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쪼꼬야
술에 취해서 휘청거리며 집 도어락을 누르는 민혁의 눈에 집 앞에 놓인 상자에 담긴 토끼가 눈에 띄었다. 왜 토끼가 여깄지. 주저앉아 토끼와 눈을 마주치며 골똘히 생각하자니 무언가에 홀린 듯 상자를 들어서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그대로 소파에 뻗어서 잠들고 일어나니 상자에 담긴 토끼가 뛰어와 귀를 쫑긋거리며 민혁의 볼에 발을 얹었다. 씰룩되는 코 끝이 귀여워서 웃으니 토끼도 좋은 듯 가까이 와서 부비적거렸다.
"왜 이렇게 귀엽냐. 이름은 뭘로 할까?"
하긴, 인간 말을 알겠어? 쪼매난 토끼가 거실을 돌아다니자 민혁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쪼꼬야, 네 이름은 이제부터 쪼꼬야."
알아들은 듯 귀를 더 쫑긋거리며 민혁의 품에 안겼다. 우리 쪼꼬, 형이랑 같이 살자.
2. 주인이_낯선_여자와_방에서.avi
쪼꼬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했다. 주인이 주는 밥도 좋았고 무엇보다 주인이 괜찮은 사람이라 더 좋았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당근을 열심히 먹고 있을 때 역시나 늦게 귀가한 주인이 쪼꼬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 여자. 여자! 여자!! 쪼꼬의 머릿속에는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고 주인과 여자의 뒤를 따랐다. 아, 앙 돼.... 쥬잉....
"으응, 민혁아. 나 많이 취했어어."
"아, 누나. 잠시만요. 벗기지 마요."
"아으, 쓰러진다아."
여자는 온갖 연약한 척을 다 하며 민혁의 침대에 쓰러졌고 민혁은 그 위에 올라타서 여자의 목에 입술을 묻었다. 그리고 쪼꼬는 그것을 다 보고 있었다. 쥬, 쥬잉... ㅠㅅㅠ 쪼꼬의 눈빛을 느꼈는지 민혁은 밑으로 내려가다 말고 문 쪽에 서있는 쪼꼬를 바라보았다. 왜, 뭘 봐. 라는 눈빛을 보내는 민혁은 셔츠 단추를 풀며 문 쪽으로 다가왔고 쪼꼬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문을 닫으려고 했다.
"쪼꼬, 형이 조금 바쁘거든? 번식 활동 중이야."
"끼잉, 낑...."
"왜 이럴까. 우리 쪼꼬가."
"민혁아앙, 안 올 거야?"
"아, 누나. 갈게요. 가요."
쪼꼬를 마저 보낸 민혁이 셔츠를 문 밖으로 던지며 방 문이 닫혔다. 쪼꼬는 자신의 위에 올려진 민혁의 셔츠가 마음에 안 들었다. 나빠, 쥬잉. 라는 생각으로 쪼꼬는 문 앞으로 다가가서 발로 문을 긁기 시작했지만 여의찮게 민혁과 여자는 반응도 없이 할 일에만 몰두했다. 새벽이 오고 여자는 일이 다 끝난 듯 옷을 마저 입고 남은 옷은 챙겨서 아무렇지도 않게 집을 나섰다. 쪼꼬의 눈엔 분노가 서렸고 열린 문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잠을 곤히 자는 민혁의 위에 올라탔다. 민혁은 자신의 앞에서 색색 숨소리가 들리자 누나가 아직 안 갔나? 하는 생각으로 눈을 떴다. 그리고 민혁의 눈에 보인 건 쪼꼬가 아닌 남자였다.
"와, 씨발. 뭐야. 누구세요."
"쥬잉, 나야. 쪼꼬."
귀를 쫑긋거리며 환한 웃음을 보이는 쪼꼬가 신기한지 민혁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가 자신의 뺨을 내리쳤다. 꿈이구나, 씨발. 내가 어제 너무 많이 먹었나. 그런 민혁을 보던 쪼꼬는 머리를 민혁의 가슴에 부비기 시작했다.
"나 예뻐해 줘, 쥬이잉."
3. 숨바꼭질
민혁은 쪼꼬를 의자에 앉히고는 생각을 했다. 아, 얘를 어쩌면 좋지. 민혁의 셔츠만 걸친 채 당근을 먹기 시작한 쪼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발만 꼼지락거렸다. 민혁이 쪼꼬가 먹고 있던 당근을 살짝 잡으니 토끼인 걸 증명하듯 귀를 하늘로 쫑긋 서고는 민혁을 쳐다봤다. 씨발, 우리 쪼꼬오. 귀엽네?
놔라, 쪼꼬 당근이다....
너 누구한테 말 배운 거야, 엉터리로 배웠어.
놔라, 쪼꼬 당근이다아....
민혁은 당근을 놓고는 쪼꼬를 계속 쳐다봤다. 사람들 만나면 얘를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쪼꼬라고 부르면 이상한데. 당근을 다 먹자 쪼꼬는 토끼 때처럼 늘 그랬던 것처럼 민혁의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아, 씨발. 쪼꼬. 아파, 아파아!
아파? 아파아? 아픙 게 뭐야?
쪼꼬의 말에 민혁은 쪼꼬의 귀를 앙 물었다. 쪼꼬는 놀라며 민혁의 입에서 귀를 꺼내고는 두 손으로 물린 귀를 붙잡고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민혁을 쳐다봤다. 이게 아픈 거야. 쪼꼬. 민혁이 기세등등한 눈으로 쳐다보자 쪼꼬는 일어서서 민혁의 볼을 귀로 때리고는 구석으로 숨었다.
아파아! 쪼꼬 아픙다!
민혁은 맞은 뺨을 손으로 가리고 구석에 숨은 쪼꼬를 찾았다. 허, 저기에 있네. 얼굴만 숨기고 귀도 안 보이면 다 숨은 줄 아는 쪼꼬는 꼬리를 훤히 다 드러내고 구석에 얼굴만 숨겼다. 민혁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쪼꼬의 꼬리를 확 당겼다. 야, 쪼꼬 다 보여. 민혁과 눈이 마주치자 쪼꼬는 놀라서 숨긴 귀를 다시 드러냈다.
쪼꼬가 잘모했다.
말고, 잘못했습니다.
쪼꼬가아 잘모했다.
쓰읍, 쪼꼬.
잔못해쓰미다.
옳지, 우리 쪼꼬
민혁은 쪼꼬를 품에 안았다. 사랑스러워, 우리 쪼꼬.
4. 유기현
그 새끼들이 이런 휴일에 집에 안 올 거라는 생각을 안 했던 민혁은 스스로가 짜증 났다. 큰 소리로 문을 박차며 문을 열라고 말하는 소리에 쪼꼬는 사람으로 변해서 민혁의 품에 안겼다. 민혁은 쪼꼬를 이불로 덮은 다음 문 앞에 서서 문을 열었다. 주헌과 창균이 웃으면서 민혁을 보고 있었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야, 너희 쪼꼬는 어딨냐?
맞아, 씨이발. 그 귀여운 토끼.
야, 쪼꼬 자. 씨발. 조용히 해.
아니야, 쪼꼬 일어나써. 쥬잉!
늘어난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토끼귀 그리고 꼬리를 달고 나온 쪼꼬를 보는 그들은 순간 말을 멈췄다.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하는 시간에 쪼꼬는 방에 자체 감금되어 당근만 먹고 있었다.
아니, 나한테는 왜 저런 애가 안 오냐고.
야, 이주헌. 너라면 너랑 살래?
임창균, 시비야. 씨발.
닥쳐, 우리 쪼꼬 나쁜 말 배우면 안 돼.
차라리 나랑 살지.
맞아, 허니는 꾸꿍이랑 살 거야.
주헌은 창균에게 안겼고 때 아닌 러브라인에 민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패고 싶다. 라는 생각이 가득 적힌 창균의 얼굴에서 살기를 느낀 주헌은 기침을 하며 떨어졌고 이야기가 끝난 걸 느낀 건지 쪼꼬는 문을 열고 나와서 민혁의 옆에 매달렸다. 창균과 주헌은 그런 민혁과 쪼꼬를 쳐다봤다.
쟤 밖에 데리고 나갈 때 뭐라고 부를 건데?
아니, 창규나. 쪼꼬는 쟤 아냐. 쪼꼬라고 불러 줘.
알겠어, 쪼꼬 어떻게 부르게.
야, 유우주 어때.
조온나 이상해, 씨발.
창균은 주헌의 말에 이상하다고 말하며 조금씩 떨어졌다.
울 자기는 나한테만 그래.
차라리 유기현 어때. 유기현.
왜 성이 유 씨인데.
창균과 주헌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민혁의 물음에 답할 수 없었고 쪼꼬는 옆에서 귀를 만지며 눈치를 봤다. 그러다가 민혁과 눈이 마주치고 쪼꼬는 민혁을 보며 귀를 쫑긋거리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