백하게 변해버렸고 입술색도 혈기가 없이 파리했다. 온 몸에 아픈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놀란 지민이 태형에게 다가가 이마며 얼굴이며 이곳저곳 짚어보았다.
"나 괜찮아요, 일단 여기 앉아요. 지민씨."
태형이 푹신한 쇼파 위로 지민을 앉혔다. 자신을 걱정하는 표정이 얼굴에 한가득인 지민을 보면서 내일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해져버린 태형이었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벌써부터 무너질 것 같은 가슴을 억지로 부여잡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지민씨.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놀라지 말고 들어요."
"네? 태형씨, 왜 그래요. 무슨 일...있는 거예요?"
태형의 오른 손이 살짝 떨리며 지민의 볼에 살포시 얹어지더니 이내 지민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지민은 처음보는 태형의 행동에 무척이나 당황한 듯 안절부절한 눈빛으로 태형을 바라보았다.
"나는..내가 무슨 말을 하든 지민씨가 다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이해해요. 태형씨 사정 다 이해하니까 왜 이러는지 말 좀 해줘요. 나 답답해."
꼭 멀리 떠날 사람처럼 말을 꺼내는 태형의 행동에 불안해진 지민이었지만, 별 거 아닐 것이라고, 태형이 일부러 이러는 것이라고 억지로 단정 짓고는 깊게 가라앉아 있는 태형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지민씨."
"괜찮아요.. 말해요.."
태형의 갈라진 목소리가 지민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제발, 제발 떠나야 한다는 그 말 만은 아니기를 지민은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바랐다.
"나,"
제발.
"나, 내일."
제발 아니기를.
"떠나야 해요.”
***
지민이가 괜찮아지니 태형이가 아프네요ㅠㅠㅠㅠ
상중하로 끝나는 단편이지만 그래도 시련은 겪어야...ㅎㅎ^^
읽어주시는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