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아.”
“......”
“자?”
침대에 누워서 자고있는 백현이의 이름을 불렀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요즘 일이 많이 피곤했는지,
....아니면 나와 김종인의 사이 때문에 피곤했는지.
오랜만에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자고있다.
“너도 들었지? 내일이면 찬열이랑 김종인 한국으로 돌아가는거. 걔네 돌아가면 다시 예전처럼 우리 꼭 서로 의지하며 지내자.”
“.......”
“....미안해... 솔직히 김종인을 다시 봤을 때 말이야. 나도 모르게 흔들렸었어. 애써 부정하려하는데도 정말 미친듯이.”
“.......”
“그렇지만 지금의 나한테는....”
“.......”
“....네가 더 소중해.”
자는 줄 알았던 백현이가 침대 끝에 앉아있던 나를 갑작스럽게 잡아당기고 세게 껴안는다.
“...어? 안잤어?”
“응. 갑자기 눈을 떴는데 내 옆에 도경수가 없더라고..”
백현이는 이제 내가 자신의 옆에 잠시라도 붙어있지않으면 걱정이되나보다.
하긴, 내가 백현이를 이렇게 만든거지.
“아, 나 잠시 목이말라서..”
“응. 알아.”
“......”
“....고마워, 경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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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이서 다같이 먹는 아침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였다.
“몇시 비행기랬지?”
“두시.”
“진짜 밥먹고 짐챙기고 공항가면 딱 맞겠네.”
“야 이 변백아. 이 형님 떠나서 슬프다고 울지마라.”
“내가 미쳤냐?”
백현이와 찬열이의 투닥거림을 보는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그 모습에 괜히 마음이 슬퍼졌다.
이제 이 모습도 마지막이구나.
그 때 김종인이 자리에서 밥을 먹다말고 일어난다.
“어? 너 벌써 다 먹었어?”
“응, 입맛이 별로 없네.”
김종인은 찬열이한테 짧게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래도 배고플텐데...더 먹지.
“쟤 다시 돌아왔네.”
“...뭐가?”
“아니 이제는 진짜 첫사랑인가 뭔가 잊은 줄 알았는데.. 여전히 못잊었나보네. 한국 갈 생각 때문에 그런가?”
첫사랑...
김종인의 첫사랑...
아마 너는 나를 평생 아픈기억으로 기억하겠지?
나 역시도 그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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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이의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시간동안 우리 넷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찬열이는 아마 꽤나 정들었던 미국을 떠나는것과 죽마고우인 백현이와 다시 떨어져야한다는게 아쉬울 것이다.
....그리고 김종인은...
나와 백현이 때문에 매우 힘들것이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찬열이는 화장실에가야겠다며 발길을 화장실로 향했다.
나도 백현이한테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백현아, 나도 화장실 갔다올게.’ 하고 찬열이를 따라갔다.
솔직히 김종인과 백현이 둘만 같이 남겨두는게 불안하긴했지만 아마 서로 그냥 아무말도 안한채 있을것이다.
“찬열아.”
볼일을 보고 나온 찬열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고 살짝 놀란다.
“어? 너 왜 여깄어?”
“내 부탁좀 들어주라."
“부탁? 무슨부탁?”
“...한국 도착하면 김종인 좀 잘 챙겨줘. 그 첫사랑인가 뭔가도 잊을 수 있게 네가 많이 도와주라. 술도 조금 마시게하고, 밥도 잘 챙겨먹이고...”
“야, 그거야 당연하지. 근데 왜 갑자기 그런 부탁?”
“그냥... 고등학교 때 친했던 사이로서 걱정이 많이 되네.”
“걱정마. 김종인은 내가 잘 챙길게. 너도 백현이랑 잘 지내. 너네 절대 깨지면 안된다.”
찬열이가 꽤나 엄한 표정을 짓고 말한다.
“내가 너네 둘이 어떻게 허락했는지 모르냐? 너네 꼭 행복하게 살아야돼.”
처음 백현이의 커밍아웃을 듣고 화내던 찬열이의 모습이 겹쳐졌다.
“응. 행복하게 잘살게.”
나도 모르게 김종인이 울고있던 표정이 떠오른건 뭐지..
김종인..종인아.
너도 행복하게 잘살아.
난 행복하게 살거야.
그러니깐 너도 꼭.
찬열이와 대화를 마치고 가는데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는 백현이와 김종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이 괜히 나를 더 씁쓸하게 만든다.
“야, 변백아. 우리 이제 가야겠다.”
“어 그래. 잘가.”
“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이제 떠난다는데 넌 아쉽지도 않냐?”
찬열이는 딱딱하게 말하는 백현이의 모습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살짝 툴툴거린다.
“난 안아쉬운데? 드디어 집에 평화가 찾아오겠다. 그지 경수야?”
“..어?”
백현이가 살짝 웃어보이며 장난을친다.
백현이가 저렇게 웃고있어도 속으로 지금 매우 아쉬워 하고 있다는걸 안다.
“변백현 이 똥새끼.”
“뭐래. 이 멀대가.”
헤어지는 순간까지 서로에게 툴툴대는 모습들이 더 보기 좋기도하고 아쉽기도 하고.
나는 살짝 시선을 돌려 찬열이옆에 서있는 김종인을 봤다.
김종인은 땅만 바라보고있다.
“어? 너넨 작별인사 안해?”
찬열이가 서로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있는 김종인과 내 모습을 보더니 의아하다는듯이 말을 건다.
백현아. 괜찮아?
난 백현이에게 눈으로 물어봤다.
백현이는 내게 살짝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여준다.
괜찮다고.
나는 용기를 내어 먼저 김종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땅만 바라보던 김종인이 내 손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친다.
눈동자가 심하게 요동치는게 보인다.
종인아...
“종인아.”
“......”
너의 이름을 무척이나 오랜만에 불러본다.
고등학교 때 헤어진 이후로 이렇게 널 직접 불러본건 처음인거 같다.
“잘가.”
“......”
난 가만히 있는 김종인의 손을 끌어와 손을 잡았다.
김종인과 처음 이 공항에서 재회했던 순간처럼
꽉 잡았다.
이제진짜 우리 서로를 놔주자.
나도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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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네.”
“응.”
“이제 진짜 우리 둘만남았네.”
“응.”
“경수야. 괜찮아?”
“뭐가?”
백현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묻는다.
“...김종인.”
“..괜찮아. 너는?”
“나야 뭐, 괜찮지.”
우리 둘은 서로 누가 먼저라할거 없이 손을 마주잡았다.
지금 내가 잡고있는 손은 백현이다.
그래. 이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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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아!”
나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잠에서 깬 백현이가 울고있는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왜그래? 응?”
“..백현아..무서워.”
“뭐가 무서워. 무슨 꿈이라도 꿨어?”
난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백현이의 품에 안긴채 펑펑 울었다.
백현아, 있잖아....
꿈속에서..
내 꿈속에서..
죽었어...
김종인이.
아무표정없이 날 바라보다가 옥상에서 떨어졌어.
이거..그냥 악몽이겠지?
응?
이거 그냥 꿈이겠지?...
“네가 무슨 꿈을 꿨는지는 모르겠지만..괜찮아..경수야.”
“.......”
“내가 있잖아. 울지 마.”
그래..다 괜찮을거야.
내가 심적으로 많이 약해져서 이런 지독한 악몽을 꾼거 뿐이다.
그래 그런거다.
백현이의 따뜻한 다독임에 내 눈물도 서서히 잦아졌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꼭 껴안은채 잠들었던거 같다.
나는 그 이후로도 매우 지독한 악몽을 꿨다.
매일같이 김종인이 내 꿈속에 나타나...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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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부터 전화벨소리가 계속 울린다.
누구길래 이 아침부터.
내가 일어서려 하자 백현이는 손으로 살짝 나를 가로막은다음 자기가 침대에서 일어나서 전화를 받으러 간다.
“백현아 누구야?”
전화를 받은 백현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백현아, 누군데? 응?”
백현이는 아무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계속 전화만을 받고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거야? 백현아?”
백현이는 ‘응. 알겠어.’라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누구야?”
“...찬열이.”
“찬열이? 왜?”
“.......”
“응? 찬열이가 왜?”
“.......”
“...백현아?”
백현이가 아무말도 하지않고 슬픈 눈으로 날 쳐다보기만 한다.
무슨말이라도 해봐.
제발..
“..경수야.”
“.......”
“.......죽었대.....”
지금 백현이의 입에서 나온 저 말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정말이지....하나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나왔다.
“....누가?”
“.......”
“...누가..죽어?”
설마..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제발 아니라고 해줘.
“...경수야.”
“........”
“한국 가자.”
“...왜?..갑자기 한국은...”
백현이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져간다.
입으로 뭐라 말을 하려다가 계속 머뭇거린다.
그래...차라리..말하지마.
“...김종인.”
“........”
“...죽었대..경수야.”
들어버렸다.
김종인의 이름을 들어버렸다.
.........죽어?
이럴려고 매일 밤 나를 찾아와서 그렇게 괴롭힌거야?
응?
종인아..
....대답해봐..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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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종인이가 죽었습니다..ㅠㅠ
따지고보면 제 손으로 죽였네요ㅠㅠㅠㅠ
다음편이 마지막편입니다!
악몽을 쓰면..뭔가 저도 급 우울해지네요ㅠㅠㅠ
저번편에 댓글달아주신
조닌이,요플레,땅콩샌드,독자4,스폰지밥,응어,뽀리,귤,독자8,썬크림,간장치킨,퉁퉁,틈메이러,피삭,몽쉘 님~!
모두 정말정말 감사해요~~~!
여러분들이 제가 글을쓰는데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완결까지 모두 함께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