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 김태형과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이야기.txt
♬ 악동뮤지션 - 시간과 낙엽
(태형 시점)
"...응?"
"... ..."
"...좋아하냐구."
"...취했어. 박지민 오면 나가자."
난 어느 쪽으로던 대답을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네게 보낸 내 대답이 확신이 되어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겐 비수가 되어버려서, 그래서 난 대답을 할 수가 없어.
그저 술김에 던진 말일거라고 생각하려 한다. 내일 잠에서 깨어나면 기억하지 못하길.
모든 게 평소대로 돌아와야만 우리는 평소처럼 지낼 수 있으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너의 입에선 더 이상의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마침 박지민이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김탄소 완전 맛이 갔네."
"집에 데려다 놔야겠어. 이만 나가자."
"술 진짜 못마신다."
"입학하면 니가 얘 챙겨. 같은 과라며."
겨우 취한 김탄소를 부축해 집에 간게 이틀 전이었고, 다음부턴 이 정도로 마시지 말라고 주의를 준게 어제인데 모든 것이 무색할 정도로 김탄소는 취해 있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방금 나눈 대화가 취기에 흘러간 말들이라는게.
도통 비틀거리며 걷는 것 외에는 제대로 버티지 못하기에 박지민까지 나서 집까지 데려왔다.
일찍이 술자리가 끝났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겨우 숨겼던 김탄소의 술취한 모습을 이모와 삼촌에게 보여드릴 뻔 했다.
박지민은 집 안까지 들어와 김탄소를 눕히는 것에 도움을 줬다. 김탄소, 벌써 여럿한테 빚지고 산다.
"어휴. 난 이만 갈게."
"어. 수고했다."
박지민이 집에서 나가고 김탄소의 방에서 의자를 끌어다 침대 옆에 앉아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김탄소의 돌직구에 충격을 받아서인지, 찬바람을 오래 쐬서인지 약으로 잠재워놓았던 감기기운이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차라리 나도 이렇게 취해버려서 마음 속에 있는 말을 전부 뱉고 싶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난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웃기도 많이 웃었는데. 우리.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게 되던 날, 그래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너와 멀리 떨어지게 되던 날.
어차피 우리 많이 볼거잖아. 하며 아쉽지 않은 척해도 내가 탄 차가 멀리 떠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었다던 네 얘기를 듣고선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는 걸 넌 모르겠지.
처음으로 너와 다른 학교에서 한 학기를 보내고 방학에 너네 집에 내려갔던 날.
말도 없이 너를 찾아가 놀라는 네 모습을 보며 많이 웃기도 했었는데.
그렇게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나에게만 있는 추억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너도 나처럼 기쁘고, 너도 나처럼 행복했던 추억이었으면, 그랬으면 좋겠어.
-
(탄소 시점)
"...아. 머리 존나..."
이틀 전 쯤에도 이렇게 머리를 싸매고 잠에서 깨어났던 것 같다.
게다가 저번엔 어젯 밤의 기억을 어느 정도는 되살렸던 것 같은데, 이번엔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마셨는지, 언제 집에 들어왔는지, 술에 취해 어떤 행동과 말을 했는지 조차도.
"...미쳤나 봐..."
다행히 김태형과 같은 술자리에 있었기 망정이지 다른 친구들과 그렇게 마셨다간 조만간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술 마신 다음 날 자연스레 찾아오는 미친듯한 목마름에 목을 감싸고 방을 나섰다.
짧게 지나친 전신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정말...정말 거지같다.
허겁지겁 물을 찾았다. 두 컵을 연신 들이키고 있는데 어디선가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부엌으로 김태형이 걸어온다.
혹시나 어젯 밤 또 무슨 잘못이라도 했을까 싶어 순간 몸이 굳었다.
눈치를 보며 물을 전부 들이키고 조심스레 컵을 내려놓으며 괜히 김태형의 눈치를 봤다.
그런 나를 평소와 같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김태형은 내가 들고있던 물컵을 빼앗아 물을 따라 마신다.
"...야. 나 어제."
"무슨 잘못 했냐고?"
"...응."
마치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레 내 뒷 말을 이었다.
왜 병신같은 나년은 술을 못마셔서 술 마신 다음날 이렇게 눈치를 보고 있는지.
뭐, 이틀 전엔 잘못한게 없었다치고 어제는 잘못한게 있을 수도 있으니 김태형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무슨 말이 나올까싶어 더 긴장을 했다.
"아무 것도 없었어."
"...진짜?"
"응. 진짜."
"...아, 다행이다."
괜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긴장을 한 탓에 온 몸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쉼과 동시에 김태형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근데."
"...근데?"
"자꾸 나한테 뭘 물어보더라고. 니가."
"...내가? 뭘 물어봤는데?"
"안 알려줘."
"...왜?"
...?
내가 뭘 물어봤지. 뭘 물어봤길래 안 알려주는거야. 김탄소 이 미친년ㅠㅠㅠㅠㅠ무슨 말을 한거야ㅠㅠㅠ
내 머릿 속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별 질문 아니었으면 김태형이 저렇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할리가 없었다.
게다가 알려달라고 졸라도 쉽게 알려줄 애는 아니라 더더욱 울고싶어졌다.
이 놈의 술이 문제지...술이 문제야...
"그래서 니가 뭐라고 대답했는데...?"
"대답 안 했는데."
"...언제 할건데...?"
"글쎄. 질문이 뭔지는 알아?"
"...아니."
죽어야지. 그냥 죽어야겠다.
멘탈이 붕괴된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상황인 듯 하다. 죽어야 해...술 못 마시면 그냥 죽어야 해...
결국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채 어깨가 축 처져서는 부엌에서 걸어나왔다.
이내 밖도 아닌데 내게 어깨동무를 해오는 김태형에 의해 그것마저 저지되고 말았지만.
"삐졌냐?"
"아니...삐지긴...내 잘못인데 뭐..."
"니 잘못인건 어떻게 확신하고."
"그냥...술 못 마시는거 자체가 잘못인 것 같아..."
"비련의 여주인공 놀이 그만하고 슬슬 짐이나 싸."
"짐?"
...아. 요 며칠 김태형 간호하랴 술마시랴 생각도 못하고 있던 것이 갑자기 생각났다.
내가 방학을 하기 전부터 엄마가 노래를 부르던 온천여행 날짜가 벌써 내일이었던가.
그닥 물을 좋아하지 않아 온천여행이라는 것에 탐탁치 않았는데, 여태 그래왔지만 이번 여행 역시 김태형의 일가족과 함께 떠나는 것이 더욱 탐탁치 않았다.
왜 매번 우리 셋이 떠나는 여행은 없고 저들과 같이 하는거죠. 엄빠?
여름에 바다나 계곡에 놀러가도 잠수는 커녕 가슴 이상 담그지 않던 나에게 온천여행은 그저 그런 여행이었다.
다만 숙소가 좋으니 밥도 맛있겠지. 바베큐 파티하겠지. 라는 생각만 할 뿐.
이 추운 날씨에 바다로 가는 여행이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난 애늙은이니까 온천가서 건강탕에나 들어가 있어야지.
"넌 짐 쌌어?"
"나도 싸야지. 어제 누구 들쳐매고 오느라 못 싸서."
"하하, 그것 참 미안하게 됐구나."
막상 짐을 싸려 방에 들어오긴 했는데 뭐부터 해야하지. 짐을 싸본게 한참 전이라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1박 2일 이랬나...일단 적당히 큰 가방을 꺼내 입구를 활짝 열었다. 그냥 이참에 다 싸들고 집을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눈에 보이는대로 가방에 쑤셔넣기 시작했다. 이것도 필요하겠지. 이것도 챙겨가면 쓸데가 있을거야. 이것도.
하며 가방을 채우다보니 어느 새 가방이 터질 듯 꽉 차있었다. 확신하건데 이 상태로 짐을 들고나가도 집만 있다면 평생 살 수 있을 듯.
다 싼 짐을 지퍼도 채우지 않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기가 무섭게 휴대폰에선 메세지 알림이 울렸다.
[ 딸 내일 온천가는거 기억하지? - 맘스터치 ]
[ 엄마 오늘 일찍 퇴근 할거니까 미리 짐 싸놔~ - 맘스터치 ]
[ 이미 싸놓았노라 ]
[ 난 이걸들고 집을 나가겠다 ]
[ 그럼 우리집에 태형이만 키우면 되니?~^^~ - 맘스터치 ]
[ 미안하오 ]
이거 뭐 무서워서 농담도 못하겠다. 왜 내가 엄마는 김태형 편이라는걸 생각 못하고 근본없는 드립을 쳤을까.
지금까지 김태형 가족과 수많은 여행을 가봤지만 늘 부모님은 부모님끼리, 나는 김태형과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른들과 우리는 체력도 노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니까.
그렇게 여행을 떠나다보면 이게 부모님과 온 여행인지, 김태형과 둘이 온 여행인지도 헷갈릴 정도다.
물론 그것이 불편하다거나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몰라, 몰라. 김태형하고 논게 한 두번인가, 뭐
-
"이모오오!!!"
"우리 탄소 더 예뻐졌네~"
"헤헤. 이모도요."
아침 일찍부터 김태형의 부모님인 이모와 삼촌은 먼길을 달려 우리집까지 왔다. 오랜만에 보는 내 편, 이모와 삼촌을 보며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여기 부부+태형단이 나를 괴롭힙니다. 내 편이 없어요.
각자의 차에 짐을 다 싣고 남은건 출발 뿐이었다. 막상 어젯밤까지만해도 딱히 설렌다는 감정이 없었는데 출발을 앞두니 급신난다.
이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가싶다. 아빠 차 뒷자리에 타고선 문을 닫았다. 앞자리엔 아빠와 엄마가 타고, 그대로 출발할 줄 알았드만 내 옆으로 누군가가 탄다.
"뭐냐. 넌."
"왜. 나 이 집 사람이라 여기 타려는데."
"뻔뻔보스다. 진짜."
왜 자기 집 차 놔두고 굳이 여기타는지 나는 알 길이 없지만, 와중에 엄마는 역시 태형이는 우리 집에 잘 맞아~하며 좋아한다.
아무래도 엄마 생신선물로 내 호적을 파고 김태형을 넣어줘야 할 것 같다. 그럼 아빠도 좋아할거야. 분명.
여행길의 시작이었다. 어차피 멀미를 하는 대신 잠을 청할 예정이어서 이어폰도 따로 꽂지 않고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투명한 창문 밖에선 가로수와 수많은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치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감상아닌 감상을 하고 있자하면, 옆에 앉아있던 김태형이 내 한쪽 귀에 이어폰을 쑤셔넣는다. 뭔진 모르지만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제로 노래를 듣게 된 내가 오른쪽으로 돌아보니, 나머지 한쪽을 제 왼쪽 귀에 꽂은 채 한창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는 김태형의 옆태가 보였다.
내 시선이 느껴질텐데도 내 쪽을 바라보지 않던 김태형에게선 말 대신 카톡이 왔다.
[ 잘거잖아 - 잔소리 태마왕 ]
[ 잠만보 - 잔소리 태마왕 ]
[ 고오맙다 친구야 ]
[ 자 - 잔소리 태마왕 ]
[ ? ]
"...?"
같은 공간에서 말은 안하고 카톡으로 대화를 하는 것도 웃기지만 이게 마음 편한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 저 자, 라는 말의 뜻을 파악하려 고개를 돌리니 아까완 다르게 김태형 또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차만 타면 잔다는걸 모를리는 없으니 제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두 어번 톡톡, 쳐보인다.
왠지 웃음이 나 한 번 웃어보이곤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휴대폰 카톡에서 알림이 다시 울린다.
[ 왜 웃어 - 잔소리 태마왕 ]
[ 웃겨서 니얼굴 ]
[ 너 머리에 살쪘지 - 잔소리 태마왕 ]
[ 머리에 든게 많아서 그래 ]
[ 맨날 잔머리만 굴리니까 그렇지 - 잔소리 태마왕 ]
메세지에 답을 하지 않고 손으로 주먹을 그려쥐고선 김태형의 허벅지를 위에서 내려 찍었다.
아프다는 듯 손바닥으로 제 허벅지를 비비던 김태형이 내가 기대고 있는 어깨를 크게 들었다 올린다.
덕분에 머리를 떼게 된 내가 정색을 하고 아예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 창문에 기대니, 노랫소리 사이에서 김태형의 아. 하는 소리가 섞여 들려온다.
[ 빨리 와 미안 - 잔소리 태마왕 ]
[ 베개가 말이 많다 ]
[ 빨리 - 잔소리 태마왕 ]
[ ㅗ ]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팔을 잡아당겨 결국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만든다.
어차피 이럴 거였으면 나한테 오라고는 왜 하는거야. 힘자랑 하는거야, 뭐야.
아까와 같이 김태형의 어깨에 기대어 폰을 만지작거리는데, 이번엔 박지민에게서 카톡이 온다. 가지가지하다 나무되겠다. 정말.
[ 술탄소 살아있니? - 박지민디바 ]
[ 나 온천간다~ ]
[ 헐...나도 데려가... - 박지민디바 ]
[ 부럽지이~ ]
[ ㅠㅠㅠ가족 여행이야? - 박지민디바 ]
일단 여행가는걸 자랑하기 위해, 마지막 박지민의 메세지에 그렇다고 대답을 하려는데 김태형이 돌연 내 폰을 빼앗아간다.
이게 무슨 짓이지, 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뭐라뭐라 적더니 휴대폰을 내 손에 쥐어주고선 머리를 눌러 다시 기대게 한다.
[ 김태형이랑 ]
[ 톡보내지마 ]
"미쳤구만."
"맞잖아."
"허..."
이 구역의 돌아이는 김태형이 맞는 것 같다.
그 와중에 톡보내지말라는 메세지의 1이 없어졌는데도 박지민은 정말 톡을 보내지 않았다.
내 평소 이미지가 이렇게 센 이미지였나. 이렇게 말을 한 번에 들을 정도였다니. 이런 망할.
뻔뻔한 김태형과 개미심장 박지민과 그 사이에 불쌍한 나의 조합이란. 정말 원더풀해^^....
-
리조트에 도착을 했다. 나는 김태형의 어깨에 기댄 채로 잠들어 한 번도 깨지 않았다.
수고했다는 의미로 김태형의 어깨를 두 어번 주물거리고 차에서 내려 짐을 꺼냈다.
차에 실어줄 땐 아빠가 들어줘서 몰랐는데 쓸데없이 이것 저것 많이 챙겨서는 가방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두 손으로 힘겹게 가방을 드는 날 보던 김태형이 말도 없이 가방을 빼앗아 가길래 옆을 졸졸 쫓아가며 달라했지만 말도 안 듣는다.
"너 어깨 빠져. 그러다."
"여기 사람 들었냐. 왜 이렇게 무거워."
"내 방을 담은 듯 해."
"여자들이란. 정말."
그러고보니 김태형의 짐은 내 것보다 훨씬 작고 가벼워보이긴 했다. 원래 여자들이란 이런 거야. 챙겨도 챙겨도 부족하다고.
물론 나는 그냥 보이는대로 쓸어담아서 그런거지만, 다른 사람들은 꼼꼼히 챙기다보니 짐이 많아지기도 하고 그런거지.
객실은 바로 옆에 붙어있는 두 개를 여자와 남자가 나눠 쓰기로 했다. 김태형이 손수 날라준 짐을 방으로 들여놨다. 아, 숙소 하나는 좋구먼.
벌써부터 저 넓은 침대에 누워 잘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럴 때보면 나는 엄마나 아빠보다 신체나이가 많은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바로 온천으로 간다는 말에 수영복과 여벌의 옷을 작은 가방에 옮겨담아 엄마, 이모와 함께 방을 나섰다.
남자들은 이미 방에서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들이란. 정말.
"탄소는 태형이랑 알아서 놀고, 엄마는 이모랑 갈게~"
"언젠 안 그랬나. 뭐."
겨울의 온천은 실내만 영업을 할테니 갈 곳은 한정 되있었다. 내가 미래를 보는 사람은 아니다만 이미 먹고 탕에 들어가고를 반복할 내 모습이 보인다.
한 겨울에 수영복을 입고 그 위엔 반팔과 반바지, 그리고 구명조끼까지 덧대어 입고 온천에 들어선 후로는 엄마는 엄마들끼리, 아빠는 아빠들끼리 갈 길을 떠나버리고, 늘 그렇듯 둘만 남겨진 우리는 정처없이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온통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게 색깔만 다른 연기나는 물들 뿐이라 추운 몸을 달래려 어디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제일 먼저 보이는 탕으로 김태형의 팔을 끌고 들어갔다. 아, 따뜻하다. 여기가 천국이구나.
"으어. 허."
"할머니 같아."
"이렇게 예쁘고 젊은 할머니가 어딨어."
"여기."
여기까지 와서 피보고 싶진 않은데, 김태형아.
탕 끄트머리에 어깨를 기대고 몸을 깊게 담갔다. 나가기 싫다. 마치 추운 날 전기장판 틀어놓은 이불 속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차에서 내내 잠을 자놓고 따뜻한 곳에 들어오니 다시 나른해진다. 바다나 계곡은 싫지만 온천은 좀 괜찮네.
그러나 따뜻함을 느끼기도 전에 한치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김태형이 나에게 물을 튀겨온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김태형을 상대하기가 귀찮아 눈을 감은 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계속 해서 물이 튀겨왔다. 이건 미스트다. 천연 미스트다...김태형은 죽었다...내 손으로 익사시킨다 오늘...
"죽는다. 김태형."
"여기까지 와서 요양하지말고 놀자."
"놀고있잖아. 지금."
"눈감고 누워있는게 무슨 노는거야."
"물의 흐름 느끼기 놀이."
물을 튀겨도, 팔을 잡고 놀자고 졸라도 내가 도통 반응이 없자 김태형은 혼자 놀겠다며 탕에서 나가 버렸다.
삐졌나 싶었지만 붙잡기엔 귀찮아 계속해서 나홀로 물의 흐름 느끼기 놀이를 했다. 이래서 온천 오는구나.
그래도 혼자 어딜 갈까 싶어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김태형은 이미 큰 보폭으로 저만치 가있었다.
그리고 김태형과 조금 가까운 곳에, 구명조끼에도 가려지지 않는 늘씬한 몸매를 가진 언니무리가 김태형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데 김태형에게 다가간 그 언니무리와 김태형이 무어라 대화를 나누더라. 길이라도 물어보려나 싶어 다시 탕으로 시선을 옮겼다.
발로 혼자 물장구를 치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김태형이 다시 내가 있는 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선 하는 말이 가관이다.
"자기야. 찾았잖아."
"...?"
이런 미치고 파친놈이 혼자 논다더니 약을 빨고 왔나. 갑자기 왜 이래?
인상이란 인상은 다 찌푸리고 김태형을 바라보는데, 때마침 아까 그 언니무리가 우리 옆을 지나치며 나를 흘깃거린다.
언니무리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김태형이 입을 열었다.
"번호 따일 뻔."
"주지. 몸매도 좋고 이쁘구만."
"여자친구 있다고 했지."
"아, 그게 나고? 어쩐지 존나 흘기더라. 이 새끼야. 내 허락도 없이 감히 나를 팔아?"
"캄 다운. 진정해."
진정하게 생겼어. 지금? 저 언니들이 무서운 언니들일지도 모르는데 지 급하다고 나를 파냐고, 글쎄.
어디 계속 지껄여보라는 표정으로 김태형을 바라보니 이 상황을 그저 웃어넘기려 한다.
"하하, 배고프지 않아?"
"... ..."
"자기야?"
"나 참."
그 언니무리가 다시 우리 옆을 지나가니 저 난리다. 아주 가지가지 하세요. 정말.
"근데 이거 좀 재밌는거 같아. 자기야."
"미치려면 곱게 미쳐."
"왜 그래. 자기야?"
"... ..."
"이제 태형이랑 놀자~"
"아...존나 집 가고 싶다..."
-
여러분은...태형이가..원래 저런 캐릭이었다는 것을...기억하셔야 합니다...
진지와...돌아이 기질을 겸비한...오래된 남사친...
이것도 나름 급전개라면 급전개인듯
시간을 지배하는 작가라 미안합니다...(소금)
여자친구 신곡 들으면서 쓰다보니 자꾸만 시간을 달리게 되는...;ㅅ;
저번엔 시간이 없어서 끊은거였어요 막 무슨 반전 때문에 끊은건 아니구...ㅎㅎㅎㅎ
그래서 이번 편 좀 길게 써왔져! 아닌가ㅎ
우리는 아직 갈길이 멀다구욧!
~♥~ ~♥~〈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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