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왔냐? 후배코스프레 좀 잘 한다? 낄낄."
불편했다. 눈이 마주친 사람은. 바로 눈을 피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잠시 눈을 맞춘 채로 서로 어색한 미소를 주고 받았다. 동갑인데 선배였고, 선배면서 후배들한테 더 예의바르게 대하고 인사하는 모습들. 그 모든 게 불편했다. 우현이랑 기범인 저렇게 친한데. 나도 다른 선배님들과는 나름 잘 지내는데. 하지만 무엇보다 불편한 건 저 웃음이었다. 저 웃음을 마주할 때면 긴장을 하게 됐다. 그, 바이킹이 최고점에 도달했다 내려올 때 느껴지는 사타구니의 짜릿함. 웃음은 순수했지만 본능적으로 저 사람이 그어놓은 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한텐 수그리고 들어가서 잘 맞춰주면 오히려 내가 위에 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잘 해내고 있었는데, 저 사람한테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수그리고 들어갈 수 조차 없었다. 그냥 수그린 채.
"야, 넌 요즘도 성종이 괴롭히냐?"
"내가 성종이를 왜 괴롭힘? 우리 예쁜 막내를. 막내 괴롭히는 건 성규형이지."
"뻥치지마 임마. 너도 괴롭히잖아."
"맞아요, 형들은 다 저 괴롭혀요."
하는 일도 관심사도, 나이대도 비슷한 남자들이 모이면 상상보다 조금 더 시끄럽다. 다른 곳에서는 나도 저 곳에 껴있겠지. 근데 여긴, 불편하다. 그 사람은 애들이 모여서 얘기하는 곳 옆에서 무슨 드립을 던질까 고민하고 있는 모습인 것 같다. 저런 모습도, 불편했다.
"나 화장실 좀."
"네~"
긴장했던 마음을 좀 풀기 위해 화장실에서 세수를 좀 하고 싶었지만 화장이 지워질 것 같아 그냥 손만 씻었다. 뭐, 요즘 화장품들은 다 방수라지만 그래도 무대 위에서 또 땀 흘릴 거니까 모르는 거다. 방송에선 항상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손을 씻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니 뒤에 누군가가 와있었다. 아.
"이제 찾아와서 인사 안 해도 된다니까 계속 오시네요. 진짜 괜찮은데."
"아뇨, 후배가 당연히 찾아가야죠. 그리고 애들끼리도 친하잖아요."
"그렇네요. 근데.. 성규씨는 제가 불편한가봐요?"
아, 뭔가 미안한 듯한 웃음. 불편해. 거울을 통해 멍청한 내 표정을 내가 보게 되는 게 짜증나서 뒤로 돌아 눈을 마주하며 싱긋 웃었다.
"아뇨! 뭐가 불편해요 선배님! 선배님만큼 친절하신 분이 어디 있으시다고."
"불편해하는 거 맞네요 뭐. 지금 극존칭 쓰고 있는 거 알아요?"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이건 뭔가 새로운 표정이다. 불편하다.
"난 되게 성규씨랑 친해지고 싶은데 성규씨는 아닌가봐요."
"설마요!"
"근데 왜 내 이름 안 불러줘요? 맨날 선배님선배님."
"그건 다른 선배님들한테도 그러는 거라서.."
당황스럽다, 진짜로. 그냥 다른 사람 같았으면 조금 더 넉살좋게 이름 불러주고 말 것을 왜 저딴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지? 진짜 이 사람 앞에선 숨김없이 수그러들게 된다.
"난 선배님 아니고 친구잖아요. 우리 동갑인 건 알죠? 이름 불러줘요."
"아.... 온..유씨?"
진짜 내 자신이 적응이 안 돼서 미칠 것 같다. 이 모습을 애들이 본다면 몇달동안 꼼짝없이 놀림 당할 게 뻔하다! 나도 모르게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표정을 마주했다. 조금은 웃는 얼굴.
"생각했던 것보단 온유도 괜찮네요. 근데 내 본명 몰라요?"
"아..."
"진기예요. 진기. 진기라고 불러줘요."
미친 것 같다 진짜. 어떻게 이런 낯간지러운 말들을 계속 하는 거지? 근데 왜 난 오글거리지 않는 걸까. 왜 그냥 자꾸 긴장되고 불편하고...
"얼른요.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다면서요."
웃는다. 또, 또!!
"아... 진기..씨.."
표정이 잠시 굳어지다, 이내 살짝 미소짓던 얼굴을 풀고 좀 더 환한 웃음을 지어낸다.
"아 진짜 성규씨 완전 웃긴다. 놀리고 싶게 만들긴 하네요."
진짜 미치겠다. 어떤 반응을 보여줘야 하는 거지? 웃으면서 하는 말이 왜 이렇게 진지하고 왜 이렇게 못 뚫겠지? 뭐가 이렇게 단단해. 능글능글 넘어갈 수가 없다.
"이제 진짜 친해져요. 내 번호 저장해줄게. 폰 줘요. 그리고 앞으론 계속 이름으로 불러줘요."
다른 남자가 이딴 말을 내 앞에서 지껄이면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어줄 수 있는데. 왜 이 남자 목소리는 귀에서 가라앉는 걸까. 붕붕 뜨지 않고 그대로 가라앉아서는.
"자주 연락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