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 우는소리가 잦아들 쯔음 동이트면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유난히도 크게 들리는 시계소리가 웅웅 귀에 울리며 무의미하게 흘러갔지만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일은 그만두지 못한다. 알 수 없는 표정에 가득차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옆에서 아무렇지않게 위로해주어야 하는것도 차라리 학교를 가지 않아 마주치고 싶지 않은 감정도 계속되니 무시할 수 없을만큼 커져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묵직하게 상체부근을 짓눌러 괴로웠다. 팔을들어 마른세수를 하자 어느새 시간이 꽤 흘렀음에 한숨을 쉰다. 그렇지만 보고싶다. 매일아침 인사하고 장난치고 웃는 일상이 너무나 소중하다.
이시기의 청소년들은 뜨겁다. 감정 변화가 많고 참을성이 부족해지며 열정이 넘쳐난다. 그 무렵의 나는 점점 참을성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는데, 복잡한 관계는 둘째치고 그와의 사소한 장난과 스킨십에 알게모르게 쌓이는 스트레스가 마치 서서히 아궁이에 불떼듯 북받쳐 오르고 있었다. 어께동무라도 할라치면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눈에띄게 놀라는 꼴을 그가 모를리가 없는데도 훅 끼치는 체향이라던가, 머리카락이 목덜미에 스치기라도 했을 땐 분명 얼굴이 새빨개졌을 터이다.
자연히 거리를 두었다. 근처에 다가올라치면 딴청을 피우며 자리를 비웠다. 우리들 사이에는 자연히 다가가고 피하는 냉전이 시작되었고 그사이에서 애써 분위길 바꾸려는 친구들을 보고있으면 미안했다. 요즘들어 시작된 두통이 싫었다. 그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눈치를 보내는 그가 미웠다.
그러던 어느날, 열대야로 인해 한없이 덥던 밤에 그 숨막히는 공기와 찝찝함을 참지못하고 폭팔해버린것은 우습게도 내가아닌 그였다.
「 강준희. 」
하굣길에, 농구를 보러가자던 친구들에게 집안사정이 있다고 둘러댔다. 집에 있으면 잡생각이날까 두려워 길거리에서 시간을 떼우다 집으로 왔건만…
힐끗 시계를 보자 이제 막 시합이 끝날 시간이었다. …안간건가?
「 얘기좀 하자. 」
「 아… 미안하다 집에 손님이 와서. 」
「 니네집에 아무도 없다 이병신아. 」
「 ……. 」
그 눈을 더이상 볼 수가 없어 고갤 숙였다. 싸움때문이라지만 저를 기다려준 행동이 기쁜 마음이 드는것도 싫었다. 더이상의 희망은 접고 그만하고싶다. 눈을 꾹 내리감자 지친 감정이 뚝뚝 흘러내렸다. 이미 온 몸을 흠뻑적셔 무거웠다. 마음같아선 집에서 축 늘어져 어디에도 가고싶지 않았다. 그 와중 '씨발' 하는 씹어뱉는듯한 말이 들려왔고 앗하는 사이 멱살이 잡혀 벽으로 밀어붙여졌다. 급작스런 거친행동과 통증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신음하자 머리위에서 짙은 목소리가 떨어져내린다.
「 어디 변명이나 들어보자. 」
「 …무슨소린데? 」
「 …하! 무슨소리─?」
「 ! 아프……! 」
여전히 시선을 피한채 웅얼거리듯 대답하자 멱살을 쥔 주먹에 힘이들어갔는지 눌린곳이 아팠다. 잡은손을 붙들고 버둥거리니 위협하듯 눈을 가까이한 그는 '그걸 몰라서 묻냐'는 듯 무섭도록 노려보았다. 그에 입술을 잘근 깨문 준희는 겨우 마주쳤던 눈을 다시 피해버렸다. 시원이에 관한 일이라면 안절부절 못하며 헤메던 바보는 어디론가 없고 이토록 당당하고 솔직하게 나오니 기뻐해야할지 씁쓸한건지 잘 모르겠다. 제딴에는 자연스레 멀어져 졸업을 하면 바쁘다는 핑계로 멀어질 작정이었다. 힘들더라도 잊는 노력이라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 지금 실수했다는 표정지었나? 」
「 ………. 」
「 시원이 때문인가보네. 」
「 …시원이 안좋아한다고!! 」
잠시 내리뜬 눈을 들여다보던 그가 비아냥 거리듯 그렇게 말했다. 울컥 하고, 무언가 입까지 올라온 것을 참지못했다. 그렇게 말할건 또 뭐란말인가. 요 몇일간 속끓였던 자신이 바보스럽다.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기가 힘들다. 거칠게 손을 쳐내자 그토록 셋던 손아귀와는 달리 손쉽게 떨어졌다.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며 이쪽에서 노려보자 정면으로 마주쳐오는 눈. 그동안의 애절했던 마음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커다란 불덩이가 들어찬듯 감당하기가 힘들다. 잠시동안의 정적 후에 그가먼저 입술을 떼었다.
「 그럼 뭔데? 」
「 ……. 」
「 도대체 뭐냐고!! 」
순간 찰나의 시간, 무섭도록 그를 노려보던 준희는 빠르게 손을 뻗었고 주먹을 내지르는줄 알았던 윤제는 팔을들어 머리를 감쌌지만 예상과는 달리 멱살을 움켜쥔 손이 강한 힘으로 끌어당겼다. 무게가 앞으로 쏠린 윤제는 미처 중심을 잡지못했고 또 다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좀전과는 달리 무언가 이상한 정적. 키가 조금 작은 준희는 고개를 든채 멱살을잡고 있었고 윤제는 돌아가는상황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잠시후 무슨일이 있었냐는듯 얌전히 몸을 떼어낸 준희는 보란듯 입술에 제 손등을 누른채 한걸음 물러났다. 윤제는 들어올린 손을 어찌하지 못하고 굳어있었고, 그런 그를 잠시 노려본 준희는 어께를 지고 지나치며 중얼거렸다.
「 병신새끼. 」
오늘도 편히 잠자긴 글렀다. 그렇게 생각하며 준희는 빨개진 눈가를 꾹꾹 눌렀다.
얼마전에 쓰던걸 실수로 올렸는데 누가 댓글을 다셨더라고요...
덜썼는데 올라와서 얼마나 놀라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