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녀석과 도롱뇽아버지를 피해서 달려 온 곳은 좁은 골목이었다. 정환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서로 힘겹게 숨을 헐떡이며 소리를 죽여야했다. 답답함을 못 참고 내가 크게 숨을 쉬자 정환이의 손이 불쑥 내 입을 막으며 머리를 고정시켰다. 도롱뇽아버지의 발소리가 들리자 엄청난 긴장감에 주변에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 가볍게 토해내는 정환이의 작은 숨소리. 잠깐 마주치기만해도 피해버리기 바쁜 눈빛들. 내 얼굴을 붙잡고있는 정환이의 손을 타고 흐르는 어색한 기운. 정환이와 나는 동시에 침을 꼴깍 삼켰다. "어떡할래?" "..." "어떡할거야?" 아니, 대답이라도 할 수 있게 손을 좀 떼고 말하던가. 읍읍거리며 정환이에게 눈살을 찌푸리자 정환이는 그제서야 내게서 손을 떼었다. 나는 정환이의 질문이 이해가 가질 않아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여 고개를 피해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얼른 이 골목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정환이가 갑자기 두 손을 들어 내 머리 양쪽 벽으로 뻗었다. 녀석의 갑작스런 행동에 나는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쪼그라들었다. "만날래?" "...뭐를?" "우리 둘이." "그니깐 도대체 뭐를?" 정환이가 짜증을 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골목을 재빨리 빠져나왔다. 앞에 있던 녀석이 신경쓰였기때문에 이제서야 숨통이 트여 좀 살 것 같았다. 내가 수련회장 방향으로 몸을 틀자 정환이는 내 손목을 잡더니 자기쪽으로 잡아당겼다. "뭐야? 미쳤어? 이거 안놔?" "하여튼간 특공대. 눈치를 줘도 더럽게 못 알아 먹어요." "뭐라는거야 진짜." "나 너 좋아한다고." "...야, 야. 정말 미쳤어? 왜이래 진짜?" 내가 죽일듯이 노려보자 정환이는 입을 꾹 머금은 채 머리를 손으로 털었다. 씩씩거리며 내가 먼저 앞장서서 걸어가자 녀석은 아무렇지않게 뒤따라왔다.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귀뚜라미 소리가 내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수련회장으로 가는 10분의 시간이 100분이 걸리는 기분이었다. 초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후덥지근하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개정팔이, 나를? 왜? 도대체 왜? 나는 뒤를 돌아서며 정환이를 쳐다봤다. 그래도 남자한테 처음 받아 본 고백인데 이런 식으로 받아 볼 줄이야. 정작 고백한 정환이는 이리저리 생각에 치여있는 나보다 더 무덤덤해 보였다. 녀석은 뭐. 라고 입모양을 그려내며 내 앞을 지나쳐갔다. "야, 개정팔. 너 나랑 18년지기 친구인 건 알아?" "어." 단호한 녀석의 대답에 기가차서 말이 더 이상은 안나왔다. 그걸 잘 아는 놈이 왜저래? 나한테 대답도 듣지 못했으면서 뭐가 그렇게 아무렇지 않는건데? 수련회장 철문을 열고 정환이가 먼저 들어갔다. 철문이 열리는 걸 보니 도롱뇽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찾으시느라 아직 안 돌아오신 듯 했다. 정환이와 나는 숙소가 반대였기때문에 서로 갈 길을 갔다. 그렇게 서로 헤어질 줄 알았는데 녀석이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다. "야, 덕선아." "뭐." "잠깐만 일로와봐." 정환이는 자기쪽으로 손을 까딱거렸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다가오는 나를 보더니 주머니에서 카세트테잎을 꺼내 내게 건냈다. 간다, 잘자라. 녀석이 뒤를 돌아서야 그제서야 나는 테잎을 확인했다. 변진섭의 1집. 네게 줄 수 있는건 오직 사랑뿐. . 원래 글을 더 안 쓰려고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아서 몇 개 더 쓰려고요! 이번에는 적극적인 정환이 이야기로 3개정도 쓸 예정입니다. 짧게썼는데도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해요! 쓰고싶은게 생기면 바로바로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