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서 내일로, 어쩌면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가는 12시.
나는 12시 부터 새벽 5시까지 편의점 알바를 한다.
사람도 없고 손님도 없는 한적한 거리, 그 곳 편의점에서 새로운 오늘을 맞이한다.
12시가 넘어 바뀐 날짜, 24에서 25로 넘어가는 그 자정. 자정시간에 맞춰 오늘도 출근을 했다.
"어서오세요."
출근하자 마자 몇 분 지나지 않아 첫 손님이 들어왔다.
단정한 목폴라에 차분히 내린 머리, 그리고 목폴라 위에 입은 맨투맨까지.
참, 꾸민듯 안꾸민듯 멋있는 사람이네.
"5400원 입니다."
바코드를 찍을 때 마다 슬쩍 슬쩍 보이는 나의 맨투맨을 보며 순간 깨닳았다.
아, 우리 지금 같은 옷을 입고 있구나. 그 생각이 들자 다시 그의 옷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며 가격을 예기하는 순간,
나를 보고 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설렘, 사랑, 연애의 시작? 이런걸 느끼는 순간인 순정만화 속과는 달리 나를 바라보는 약간은 차갑고 뚱한 표정.
기분이 나쁜가 이사람, 고작 같은 옷 입고있다는 이유로?
"저기 손님."
"네,"
"5400원 입니다. 손님."
그의 표정을 읽자 약간은 딱딱해진 말투로 툭 던졌다.
그가 떠난 편의점엔 더이상 아무 손님도 오지 않았다.
너무 심심해서 였을까, 차가웠던 그의 표정을 자꾸만 곱씹었다. 그리곤 마지막엔 의문이 남았다.
왜, 그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을까.
25일 5시가 되자, 나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오전과 오후, 그리고 난 다시 26일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다.
내가 한없이 작아진 것만 같아 힘들었던, 그래서 누구보다 강해보이고 싶어 진하게 화장을 했던 25일.
그리고 26일이 시작된 첫 시간. 나는 다시 편의점에 앉아있다.
OPEN 표시를 걸어놓기 무섭게 몇 분뒤 그가 들어온다.
오늘은 세련되게 넘긴 머리에 검정 라이더자켓..그리고 검정 티.
신경써서 입고나온 자켓이기에 오늘은 보자마자 내 옷이 떠올랐다. 뭐야, 나 오늘 라이더 자켓이잖아?
내가 나의 옷을 슬쩍 보는 시선을 느꼈을까, 그 역시 나의 옷을 슬쩍 본다.
글쎄, 나의 옷을 본걸까 나를 본걸까. 여전히 난 그를 경계했다.
물건을 고르며 나를 몰래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시선을 숨길줄 모르는 사람이다.
오른쪽 신발끈을 묶으려 무릎을 굽히는 그에게서 또 다른 점을 볼 수 있었다.
나와 신발도 같구나.
이정도면 취향이 같은걸로 넘기기엔 우연일까 인연일까 싶어 나의 신발을 바라보는데
내 왼쪽 신발끈이 풀려있었다.
고개를 드는 나의 시선과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어제완 다른 조금은 변화된 표정. 마치 내가 뭔지 궁금하다는 표정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는 점으로 충분히 부끄러웠고, 그 행동을 들킨것이 마치 내가 뭐라도 한 마냥 찔렸다.
거기다 어제의 차가운 표정과 오버랩되며 과하게 그를 노려보았다. 수상한건 내가 아니라 너야 라는 듯이.
그리고 기분 나쁘다는 듯이 그와 똑같던 라이더 자켓을 벗었다.
네가 그렇게 기분 나빠한다면, 나 역시 너와 같은 옷이라는게 기분 나빠. 라는듯이.
그리고 그가 계산대에 왔을때, 자연스럽게 자켓을 벗을때, 나는 자켓 안에 입은 그의 검정 티를 보았다.
내 흰티와 같은 디자인이네.
더이상 그는 신경쓰이는 존재가 아니였다. 수십가지의 감정이 섞인 애매한 감정. 그를 정의내릴 수 없게 되었다.
나에게 지쳤던 하루, 26일이 끝나가고 나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기분 전환을 하고싶어 예쁘고 발랄하게 입고 도착한 계산대 앞. 그리고 OPNE표시를 걸어놓기 무섭게 오던 그. 오늘은 편의점 밖에서 눈이 마주쳤다.
그의 손엔 봉투가 하나 들려있다. 다른 편의점에서 산건가 싶은. 그렇게 눈이 마주친 그는 그냥 가던길을 가버린다.
그가 가는 길에 시선이 따른다. 하지만 이내 계산대에 다시 앉았다.
뭐야, 오늘은 안오나 싶다가도 내가 괜히 기다리는 것만 같아 쭉 뻗은 고개를 다시 수그린다.
CLOSE를 걸어두고도 괜히 밖을 쳐다보며 조금 더 있지뭐, 밖이 추우니까 라는 이유로 가게문을 닫지 않았다.
그리고 저 멀리서 내 니트색마냥 밝고 환한 자전거를 타고 오는 그가 보였다.
빙빙 돌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주의만 돈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도 따르지만, 나 역시 별다른 행동을 취하진 않는다. 그저 바라만 볼 뿐.
그렇게 멈춰선 그를 본 순간 나는 웃으며 인사를 건낼 수 밖에 없었다.
나와 같은 니트, 내 가방디자인과 같은 휴대폰케이스, 내가 니트 위로 찬 시계와 같이 니트 위로 찬 똑같은 시계.
자전거를 세우고 나를 올려다 보는 그와 눈이 마주쳤을땐 내 입에선 진심을 담은 말이 나왔다.
"어서오세요."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걸까. 그저 관심인걸까. 그동안 몰랐던 존재에 대해 알고싶은 단순한 궁금증 인걸까.
누구보다 나와 닮은 듯 하면서도 전혀 다른듯한. 그를 내가 좋아하는 걸까.
가득찬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서 일까, 고된 하루 속에서 치이고 다쳐서일까.
나는 많이 아팠다. 진짜 다치지도 않은 손가락에 밴드를 붙여가며 내가 이만큼 아파요 라고 보이고 다닐만큼.
밴드가 나의 아픔의 크기를 나타내주는 것은 아니였지만, 아프지 않은 내가 아프다고 표현하는, 혹은 해버리는. 그런 반항같은 거였다.
밴드를 만지작 거리며 그를 기다리자 오늘도 어김없이 문이 열린다.
"어서오세..."
말을 잇지못한건 나와 같은 그의 검지손가락이 진짜로 피로 물들어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게 나 때문이라는 잠깐이지만 스쳐간 생각 떄문일까.
내가 혹여나 볼까 황급히 가리는 그의 손에서 나를 보았다.
그의 손에서 눈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 어느때보다 슬픈, 정말 슬픔을 담은 그의 얼굴을 보았다.
"거기 상처....이거라도.."
내가 오늘 붙이고 남은 밴드를 꺼내 주었다. 조심히 받아들여 나와 같은 손에 밴드를 붙이는 그. 아니, 너.
그의 눈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을 땐, 왜일까. 그가 다시금 밝아보이는걸.
"아프면 치료해야지...여길 왜 와요."
"그쪽도 아프죠?"
"네? 아, 저는 이거...그냥 뭐....아프진 않아요."
아프다고, 말 대신 암묵적인 반항이였는데. 어째서 이렇게 말해버린걸까.
"밴드, 아파서 붙인거잖아요."
"아, 아니예요. 진짜로 안다쳤어요. 괜찮아요."
"전 괜찮아요."
"네?"
"저 밴드 붙여서 다 나았으니까, 이제 괜찮아요. 걱정했죠?"
아, 네 뭐. 라는 짧은 말과 함께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내 얼굴에 그렇게 티가나나, 아까 말할때 너무 감정적으로 말한건가.
괜히 내 속마음이라도 다 들켜버린 듯 부끄러움에 눈을 피했다.
슬쩍 곁눈질로 본 그의 얼굴은 처음 본 표정이였다.
작지만 조금은 웃고있던, 따뜻한 표정.
나와 같은 회색 맨투맨을 입은 그는 다시 입을 땠다.
"마지막이네요, 오늘"
"네? 뭐가요..?"
"이제 못봐요, 근데 계속 곁에 있을께요."
"어디...가세요?"
"아뇨, 항상 원래 있던 곳. 거기에 있어요."
"네? 도통...무슨소린지...이름, 그러고 보니 우리 서로 이름도 모르죠? 가기전에 알려줘요..이름."
"전 아는데, 할매징."
"어떻게...."
"제 이름이 뭔지 아세요?"
"아뇨..."
"전, 무의식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