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I WERE YOU
W.땅콩초코잼
[준회 X 진환]
진환은 오늘도 약속에 늦는 준회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근처 조형물 끝저리에 걸터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둘은 사귄지 이제 1년이 다되어 간다.
고백은 진환이 먼저, 키스는 준회가 먼저했다.
나중에는 준회가 나를 더 사랑하겠지- 같은 바램은 4개월 전에 포기했다.
저 멀리서 여유롭게 사람좋게 웃으며 다가와 너에게 준회는 미안하다 대충 흘려보낸 사과가 끝이다.
진환은 그저, 준회의 얼굴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손을 먼저 내민다. 손잡아달라는 신호이다.
손깍지를 껴주곤 했지만 춥다며 호주머니에서 손을 끝끝내 꺼내지 않는 준회이다.
진환은 멋쩍게 웃으며 춥지? 하고 말아버린다. 그 둘 사이에는 차가운 입김만이 존재했었다.
아무말 없이 걷지만 그 둘의 목적지는 이미 같은 곳이다.
한 구석진 곳의 백반집에 둘은 마주보고 앉아 따뜻한 방석밑으로 손을 녹인다.
진환은 오늘 다른 메뉴가 먹어보고 싶다.
그러나 준회는 당연하다는 듯이 한가지 메뉴를 통일해 시킨다. 너도 이거지?
그냥 진환은 웃으며 끄덕인다. 넌 날 너무 잘 알아.
준회는 힘빠진듯이 웃는다. 난 널 너무 잘 알아.
기다리는 동안 그동안 대학교 이야기를 쏟아붓듯이 이야기한다.
과제가 어떻느니, 너네과가 그래도 괜찮은것이라느니..
사실 옆사람이 들으면 그저 같은 대학교 다른 과인 친구 둘이 오랜만에 만난 듯 한 이야기들 뿐이다.
진환은 사실 이런 이야기가 하고싶지 않다. 그냥 웃어주며 준회의 말에 맞장구치는 것 그뿐이다.
이윽고 밥이 나오고, 그 둘은 코를 쳐박고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기 시작한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밥에 반찬 올려주기, 진환은 스쳐지나가듯 한 장면을 떠올렸다.
준회는 진환의 시선을 느끼고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밥에 반찬 올려줘야되?
그의 표정에는 귀찮음과 왜 이런것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가득담겨있었다.
아냐, 그런거 아냐.
준회는 아랑곳않고 저가 싫어하는 반찬 하나를 아무렇게나 밥그릇에 올려놓았다.
개구지게 진환을 보며 웃는 준회에게 진환은 그저 허허 웃으며 똑같이 준회에게 돌려줄 뿐이다.
아! 나 해파리무침 싫어하는데!
어쩔, 먹어 이것도.
핑크빛의 연인관계란 흔한 관계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밥을 먹고 나와서 늘 그랬듯이 그 옆 카페로 옮겨가 준회는 아메리카노, 너는 카페라떼를 시켰다.
각자의 노트북을 켜서 이것저것 할 일들을 정리했다.
진환 너는 대충 모든 일들을 정리했다. 하지만 준회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쓸데없이 진지하게 준회는 세세하게 하나씩 검토하고있다.
가만히 준회를 바라보고 있자니 남자다운 선이 부럽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많아 항상 만날 시간이 없는 준회,
늘 방에 앉아 준회가 시간이 비는 순간만을 기다리는 진환,
사실 진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혹여나 몇 없는 준회가 비는 시간과 겹칠까봐
한번도 제대로 나가서 같이 놀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준회는 진환을 위해 약속을 잡는 날이 없었다.
아니, 가끔 모텔가고 싶은 날엔 먼저 통화를 하긴 했었다.
그마저도 진환은 감사하게 여겼다.
모든것을 알고 있는 룸메이트 윤형은 그런 준회가 아니꼽고 진환이 멍청하다 여겼다.
그래도 윤형은 진환의 편이다.
1시간, 2시간이 다되어가자 준회가 드디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거의 끝나간다는 신호이다.
그 말은 우리의 헤어짐도 가까워지고 있단 소리이다.
사실 준회를 관찰하기 시작한건 사귀기 시작도 전의 먼 옛날의 일이였다.
같은 첫 교양시간, 친구들 무리 중간에 앉아있던 준회를 멀리서 바라보다 눈이 마주친, 그 순간부터이다.
숨이 멎는다는게 이런 뜻일까.
진환은 숨이 멎을 듯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었다고 하지.
그러고 2주 뒤, 기숙사 밖에서 혼자 담배를 피고있던 준회에게 다가가 좋아한다고 시뻘게진채로 고백을 했었다고 한다.
준회는 모르는 사람이 대뜸 좋아한다고 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1시간의 긴긴 이야기 끝에 준회는 긴긴 외로움을 이기지 못학 진환을 받아주었더랜다.
지금의 진환은 차라리 쪽팔리더라도 거절을 당하는게 나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실 가끔 잠자리를 가지면서도 진환은 준회가 너무 외로워서 이럴려고 자신을 만나는게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사실 준회도 처음은 몰랐지만 진환을 진환이 저를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고 있다.
준회는 진환이 그런 고민을 가지고있다는 것을 알고있고, 미안해 하고 있다.
그래도 진환은 이렇게라도 준회가 저의 옆에 있어줌에 감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환은 어느순간부터인가 준회에게 이별을 준비하고있었다.
뜬금없이 고백을 했던 그날처럼 진환은 스트레칭을 마치고 커피를 입에 문 그 순간 진환은 헤어지자고 했었다.
처음과 조금 다르다면 이번에는 먼저 눈을 마주친건 진환이였다.
준회도 꽤나 당황한 눈치이다.
언제까지나 당연히 저가 먼저 통보하지 않는다면 진환은 떠나가지 않을것이라 생각했겠지, 진환은 추측했다.
이미 싸놓은 짐을 챙겨나가며 도망치듯이 카페를 벗어났다.
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준회는 골목길 어디에도 없었다.
당연할거라고 생각해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아니 조금은 흘리긴 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헤어졌다고 치자. 진환은 씁쓸했다.
하지만 돌아온 일상에서는 여전히 바빴고
준회없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꽤나 즐거웠었다.
바쁜 윤형덕에 아무도 없는 빈 기숙사방에 돌아오면 울적해지곤 했지만
그게 다였다. 아- 외롭다.
윤형은 사실 몇 개월 전인지는 모르겠지만
과 직속 후배가 진환을 짝사랑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우연히 학식먹다가 과 후배와 룸메는 인사를 했었었다. 이름은 김동혁이였다.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윤형은 동혁을 연결시켜주기로 마음먹었다.
진환은 은근한 그의 마음을 거절하고 싶지도 수긍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외로웠을 뿐이다.
여느때와 같이 6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밥을 먹으러 천천히 기숙사를 빠져나와
느긋하게 밥을 먹으며 사람들을 구경하다
기숙사로 돌아와 미리 공부를 하고
낮잠을 조금 자고
밀린 드라마를 복습하다가
점심을 미뤄버리고
애매한 저녁을 먹고
휴대폰을 조금 하다가
친구와 만나서 이야기, 혹은 술을 마시다
기숙사로 돌아오든 친구의 자취방에서 잠을 자든
그게 일과의 전부였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어느날 저녁 진환은 자기전 똑같이 폰을 잡고 이리저리 놀다가 뜬금없이 환기를 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창문을 열자, 조금 쌀쌀한 바람이 맨살을 찌르고 지나간다.
아랑곳않고 멍하니 달빛을 받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만약 준회였다면, 준회 니가 나만큼 사랑을 해줬더라면 지금 우리는 어땠을까.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멀리서 진환 너를 바라보고 비웃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입을 비죽이며 턱을 괴었다.
비스듬한 시선으로 달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진환이 쌀쌀한 바람과 대조되게 달빛의 따뜻함을 느꼈다.
추운 겨울 속의 따뜻할 수 없을 것 같은 포근한 달빛에 점점 몸이 나른해짐을 느낀다.
대뜸 경기를 일으키며 일어나보니 준회의 자취방이였다.