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너의 꿈은 무엇이니.
저는요, 부자 돼서 나중에 바다가 보이는 산 중턱에 예쁜 집 짓고 맨날 놀고 먹는 게 꿈이에요. 집 앞에는 예쁜 꽃들도 심어져 있고요. 또 작은 보트도 사서 바다에 놀러 나갈 거예요.
꽤나 구체적이구나. 너의 수명 일부를 나에게 주면 꿈을 이루어줄 것인데, 어때. 수명을 나에게 주겠니?
엄마가 함부로 다른 사람이랑 거래 하는 거 아니라던데... 좋아요. 대신 확실하게 이루어주세요.
그러마. 그건 걱정하지 말아라. 수명이 다 하는 날 다시 찾아 오마. 잘 지내고 있으련.
눈을 못 뜰 만큼 환한 빛을 내더니 꿈에서 깨어났다. 뭐 이런 꿈이 다 있어? 진짜면 차라리 좋겠네. 얼른 로또나 당첨 돼서 놀고 먹고 싶다. 아니면 멋지고 돈 많은 남자 하나 꼬드겨서 장가 가야지. 내 이름은 부승관. 25살의 어엿한 직장인이다. 나는 부모님 감귤밭 물려 받으면 되니까 공부 안 해도 돼! 라는 어렸을 적 신념을 엄마에게 들키고서 된통 혼이 난 뒤로 정신을 차리고 학창 시절을 성적에 올인한 결과 삼성이나 롯데 같은 대기업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알아주는 직장에 무사히 취직해 열심히 살고 있다. 근데 그러면 뭐해...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일개 회사원의 월급으로는 내 꿈을 이루기까지 30년은 더 걸릴 거다. 한 달에 나가는 월세에 관리비만 해도 얼마야...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온 뒤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서울 생활에 지쳐 가는 중이다. 그러니 이런 허무맹랑한 꿈이나 꾸지.
흐르지 않을 거 같은 시간들이 흐르고 금요일이 되었다. 불금인데 뭐 하지. 퇴근하고 정훈씨랑 맥주나 한 잔 하러 갈까, 아니다. 오늘 정훈씨 부인이랑 같이 저녁 먹는다고 그랬지. 집에 가서 피자나 시켜서 먹어야겠다. 참, 가는 길에 로또도 사야지. 사소한 곳에도 신중하게 돈 쓰는 직장인들도 일주일에 한 번 도박을 한다. 바로 로또. 당첨될 확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던 거기에 항상 기대를 하며 돈을 지불한다. 물론 나도 희망 가득한 직장인이라 금요일만 되면 로또를 산다. 오만원짜리라도 당첨 되겠지. 회사에서 집에 가는 길에 있는 당첨자가 많이 나온다는 그곳이 내 단골 가게이다. 자동 이만원 어치 주세요. 왜 이만원이냐고?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고. 만원 보다는 이만원이 당첨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집에 도착해 씻고 나오니 벌써 9시다. 머리 끝에 물방울들을 매달고 냉장고에 넣어 놓은 맥주를 꺼내 티비 앞 탁상 앞으로 가 앉아 캔을 딴다. 한 모금 마시니 시원하면서 씁쓸한 게 쭉쭉 들어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인애플 추가한 하와이안 피자도 한입 한다. 벌써 여름이 다가오는지 집 안 공기가 답답해 창문도 살짝 열어 놓는다. 벌써 서울로 올라와 두번째 맞는 여름이다. 엄마는 잘 지내고 계신가? 아빠는 허리도 아프신데 또 무리하면서 밭 관리 안 하시나 몰라. 다음에 전화해서 잔소리 한 번 해줘야지. 시덥잖은 생각하며 멍하니 목 울렁대를 움직이다 보니 하나 둘 빈 캔이 늘어난다. 아... 오늘 좀 많이 들어가네. 붉어진 볼과 살짝 풀린 눈으로 남은 피자 조각들을 바라보다 케이스를 덮고 그대로 소파 위로 올라가 누워 눈을 감는다. 잘 자 부승관, 오늘도 고생했어.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다 잠에 든다.
건조하고 텁텁한 입 상태에 눈을 뜬다. 불을 켜 놓지도 않았는데 집 안이 밝다. 몇 시지... 얼마나 잔 건지 다 갈라진 목소리에 안되겠다 싶어 일단 일어나 생수부터 꺼내 벌컥벌컥 마신다. 시계를 보니 3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오늘도 알찬 주말을 보내자는 계획이 시작도 못 해 보고 끝이 났다. 그래, 평일에 그렇게 바쁘게 사는데 주말엔 좀 풀어져야지. 애써 자기 합리화를 하며 500ml 생수 한 병을 다 비우고 나서야 욕실로 들어가 찝찝함을 씻어낸다. 씻고 나오니 4시. 어젯밤 정리하지 않은 잔해물 치우기를 시작으로 밀린 집안일을 하고 세탁기까지 돌리고 나서야 시계를 보니 6시. 곧 저녁 먹을 시간이네. 오늘은 또 뭐 먹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아 배달앱을 켜 양식 카테고리로 들어간다. 검지 손가락이 몇 번 움직이더니 뒤로 가기를 누르고 한식 카테고리로 들어간다. 역시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해. 오늘은 묵은지고등어찜이다. 주문을 다 하고서 그대로 옆으로 몸을 눕히니 그제야 조용해진 집안을 둘러본다. 그렇게 넓은 집은 아니어도 혼자 있으니 알게 모르게 공허한 느낌이 든다. 티비 아래 선반 한 쪽에 자리 잡은 부끄 사진을 보다 눈을 감는다. 우리 부끄 보고 싶다. 월급 타면 간식 사 들고 놀러 가야지. 앞으로 받으려면 2주나 더 남은 월급을 생각하며 돈 쓸 곳을 생각하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벌써 왔다고?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배달에 저녁 시간도 당겨졌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 앉아 티비를 켜고 볼 예능을 찾아본다. 이럴거면 미리 찾아 놓을 걸, 또 고르느라 밥 다 식겠네. 겨우 고른 예능을 틀어 놓고서 숟가락을 들어 크게 한 입 먹는다. 저번에 고향 친구 영민이가 놀러 왔을 때 맛있게 먹어서 시킨 건데 그때 그 맛이 안 난다. 맛 없다는 건 아닌데... 뭔가 허전하다. 역시 밥은 둘이 먹으면 더 맛있나 봐. 투닥거리다가도 금방 깔깔 거리며 웃는 예능을 밥친구로 삼으며 배를 채워 간다. 8시. 배도 부르겠다 본격적으로 숟가락을 내려놓고 소파에 기대 논땡이를 부리며 핸드폰을 본다. 먹고 바로 치우라는 잔소리를 평생 들었음에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아니 그게 쉽냐구요. 난 어렵던데. 망부석처럼 앉아 핸드폰으로 사람 사는 구경을 하다 보니 벌써 9시를 향해 가고 있다. 뭔가 까먹은 거 같은데... 뭐지? 아, 로또 방송. 막 시작할 시간이라 급하게 채널을 돌려 방송을 튼다. 타이밍 알맞게 튼 건지 막 숫자들을 뽑고 있다. 일어나 지갑에서 사온 로또를 꺼내 가져 온다. 13, 21, 7... 이건 꽝이고... 어라, 어라? 내가 잘못 본 건가 눈을 부비고 다시 숫자들을 확인한다.
엄마. 나 로또 당첨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